신명기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7–30장 · 복과 저주
복의 땅에서 다시 이집트로
신명기 28장은 하늘이 열리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좋은 창고인 하늘을 열어 제때 비를 내려 주십니다. 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가축은 새끼를 낳으며, 집에는 먹을 것이 가득합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에게 빌려줄 만큼 풍족해집니다.
그런데 같은 장의 끝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납니다.
하늘은 구리처럼 굳어지고 땅은 쇠처럼 변합니다. 밭에서 거둔 곡식은 다른 민족이 먹고, 자녀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높고 튼튼한 성벽도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살아남으리라고 확신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해 얻었던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모세는 이러한 미래를 그토록 길고 끔찍하게 묘사할까요?
27장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두 번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이제 28장은 그들이 동의한 언약의 말씀을 지키거나 저버릴 때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보여 줍니다.
복은 1–14절에서 선포되지만, 저주는 15–68절까지 이어집니다. 복의 선언보다 저주의 선언이 훨씬 깁니다.
처음에는 복과 저주가 거의 거울처럼 대응합니다. 성읍과 들, 바구니와 반죽 그릇, 자녀와 가축의 번성, 들어오고 나가는 일에서 복과 저주가 정확하게 뒤집힙니다.
그러나 저주는 그 대칭을 넘어 점점 길어지고 구체적이 됩니다. 가뭄과 질병에서 시작하여 전쟁에서의 패배, 가족의 상실, 포위된 성읍의 참상, 민족의 추방까지 나아갑니다.
복이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 — 하나님의 선물이 찾아오는 삶
1절과 2절에서는 복이 주어지는 조건이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땅의 모든 민족보다 높이 세우실 것이다.」신명기 28:1 · 두루새김
여기서 명령을 지킨다는 일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라는 표현입니다. 듣는다는 동사의 부정사와 활용형을 결합하여 듣는 행동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행위 자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들은 말씀을 실제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르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와서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신명기 28:2 · 두루새김
이 표현에는 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복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높이 세우시고 그들의 삶에 복을 주십니다.
성읍과 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너희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기 28:3 · 두루새김
「너희 바구니와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기 28:5 · 두루새김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기 28:6 · 두루새김
성읍과 들은 사람이 살아가고 일하는 공간 전체를 아우릅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행동은 일상적인 움직임 전체를 가리킵니다. 바구니와 반죽 그릇은 수확물을 거두고 그것을 일상의 음식으로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4절에는 사람이 낳은 자녀, 땅에서 거둔 수확물, 가축이 낳은 새끼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원문에서는 이들을 가리킬 때 「열매」(פְּרִי)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사람의 몸도, 땅도, 가축도 열매를 맺습니다. 두루새김은 각각 「자녀」, 「수확물」, 「새끼들」로 풀어 옮겼습니다.
이것은 고대 농경사회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살아가고 풍족해지려면 안정적인 땅과 적절한 수확, 가축의 번식, 가족이 이어지는 일이 모두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특별한 종교적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먹을 것이 자라고 집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전체에 미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하늘의 좋은 창고가 열리다 — 복의 중심에 놓인 하나님과 땅
7절부터 복의 범위는 개인과 가정에서 민족 전체로 넓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치러 일어나는 원수들을 너희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한 길로 너희를 치러 왔다가 너희 앞에서 일곱 길로 달아날 것이다.」신명기 28:7 · 두루새김
한 방향으로 질서 있게 공격하던 원수들이 패배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면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복과 저주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그 일을 겪는 쪽이 서로 바뀝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의 길을 따르면,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다.」신명기 28:9 · 두루새김
「땅의 모든 백성이 너희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임을 보고 너희를 두려워할 것이다.」신명기 28:10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이스라엘 위에 불린다고 표현합니다. 그 이름을 가진 분께 특별히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 앞에서 구별되는 지위를 갖습니다.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지는 일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행동과 연결합니다. 여기서 거룩함은 단순히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가 아닙니다. 그분께 속한 백성으로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관계를 포함합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창고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위해 그분의 좋은 창고인 하늘을 여실 것이다. 너희 땅에 제때 비를 내리시고 너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많은 민족에게 빌려주고, 너희 자신은 빌리지 않을 것이다.」신명기 28: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땅을 경작하지만 비를 자기 뜻대로 내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야 곡식이 자라고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늘을 하나님의 좋은 창고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너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노동의 결실이 가능하도록 비와 땅이 곡식을 길러 낼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소유하지만, 그 땅의 생명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존재는 아닙니다.
머리와 꼬리,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그들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표현들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경제적으로 매이지 않고 높은 지위를 갖게 된다는 약속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을 무조건 착취하거나 지배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특히 12절의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의 대조는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관계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복을 물질적인 성공의 공식으로 읽어도 되는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언제나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고, 전쟁에서 이기며, 많은 자녀를 얻는다는 뜻일까요?
신명기 28장은 우선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가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때 주어진 복을 선포합니다. 그 내용은 땅과 가축, 비와 수확, 민족의 안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규정들을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성공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자체에도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욥기는 의로운 사람의 고난을 단순한 죄의 결과로 설명하는 관점을 강하게 문제 삼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모든 시대의 개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형편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죄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질병이나 장애, 전쟁과 굶주림의 피해를 겪는 사람에게 이러한 판단을 적용하는 것은 본문이 허락하는 해석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15절에서 모든 풍경이 뒤집힙니다.
같은 바구니에 저주가 담기다 — 복의 언어가 거꾸로 뒤집히는 순간
15절은 1–2절과 거의 같은 문장 구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과 규정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와서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신명기 28:15 · 두루새김
2절에서 복이 이스라엘을 따라잡는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지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16–19절도 3–6절의 복을 그대로 뒤집습니다.
성읍과 들에서 저주를 받습니다.
바구니와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습니다.
자녀와 땅의 수확물과 가축의 새끼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도 저주를 받습니다.
같은 땅, 같은 집, 같은 바구니, 같은 노동의 결과가 서로 다른 상태에 놓입니다. 수확물을 담는 바구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바구니에 담을 수확이 부족해집니다.
반죽 그릇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빵을 만들 곡식이 부족해집니다. 성읍과 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곳에서 누리던 안정과 풍요가 무너집니다.
저주는 처음에 낯선 재앙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원래 복을 누리던 삶의 자리에서 그 복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20절부터는 이러한 대칭이 점점 무너집니다.
하늘은 구리가 되고 땅은 쇠가 되다 — 생명을 길러 내던 세계의 붕괴
20절부터 저주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선언을 넘어 구체적인 재앙으로 발전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손대는 모든 일에 저주와 혼란과 꾸짖음을 보내실 것이다. 너희가 멸망하여 빠르게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너희가 그분을 버리고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신명기 28:20 · 두루새김
8절에서는 같은 영역에 복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일이 계속되더라도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수고해도 결실을 얻지 못하고, 계획한 일이 무너지고, 삶의 안정이 사라집니다.
「그분을 버리고 악한 일을」 한 행동이 문제입니다. 신명기는 불순종을 여호와야훼와의 관계를 저버리는 행위와 연결합니다.
전염병과 질병에 관한 목록
21–22절에서는 전염병과 여러 질병, 농작물에 닥치는 재앙이 언급됩니다. 여기에는 몸이 쇠약해지는 병, 열병, 염증, 심한 열기, 칼, 곡식이 말라죽는 병, 곡식이 누렇게 시드는 병이 등장합니다.
이 목록을 현대 의학의 질병명으로 하나씩 대응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히브리어가 구별하는 병의 증상과 범주는 현대 의학의 진단 체계와 같지 않습니다.
또한 22절의 「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레브(חֶרֶב)는 전해 내려오는 모음 읽기에 따라 칼로 읽을 수 있지만, 모음을 달리 이해하여 가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는 길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목록이 질병과 기후 재앙만을 다루는지, 그 가운데 전쟁의 재앙까지 포함하는지는 해석상 차이가 있습니다.
몸이 병들고 땅의 수확도 실패합니다. 이스라엘의 삶을 지탱하는 서로 다른 영역이 동시에 위협받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반응하지 않는다
「너희 머리 위의 하늘은 구리가 되고, 너희 발밑의 땅은 쇠가 될 것이다.」신명기 28:23 · 두루새김
하늘과 땅이 비와 수확을 내어 주지 않는 상태를 묘사하는 시적 표현입니다. 12절에서 하늘은 여호와야훼의 좋은 창고였습니다. 그 창고가 열리면 제때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은 구리처럼 굳게 닫혀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땅에 내릴 비를 먼지와 흙가루로 바꾸실 것이다. 너희가 멸망할 때까지 그것이 하늘에서 너희 위로 내릴 것이다.」신명기 28:24 · 두루새김
물을 받아 곡식을 길러야 할 땅은 메말라 버립니다. 생명을 유지하도록 주어졌던 하늘과 땅의 관계가 뒤집힙니다.
이제 저주는 땅과 하늘을 넘어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맺는 관계에까지 확장됩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가 연설하고 있는 문맥에서 갑자기 「나」라는 일인칭이 나타납니다. 이 표현은 여호와야훼 자신을 가리킵니다. 모세의 연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표현이 들어온 것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너희가 그분을 버리고」로 옮겨, 버림받은 분이 여호와야훼이심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시고 땅이 식물을 내도록 하십니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생명을 길러 내던 조건들이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둘을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창조의 풍요가 거두어지는 듯한 문학적 이미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집을 짓고도 살지 못하다 — 미래를 빼앗기는 사람들
25절은 전쟁에서의 패배를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원수들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이다. 너희는 한 길로 원수를 치러 나갔다가 그 앞에서 일곱 길로 달아날 것이다. 땅의 모든 나라가 너희를 보고 몸서리칠 것이다.」신명기 28:25 · 두루새김
7절의 복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그때에는 원수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은 단지 전투에서 패하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26절에서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새와 짐승의 먹이가 되며, 그것들을 쫓아 줄 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전쟁에서의 패배만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공동체의 무력함을 묘사합니다.
「구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눈먼 사람이 어둠 속에서 더듬듯이, 너희는 한낮에도 더듬으며 다닐 것이다. 너희가 하는 일은 잘되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억눌리고 빼앗기기만 할 것이며, 구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신명기 28:29 · 두루새김
31절에서도 가축을 빼앗기지만 구해 줄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출애굽 때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저주의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빼앗기고 짓밟히지만 구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의 고통을 듣지 않으신다는 보편적인 선언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언약을 저버린 결과로 제시되는 극심한 무력함을 표현합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한다
「너희가 여자와 결혼하기로 약속해도 다른 남자가 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집을 지어도 그 안에서 살지 못하고, 포도밭을 가꾸어도 그 열매를 자기 먹을 것으로 쓰기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신명기 28:30 · 두루새김
문맥상 이는 전쟁과 약탈 속에서 관계가 침해되는 상황으로 이해되며, 여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세 장면은 단순히 경제적인 손해를 입는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일입니다.
집을 짓는 사람은 그곳에서 살 날을 기대합니다.
포도밭을 가꾸는 사람은 장차 열매를 거둘 날을 기다립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은 새로운 가정을 이룰 날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모두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갑니다.
저주는 현재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누리리라 기대했던 삶까지 잃어버리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눈은 보지만 손쓸 힘이 없다
「너희 아들딸이 다른 민족에게 넘겨지는 것을 너희 눈으로 볼 것이다. 온종일 자녀들을 애타게 바라보다 눈이 지쳐도, 너희에게는 손쓸 힘이 없을 것이다.」신명기 28:32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눈으로 보는 일과 손쓸 힘이 없는 처지가 대조됩니다. 앞에서 이스라엘은 모든 일에 복을 받으며 자신의 손으로 일한 결실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누릴 수 있었던 능력과 자유가 철저하게 뒤집힙니다.
36–37절에서는 이 모든 상실이 마침내 땅을 떠나는 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신뿐 아니라 그들이 세운 왕까지 알지 못하던 민족에게 끌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됩니다. 14절에서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이 결국 이스라엘을 다른 신들의 세계에 매인 삶으로 몰아넣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0장에서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새집을 짓고 아직 살지 못한 사람, 포도밭을 만들고 아직 열매를 누리지 못한 사람,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에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죽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집과 포도밭과 혼인 관계를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28:30에서는 바로 그런 비극이 저주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남이 내 수확을 먹는다 — 풍요로운 땅에서 낯선 사람이 주인이 되다
38–42절은 다시 농사로 돌아옵니다.
앞에서는 하늘이 닫히고 땅이 메마르는 상황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농사를 짓지만 결실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많은 씨앗을 뿌려도 적게 거둡니다.
포도밭을 가꾸지만 포도주를 마시지 못합니다.
올리브나무가 있어도 그 기름을 몸에 바르지 못합니다.
메뚜기와 벌레들이 수확물을 먹어 치우고, 올리브 열매가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반복되는 것은 노력과 결과의 분리입니다.
수고했지만 그 결과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열매를 빼앗기는 것에서 자녀를 빼앗기는 것으로
「아들딸을 낳아도 너희 곁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포로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이다.」신명기 28:41 · 두루새김
앞의 복에서는 자녀와 땅의 수확물이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둘을 몸의 열매와 땅의 열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저주에서는 땅의 열매를 잃는 일과 자녀를 잃는 일이 나란히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지탱하는 서로 다른 결실이 모두 사라지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땅의 수확이 없어지면 생계가 무너집니다. 자녀들이 포로로 끌려가면 가족의 미래가 무너집니다.
높아지는 외국인과 낮아지는 이스라엘
「너희 가운데 함께 사는 외국인은 너희 위로 높이높이 올라가고, 너희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신명기 28:43 · 두루새김
「그는 너희에게 빌려주지만, 너희는 그에게 빌려주지 못할 것이다. 그는 머리가 되고 너희는 꼬리가 될 것이다.」신명기 28:44 · 두루새김
12–13절의 복이 다시 뒤집힙니다. 복의 장면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빌려주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외국인이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 자체를 악하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외국인에게 권한이나 경제적 안정을 갖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저주로 묘사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지위와 독립성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매이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와서, 너희가 멸망할 때까지 뒤쫓아 따라잡을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분께서 명령하신 규정과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신명기 28:45 · 두루새김
이것은 2절과 15절에서 시작된 표현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뒤쫓아」라는 말까지 더해집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일시적 불행보다 계속되는 추격과 피할 수 없는 몰락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다음 절부터는 불순종의 이유를 더욱 뜻밖의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기쁨으로 섬기지 않았으므로 — 풍족함에서 쇠 멍에로
46절은 저주들이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표징과 놀라운 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표징과 놀라운 일이 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사건과 연결되었습니다(신명기 4:34, 26:8). 그런데 여기서는 저주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이 구출과 번영의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심판 속에서도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역사 속에서 고난을 겪은 집단을 보고 그들이 하나님께 저주받았다고 판정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특정한 언약의 저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든 것이 풍족할 때에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신명기 28:47 · 두루새김
풍족한데도 기쁨이 없는 이유
이 문장을 하나님을 섬길 때 언제나 밝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저주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기쁨과 즐거운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와 그분을 섬기는 삶의 관계를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신명기는 이미 여러 차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했습니다(신명기 12:7, 16:11, 26:11). 그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가족과 레위 사람과 함께 사는 외국인 등과 함께 누리는 삶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풍족함을 그분을 섬기는 삶과 연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너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보내시는 원수들을 섬길 것이다. 원수는 너희를 멸망시킬 때까지 너희 목에 쇠 멍에를 씌울 것이다.」신명기 28:48 · 두루새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원수를 섬기는 일
47절과 48절에는 같은 동사 어근 아바드(עָבַד)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섬기거나 노동하거나 종으로 일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47절에서는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에 사용됩니다. 48절에서는 원수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파라오의 종으로만 살아가는 백성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면 다시 다른 주인을 섬기는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는 일입니다.
풍족함은 굶주림으로 바뀝니다.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매이는 삶으로 바뀝니다.
기쁨은 쇠 멍에로 바뀝니다.
멍에는 짐승에게 씌워 노동을 시키는 도구입니다. 사람의 목에 씌워진 멍에는 복종과 강제 노동의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쇠로 된 멍에는 벗어나기 어려운 무거운 속박을 나타냅니다.
성벽은 무너지지 않아도 안에서는 사람이 무너진다 — 포위전의 끔찍한 미래
49절부터는 저주의 모습이 하나의 구체적인 전쟁 장면으로 좁혀집니다.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축 새끼와 땅의 수확물을 먹어 버리고 모든 성읍을 포위합니다.
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한가
「여호와야훼께서 먼 곳, 땅끝에서 한 민족을 데려와 너희를 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독수리가 날아들듯이 올 것이다. 그 민족은 너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쓴다.」신명기 28:49 · 두루새김
사람은 언어를 통해 요구하고, 항의하고, 협상하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아듣지 못한다면 두려움과 무력함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익숙한 주변 세계를 떠나 전혀 낯선 강대국의 지배 아래 놓이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너지는 것은 성벽만이 아니다
「그들은 너희 온 땅에서 너희가 믿고 의지하던 높고 튼튼한 성벽들이 무너질 때까지 모든 성읍을 포위할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온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희를 에워쌀 것이다.」신명기 28:5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높은 성벽이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튼튼한 성벽이라도 오랜 포위와 공격을 끝없이 견딜 수는 없습니다. 이제 성벽의 바깥에는 적군이 있고, 안에는 식량이 부족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수가 너희를 포위하여 몰아넣은 고통 속에서, 너희는 너희 몸에서 난 자녀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아들딸의 살을 먹게 될 것이다.」신명기 28:53 · 두루새김
「몸에서 난 자녀」가 끔찍한 상황에 놓이다
4절에서는 「너희가 낳은 자녀」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원문에서는 4절과 53절 모두 자녀를 몸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53절에서는 그 몸의 열매가 끔찍한 상황의 대상이 됩니다.
복의 대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저주의 참상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모습으로 뒤집힙니다.
이러한 표현을 단순히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도덕적 비유로 줄여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실제로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포위전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동시에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러한 행동을 명령하시거나 허용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는 언약의 저주로 선포되는 참상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장 부드러운 사람마저 달라진다
평소에 몸이 여리고 곱게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굶주림을 겪은 후 가족에게도 인색하게 굽니다. 남자는 형제와 아내와 살아남은 아들들에게 자기가 먹는 것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편과 아들과 딸에게 인색하게 굴며, 57절에서는 출산과 관련된 태반과 아이들을 몰래 먹는 끔찍한 상황이 언급됩니다. 평소에 부족함 없이 살던 사람조차 극심한 부족함 속에서 가족에게 잔혹하게 행동하는 상황을 강조합니다.
포위전의 가장 끔찍한 결과는 단지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형제 사이의 관계까지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 성경 역사에 등장하는가
열왕기하 6:24–29에서는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한 상황에서 두 여자가 한 여자의 아들을 함께 먹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레미야애가 4:10에서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자비로운 여인들이 자기 자녀들을 삶아 먹을 것으로 삼았다고 탄식합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서로 다른 본문들은 실제로 고대의 포위전이 어떤 극단적인 비극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증언하거나 탄식합니다. 신명기 28장은 그 가능성을 언약의 저주라는 형태로 미리 선포합니다.
본문은 이 모든 일이 언약의 불순종과 관련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설명이 포위전에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 고통을 보고 정당한 처벌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겪는 고통 앞에서 독자는 본문의 언약에 관한 설명과 고통받는 개인의 책임 문제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긴장은 신명기 28장이 남기는 가장 무거운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금 더 깊이
49절의 그 민족을 앗시리아나 바벨론처럼 이스라엘을 침공한 제국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28장은 그 민족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제국만을 이 구절의 유일한 대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57절의 히브리어 전치사가 이어지는 방식 때문에 태반과 아이들을 앞 절에서 인색하게 대하는 대상으로 계속 읽을 것인지, 나누지 않으려는 음식의 대상으로 이해할 것인지에는 문법적인 해석 차이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몰래 먹을 것」이라고 옮겨, 나누지 않으려는 음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인색하게 굴며」와 「인색하게 굴 것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눈이 악하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신명기 15:9에서는 가난한 형제를 향해 인색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할 때 비슷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았지만 적은 수만 남다 — 약속의 역전
58절에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옵니다.
「너희는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이 가르침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영광스럽고 두려운 이름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신명기 28:58 · 두루새김
이 절에서는 가르침을 지키는 목적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직접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고 두려운 이름」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자기들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앞 장에서는 돌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가르침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록된 말씀은 단순히 보관하기 위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집트의 질병이 돌아온다
「너희가 두려워했던 이집트의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다시 닥치게 하실 것이다. 그 병들이 너희에게 달라붙을 것이다.」신명기 28:60 · 두루새김
출애굽 때 이집트는 재앙을 겪었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구출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재앙을 당한 쪽과 구출받은 쪽의 위치가 뒤집히는 것입니다.
61절은 그것보다 더 나아갑니다.
가르침의 두루마리에 기록되지 않은 병과 재앙까지 닥칠 것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구체적으로 이름 붙인 재앙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별과 적은 수의 사람들
「너희는 하늘의 별처럼 많았지만, 얼마 안 되는 사람만 남을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신명기 28:62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창세기 15:5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하시며 그의 후손이 그렇게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1:10에서도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28장에서는 그 약속이 이루어진 모습이 거꾸로 무너집니다.
이스라엘이 잃게 되는 것은 단순한 재산이나 영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시고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 오신 삶의 결실입니다.
하나님이 멸망을 기뻐하신다는 말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잘되게 하고 수가 많아지게 하기를 기뻐하셨듯이, 너희를 없애고 멸망시키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너희는 차지하러 들어가는 그 땅에서 뽑혀 나갈 것이다.」신명기 28:63 · 두루새김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라는 일반적인 성품 묘사로 곧바로 넓혀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언약의 복과 저주를 극단적으로 대조하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망설이시거나 힘없이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라, 선언하신 언약의 심판을 실제로 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설명만으로 본문의 강한 표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분명히 하나님이 백성의 멸망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것이라는 말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도록 합니다. 동시에 그 심판이 인간의 역사에 어떤 참상을 가져오는지를 이미 앞선 구절들이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를 고통의 장면을 기뻐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18:23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겠느냐고 물으시며, 오히려 그가 자기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본문은 서로 다른 문맥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뜻을 말합니다. 신명기 28장은 언약을 저버린 백성에게 선포되는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에스겔 18장은 악인이 돌이켜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을 없애는 방식보다, 서로 다른 문맥에서 무엇을 강조하는지 구별하며 읽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다 — 땅과 미래와 평안의 상실
64절에서는 민족 전체가 흩어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민족 가운데로 흩으실 것이다. 너희는 거기에서 너희도 너희 조상들도 알지 못했던 다른 신들, 곧 나무와 돌을 섬길 것이다.」신명기 28:64 · 두루새김
이것은 앞에서 언급된 포로 생활보다 더욱 넓은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나라의 포로가 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살아가는 백성이 됩니다.
안식이 사라진 자리
「그 민족들 가운데서 너희는 편히 쉬지 못하고 발붙여 쉴 곳도 얻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거기에서 너희 마음이 떨리고 눈이 지치며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신명기 28:65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신명기의 중요한 약속을 뒤집습니다. 신명기 12:9–10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안식과 물려받을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에서 원수들로부터 벗어나 편히 쉬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8장에서는 그런 쉼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사람은 먼 길을 걸은 뒤 발을 디디고 쉴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곳조차 없습니다.
여기서 저주는 공간의 상실을 넘어 마음의 불안으로 발전합니다.
아침에는 저녁을, 저녁에는 아침을 기다리다
「너희 목숨은 눈앞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울 것이다. 밤낮으로 두려워하며 살아남으리라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신명기 28:66 · 두루새김
목숨이 「눈앞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울 것」이라는 말은 사람이 자신의 삶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은 그 불안을 하루의 시간으로 표현합니다.
「아침에는 『저녁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저녁에는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다. 마음에 밀려오는 두려움과 눈으로 보는 광경 때문이다.」신명기 28:67 · 두루새김
아침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저녁이 되어도 평안이 오지 않습니다. 저녁의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다음 아침 역시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불안이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삶이 안전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쉴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복의 장면에서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모두 복을 받던 백성은 이제 하루의 어느 시간에도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간 일을 다룹니다. 열왕기하 24–25장은 유다가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예루살렘이 함락되며 왕과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두 역사적 사건은 서로 다르지만, 신명기 28장의 언약 저주와 연결하여 읽을 수 있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특히 땅에서 쫓겨나고 다른 민족의 지배 아래 놓이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29:10–14에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의 미래에 관한 회복의 약속도 나타납니다. 신명기 자체에서도 이어지는 장들에서 흩어진 백성이 돌아오는 가능성이 다루어집니다. 다만 그것을 미리 끌어와 28장의 마지막 장면을 부드럽게 끝내서는 안 됩니다. 28장은 아직 회복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다시 이집트로 — 출애굽 이야기가 거꾸로 끝나는 장면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배에 태워 이집트로 돌려보내실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그 길로 보내실 것이다. 너희는 거기에서 자신을 원수들에게 남종과 여종으로 팔려고 해도, 사 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신명기 28:68 · 두루새김
출애굽은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를 이루어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종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강한 손과 뻗은 팔로 그들을 구출하셨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세는 그 길을 거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자유에서 종살이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왜 배를 타고 돌아가는가
본문은 실제 배를 통한 이동을 말하고 있지만, 어떤 항구에서 출발하여 어떤 바닷길로 이집트에 도착할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특정한 역사적 해상 운송 사건 하나에 반드시 연결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을 종으로 팔려고 하지만 사는 사람이 없다
자신을 「남종과 여종으로 팔려고 해도, 사 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아무도 사지 않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자유를 지킬 힘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는 방식으로라도 살아남으려 하지만, 그 길마저 막혀 있습니다.
출애굽의 시작에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종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저주의 장면에서는 종이 되는 방식으로조차 살아남을 길을 얻을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 때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걸어 바다를 건넜습니다(출애굽기 14:21–22). 그런데 이제는 배를 타고 이집트로 돌아간다고 묘사됩니다. 이것을 출애굽 당시의 이동 경로가 정확히 반대로 되풀이된다는 뜻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모압에서 맺도록 명령하신 언약의 말이었다
68절에서 긴 저주 선언이 끝난 뒤, 69절에는 새로운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도록 모세에게 명령하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호렙에서 그들과 맺은 언약과는 별도로 주어진 것입니다.신명기 28:69 · 두루새김
이 절은 모세가 계속해서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직접적인 연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는 서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절은 28장의 마지막이면서 뒤에 이어질 언약의 말씀을 열어 주는 문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호렙의 언약과 모압의 언약
호렙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뒤 여호와야훼와 언약을 맺은 장소입니다. 모압은 이제 요단을 건너기 직전에 모세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장소입니다.
본문은 두 언약의 장소와 상황을 구별하지만, 모압에서 맺는 언약이 호렙의 언약을 없애거나 대신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명기 전체의 흐름에서 모세는 호렙의 언약과 가르침을 새로운 세대에게 설명하고,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모압에서의 언약 선언은 그 말씀을 현재의 이스라엘이 다시 책임 있게 받아들이는 상황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28장의 복과 저주가 단순히 개인적인 축복과 불행의 예측이 아니라 언약 관계에서 선포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따르는 히브리어 장절에서는 28:69이지만, 많은 성경 번역의 장절 구분에서는 29:1에 해당합니다. 예레미야 7:5–7에서는 이스라엘이 길과 행실을 바르게 하고, 서로 공정하게 재판하며, 함께 사는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죄 없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살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의 규정과 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계속 살아가는 일은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결론 — 다시 보이는 이집트의 길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끝까지 보여 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출애굽과 약속의 성취가 반대 방향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언약을 저버릴 때 벌어지는 참혹한 미래를 숨김없이 보여 줌으로써 이스라엘이 지금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선택하도록 요구합니다.
모세는 아직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요단을 건너기 직전의 이스라엘에게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긴 저주 선언을 듣는 사람들은 아직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세의 긴 연설이 끝났을 때, 이스라엘은 여전히 요단강 동쪽에 있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약속의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온 이집트의 길은 아직 뒤쪽에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