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환상과 부르심

유배의 땅에서 열린 하늘

에스겔 1장을 처음 읽으면 네 얼굴을 가진 생물들, 눈이 가득한 바퀴들, 불과 번개, 하늘 위의 왕좌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가장 놀라운 사실은 환상 속 사물들의 기묘한 생김새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에스겔이 어디에서 보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크발 강가에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유다의 왕은 포로로 잡혀 왔고, 백성 일부는 고향을 떠나 이방 제국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이심을 고백해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특별히 만나시는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약속을 보여 주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백성이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땅으로 끌려왔습니다. 이들에게 유배는 단지 집과 땅을 잃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여전히 이들의 하나님이십니까?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올 수 있습니까?

에스겔 1장은 이 질문에 설명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의 광경을 펼쳐 보입니다. 폭풍 속에서 나타난 생물들과 바퀴들 위로 궁창이 펼쳐지고, 그 위에 왕좌가 있으며, 그 왕좌 위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에스겔이 잃어버린 것은 고향이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예루살렘에 갇혀 계시지 않는 하나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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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발 강가에서 열린 하늘

에스겔 1:1–3 본문 →

본문은 날짜를 유난히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5일」이라는 첫 번째 날짜가 나오고, 곧이어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끌려온 지 다섯째 해」라는 두 번째 날짜가 나옵니다. 같은 날을 두 방식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첫 번째 날짜를 어디서부터 세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의 나이 서른 살을 뜻한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민수기 4:3에서 레위 사람들이 서른 살부터 회막 봉사에 참여하도록 규정한 점이 그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해석은 어떤 역사적 사건부터 센 연대라고 이해합니다. 특히 요시야 시대에 율법책을 발견한 사건(열왕기하 22:3–13)부터 세었다고 보는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는 무엇을 기점으로 서른 해를 셌는지 알려 주지 않으므로 어느 해석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두 번째 날짜는 역사적 배경을 분명히 합니다.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끌려간 사건은 열왕기하 24:10–1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일은 그 뒤에 일어납니다(열왕기하 25:8–10).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은 바벨론에 있지만, 예루살렘에는 여전히 왕이 있고 성전도 서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바로 이 불안정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1절은 「나는」이라는 일인칭으로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만, 3절은 「부시의 아들인 제사장 에스겔에게」라고 삼인칭으로 설명합니다. 1절이 에스겔이 경험한 환상의 현장을 직접 들려준다면, 2–3절은 그 경험을 역사 속에 놓고 예언자의 신분을 밝혀 줍니다.

칼데아 사람들의 땅 크발 강가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부시의 아들인 제사장 에스겔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의 능력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에스겔 1: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 부시의 아들인 제사장 에스겔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הָיָ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에는 ‘있다, 일어나다’를 뜻하는 동사가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실제로 에스겔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와야훼의 능력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יָד⁩)는 원문에서 ‘여호와야훼의 손’으로 표현됩니다. 에스겔에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말씀과 능력이 먼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가리키는 「그곳에서」라는 짧은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에스겔이 처한 곳은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이방 제국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능력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나타난 네 생물

에스겔 1:4–14 본문 →

하나님을 드러내는 광경은 왜 폭풍으로 시작되는가

에스겔이 처음 본 것은 왕좌도 아니고 사람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구름 속에서 불이 잇달아 번쩍였고, 그 둘레에는 환한 빛이 있었습니다. 불 한가운데에는 빛나는 금속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에스겔 1:4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시나이산에 나타나셨을 때의 광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나이산에는 구름과 불이 있었고, 천둥과 나팔 소리가 울렸으며,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출애굽기 19:16–19).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일이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거룩한 사건이었던 것처럼, 에스겔의 환상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1:14에서는 북쪽에서 재앙이 닥친다는 선언이 나오며, 바벨론의 침략도 유다의 역사에서 북쪽에서 밀려오는 위협으로 경험되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북쪽이 그런 심판의 방향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장 자체는 북쪽을 특정 나라나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은 불의 중심으로 점점 시선을 옮깁니다. 그럴수록 더욱 선명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일상적인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네 얼굴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에스겔은 네 생물이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각각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입니다.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송아지의 발바닥 같으며, 날개 아래에는 사람의 손이 있습니다.

네 생물 모두 사람의 얼굴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사자의 얼굴, 왼쪽에는 소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또 모두 독수리의 얼굴이 있었습니다.에스겔 1:10 · 두루새김

이 네 모습을 각각 특정한 성품이나 나라, 혹은 훗날의 인물에 대응시키려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장은 각각의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생물들의 움직임입니다.

9절은 「움직일 때 몸을 돌리지 않고」라고 말하며, 12절도 같은 사실을 반복합니다. 네 얼굴이 있다는 설명은 이 반복과 연결됩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그 방향을 향한 얼굴이 이미 있기 때문에 몸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네 얼굴을 인간과 여러 동물의 영역을 아우르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땅의 짐승,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이 하나의 존재에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생물들을 창조 세계 전체의 대표라고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확실한 사실은 이 생물들의 몸과 움직임이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고, 날개가 있으면서도 새와 같지 않습니다.

그 낯섦은 하나님의 영광을 둘러싼 존재들이 인간에게 익숙한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은 아직 이 생물들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에스겔 10:15, 10:20에 이르러서야 그는 자신이 크발 강가에서 보았던 생물들이 그룹들이라고 밝힙니다.

그룹은 이스라엘의 성전 전통에서 이미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언약궤 위에는 두 그룹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그룹들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애굽기 25:18–22). 솔로몬의 성전 지성소에도 거대한 그룹 형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열왕기상 6:23–28).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에스겔 1장의 생물들이 단순히 기이한 하늘의 동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왕권을 둘러싼 존재들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만 에스겔이 보는 그룹들은 성전 안에 고정된 조각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며, 서로 날개를 맞대고, 거룩한 불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가

12절에서 생물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생물들은 저마다 얼굴이 향한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영이 가려는 곳으로 따라갔고, 움직일 때 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에스겔 1:12 · 두루새김

그들은 네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인데도 서로 충돌하거나 흩어지지 않습니다. 영이 가려는 곳으로 함께 따라갑니다.

13–14절은 이 움직임을 타오르는 숯불과 횃불, 번개에 비유합니다. 불이 생물들 사이를 오가고, 그들은 번개가 번쩍이듯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광경의 중심은 생물들의 힘 자체가 아닙니다.

그토록 빠르고 강력한 존재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רוּחַ⁩)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을 뜻할 수 있습니다. 4절의 「폭풍」에 해당하는 원문 표현에서는 바람의 의미가 뚜렷하지만, 12절에서는 생물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영으로 나타납니다. 이 영을 하나님의 영으로 이해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체 환상에서 생물들이 하나님의 왕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2절은 그 영이 누구의 영인지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눈이 가득한 바퀴

에스겔 1:15–21 본문 →

바퀴 안에 바퀴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스겔은 생물들 곁에서 바퀴를 봅니다.

바퀴들은 타르시스라는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네 바퀴의 모양은 모두 같았고, 바퀴 안에 또 다른 바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생겼습니다.에스겔 1:16 · 두루새김

이 표현 때문에 에스겔의 환상은 때때로 복잡한 기계장치의 설계도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본문은 바퀴의 정확한 구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 바퀴 안에 다른 바퀴가 교차하는 구조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바퀴들이 어떤 각도로 놓였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바퀴들은 네 방향 가운데 어느 쪽으로든 나아갔고, 나아갈 때 몸체를 돌리지 않았습니다.에스겔 1:17 · 두루새김

바퀴의 특이한 형태는 생물들의 움직임과 같은 특징을 나타냅니다. 보통 바퀴는 굴러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바퀴들은 그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바퀴 테는 높이 솟아 있었고 보기에도 두려웠습니다. 네 바퀴 모두 테 둘레에 눈이 가득했습니다.에스겔 1:18 · 두루새김

눈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는 능력, 곧 빠짐없이 살피는 능력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네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바퀴에 눈이 가득하다는 점은 그런 이해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눈들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의 직접적인 상징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와 바퀴가 하나처럼 움직인다

19–21절에는 비슷한 설명이 거듭 나옵니다.

영이 가려는 곳이면 어디든 생물들도 갔습니다. 바로 영이 향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바퀴들도 생물들 곁에서 함께 떠올랐습니다. 생물의 영이 바퀴들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물들이 움직이면 바퀴들도 움직이고, 생물들이 멈추면 바퀴들도 멈추었습니다. 생물들이 땅에서 떠오르면 바퀴들도 그 곁에서 함께 떠올랐습니다. 생물의 영이 바퀴들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에스겔 1:20–21 · 두루새김

이 반복은 불필요한 중복이 아닙니다. 생물들과 바퀴들이 따로 움직이는 두 종류의 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퀴에는 따로 움직임을 결정하는 의지가 없습니다. 생물들도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와 바퀴가 한 영의 움직임에 참여합니다.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 완전히 하나가 된 움직임이 함께 나타납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좌는 왕권의 자리였으며, 왕이 있는 곳은 통치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환상에서 왕좌를 받치는 질서는 고정된 장소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생물들과 바퀴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고, 그 움직임은 하나로 조화를 이룹니다.

이 점에서 에스겔 1장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왕좌를 보여 주는 환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장은 그것을 보통의 수레라고 부르거나 이동 장치의 구체적인 구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의 몸은 바벨론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는 왕좌의 질서는 어떤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 제국의 통제 아래 갇혀 있는 동안, 에스겔은 그 제국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통치의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에스겔이 살아갈 장소를 결정할 수 있었지만,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나타날 장소까지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10–11장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11:22–23에서는 그룹들과 바퀴들의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고, 영광이 성읍 동쪽 산 위에 머뭅니다. 훗날 에스겔 43:1–5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동쪽에서 돌아와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이 장면들은 에스겔 1장의 환상과 직접 연결됩니다.

궁창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에스겔 1:22–25 본문 →

생물들 위에는 거대한 궁창 같은 것이 펼쳐져 있습니다.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궁창 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얼음처럼 보였고, 보기에도 두려웠습니다.에스겔 1:22 · 두루새김

아래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번개가 번쩍였는데, 그 위에는 얼음처럼 보이는 눈부신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불과 얼음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가 한 환상 속에 놓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온도의 대조라기보다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찬란한 빛과 두려움입니다. 에스겔은 무엇과 닮았는지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24절에 이르러 묘사의 중심이 보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옮겨 갑니다.

생물들이 움직일 때 나는 그들의 날개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센 물소리 같기도 하고 샤다이의 목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군대가 모인 곳에서 나는 소리처럼 요란했습니다. 생물들은 멈추면 날개를 늘어뜨렸습니다.에스겔 1:24 · 두루새김

거센 물소리와 군대가 모인 곳에서 나는 소리는 압도적인 규모를 나타냅니다. 이 소리는 조용한 날갯짓이 아니라 주변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울림입니다.

「생물들은 멈추면 날개를 늘어뜨렸습니다」라는 문장은 25절에서도 다시 반복됩니다. 번개처럼 움직이던 생물들이 멈추고, 요란하게 울리던 날개가 내려갑니다. 바로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쪽에서 소리가 납니다.

생물들의 위엄이 환상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바퀴들의 움직임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 위에 다른 차원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마침내 그곳을 바라봅니다.

조금 더 깊이

「궁창」(⁨רָקִיעַ⁩)은 창세기 1:6–8에서 하나님이 물 사이에 만드시고 하늘이라고 부르신 궁창과 같은 낱말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창조 세계의 영역을 구분하는 요소로 나타나고, 에스겔에서는 생물들 위에 펼쳐져 왕좌가 있는 영역과 그 아래를 구분합니다. 샤다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지만, 그 이름의 정확한 어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샤다이의 어원을 풀이하는 일이 아니라, 생물들의 날개 소리가 하나님의 위엄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왕좌 위에 있는 사람의 모습

에스겔 1:26–28 본문 →

왜 에스겔은 하나님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가

26절은 환상의 중심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진 궁창 위쪽에는 사피르라는 보석처럼 보이는 왕좌 모양의 것이 있었습니다. 그 왕좌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가 있었습니다.에스겔 1:26 · 두루새김

에스겔은 대상이 무엇인지 직접 규정하기보다는 자기가 본 것과 가장 가까운 대상을 찾아 비유합니다. 그 결과 환상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묘사가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알려질 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에스겔에게 실제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묘사할 수 있는 초상화가 아닙니다.

사람의 모습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환상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왕좌 위의 존재가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폭풍과 불, 구름과 번개는 하나님의 임재를 둘러싼 현상입니다. 생물들은 살아 움직이고, 바퀴들은 하나의 영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위에는 왕좌가 있고, 왕좌 위에는 사람과 닮은 형체가 있습니다.

자연의 힘이 최종적인 통치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온 세상을 뒤흔드는 현상 너머에 통치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통치자는 곧 말씀하시는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불과 무지개는 어떻게 함께 나타나는가

27절은 왕좌 위 형체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내가 보니 그 형체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 위쪽은 빛나는 금속 같았고, 그 안은 사방이 불처럼 보였습니다.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 아래쪽도 불처럼 보였으며, 둘레에는 환한 빛이 있었습니다.에스겔 1:27 · 두루새김

4절에서는 폭풍 가운데 불이 있었고, 13절에서는 생물들 사이로 불이 오갔습니다. 이제 27절에서는 왕좌 위의 존재를 묘사하는 데도 불이 등장합니다.

환상 전체를 감싸던 빛이 마침내 중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그 둘레의 빛은 비 오는 날 구름 속에 나타나는 무지개 같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에스겔 1:28 · 두루새김

하나님의 위엄을 둘러싼 불과 폭풍 가운데, 이전에 하나님의 언약을 나타냈던 무지개의 모습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심판의 공포라는 한 가지 의미로만 단순화할 수 없게 만듭니다.

에스겔이 실제로 보았다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28절의 마지막 설명은 이 환상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본 것은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닮은 모습」입니다.

환상의 절정에서조차 하나님은 인간의 묘사 속에 완전히 담기지 않으십니다.

본문에서 에스겔이 처음으로 보여 주는 행동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리를 듣습니다.

에스겔은 이미 1절에서 환상을 보는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장이 끝날 때 그는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환상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을 구경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4:9–11에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을 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신명기 4:12, 4:15는 시나이에서 백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이 진술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서로 다른 경험의 측면을 전합니다. 왕좌 위의 사람의 모습은 창세기 1:26–27의 하나님 형상에 관한 선언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에스겔이 본 모습이 창세기의 그 선언을 직접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빛나는 금속」은 고대 번역 전통에서는 금속성 광채로 이해하기도 했지만, 특정 금속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창세기 9:12–17의 언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의 표로 구름 가운데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에스겔은 여기서 노아의 언약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무지개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미루겠다는 약속이라거나, 유배가 끝난다는 선언이라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닮은 모습이었습니다」는 원문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닮은 모습의 나타남’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영광’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그분이 그곳에 계심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40:34–35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여 모세조차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8:10–11에서는 그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과 광채 가운데서 들려온 말씀

에스겔 1:1–28 본문 →

여기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가까이 오셨지만, 작아지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지만,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축소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유배의 땅까지 미쳤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거룩하고 두려웠습니다.

이것을 개인의 어려움이 곧 해결된다는 약속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1장에는 그런 약속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후 에스겔이 전하게 될 말씀은 백성이 듣기 어려운 심판의 선언을 포함합니다.

위에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생물들과 바퀴들, 찬란한 궁창과 높은 왕좌가 있습니다. 아래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어디로도 가지 않았습니다. 유배의 땅을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 삶을 둘러싼 제국의 권력보다 더 높은 왕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서, 왕좌 위로부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에스겔 1장은 그 소리 앞에 엎드린 사람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