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50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이집트에 남겨진 관과 끝나지 않은 약속

창세기는 한 사람이 죽어 관에 놓이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 사람은 요셉입니다. 형제들에게 팔려 이집트에 끌려갔지만, 마침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어 많은 사람을 기근에서 살려 낸 인물입니다. 아버지와 다시 만났고, 형제들과 화해했으며, 자손들이 자라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마지막을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인데, 창세기는 왜 이집트에 남겨진 관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복수할까 두려워합니다. 이미 요셉에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창세기 50장은 두 가지 미완성의 문제를 다룹니다. 형제들의 관계는 정말 회복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땅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입니까?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850장 본문 읽기 →

아버지를 가나안에 묻기까지 — 이집트의 애도와 가족의 약속

창세기 50:1–14 본문 →

죽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린 요셉

49장에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50장은 그 직후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 위로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었습니다.창세기 50:1 · 두루새김

창세기 46장에서 요셉은 살아 있는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그 목을 끌어안고 오래 울었습니다(46:29). 이제 그는 죽은 아버지의 얼굴 위로 엎드려 웁니다.

요셉은 한때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다시 만나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이제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집트로 내려가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요셉이 그의 눈을 감겨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일이 떠오릅니다(창세기 46:4).

그는 이집트의 높은 관리이며 나라의 중요한 일을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50장 첫 절에서는 그런 지위를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잃은 아들로 나타납니다.

왜 이집트 방식으로 방부 처리했는가

요셉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아버지의 몸을 방부 처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의사들은 이스라엘의 몸을 방부 처리했습니다.창세기 50:2 · 두루새김

방부 처리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하기 위해 행했던 장례 관습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집트 사람이 아닙니다. 가나안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자신을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 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왜 이집트 방식의 방부 처리가 이루어졌을까요?

본문은 요셉이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몸을 가나안까지 옮겨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몸을 보존하기 위한 실제적인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요셉은 이집트의 높은 관리였으므로 이집트에서 쓰는 장례 기술과 일하는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방식으로 몸을 보존하지만, 묻힐 장소는 야곱이 명령한 가나안입니다.

방부 처리에는 40일이 걸렸고, 이집트 사람들은 70일 동안 야곱을 위해 울었습니다. 본문은 방부 처리에 필요한 기간과 죽음을 슬퍼한 기간을 각각 기록하며, 두 기간이 서로 어떻게 겹쳤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이집트 왕도 아니었고, 이집트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의 아버지로서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오랫동안 나그네로 살아왔다고 고백했던 사람이 이집트가 공식적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운데 생을 마칩니다.

요셉은 왜 파라오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가

야곱을 위해 우는 기간이 지나자, 요셉이 파라오의 집안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좋게 여기신다면, 파라오께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창세기 50:4 · 두루새김

그 이유가 궁정의 정해진 절차 때문인지, 죽음을 슬퍼하는 일과 관련된 관습 때문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요청을 전하면서 자신이 맹세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하시며, 가나안 땅에 파 놓으신 무덤에 묻어 달라고 제게 맹세하게 하셨습니다. 부디 제가 올라가 아버지를 묻게 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돌아오겠습니다.』」창세기 50:5 · 두루새김

요셉은 가나안으로 영원히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잠시 떠났다가 이집트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그 요청을 허락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매우 큰 권한을 가졌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묻기 위해 왕의 허락을 구합니다. 그는 여전히 이집트의 권력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왜 이집트 사람들의 애도라고 생각했을까

야곱의 장례 행렬은 매우 큽니다.

파라오의 신하들과 그의 집안의 나이 든 지도자들, 이집트의 나이 든 지도자들이 함께 갑니다. 요셉의 가족과 형제들도 함께 갑니다. 말이 끄는 수레와 말을 탄 군사들까지 따릅니다.

이 행렬은 야곱 개인의 장례이면서 이집트가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큰 행사이기도 합니다. 말이 끄는 수레와 말을 탄 군사들은 행렬의 규모와 위엄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과 양과 염소 떼와 소 떼는 고센 땅에 남겨 두었습니다. 이것은 온 가족이 가나안으로 옮겨 가는 행렬이 아니라 장례를 위한 방문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가족은 가나안으로 향하지만 그들의 생활 터전은 여전히 이집트에 있습니다.

행렬은 아닷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7일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아닷의 타작마당에서 사람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참으로 깊이 슬퍼하는구나.」 그래서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그곳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불렀습니다.창세기 50:11 · 두루새김

행렬에 이집트의 높은 관리들과 말이 끄는 수레와 말을 탄 군사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가나안 사람들이 정확히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장례는 이집트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고, 가나안 땅의 지명에도 흔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긴 여정의 목적지는 따로 있습니다.

약속을 이행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명령한 그대로 했습니다.창세기 50:12 · 두루새김

그들은 서로 미워했고, 요셉을 팔았고,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슬픔을 안겨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지막 명령 앞에서는 함께 움직입니다.

요셉 혼자가 아니라 아들들이 야곱을 가나안에 묻습니다.

야곱의 몸은 약속의 땅에 묻힙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가족은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가족의 장례는 마무리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이집트 생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카리티는 기본적으로 「내가 팠다」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아버지의 말을 요셉이 전하는 문장으로 풀어 「파 놓으신 무덤」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앞 장에서는 막벨라의 밭과 굴이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사들인 소유라고 강조되었습니다(창세기 49:29–32). 다만 50:5의 동사는 ‘사다·장만하다’라는 뜻으로도 읽혀, 사들인 무덤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야곱이 그 무덤을 직접 파거나 준비한 구체적인 과정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아닷의 타작마당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곳을 「요단강 건너편」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이 정확히 강의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와 장례 행렬이 어떤 길로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이 지명은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표현과 소리가 연결되어 있지만, 지명 자체가 정확히 어떻게 생겨났고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모두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죽자 다시 두려워하는 형제들

창세기 50:15–18 본문 →

요셉이 이미 용서했는데 왜 형제들은 두려워하는가

15절은 예상하지 못했던 갈등을 다시 꺼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죽자 서로 말했습니다. 「요셉이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우리가 저지른 온갖 악한 일을 고스란히 되갚으면 어쩌지?」창세기 50:15 · 두루새김

형제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요셉의 복수를 어느 정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더 이상 아버지를 생각해 자신들을 보호할 이유가 없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미 형제들과 화해하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형제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집트로 보낸 사건을 하나님이 생명을 지키시는 일과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는 형제들과 입을 맞추고 함께 울었습니다(45:14–15).

요셉은 형제들에게 좋은 뜻을 보였지만, 형제들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악을 잊지 못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용서했다고 말해도 그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그 불안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요셉이 실제로 원한을 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남겼다는 말은 사실이었을까

형제들은 요셉에게 아버지가 남겼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세기 50:16 · 두루새김
「『네 형들이 네게 악한 일을 했으니, 제발 그들의 잘못과 죄를 용서해 다오.』 이제 아버지의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인 저희의 잘못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이 전한 말을 듣고 요셉은 울었습니다.창세기 50:17 · 두루새김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잘못과 죄」라고 부르고, 요셉에게 「악한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고, 아버지의 말을 앞세운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제 형제들은 과거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 자신들을 「아버지의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으로 그들은 가족의 관계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대어 부탁합니다. 자신들은 요셉에게 잘못한 형제들이지만, 동시에 같은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말을 듣고 우는 요셉

왜 요셉은 울었을까요?

형제들이 여전히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슬펐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났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습이 그에게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울음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제들과 처음 다시 만났을 때 감정을 억누르며 울었습니다(창세기 42:24). 베냐민을 만났을 때에도 울었고(43:30),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면서 크게 울었습니다(45:2). 그의 눈물은 오랜 세월 쌓인 가족의 고통과 다시 만나는 일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웁니다.

창세기는 가족의 화해를 한 번의 포옹으로 완성된 감정 상태처럼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다시 같은 집안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과거의 잘못은 여전히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다시 엎드리다

형들도 직접 요셉에게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저희는 나리의 노예입니다.」창세기 50:18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창세기 37장의 요셉의 꿈을 마지막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요셉은 형제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후 형제들은 이집트에서 요셉 앞에 엎드려 곡식을 구했습니다(42:6).

이번에는 기근 때문에 곡식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복수를 두려워하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처음 요셉의 꿈은 형제들의 시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형제들은 스스로 「저희는 나리의 노예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셉의 대답은 예상 밖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절하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차지할 수 없는 자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야곱이 실제로 형제들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야곱의 모든 대화를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형제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창세기 47–49장은 야곱이 요셉과 아들들에게 했던 여러 유언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형제들을 용서하라고 명령했다는 말은 그곳에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어느 쪽인지 판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

창세기 50:19 본문 →

요셉은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어요?」창세기 50:19 · 두루새김

형제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요셉의 힘입니다.

요셉은 자신들을 처벌할 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과거에 당했던 일을 되갚을 수 있는 권한과 수단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권한을 쓰기 전에 자신의 위치를 먼저 밝힙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야곱도 같은 말을 했다

창세기 30:2에서 야곱은 자녀를 낳지 못해 괴로워하는 라헬에게 같은 뜻의 질문을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두 구절에는 거의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요구받았을 때 하나님의 자리를 말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인간에게는 모든 판단이나 책임을 물을 권한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관리로서 실제로 판단하고 명령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는 자신에게 악한 일을 했던 형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권한과 하나님의 자리를 구별합니다.

요셉은 복수할 힘이 없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가 이어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이 선언과 연결됩니다.

형제들의 악과 하나님의 선 — 같은 사건을 향한 서로 다른 계획

창세기 50:20 본문 →

「형님들은 저를 해치려고 계획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셨어요. 많은 사람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어요. 오늘 바로 그 일이 이루어진 거예요.」창세기 50:20 · 두루새김

요셉은 형제들이 저지른 악을 좋은 일로 다시 이름 붙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그를 없애려 했으며, 가족에게서 떼어 놓았습니다. 그 행동이 이후 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서 처음부터 좋은 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획하다」가 두 번 반복되는 이유

원문의 구조는 형제들과 하나님의 의도를 뚜렷하게 대비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해치려고 계획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은 형제들의 행동을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뜻과 다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형제들에게 요셉을 팔라고 지시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사건을 좋은 목적에 사용하셨다는 고백은,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의 악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형제들의 책임을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그들의 악이 최종적인 결과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 하셨던 선은 무엇인가

여기서 하나님의 목적은 「많은 사람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높은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이루신 좋은 일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자신의 지위를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창세기 45:5–8에서 요셉은 자신이 형제들보다 먼저 이집트에 오게 된 일을 하나님의 생명을 지키시는 계획과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좋은 일은 요셉이 높은 지위에 오른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많은 사람의 생명이 지켜진 데 있습니다.

요셉의 기근 대책으로 먹을 것을 얻은 사람들에는 이집트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창세기 41:56–57; 47:13–26). 이스라엘 가족이 살아남는 것은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요셉이 말하는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 가족을 넘어섭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땅의 여러 민족과 관계를 맺는다는 창세기 12:3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창세기 50:20이 그 약속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인 요셉을 통해 여러 사람의 생명이 지켜졌다는 사실은 그 약속의 넓은 방향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이렇게 분명하게 보이는가

요셉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이집트에서 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훗날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리라는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모든 고난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이유가 있다는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 50장은 요셉이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좋은 목적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기근이 닥쳤고, 요셉은 먹을 것을 준비했으며,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요셉은 막연히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경험한 역사 속에서 생명이 지켜졌다는 결과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는 이 고백을 긴 요셉 이야기의 마지막에 놓음으로써 독자가 처음부터 이어져 온 사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팔았던 일, 이집트에서 겪은 고난, 기근을 위한 준비, 가족의 재회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의 핵심은 히브리어 동사의 반복에 있습니다. 여기서 같은 사건을 놓고 두 종류의 의도가 나란히 나타납니다. 먼저 인간의 악은 실제로 악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악한 의도가 하나님의 좋은 목적을 끝내 가로막지 못했다는 것이 요셉의 고백입니다.

용서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창세기 50:21 본문 →

요셉의 대답은 20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형님들과 형님들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대 드릴게요.」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말을 했습니다.창세기 50:21 · 두루새김

과거에 자신을 해쳤던 사람들 때문에 그 자녀들까지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 살게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했던 일을 기준으로 앞으로 요셉이 자신들에게 할 일을 예상했습니다. 요셉은 그 예상과 다른 미래를 약속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답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말을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말을 했습니다」는 직역하면 「그들의 마음에 말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상대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거나 위로하고 설득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요셉의 마음속에서 복수를 포기하는 일과, 형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도록 관계를 돌보는 일은 구별됩니다. 형들의 두려움은 요셉의 한마디로 즉시 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이후 감정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의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해친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가까이 두고 보호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친 가족의 재회와 관계의 변화가 있었고, 그가 형들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이 그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 형들은 요셉의 꿈을 듣고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창세기 37:5–11).

마지막에 요셉은 그들의 두려움을 듣고 그들을 위로합니다.

서로에게 말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요셉은 과거의 악한 일을 정확히 말하면서도 그 일이 앞으로의 관계를 지배하게 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늙어 가는 동안에도 약속은 남아 있었다

창세기 50:22–23 본문 →

형제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끝나면 이야기는 긴 시간을 건너뜁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가나안에 묻혔지만, 요셉은 이집트에 남아 가족과 함께 삽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뿐 아니라 더 먼 자손들까지 봅니다.

요셉은 에브라임의 3대째 자손까지 보았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요셉의 무릎 위에서 태어났습니다.창세기 50:23 · 두루새김

그는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끌려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곁에는 자손들이 있습니다.

한때 가족에게서 끊어질 뻔했던 삶이 새로운 세대들로 이어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자손이 많아지는 것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생애 안에서 그 약속의 일부를 실제로 경험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음을 앞두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많은 자손에 대한 자랑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요셉의 무릎 위에서 태어났습니다」가 실제로 요셉이 갓 태어난 아이들을 무릎에 앉혔다는 뜻인지, 친족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인지, 특별한 가족 관계를 인정하는 행동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창세기 48장에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복을 빌어 준 장면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지만, 반드시 같은 의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이 여러 세대의 자손이 태어나는 모습을 볼 만큼 오래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돌보실 거예요」

창세기 50:24–25 본문 →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돌보시고, 이 땅에서 데리고 올라가실 거예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가실 거예요.」창세기 50:24 · 두루새김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돌보실 거예요」라는 말의 무게

따라서 요셉의 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처지에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단순한 관심이나 위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창세기의 맨 마지막에 조상들의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 이름들은 단순히 가족의 계보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자신이 그 약속의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그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요셉은 미래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가 죽은 뒤 이집트에서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억압받게 될 구체적인 과정은 이 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요셉은 그런 사건들을 자세하게 예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자신의 아버지 야곱에게 주어진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결국 약속의 땅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확신은 당장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당시 요셉의 가족은 이집트에서 살고 있었고, 요셉은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이집트가 이스라엘이 마지막까지 머물 곳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았지만, 자신의 생애를 넘어 이루어질 약속도 신뢰합니다.

요셉이 요구한 것은 장례가 아니라 미래의 맹세다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게 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돌보실 거예요. 그때 여러분은 제 뼈를 이곳에서 가지고 올라가야 해요.」창세기 50:25 · 두루새김

야곱은 자신이 죽으면 가나안으로 옮겨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형제들이 장례 행렬을 이루어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반면 요셉은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는 한 가족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다녀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뼈를 옮기는 일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이집트를 떠나는 사건과 연결됩니다.

요셉의 요청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가 요구하는 맹세는 당장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 뒤 다음 세대들이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가나안 전체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그랬습니다. 이제 요셉 역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다음 세대에 전합니다.

요셉이 자기 뼈를 옮기라고 맹세하게 하는 일은 그 약속을 자손들의 실제 행동에 연결합니다.

출애굽기는 이 말을 기억한다

출애굽기 1장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 세대 사람들이 모두 죽은 뒤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많아졌다고 말합니다(1:6–7). 이어서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을 찾아 돌보셨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출애굽기 3:16).

창세기 끝에서 요셉이 기다렸던 하나님의 돌보심이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알리는 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더욱 직접적인 연결은 출애굽기 13:19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요셉의 뼈를 가지고 이집트를 떠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24:32에서는 요셉의 뼈가 세겜에 묻힙니다. 그곳은 야곱이 사들였던 땅이며, 요셉 자손의 소유가 된 장소입니다(창세기 33:19).

신약의 히브리서 11:22는 요셉이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을 말하고 자신의 뼈에 관해 명령한 일을 믿음의 행위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50장의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후대의 성경이 앞선 성경을 읽어 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창세기 50장 자체에서는 아직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오직 약속과 맹세만이 주어집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장례를 완성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의 장례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기고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은 파코드 이프코드입니다. 같은 동사를 부정사 형태와 정동사 형태로 결합하여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마지막 문장 — 이집트에 관이 놓이다

창세기 50:1–26 본문 →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찾아 돌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고백은 요셉이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 고백은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미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창세기 50장은 요셉이 아버지의 얼굴 위로 엎드려 우는 모습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셉 자신이 죽어 사람들이 그를 관에 넣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두 사람 모두 이집트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몸은 가나안으로 옮겨졌고, 요셉의 몸은 이집트에 남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요셉은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형제들과 화해했고, 자녀와 손자들의 세대를 보았으며, 오랫동안 가족이 먹고살 수 있도록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 돌보실 거예요. 그때 여러분은 제 뼈를 이곳에서 가지고 올라가야 해요.」

그렇게 요셉의 관은 한 사람의 죽음을 넘어 다음 세대가 기억해야 할 약속과 연결됩니다. 요셉이 죽은 뒤에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110살에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방부 처리하고 이집트에서 관에 넣었습니다.창세기 50:26 · 두루새김

창세기는 그 관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