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3–7장 · 쉰두 날의 성벽 공사

성벽 완성 뒤에 꺼낸 오래된 이름들

느헤미야 7장은 성벽 재건의 성공을 축하하는 대신 뜻밖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성벽은 완성되었습니다. 성문에는 문짝도 달렸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도시 안에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집도 충분히 세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벽을 세우는 일은 끝났지만, 그 성벽 안에 어떤 공동체가 살아갈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한 행동은 더 많은 집을 짓도록 명령하거나 새로운 이주민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각 사람이 어느 집안의 후손인지 조사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을 발견합니다.

왜 성벽이 완성된 바로 이 시점에 오래된 귀환자 명단을 읽어야 할까요?

성벽 재건의 이야기에서 이제 관심이 돌에서 사람으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97장 본문 읽기 →

새 성벽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느헤미야 7:1–3 본문 →

문짝을 단 뒤에 해야 할 일

성벽이 세워지고 내가 성문에 문짝을 단 뒤,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느헤미야 7:1 · 두루새김

문지기들은 출입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은 성전 예배와 봉사에 관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시의 출입과 안전에 관계된 일이 등장하는 동시에 성전의 예배와 봉사에 관계된 사람들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절에 나오는 문지기들이 모두 도시의 성문을 담당했는지, 성전 문지기들의 조직까지 포함하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배치되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성문을 열고 닫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살아가려면 성전의 봉사 역시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벽은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이지, 그 자체로 공동체의 삶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냐를 선택한 기준

나는 내 형제 하나니와 요새 책임자 하나냐에게 예루살렘을 맡겼습니다. 하나냐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느헤미야 7:2 · 두루새김

하나니는 1장에서 유다의 소식을 느헤미야에게 전했던 사람입니다(1:2). 그때 그는 예루살렘의 어려운 형편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을 책임지는 사람이 됩니다.

느헤미야서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태도는 단순히 종교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해치지 않고,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태도로 나타났습니다(5:9, 15).

도시를 맡은 사람은 성문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조직할 권한을 갖게 됩니다. 그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믿을 만하지 않다면, 새로 세운 성벽이 아무리 튼튼해도 공동체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도비야는 유다의 귀족들과 혼인과 맹세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관계와 지위가 있다고 해서 공동체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성벽을 지킬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문을 잠글 권한만이 아니라, 그 권한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성품입니다.

해가 뜬 뒤에도 문을 열지 말라

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해가 뜨거워질 때까지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마십시오. 문지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그들에게 문짝을 닫게 하고, 여러분은 단단히 잠그십시오. 또 예루살렘 주민들을 경비로 세워 각자 맡은 곳과 자기 집 앞을 지키게 하십시오.」느헤미야 7:3 · 두루새김

특히 「해가 뜨거워질 때까지」라는 말은 단순히 해가 떠오를 때를 뜻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느헤미야는 햇빛이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 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 지시의 정확한 군사적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성벽 완공 이후에도 적들의 위협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어둠이나 이른 아침을 이용한 침입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지기들이 문을 닫는 일과 책임자들이 문을 단단히 잠그는 일을 구별합니다. 경비는 아무에게나 맡겨진 막연한 책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누어 맡긴 책임이었습니다.

성벽 재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 맞은편을 보수하기도 했습니다(3:23, 28–30). 이제는 그 집 앞에서 경비를 서도록 조직됩니다.

무너진 성벽을 세우는 것은 한 번의 사업이지만, 완성된 성벽을 지키는 것은 계속되는 책임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절에서 이 경비 체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넓은 도시, 적은 사람들

느헤미야 7:4–5 본문 →

도시는 넓고 컸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적었고, 집들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느헤미야 7:4 · 두루새김

마지막 표현을 도시 전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문자 그대로 한 채도 없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바로 앞 절에서 느헤미야는 주민들에게 자기 집 앞을 지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시 안에 살 집이 거의 없거나, 큰 도시의 규모에 비해 거주할 집들이 충분히 다시 지어지지 않았다는 상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바깥 경계는 회복되었지만, 그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는 여전히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뜻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모아, 각 사람이 어느 집안의 후손인지 확인하여 명부에 올리게 했습니다. 나는 처음 돌아온 사람들의 집안별 명부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느헤미야 7:5 · 두루새김

2:12에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할 일을 자신의 마음에 넣어 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때는 성벽 재건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각 사람이 어느 집안의 후손인지 확인하여 명부에 올리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회복시키도록 인도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곳의 백성을 파악하고 공동체를 정비하는 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고 이해합니다.

느헤미야는 현재의 백성을 명부에 올리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제시되는 명단은 그가 새롭게 작성한 당시 주민 명부가 아닙니다. 「처음 돌아온 사람들의 집안별 명부」입니다.

느헤미야는 현재의 공동체를 정비하려다가 이전 귀환자들의 명단을 발견했고, 그 문서를 이야기 속에 제시합니다. 그것은 지금 예루살렘에 살아야 할 공동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집안과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집안과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관계는 자신이 속한 지파와 공동체, 땅을 물려받는 관계, 특히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맡을 일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옛 명부를 발견한 일은 이제 회복된 도시를 채울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피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큰 도시인가를 살피다가, 그 도시에 속한 백성이 어떤 역사에서 왔는가를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 지방 사람들」

느헤미야 7:6–38 본문 →

이 명단은 사람들의 숫자보다 먼저 그들의 역사를 말한다

「이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 지방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로, 저마다 자기 도시로 돌아왔습니다.」느헤미야 7:6 · 두루새김

오래된 명부의 첫 문장은 숫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왕이 이들을 포로로 끌고 갔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바벨론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문에서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올라왔고, 자기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이 명단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있지만, 귀환자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정착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유다의 여러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이스라엘을 이룹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인구가 적다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지만, 그가 발견한 기록은 이스라엘의 삶이 예루살렘 성벽 바깥의 여러 지역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귀환은 단지 사람들이 바벨론을 떠나는 사건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땅과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찾아가는 사건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온 사람들

「이들은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아사랴, 라아먀, 나하마니, 모르드개, 빌산, 미스베렛, 비그왜, 느훔, 바아나와 함께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들의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느헤미야 7:7 · 두루새김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에스라 3:2에서는 이들이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이끕니다.

명단에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이 책의 주인공인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와 동일 인물로 볼 근거가 없습니다. 이 문서는 더 이른 귀환 세대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르드개」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이 사람을 에스더서의 모르드개와 동일 인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세대가 돌아와 자리 잡고 성전을 다시 세운 역사가 있었기에, 느헤미야 역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 이름에서 도시 이름으로

8–24절에서는 바로스, 스바댜, 아라, 바핫모압, 엘람 등의 후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각 집안에 속한 사람들의 수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5절부터는 표현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95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25 · 두루새김
「베들레헴과 느도바 사람들은 188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26 · 두루새김
「아나돗 사람들은 128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27 · 두루새김

앞부분에서는 주로 누구의 후손인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도시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기록들이 이어집니다. 물론 집안과 지역이라는 구분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서도 다시 후손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귀환 공동체를 이해하는 두 가지 중요한 관계를 보여 줍니다. 하나는 조상과 후손으로 이어지는 핏줄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도시와 연결된 지역의 관계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36절에 나오고, 스나아의 후손은 38절에 나옵니다. 이들은 성벽 보수 명단에서도 등장했던 집단의 이름입니다(3:2–3).

3장은 성벽의 어느 구간을 누가 보수했는지 기록했습니다. 7장은 더 이전에 돌아온 사람들의 집안과 도시를 기록합니다. 두 명단이 모든 개인이 같은 사람인지를 확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집안 이름과 지역 이름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현재 성벽을 재건하는 공동체가 앞선 귀환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 바라보면 그들은 작고 연약한 공동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따라가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지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집안과 지역 공동체가 나타납니다.

현재의 부족함이 그들이 걸어온 역사를 지워 버리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의 회복 약속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을 다시 모으신다는 말씀은 자주 등장합니다. 신명기 30:3–5에서는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데려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30:18에서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장막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이 사는 곳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도시가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4:26에서는 황폐해진 유다 도시들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제사장부터 느디님 사람들까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사람들

느헤미야 7:39–60 본문 →

명단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다

38절까지는 여러 집안과 도시의 귀환자들이 나왔습니다.

「제사장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아 집안에 속한 여다야의 후손은 973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39 · 두루새김

이어 임멜, 바스훌, 하림의 후손들이 기록됩니다. 그러고 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 문지기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호드와의 집안에 속한 예수아와 갓미엘의 후손으로, 74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43 · 두루새김
「노래하는 사람들은 아삽의 후손 148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44 · 두루새김
「문지기들은 살룸의 후손, 아델의 후손, 달몬의 후손, 악굽의 후손, 하디다의 후손, 소배의 후손으로, 138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45 · 두루새김

제사장들은 제사와 거룩한 일을 맡았고, 레위 사람들은 성전의 여러 봉사를 담당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예배의 음악과 관련된 역할을 맡았으며, 문지기들은 출입과 관련된 일을 맡았습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성전의 음악과 관련된 봉사자로 등장합니다(역대상 16:4–7). 역대상 25:1–2에는 아삽과 그의 후손들이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맡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오래된 예배의 전통과 포로 귀환 이후의 공동체가 연결됩니다.

성전 건물이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 예배 공동체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노래하며 여러 봉사를 감당할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회복은 건물의 회복이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그들이 맡은 일이 다시 이어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후손

46절부터는 더욱 긴 이름의 목록이 이어집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의 후손, 하수바의 후손, 답바옷의 후손,」느헤미야 7:46 · 두루새김

여기서 시작된 느디님 사람들의 명단은 56절까지 이어집니다. 두루새김의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의 봉사에 관련된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들이 역사적으로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지위를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어떤 민족 출신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일을 담당했는지를 이 명단만으로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솔로몬의 종들의 후손은 소대의 후손, 소베렛의 후손, 브리다의 후손,」느헤미야 7:57 · 두루새김

이들이 솔로몬 시대부터 이어진 봉사 집단과 관계가 있음을 이름 자체가 보여 주지만, 그들의 정확한 조상 관계나 당시의 신분을 명단만으로 모두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이 두 집단의 합계를 기록합니다.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후손은 모두 392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60 · 두루새김

제사장들은 네 개의 집안으로 구분되어 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후손은 많은 집안의 이름을 나열한 뒤 하나의 합계를 제시합니다. 명단은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어떤 집안에 속하고 어떤 일을 맡았는지를 당시 기록 방식에 따라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특별한 지도자와 제사장 몇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일을 맡은 사람들의 삶이 함께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명단의 다음 부분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자기 조상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계보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느헤미야 7:61–65 본문 →

돌아왔지만 자신의 혈통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다음은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에서 올라왔지만, 자기 조상과 집안을 밝혀 이스라엘의 후손임을 증명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느헤미야 7:61 · 두루새김

그들은 들라야와 도비야와 느고다의 후손으로, 642명이었습니다(7:62).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고 판정받았다는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증명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포로 생활과 이주를 거치면서 가족의 기록이 온전히 보존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왜 계보를 증명하지 못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부러 혈통을 속였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습니다.

성벽을 세울 때는 어느 구간을 누가 맡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제 공동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는 누가 어떤 신분과 일을 맡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확인이 언제나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제사장에게 요구된 더 엄격한 확인

「제사장들 가운데서는 호바야의 후손, 학고스의 후손, 바르실래의 후손이 있었습니다. 바르실래 후손들의 조상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들 가운데 한 사람과 결혼한 뒤 그 집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느헤미야 7:63 · 두루새김

계보는 단순히 이름 몇 개를 이어 적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결혼과 가족 관계, 어느 집안의 이름을 사용했는가 하는 문제까지 얽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실제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들은 집안별 명부에서 자신들의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제사장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느헤미야 7:64 · 두루새김

그들이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말이 곧 그들이 도덕적으로 악하거나 죄를 지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뒤 내용을 보면 문제는 제사장 계보를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제사장 일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계보와 관련된 자격이 요구되었으며, 성소에서 하는 일과 거룩한 제물을 먹는 일에도 규정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18:1–7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책임을 구분하고, 제사장에게 맡겨진 일의 경계를 분명히 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혈통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제사장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집안별 명부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제사장 혈통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는 제사장이 나설 때까지

「총독은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는 제사장이 나설 때까지 이들이 가장 거룩한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느헤미야 7:65 · 두루새김

우림과 둠밈은 이스라엘의 제사장 전통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과 관련된 것으로 등장합니다. 느헤미야 7:65에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제사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확인되지 않은 일을 아무 문제 없이 허용하지 않는 판단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한이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사장 집안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제사장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들의 감정이나 이후의 삶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계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고, 제사장 일을 맡으려면 확인해야 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공동체에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있는 사실과 알 수 없는 사실을 구별하는 태도는 여전히 생각할 가치가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라는 이름은 사무엘하 17:27–29와 19:31–39에도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의 명단에 등장하는 바르실래 집안이 사무엘하의 인물과 직접 연결된다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중간의 계보가 모두 기록된 것은 아니므로 그 관계를 자세히 되짚을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28:30에서는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의 가슴받이에 두라고 명령합니다. 민수기 27:21에서는 엘르아살 제사장이 우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뜻을 묻는 일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우림과 둠밈이 정확히 어떤 물건들이었는지, 실제로 어떤 절차에 따라 답을 얻었는지는 성경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42,360명이라는 숫자가 다 말해 주지 않는 것

느헤미야 7:66–68 본문 →

명단의 합계가 전체 숫자와 맞지 않는다

「온 공동체의 인원은 모두 42,360명이었습니다.」느헤미야 7:66 · 두루새김

개별 집단의 수를 더한 31,089명과 온 공동체의 인원 42,360명 사이에는 11,271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따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온 공동체의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명단이 작성되거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부 숫자나 항목에 차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목록을 오늘날처럼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파악한 인구총조사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집안별로 남자의 수를 기록하는 부분과 맡은 일에 따라 인원을 기록하는 부분이 섞여 있고, 여성과 자녀들이 각 항목에서 어떤 방식으로 집계되었는지도 모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 명단은 귀환 공동체가 실제로 여러 집안과 지역, 서로 다른 일을 맡은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공동체와 종들,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들

「이 수에 포함되지 않은 공동체의 남종과 여종은 7,337명이었습니다. 공동체에는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 245명도 있었습니다.」느헤미야 7:67 · 두루새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공동체라고 해서 그 안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느헤미야 5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빚 때문에 자녀를 노예로 넘기는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보다 앞선 귀환 공동체의 명부에도 종들이 등장합니다.

두 기록을 근거로 이들이 같은 사람들이거나 같은 빚 제도 아래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정확한 신분과 노동 조건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환 공동체 내부에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또한 67절에 나오는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 245명을 앞서 44절에 등장한 아삽의 후손 148명과 그대로 같은 집단으로 보아서도 안 됩니다. 앞의 명단은 성전 예배와 관련된 특정 집단이고, 여기서는 별도로 집계된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정확한 역할이 어떻게 달랐는지까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어서 낙타 435마리와 나귀 6,720마리가 기록됩니다(7:68). 사람들의 명단에 동물의 수까지 이어지는 것은 귀환 공동체가 실제로 생활하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보여 줍니다.

긴 목록은 공동체의 구체적인 규모를 보여 주지만, 그 숫자만으로 사람들이 어떤 형편에서 살았는지까지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라 2장에도 거의 같은 귀환자 명단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 7:10에서 아라의 후손은 652명이지만, 에스라 2:5에서는 775명입니다. 느헤미야 7:17의 아스갓 후손은 2,322명이지만, 에스라 2:12에서는 1,222명입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공동체의 전체 인원을 모두 42,360명으로 기록합니다(에스라 2:64, 느헤미야 7:66). 이 차이가 생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인원을 센 시점이나 기록 범위가 달랐을 가능성, 숫자들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을 모두 생각할 수 있지만, 본문은 하나의 설명을 확정할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귀환자 명단에 남아 있는 예물

느헤미야 7:69–71 본문 →

사람들의 수 다음에 재산의 기록이 나온다

「집안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일부는 일에 쓰도록 예물을 내놓았습니다. 총독은 금 1,000다르크몬과 대접 50개와 제사장 옷 530벌을 창고에 내놓았습니다.」느헤미야 7:69 · 두루새김

이것을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성한 뒤 새로 받은 헌금의 명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5절에서 시작된 문서는 처음에 돌아온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이 예물 역시 그 귀환자 명부에 포함된 오래된 기록의 일부입니다.

에스라 2:68–69에는 이와 짝을 이루는 예물 기록이 나타나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다시 세우는 일을 위해 예물을 드렸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물은 포로 귀환 이후 성전을 다시 세운 역사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회복은 이전 세대의 회복과 끊어져 있지 않습니다.

앞선 세대는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예물을 내놓았고, 이후의 세대는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목적과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의 삶을 다시 세우려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액수를 드린 것은 아니다

70–71절에서는 집안의 우두머리들과 나머지 백성의 예물을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과 은을 내놓았고, 다른 사람들은 제사장 옷을 내놓았습니다. 본문은 이들의 경제적 형편이 모두 같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이 재산의 몇 퍼센트를 드렸는지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록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비율로 헌금해야 한다는 원칙을 끌어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의 돈으로 얼마인지보다 공동체의 여러 구성원이 다시 세우는 일에 필요한 것을 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뿐 아니라, 돌아온 뒤 무엇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을 사용했는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면서, 다시 시작되는 공동체의 삶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각자의 도시로

느헤미야 7:72 본문 →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백성 가운데 일부와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이 저마다 자기 도시에 자리 잡았습니다.」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은 자기 도시들에 살고 있었습니다.느헤미야 7:72 · 두루새김

6절에서는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로, 저마다 자기 도시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명단의 끝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저마다 자기 도시에 자리 잡았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리 잡은 사람들입니다.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는 일과, 돌아온 땅에 다시 삶을 세우는 일은 같은 과정에 속하지만 완전히 같은 순간은 아닙니다. 돌아왔다는 것은 이동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자리 잡았다는 것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왜 마지막에 일곱째 달이 등장할까?

본문은 여기서 다시 시간의 흐름으로 돌아옵니다.

긴 옛 문서의 인용이 끝나고, 일곱째 달이라는 시점이 제시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는 백성이 함께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느헤미야 8:1–2).

성벽의 완공과 주민 명부의 발견을 기록한 뒤, 이야기는 이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를 향해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3:23–44에 따르면 일곱째 달에는 나팔을 부는 날과 속죄일, 초막절 등이 있습니다. 에스라 3:1에는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예루살렘으로 한 사람처럼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맺음 — 이름을 되찾고 자기 도시에 자리 잡은 사람들

느헤미야 7:1–72 본문 →

이 명단은 단순히 인구를 계산하기 위한 자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이 어떤 역사를 지닌 백성의 회복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록입니다. 무엇을 세웠는가만큼이나, 그 안에서 누가 살아가며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느헤미야 7장에서 건축의 기록이 사람들의 명부로 바뀌는 이유입니다.

그 긴 명단은 마지막에 아주 평범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다만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도시들에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고향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다시 자기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도시를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그 도시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일곱째 달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도시에 있습니다.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소식 뒤에 길게 이어진 이름들은 마침내 그들이 다시 살아가게 된 장소로 돌아갑니다. 느헤미야 7장의 마지막 장면은 성벽 위에 서 있는 한 지도자가 아니라, 저마다 자기 도시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완성된 성벽보다 조용하지만, 그 성벽을 세운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