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38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높이 계신 하나님은 누구를 바라보시는가

시편 138편에는 조금 뜻밖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노래는 곧 땅의 모든 왕에게로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왕들의 위엄이나 세계를 다스리는 능력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처지의 사람을 살피시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크다는 사실은 그분이 얼마나 높은 곳에 계시는가보다, 그 높은 곳에서 누구를 살피시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응답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고난 한가운데를 걸어갈 수 있고, 원수들의 분노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감사하고, 노래하고, 미래를 확신합니다.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선언한 직후, 시인은 그 일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확신하는 사람이 왜 다시 간구합니까?

시편 138편은 이 질문에 직접적인 설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지나온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응답과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을 하나의 기도로 엮어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138편 본문 읽기 →

신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 — 감사의 방향과 이유

시편 138:1–2 본문 →

다윗의 시입니다. 온 마음으로 당신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당신을 찬양해 노래하겠습니다.시편 138:1 · 두루새김

시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감사가 누구를 향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자리는 「신들 앞에서」입니다.

히브리어 엘로힘(⁨אֱלֹהִים⁩)은 문맥에 따라 하나님을 가리키기도 하고, 여러 신적 존재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시인이 부르는 하나님과 구별되어 등장하므로 여러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 존재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늘의 신적 존재들로 이해할 수도 있고, 여러 민족이 섬기는 신들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시인이 실제로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그는 다른 존재들에게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노래합니다. 자신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시편 137편에서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하나님의 노래를 어떻게 부를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시편 137:4). 두 시편을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볼 근거는 없지만, 나란히 읽으면 하나님의 노래를 둘러싼 두 상황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하나는 상실과 강요 앞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탄식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 앞에서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자발적인 고백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엎드립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해 엎드리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에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 당신의 온 명성보다 당신의 말씀을 더 높이셨으니.시편 138:2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전 안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을 향해」라는 방향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분의 이름을 기억하는 중심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향해 엎드린다는 표현이 반드시 시인이 그 건물 안에 있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바치며 드린 기도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먼 곳에 있거나 포로로 끌려갔을 때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상황이 등장합니다(열왕기상 8:44–49). 성전의 방향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기억하게 합니다.

시인이 성전을 향해 엎드리는 이유는 뒤따르는 두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입니다.

이 단어들은 단순한 친절함과 사실에 대한 정직함을 넘어, 관계 안에서 약속을 지키는 한결같음을 표현합니다.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이 풍성한 분으로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저버린 직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 두 성품은 인간이 약속을 잘 지켰을 때만 나타나는 보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실패 앞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냅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하나님이 본래 어떤 분이신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름보다 크게 하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2절 마지막 문장 「주님께서는 주님의 모든 명성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높이셨기 때문입니다」는 이 시편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당신이 크게 하셨다」, 「당신의 모든 이름 위에」, 「당신의 말씀을」이라는 표현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결합하여 이해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읽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말씀을 높이셨다는 이해, 이름과 말씀을 함께 높이셨다는 이해, 그리고 거룩한 이름을 모든 것 위에 높이셨다는 칠십인역의 방향으로 갈립니다. 따라서 한 가지 해석만 옳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존재나 성품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맥을 벗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앞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과의 관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시고, 말씀을 통해 드러내신 한결같음을 실제로 보여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말씀을 높이셨습니까?

바로 다음 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칠십인역은 1절을 「천사들 앞에서」라는 뜻으로 옮깁니다. 이러한 차이는 고대에도 이 구절을 이해하는 방식이 하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전을 향한 방향만으로 시편 138편이 쓰인 때를 포로기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표제는 「다윗의 시입니다」라고 밝히지만, 이 표현 자체가 집필 시점이나 구체적인 사건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또한 「성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칼(⁨הֵיכָל⁩)은 왕궁이나 신적 거처를 가리킬 수 있으며, 솔로몬 성전 이전의 실로 성소에도 사용됩니다(사무엘상 1:9; 3:3). 2절 마지막 문장의 첫 번째 읽기에서 원문의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성과 그분이 어떤 분인지 드러내신 것을 나타내며, 두루새김은 이 뜻을 「명성」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선언이나 약속을 가리킬 수 있어,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실제로 이루셨다는 사실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드높이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본문의 「말씀」이 따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응답은 먼저 사람 안에서 나타났다

시편 138:3 본문 →

내가 부르짖은 날 당신은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불어넣으시어 나를 담대하게 하셨습니다.시편 138:3 · 두루새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응답하셨다고 말하지만, 그 응답으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적들이 물러갔다는 말도 없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대신 시인은 자기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말합니다.

「제 영혼에」와 「힘」이 함께 등장합니다. 시인이 경험한 것은 바깥 상황에서 구출되는 일로만 설명되지 않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그가 고난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으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시인이 특별히 기억하는 응답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사실과 고난이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시편 138편의 확신은 두 사실을 혼동하지 않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응답하셨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시인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에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의 시선이 갑자기 넓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힘을 주어 용기를 내게 하셨습니다」로 옮긴 동사의 의미와 뒤따르는 문장과의 관계에는 해석상 어려움이 있지만, 문맥에서는 힘과 용기를 주는 행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감사에서 모든 왕의 노래로

시편 138:4–5 본문 →

여호와야훼여, 땅의 모든 왕이 당신께 감사할 것입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을 들었으니.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길들을 노래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크기에.시편 138:4–5 · 두루새김

처음에는 「온 마음으로」 감사하겠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제 영혼에」 힘을 얻은 경험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노래는 「땅의 모든 왕」에게로 퍼져 나갑니다.

한 사람의 경험에서 세계 전체로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왕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을 들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앞에서는 시인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2절의 「말씀」, 3절의 「응답하셨습니다」, 4절의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시편 전체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개인이 위로받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왕들조차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입니다.

시인은 앞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노래할 것을 내다보며, 그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모든 민족의 왕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시편의 넓은 전망과 연결됩니다. 시편 72:11에서는 모든 왕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 앞에 엎드리고 모든 민족이 그를 섬기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시편 96:10에서는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라고 명령합니다.

시편 138편에서는 왕들이 하나님을 인정할 뿐 아니라, 직접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노래하게 됩니다. 원문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하시는 일들」(⁨דֶּרֶךְ⁩)을 하나님의 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위엄을 칭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방식, 곧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대하시는 그분의 길을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왕들이 노래하게 될 하나님의 일들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다음 절이 그 내용을 드러냅니다.

높이 계시지만 낮은 이를 보시는 하나님

시편 138:6 본문 →

참으로 여호와야훼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이를 살피시고 거만한 이를 멀리서 알아보십니다.시편 138:6 · 두루새김

이 절은 시편 전체의 중심을 이루는 고백입니다.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높으심과 낮은 처지의 사람을 살피시는 행동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은 높이 계십니다. 그분은 낮은 처지의 사람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거만한 사람을 멀리서 알아보십니다.

하나님의 높으심과 사람의 거만함은 서로 비슷한 높음의 언어로 표현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은 그분의 영광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사람의 거만함은 자신을 높이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낮은 처지의 사람」을 반드시 마음이 겸손한 사람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낮은 처지에 놓인 사람, 사회적으로 높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포함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반대로 「거만한 사람」은 단순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의롭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악하다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권리를 의미했습니다. 높은 사람의 관심은 흔히 자신과 가까운 신분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낮은 처지의 사람을 살피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찬양하게 될 하나님은 높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사람을 특별히 우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높으심은 낮은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영광은 낮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드러납니다.

「거만한 사람은 멀리서 알아보십니다」에서는 해석이 조금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이 거만한 사람을 멀리하신다는 관계의 의미를 읽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멀리 있는 거만한 사람까지 알아보시므로, 누구도 자신의 지위나 거리로 그분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는 이해에 강조점을 둡니다. 두 해석 모두 문맥과 연결되지만, 본문의 동사는 기본적으로 「알아보십니다」(⁨יָדַע⁩)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구절만으로 구체적인 심판이나 처벌을 선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높다고 여기는 정도에 따라 그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한나의 노래에서는 하나님이 가난한 이를 먼지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잿더미에서 높이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사무엘상 2:7–8). 이사야 57:15에서는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이 마음이 꺾이고 낮아진 사람들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보다 높이 계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낮은 사람을 돌보시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높이 계시다고 해서 인간의 고통과 무관한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왕보다 높으시면서도 낮은 사람을 놓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시인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도 이 대비가 선명합니다. 하나님이 높이 계신다는 표현, 낮은 처지의 사람, 거만한 사람에 각각 높낮이를 나타내는 낱말이 쓰여 세 가지 높낮이가 나란히 놓입니다.

고난을 지나가는 사람과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

시편 138:7 본문 →

내가 고난 한가운데를 걸어도 당신은 나를 살려 주시고 내 원수들의 분노에 맞서 손을 뻗으시며 당신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할 것입니다.시편 138: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앞의 6절을 실제 삶의 장면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이 낮은 처지의 사람을 살피신다면, 그분이 살피시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시인은 고난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고난을 피해 안전한 곳에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한복판을 걸어갑니다. 이 구절은 그가 앞으로 그러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합니다. 특정한 전투나 박해 사건을 가리킨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을 뻗으십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구하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은 구원과 능력을 표현하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출애굽기 15:6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오른손이 능력으로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18:15–16에서도 하나님의 오른손이 큰일을 행한다는 고백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출애굽처럼 민족 전체가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아니라, 한 사람이 고난 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나라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이제 한 사람의 삶을 향해 뻗어 옵니다.

시인은 앞에서 자기 영혼에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기 바깥에서 일어나는 보호와 구출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시인 안에 힘을 주시는 분이며, 시인을 위협하는 현실에 맞서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고난이 없다는 확신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구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마지막 절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확신의 마지막 말이 왜 간구인가?

시편 138:8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나를 위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합니다. 당신의 두 손으로 이루신 일들을 버리지 마십시오.시편 138:8 · 두루새김

먼저 하나님이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영원하다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버리지 말아 달라는 간구가 나옵니다.

이미 끝까지 이루실 것을 안다면 왜 다시 기도해야 합니까?

시인은 지나온 날에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저를 위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전쟁의 승리일 수도 있고, 시인의 삶과 관련된 더 넓은 하나님의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실 분이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시인은 그 확신의 근거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시편 136편의 반복되는 고백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창조와 출애굽, 광야의 인도와 구원 사건을 관통하는 이유로 노래됩니다(시편 136:1–26). 시편 138편에서는 그 고백이 한 사람의 아직 끝나지 않은 삶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영원하다면, 그것은 이미 지나간 사건을 기억하는 데만 머물지 않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도 기대할 수 있는 성품입니다.

7절에서는 하나님이 손을 뻗으셔서 구하십니다. 8절에서는 그 손으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위기에 처했을 때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손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의 손으로 일해 오신 분입니다.

「주님의 손으로 이루신 일들」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시인과 자신의 백성 가운데 이루어 오신 일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시편의 흐름에서는 자기 삶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이루어 달라는 간구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완성하겠다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 대신 이미 자신의 삶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한결같이 일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습니다.

시인의 확신은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미래에도 일하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다는 데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의 확신은 기도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끝까지 이루실 것입니다」(⁨גָּמַר⁩)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는 일을 마치거나 이루는 의미를 가집니다. 여러 일을 가리키는 「주님의 손으로 이루신 일들」을 시인 개인의 삶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손을 놓지 말아 주십시오

시편 138:1–8 본문 →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왕들이 인정해야 할 분이지만, 한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한결같음은 과거에 이루신 일을 통해 확인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을 향한 기대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는 모든 고난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리라는 약속과는 다릅니다. 이 시편은 고난이 언제 끝나는지, 하나님이 어떤 순서로 문제를 해결하시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시편 138편의 첫 장면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거룩한 성전을 향해 엎드립니다.

그러나 시편은 왕들의 노래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여전히 고난 한가운데를 걸어가야 할 한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살려 주실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이미 자신에게 힘을 주셨던 분, 낮은 처지의 자신을 살피시는 분, 자신의 삶에서 일해 오셨던 분의 손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말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저를 위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말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이루신 일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첫 번째 말에는 하나님의 한결같음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고, 두 번째 말에는 그 한결같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며 의지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자신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시편 138편은 그 손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도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