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46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

시편 46편에서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울부짖으며, 나라들이 흔들립니다. 땅의 가장 튼튼한 것들이 움직이고, 가장 강력한 나라들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소동 한가운데서 시인은 뜻밖의 선언을 합니다. 「한 강의 물줄기들이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합니다.」 앞에서는 물이 울부짖으며 산들을 뒤흔들었습니다. 이제는 물이 성을 기쁘게 합니다.

같은 물인데 한쪽에서는 세상을 무너뜨리고, 다른 쪽에서는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시편에는 또 하나의 대조가 있습니다. 산들은 흔들리고 나라들도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성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에는 다른 곳에 없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시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직접 「멈추어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은 앞에서 벌어진 모든 소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시편 46편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인가를 넘어, 세상을 뒤흔드는 힘들 가운데 누가 참으로 하나님이신지를 보여 주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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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처가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시편 46:1–4 본문 →

하나님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고난 속에서 만나는 더없이 든든한 도움이십니다.시편 46:2 · 두루새김

시편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는 기도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피난처는 위험이 없는 곳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장소입니다. 적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성벽이나 요새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이 다가오면 사람은 안전한 곳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의지할 분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피난처이실 뿐 아니라 「힘」이라고도 말합니다. 피난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장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힘은 그 위험을 견디고 맞설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단순히 위험으로부터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 자신들을 붙들어 주시는 능력의 근원으로 고백합니다.

「참으로 든든한 도움」(⁨מָצָא⁩)으로 옮긴 원문은 발견되거나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의 낱말에 매우, 크게라는 의미를 더한 표현입니다. 이를 고난 중에 확실히 발견되는 도움으로 읽을 수 있고, 고난 중에 매우 가까이 계신 도움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원문은 그분의 도움을 특별히 강조하지만, 정확히 가까이 계심을 강조하는지, 확실히 발견됨을 강조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고난과 상관없이 멀리 계신 분으로 묘사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고난을 피한 다음에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도움으로 발견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시인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고난의 장면을 펼쳐 보입니다.

땅과 산과 바다가 제자리를 잃는다

그러므로 땅이 뒤바뀌고 산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흔들려도, 바닷물이 울부짖으며 거품을 뿜고 솟구치는 물결에 산들이 떨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셀라.시편 46:3–4 · 두루새김

단순한 홍수나 폭풍을 묘사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땅 자체가 뒤바뀌고 산들이 흔들립니다. 성경의 시적인 표현에서 산은 흔히 높고 튼튼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바다는 다스리기 어려운 거대한 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산과 바다의 관계가 뒤집힙니다.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산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움직이고, 바닷물은 울부짖으며 솟구칩니다. 특히 3절의 「땅이 뒤바뀌고」라는 표현은 단순히 땅의 표면이 조금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질서가 크게 변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땅도 변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힘으로 솟구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디에서 안전을 찾을 수 있습니까? 시인의 대답은 2절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십니다」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선언은 세상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 뒤에 나옵니다.

두려워할 만한 일이 없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만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이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시편은 고난의 위험을 실제보다 작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인간이 끝까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어떤 곳에 계시는지 다음 절에서 밝혀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시인이 실제로 특정한 지진이나 해일을 경험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사건의 장소와 날짜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극단적인 이미지는 인간이 의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까지 무너지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창세기 1:9~10에서는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땅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물과 땅의 경계를 정하시면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마련됩니다. 그런데 시편 46편에서는 땅이 뒤바뀌고 산들이 바다 가운데서 흔들립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을 직접 인용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창조의 질서와 혼돈의 이미지를 나란히 놓고 읽을 수는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가 흔들려도, 하나님은 여전히 피난처이십니다.

물은 울부짖는데 강은 성읍을 기쁘게 한다

시편 46:5–6 본문 →

갑자기 등장한 강

강이 있어 그 물줄기들이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합니다. 그 성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 머무시는 거룩한 곳입니다.시편 46:5 · 두루새김

시인은 그 강의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강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 강은 앞의 바다와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바다는 울부짖고 거품을 뿜었습니다. 그 물이 솟구치자 산들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이 강의 물줄기들은 성을 기쁘게 합니다.

앞에서는 물이 질서를 위협했습니다. 이제는 물이 생명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표현은 시온, 곧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시편 48:1~2에서도 하나님의 성과 거룩한 산이 연결됩니다. 예루살렘에는 기혼 샘을 비롯해 물을 얻을 곳이 있었지만, 시편이 묘사하는 것처럼 여러 물줄기가 성을 기쁘게 하는 거대한 강을 실제 지리에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시편의 강은 하나님께서 계심으로 생겨나는 생명과 풍요를 나타내는 시적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편 46편에서도 강이 중요한 이유는 물의 양이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강이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깥의 물은 성과 세상을 뒤흔드는 위협으로 등장하지만, 하나님의 성 안에 있는 강은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물의 이미지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읍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하나님께서 그 성 한가운데 계시니 성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동이 틀 때 하나님께서 그 성을 도우실 것입니다.시편 46:6 · 두루새김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한가운데」(⁨קֶרֶב⁩)입니다. 원문은 성 내부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성을 멀리서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높은 산 위에 자리하기 때문도, 강한 성벽을 갖추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앞의 산들과 분명한 대조가 있습니다. 3~4절에서는 산들이 흔들리고 떨립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성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3절의 산과 6절의 성을 말할 때 같은 모트(흔들리다·비틀거리다)라는 어근을 사용합니다.

산은 원래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그 산이 흔들립니다. 반대로 성은 전쟁과 재난으로 무너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시인은 무엇이 본래 튼튼해 보이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동이 틀 때 도움을 주신다

6절 마지막에는 시간이 등장합니다. 새벽은 밤의 어둠이 끝나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성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며, 그 하나님께서 때가 이를 때 행동하십니다.

하지만 이 선언을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역사 속에서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다는 무조건적인 약속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7:4~15에서는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을 믿고 불의를 행하는 백성을 향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잘못된 안전 보장으로 바꾸는 일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시편 46편도 성벽이나 지리 자체에 절대적인 보호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성의 안전을 하나님께서 계시고 행동하신다는 사실에 연결합니다.

이제 그 하나님께서 세상의 소동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거처와 생명을 주는 물을 연결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2:10에서는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십니다. 에스겔 47:1~12에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깊어지고, 그 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이사야 33:21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넓은 강과 물줄기가 있는 곳과 같은 분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이 본문들이 시편 46:5와 모두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심을 물과 생명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동이 틀 때」에 대해, 시인은 구체적인 전쟁의 밤을 묘사하지 않으므로 어떤 역사적 사건의 아침이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4:27에서 모세가 손을 내밀자 바닷물이 새벽에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이집트 군대가 패배합니다. 그 사건을 시편 46편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새벽에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제적인 연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민족들은 울부짖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시편 46:7–8 본문 →

민족들이 울부짖고 나라들이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목소리를 내시자 땅이 녹아내립니다.시편 46:7 · 두루새김

앞에서는 자연 세계가 흔들렸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정치 세계가 흔들립니다.

4절에서 물이 「울부짖으며」(⁨הָמָה⁩)라고 옮겨진 동사와 7절에서 민족들이 「울부짖고」라고 한 표현은 같은 어근을 사용합니다. 바다가 내는 소리와 민족들이 내는 소리가 하나의 언어로 묶입니다. 또 3절에서 산들이 흔들렸던 것처럼 이제 나라들이 흔들립니다. 그곳에도 모트라는 어근이 사용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나라들은 산처럼 튼튼한 존재입니다. 강한 군대와 왕, 제도와 성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나라들도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소리와 세상을 다스리는 소리

앞에서는 물이 울부짖었습니다. 이제 민족들이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목소리를 내십니다. 그 결과 땅이 녹아내립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목소리를 내신다는 말만으로 충분합니다.

앞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울부짖던 물과 민족들도 하나님의 한마디 앞에서는 최종적인 권위를 갖지 못합니다. 온 세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힘들이 있지만, 그 모든 흔들림을 멈추게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온 군대를 거느리신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높은 요새이십니다. 셀라.시편 46:8 · 두루새김

이 후렴은 12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시편의 중심을 붙드는 고백입니다.

「만군」은 군대와 무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 호칭은 하나님께서 여러 군대를 포함한 모든 권세 위에 계시는 분이라는 위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나라들을 흔드시고 땅을 녹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엄청난 권위와 가까이 계심이 한 문장에 놓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조상과 맺으신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면서, 역사 속에서 야곱과 그의 후손에게 자신을 알리신 분이십니다. 「높은 피난처」는 높은 곳에 있는 안전한 요새나 다가가기 어려운 피난처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찾아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만 안전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미 그들과 함께하신다고 고백합니다.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성 한가운데 계셨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장소의 이미지가 공동체의 고백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성이 안전한 이유와 공동체가 피할 수 있는 근거는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의 목소리는 시편 29편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물 위에 울리고 백향목을 부수며 광야를 뒤흔드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말소리가 아닙니다. 그분의 권위와 능력이 드러나는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십니다. 「만군」은 하늘의 군대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도 있고, 이스라엘의 전쟁과 성소를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쟁을 끝내시는 하나님이 먼저 황폐한 곳을 만드신다

시편 46:9–10 본문 →

「와서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들을 보아라」

와서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땅 위에 폐허를 만드셨습니다.시편 46:9 · 두루새김

시인은 이제 듣는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선언했습니다. 이제는 그분의 행동을 보라고 초대합니다.

왜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보여 주겠다면서 폐허가 된 곳들을 가리킬까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전쟁이나 재난을 가리키는지는 본문에서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이 이 폐허를 이해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그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9절의 폐허를 하나님께 맞서는 세력의 힘을 무너뜨리시는 심판의 결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폐허를 무조건 아름다운 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실제 전쟁과 파괴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언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상태와 다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힘을 실제로 꺾으시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평화는 무기가 사라질 때 온다

땅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활을 꺾으시고 창을 동강 내시며 수레들을 불에 태우십니다.시편 46:10 · 두루새김

무엇을 폐허로 만드시는가 하는 질문을 이 문장이 구체화합니다.

부수고, 자르고, 불태우십니다.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시는 행동입니다.

이 장면에서 전쟁이 끝나는 이유는 양쪽 군대가 서로 충분히 싸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입니다. 시편이 보여 주는 평화는 강력한 군대들이 서로를 두려워하며 잠시 공격을 멈춘 상태가 아니라, 전쟁의 힘 자체가 꺾이는 상태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는 통치

처음에는 하나님의 성이 등장했습니다. 그 성은 하나님께서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행동은 한 성을 넘어 땅끝까지 미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지역적인 신으로 묘사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민족들과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온 세상의 전쟁을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다스림이 한 도시에만 미친다면, 그 성을 위협하는 더 강력한 힘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편은 가장 결정적인 전환을 맞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관해 말하던 시가 이제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수레들」로 옮긴 원문은 군사적 문맥에서는 전쟁에 사용되는 수레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곧바로 병거라는 특정한 무기 종류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장면은 이사야 2:4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거기에서는 민족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는 미래가 그려집니다. 이사야 2장은 무기가 농기구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시편 46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무기를 부수고 불태우십니다. 두 본문은 동일한 장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지만, 전쟁이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현실은 아니라는 믿음을 공유합니다.

「멈추어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아라」

시편 46:11 본문 →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 나는 민족들 가운데서 높아지리라. 나는 땅 위에서 높아지리라.」시편 46:11 · 두루새김

시편 46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입니다.

흔히 이 말씀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묵상하라는 초대로 읽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적용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활을 부수고 창을 자르며 수레를 불태우셨습니다.

무엇을 멈추라는 것인가

「멈추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르푸(⁨רָפָה⁩)입니다. 이 표현은 손을 놓거나 힘을 풀고, 하던 행동을 그만두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단순히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명령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족들은 울부짖었습니다. 나라들은 흔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의 무기를 들고 싸웠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명령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민족들을 향한 명령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민족들이 울부짖고 하나님의 목소리 앞에 땅이 녹아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포함하여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령으로 읽는 길도 있습니다. 시편은 듣는 사람의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지 않습니다.

어느 경우든 이 명령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태도에 도전합니다. 전쟁터에서 무기를 들고 서로를 위협하는 민족들도 멈추어야 합니다. 자기 군사력과 성벽만을 안전의 근거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편은 이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임을 알아라」는 말씀은 이런 하나님의 권위와 다스림을 인정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무기로 승리를 이루고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산처럼 튼튼해 보이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높아지시는가

시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만을 위해 높임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십니다.

땅 위에서 높임을 받으십니다.

앞에서는 민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듯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들도 결국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신다는 것은 그분의 지위가 실제로 부족했다가 나중에 높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가지고 계신 권위와 영광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고 인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처음의 장면도 새롭게 보입니다. 그 모든 소동 속에서 인간이 의지하던 힘들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힘 위에 계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왜 마지막에 다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라고 말하는가

시편 46:12 본문 →

온 군대를 거느리신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높은 요새이십니다. 셀라.시편 46:12 · 두루새김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온 땅에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말씀 뒤에 다시 8절의 후렴을 반복합니다.

온 세상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서 멀리 떠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민족들과 나라들 위에 계시지만, 동시에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땅을 녹게 하실 만큼 강력하시지만, 동시에 자기 백성의 피난처이십니다.

온 땅에서 높임을 받으실 분이지만, 그 백성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읍의 한가운데

시편 46:1–12 본문 →

이 시편의 믿음은 세상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난처이시라는 확신입니다. 앞의 확신은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함께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의 확신은 세상이 흔들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드러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처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전쟁의 무기를 부수시는 분이지, 인간의 모든 전쟁을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자기 편이 언제나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보증이 아닙니다. 그분의 권위는 어느 한 집단의 욕망에 매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땅이 뒤바뀌었습니다. 산들이 바다 가운데서 흔들렸고, 물이 울부짖으며 거품을 뿜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민족들이 울부짖고 나라들이 흔들렸습니다. 마지막에는 활이 부서지고 창이 잘리며 수레들이 불탔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 전혀 다른 모습의 성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의 비밀은 그 성이 본래 강해서가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그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산들이 흔들리고 바다가 울부짖어도 이 고백은 남습니다.

나라들이 흔들리고 전쟁의 무기들이 부서져도 이 고백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소동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멈추어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성에는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물줄기들이 성을 기쁘게 합니다.

그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