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45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칼을 찬 왕에게 정의를 노래하다
시편 45편에는 칼을 찬 왕이 등장합니다. 그의 화살은 날카롭고, 민족들은 그 앞에 쓰러집니다. 그는 눈부신 옷을 입고 상아로 꾸민 궁전에 서 있습니다. 왕들의 딸들이 그의 곁에 있고, 금으로 꾸민 왕비가 오른쪽에 섭니다.
화려한 왕궁과 강력한 군주를 찬양하는 노래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왕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영토도, 더 큰 부도 아닙니다.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을 위해 말을 타고 나아가십시오」(5절). 이상한 조합입니다. 왕은 칼을 차고 전쟁에 나가는데, 그가 싸워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겸손입니다.
겸손을 위해 칼을 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강력한 왕의 통치에서 겸손은 어떤 자리를 차지합니까?
시편은 이 질문에 곧바로 추상적인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왕의 무기에서 왕좌로, 왕좌에서 혼인 잔치로,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아름다운 왕에게서 정말로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시편 45편은 왕의 위대함을 찬양하면서도, 그 위대함을 평가하는 기준이 힘 자체가 아니라 정의와 하나님께 받은 왕권에 있음을 보여 주는 노래입니다.
앞선 시편 44편에서 공동체는 하나님을 자신의 왕이라고 부르면서도 패배를 탄식했습니다. 시편 45편에서는 시선이 인간 왕의 모습으로 옮겨 갑니다. 시편 45편은 그 자체로 왕의 위엄과 혼인, 그리고 왕권의 미래를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왜 자신의 혀를 서기관의 붓에 비유하는가
사랑의 노래가 시작되다
표제는 이 시를 「사랑의 노래」라고 소개합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며, 「쇼샨님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쇼샨님은 백합류와 관련된 표현이지만, 표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가락이나 음악적 지시를 나타내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시편 45편에는 왕의 전쟁과 통치에 관한 찬양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시의 중간을 지나면 신부를 향한 권고가 시작되고, 아름답게 꾸민 여인들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전체적으로 왕의 혼인 축하 노래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왕을 찬양하는 노래와 신부를 맞이하는 노래가 하나의 작품 안에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왕의 혼인을 기념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을 비롯한 다윗 왕조의 특정 왕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시에는 왕의 이름이나 사건이 일어난 때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왕과 왕비의 혼인을 배경으로 왕권의 이상과 미래를 축복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말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끓어오릅니다. 나는 왕을 위해 지은 것을 읊습니다. 내 혀는 솜씨 좋은 글쓴이의 붓입니다.시편 45:2 · 두루새김
시인은 왕의 모습을 묘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솟아오릅니다」(רָחַשׁ)라는 표현은 마음속에 담긴 말이 가득 차 넘쳐나는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억지로 왕을 칭송할 말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노래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 이 사람은 서기관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서기관은 문서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붓은 생각을 빠르고 정확하게 글로 옮기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손에 든 붓이 아니라 자신의 혀가 붓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 시가 기록된 작품이면서 동시에 소리 내어 읽거나 노래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혀는 왕을 위한 시를 써 내려가는 붓이 됩니다.
시인은 단순히 왕의 영광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영광을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는 사람입니다.
이제 시인의 붓이 왕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왕의 아름다움은 얼굴에만 있지 않다
아름다운 외모와 은총이 담긴 입술
왕이여, 사람들보다 훨씬 아름다우시고 그대의 입술에는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영원히 복을 주셨습니다.시편 45:3 · 두루새김
왕의 아름다움은 처음에는 외모의 뛰어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곧바로 시선이 입술로 옮겨 갑니다.
왕의 입술에 「고운 말이 넘칩니다」(חֵן)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원문에서는 입술에 은총이 부어졌다고 표현합니다. 이 은총에 해당하는 말은 호의, 은총,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매력 등을 나타내며, 입술과 연결되면 말에 담긴 아름다움과 호의로운 성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표현을 「당신의 입술에는 고운 말이 넘칩니다」로 옮겼습니다.
시인은 왕의 외모가 아름답다고 말한 뒤, 그가 하는 말에도 아름다움과 호의가 담겨 있다고 묘사합니다. 여기서 왕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모습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연결됩니다.
왕의 말은 일반 사람의 말보다 무거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왕은 말로 명령을 내리고, 판결을 선언하며,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잠언 16:10~13은 왕의 입술과 판단, 정의로운 말을 연결합니다.
그러므로 입술에 고운 말이 넘친다는 표현은 단순히 말을 매력적으로 잘한다는 칭찬에 그치지 않고, 왕의 말이 사람들에게 은혜롭고 올바르게 작용해야 한다는 이상과도 어울립니다.
입술에 고운 말이 넘치는 왕이 이제 칼을 찹니다.
칼을 찬 왕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가치
용사여, 그대의 칼을 허벅지에 차십시오. 그대의 위엄과 찬란함을 두르십시오.시편 45:4 · 두루새김
왕이 가진 군사적 능력과 권위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칼을 허벅지에 찬다는 것은 싸울 준비를 갖추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왕이 무장하는 장면은 곧바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 찬란함 속에 승리를 거두십시오. 진실과 겸손과 정의를 위해 말을 타고 나아가십시오. 그대의 오른손이 그대에게 두려운 일들을 가르칠 것입니다.시편 45:5 · 두루새김
원문에는 진실·신실함, 겸손·온유함, 정의·의로움을 뜻하는 세 낱말이 등장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세 말을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으로 옮겼습니다.
진실과 의로움은 왕의 통치에 필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은 거짓을 멀리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어떻습니까?
고대 왕권의 이상에서 왕은 위엄과 명예를 드러내는 존재였습니다. 군사적 승리도 왕의 중요한 업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왕이 힘을 행사하는 이유 가운데 겸손을 놓습니다.
이것은 권력이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지만, 그 힘이 오직 자신의 자랑과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지향해야 할 통치는 진실과 의로움에 합당해야 하며, 겸손이나 온유함의 가치와도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겸손은 왕이 언제나 부드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단순한 태도 규칙이 아닙니다. 왕의 위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이 구절의 히브리어는 세 단어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진실·겸손·의로움을 각각 나란히 놓인 가치로 읽을 수도 있고, 겸손과 의로움을 더 긴밀하게 결합하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시인이 왕의 전진을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자기 과시와 연결하지 않고 도덕적 가치와 연결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시편이 바라는 왕은 힘이 없어서 겸손한 왕이 아니라, 힘을 가지고도 진실과 의로움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왕입니다.
왕의 오른손이 가르치는 두려운 일들
5절의 마지막 「당신의 오른손이 당신에게 놀랍고 두려운 일들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는 다소 낯설게 들립니다.
여기서 오른손은 왕이 가진 힘과 행동 능력을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놀랍고 두려운 일들」은 놀랍고 위압적인 행동을 가리키며, 문맥상 전쟁에서 왕이 보여 줄 강력한 행위와 연결됩니다. 오른손이 왕 자신에게 그것을 가르친다는 표현은 오른손을 사람처럼 묘사한 시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이 자신의 힘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 경험이 왕에게 무엇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까지 어느 정도 포함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는 화살이 등장합니다.
그대의 화살은 날카로워 민족들이 그대 발아래 쓰러지고 화살이 왕의 원수들 심장에 꽂힙니다.시편 45:6 · 두루새김
시인은 여기서 전쟁의 폭력성을 감추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단순히 마음속의 악한 생각을 이기는 영적 승리에 관한 이야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왕이 전쟁에서 거두는 승리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장면 바로 앞에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이 놓여 있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왕의 무기가 강력하다는 것만으로 그 통치가 정당하다고 선언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시인은 왕에게 군사적 능력을 요구하면서 그 능력이 어떤 가치와 결합되어야 하는지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의로운 통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왕권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다음 절에서 시인은 왕의 무기를 내려놓고 왕좌를 바라봅니다.
「하나님, 당신의 왕좌는 영원합니다」
하나님, 그대의 왕좌는 영원하고 또 영원합니다. 그대 나라를 다스리는 지팡이는 올곧은 지팡이입니다.시편 45:7 · 두루새김
지금까지 시인은 인간 왕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갑자기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이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요?
왕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가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왕좌 — 하나님 — 영원무궁」이라는 구조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현재형의 ‘이다’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고, 이 구절에서는 엘로힘(אֱלֹהִים)이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해석의 핵심입니다. 대표적인 읽기는 두 방향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두루새김처럼 「하나님」을 직접 부르는 말로 읽는 것입니다. 이 경우 앞뒤에서 왕을 향해 말하던 시인이 7절에서도 왕을 향해 말한다고 보면, 인간 왕을 매우 높여 하나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읽기를 택한다고 해서 시인이 인간 왕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고 선언했다고 곧바로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시편 45:8에서는 그 왕에게 기름을 부으시는 분을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왕은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는 대상입니다.
둘째는 이 표현을 하나님의 왕권과 연결하여 읽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왕의 왕좌가 하나님께 속하거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좌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길이 있습니다. 또는 7절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직접 말을 돌렸다가 다시 인간 왕에게 돌아온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의 읽기를 모든 해석상의 문제 없이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왕의 왕좌는 인간 왕의 힘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왕권과 떼어 놓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인이 왕의 칼과 화살을 칭찬한 뒤 하나님과 왕좌를 연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왕권의 궁극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왕좌의 영원함과 통치의 올곧음
7절의 두 번째 문장 「당신의 왕권을 나타내는 지팡이는 공정함의 지팡이입니다」는 왕권의 성격을 밝힙니다.
「왕권을 나타내는 지팡이」는 왕이 다스리는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는 단순히 힘의 상징이 아닙니다. 「공정함」(מִישׁוֹר)으로 옮긴 원문의 낱말은 곧음, 평탄함, 공정함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왕이 행사하는 권위는 올바른 판단과 공정한 통치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5절의 진실과 의로움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왕은 전쟁터에서 의로움을 위해 싸워야 하며, 왕좌에 앉아서도 올곧게 다스려야 합니다. 군사적 승리와 일상적인 통치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름 부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8절은 왕좌와 정의의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대는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 그대의 동료들보다 그대에게 기쁨의 기름을 더 부으셨습니다.시편 45:8 · 두루새김
왕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는 구약에서 왕의 임명과 특별한 지위에 연결됩니다. 사무엘상 16:13에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이 행동은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시편 45편의 「기쁨의 기름」 역시 왕의 특별한 지위와 기쁨을 나타냅니다.
시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을 특별하게 높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시인은 왕이 강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의로움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셨습니다」라는 사실을 먼저 말합니다. 이 문장은 앞에서 등장한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을 다시 하나로 묶습니다.
왕의 권위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며, 그 권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라는 사실은 그 왕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게 통치해야 할 책임을 부여합니다.
왕의 위엄과 영광은 크지만, 그가 지향해야 할 정의는 왕 자신보다 높은 기준으로 제시됩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을 하나님을 직접 부르는 말로 읽을 때, 고대 왕권의 언어에서 왕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한다는 관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높은 호칭을 왕이 위임받은 권위와 관련하여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시편 2:7에서도 왕은 하나님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왕이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뜻보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서 왕권을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당신의 왕좌, 하나님이여」처럼 하나님을 직접 부르는 말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옮겼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읽기는 후대에 임의로 만들어진 해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권과 연결하는 읽기와 관련해서는, 역대상 29:23은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왕좌에 앉아 다스렸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의 통치가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다는 사상을 보여 줍니다. 반면 왕좌를 하나님의 권위와 관련된 표현으로 읽는 경우에는 히브리어의 명사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문법적인 어려움이 남습니다. 8절의 「기쁨의 기름」이 실제로 왕의 자리에 오르는 의식에서 붓는 기름만을 가리키는지, 혼인의 기쁨까지 포함하는 시적인 표현인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료들」이 다른 왕들인지, 왕과 함께하는 귀족들인지, 혹은 왕과 비교되는 다른 사람들인지는 본문에서 특정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무엘하 23:3~4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다스리는 통치자의 모습을 말하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신명기 17:14~20에서 왕은 말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거나 은금을 지나치게 늘리지 말아야 하며, 율법을 가까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45편은 왕의 화려함과 위엄을 노래하므로 신명기의 왕에 관한 규정과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왕이 자신의 힘과 지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두 본문은 만납니다. 시편 72:1~4에서는 왕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주어지기를 구하고, 그가 가난한 백성과 궁핍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며 억압하는 자를 꺾기를 바랍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1:8~9가 시편 45:7~8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 히브리서는 영원한 왕좌와 의로운 통치에 관한 시편의 언어를 아들의 뛰어난 지위와 연결합니다. 다만 이를 근거로 시편 45편의 원래 혼인 장면과 신부의 등장, 왕조를 이어 갈 후손에 관한 모든 표현을 예수님의 생애에 하나씩 대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 45편은 먼저 이스라엘 왕실을 배경으로 한 왕의 혼인 노래입니다. 그 안에서 왕권이 어디에서 오는지와 그 책임, 의로운 통치의 이상을 충분히 읽은 다음, 신약이 그 왕권의 언어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적용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본문의 흐름을 존중하는 읽기입니다.
전쟁터에서 혼인 잔치로
7~8절에서 왕의 왕좌와 정의를 노래한 시인은 갑자기 감각적인 묘사로 넘어갑니다.
그대의 옷마다 몰약과 침향과 계피 향이 배어 있고 상아 궁전에서 현악기들이 그대를 기쁘게 합니다.시편 45:9 · 두루새김
칼과 화살, 원수와 전쟁이 등장하던 장면에서 향기와 음악이 가득한 왕궁으로 옮겨 갑니다. 이 향기들은 왕의 화려한 옷차림과 왕궁의 풍요로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원문에서 「상아로 꾸민 궁전들」은 상아 궁전들이지만, 궁전 전체가 상아로 지어졌다는 뜻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두루새김은 상아로 장식된 궁전이라는 뜻을 드러내어 옮겼습니다. 왕궁의 사치스러운 내부 장식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앞에서 왕의 오른손은 놀랍고 두려운 일을 행할 힘을 나타냈습니다. 이제 왕은 음악을 들으며 기뻐합니다.
왕의 세계가 전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시편은 왕이 지켜야 할 가치와 왕권의 근거를 이야기한 뒤, 그 왕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기쁨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왕의 오른쪽에 선 왕비
10절에서는 혼인 잔치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대가 귀히 여기는 여인들 가운데 왕들의 딸들이 있고 왕비는 오피르의 금을 두르고 그대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시편 45:10 · 두루새김
고대 왕실에서 다른 왕가와의 혼인은 왕조 사이의 외교적 관계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왕들의 딸들이 왕궁에 등장한다는 것은 왕의 혼인이 개인적인 결합일 뿐 아니라 왕실과 왕실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그들 가운데 특히 한 사람이 강조됩니다. 왕비입니다. 시인은 왕비의 옷차림을 통해 그녀에게 주어진 높은 지위를 묘사합니다.
고대 궁정의 공간에서 왕의 오른쪽은 특별한 영예와 가까움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19에서도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를 위해 왕좌 오른쪽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시편 45편에서도 왕비가 왕의 오른쪽에 서 있다는 것은 그녀가 중요한 지위를 가진 인물로 제시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인은 왕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왕을 향했던 시인의 시선이 신부에게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몰약과 계피는 향료로 알려져 있고, 두루새김이 「침향」으로 옮긴 말 역시 향과 관련된 식물성 재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식물을 뜻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열왕기상 22:39에서도 상아로 장식된 궁전이 언급됩니다. 10절만으로 왕들의 딸들이 모두 왕의 아내였는지, 왕궁의 귀빈이었는지, 혹은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피르는 구약에서 금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열왕기상 9:28). 정확한 지리적 위치는 확인되지 않지만, 오피르의 금은 귀한 금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라」
결혼은 한 사람의 세계를 바꾼다
딸아, 듣고 보아라.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라.시편 45:11 · 두루새김
이제 시인은 왕에게 말하던 높임말을 멈추고 신부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이 부름은 앞에서 왕에게 했던 찬양과 성격이 다릅니다. 시인은 신부에게 자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듣도록 요청합니다. 그리고 낯선 명령을 합니다.
왜 신부는 자기 백성과 아버지의 집을 잊어야 할까요?
이 구절은 개인적인 결혼 생활에 관한 일반적인 충고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편이 묘사하는 것은 왕실의 혼인입니다. 신부는 왕의 궁정으로 들어가 새로운 지위와 책임을 갖게 됩니다.
그녀가 이전에 속했던 집안과 백성은 그녀가 누구인지를 형성해 온 중요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왕실에 속하게 됩니다.
따라서 「잊어라」는 명령은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거나 부모를 더 이상 사랑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보다, 새로운 왕실에 속하는 일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읽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다만 이것은 고대 왕실의 혼인에 담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시편은 신부의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느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기쁨과 기대만 있었는지, 고향을 떠나는 슬픔과 부담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그녀에게 요구되는 변화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왕의 갈망과 신부의 복종
12절에서는 그 변화의 이유가 제시됩니다.
그러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갈망하리라. 그가 네 주인이니 그에게 엎드려라.시편 45:12 · 두루새김
앞에서 시인은 왕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제는 신부의 아름다움이 왕의 마음을 끈다고 말합니다.
시의 앞부분에서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던 왕이 이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서로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왕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간절히 원하지만, 신부에게는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엎드리라는 요구가 주어집니다. 「그가 네 주인이니」라는 표현은 고대 왕실의 위계적 관계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왕은 남편인 동시에 통치자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엎드리는 행동은 단순히 부부 사이의 친밀한 표현이 아니라 왕의 권위에 대한 존중과 복종을 나타내는 동작입니다.
이러한 위계를 본문이 실제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동시에 이 표현을 남편이라면 누구나 아내에게 왕과 같은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는 보편적 명령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시인은 왕실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구조 안에서 신부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노래합니다.
왕이 의로움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해야 한다는 신학적 이상과, 신부가 왕에게 엎드리는 고대 궁정의 관습을 아무런 구별 없이 오늘의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두로 사람들과 선물
13절에서는 신부가 받게 될 새로운 지위를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딸 두로가 선물을 들고 오고, 백성 가운데 부유한 이들이 네 호의를 구하리라.시편 45:13 · 두루새김
두루새김이 「두로 사람들」로 옮긴 자리는 원문에서 해석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원문은 문자적으로 「두로의 딸」입니다.
구약에서는 도시나 민족을 여성 인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온의 딸」이나 「바벨론의 딸」 같은 표현이 그 예입니다. 이런 용법을 따르면 두로의 딸은 두로라는 도시나 그곳의 사람들을 사람처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읽기를 따라 「두로 사람들」로 옮겼습니다.
두로는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시로, 구약에서도 무역과 부유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사야 23:8). 따라서 이 구절은 두로를 비롯한 부유한 사람들이 새 왕비에게 선물을 가져오고 호의를 구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원문의 「두로의 딸」을 신부에게 직접 하는 말로 읽어, 신부가 두로 출신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해석이 옳은지 확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왕실 혼인이 개인적인 기쁨을 넘어 사회적·외교적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신부의 호의를 구한다는 것은 그녀가 단순히 왕의 아름다운 배우자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접근과 요청을 받는 중요한 지위에 들어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는 신부가 자기 백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호의를 구하며 찾아옵니다.
그녀는 한 왕실을 떠나 다른 왕실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금으로 수놓은 옷과 왕궁으로 들어가는 행렬
안에 있던 신부가 밖으로 나온다
왕의 딸은 안에서 온통 눈부시고 금실로 짠 옷을 입었습니다.시편 45:14 · 두루새김
시인은 이제 신부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안에 있는」(פְּנִימָה)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을 사람의 마음속으로 이해하여 신부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찬양한다고 읽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간의 안쪽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신부가 왕에게 이끌려 가고 왕의 궁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 표현은 신부가 안쪽 공간에 머물다가 혼인 행렬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밖으로 나서지 않고 집 안에 머무는 데 있다는 식의 일반적인 가르침으로 읽는 것은 문맥을 벗어납니다. 시인이 묘사하는 것은 왕실 혼인의 장면입니다.
10절에서는 왕비를 꾸민 오피르의 금을 말했고, 이제는 신부의 옷이 얼마나 정교하고 화려한지 보여 줍니다. 왕의 옷에는 향기가 배어 있었고, 신부의 옷은 금실로 짜여 있습니다. 왕과 신부는 각각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묘사를 통해 찬양받습니다.
이제 혼인 행렬이 시작됩니다.
신부는 혼자 왕궁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놓은 옷을 입은 그 여인이 왕에게 이끌려 갑니다. 왕이여, 그 여인을 뒤따르는 처녀들, 그 동무들도 그대에게 이끌려 옵니다.시편 45:15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시인은 신부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왕실의 혼인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사건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고 축하하는 공개적인 행사로 묘사됩니다.
또한 「당신께 이끌려 옵니다」가 누구를 향한 말인지를 둘러싸고도 해석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직전에는 신부를 「그 여인」이라고 묘사하다가 여기서는 「당신」에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왕을 향한 것으로 읽힐 수 있고, 신부를 향한 표현으로 이해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왕을 향한 말로 이해하면, 시인은 신부가 왕에게 이끌려 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왕에게 직접 그 광경을 보여 주는 셈이 됩니다. 이러한 시점 전환은 시 전체에 활기를 더합니다.
처음에 시인은 왕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다음 신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제는 혼인 행렬을 바라보며 그 장면을 묘사하다가 다시 왕을 향해 말합니다.
마치 혼인 잔치의 현장에서 여러 인물에게 말을 건네며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기쁨이 궁전으로 들어간다
기쁨과 환호 속에 이끌려 그들은 왕의 궁전으로 들어갑니다.시편 45:16 · 두루새김
여기서 시인은 14~15절의 화려한 옷차림보다 다른 것을 강조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앞에서 왕은 기쁨의 기름을 부음받았습니다. 상아로 꾸민 궁전들에서는 현악기 소리가 왕을 기쁘게 했습니다. 이제 신부와 그 동무들이 기쁨과 즐거움 속에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기쁨이라는 주제가 왕에게서 시작되어 혼인 행렬 전체로 퍼져 나가는 셈입니다.
이 장면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왕실의 사치를 과시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시편은 왕의 권위와 통치의 이상을 이야기한 뒤 혼인의 기쁨을 보여 줍니다. 왕이 칼을 차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시작한 노래가 이제 음악과 향기, 아름다운 옷과 환호가 가득한 자리로 옮겨 왔습니다.
전쟁과 혼인은 전혀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 시편 안에서는 하나의 왕권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왕은 외부의 적들 앞에서는 힘을 발휘해야 하고, 자기 왕국 안에서는 의롭게 다스려야 하며, 왕실의 혼인에서는 새로운 가정과 후손을 맞이해야 합니다.
왕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기쁨의 행렬은 시인이 바라보는 왕권의 밝은 미래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의 혼인 잔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처녀들, 곧 그 여인의 동무들」이라는 표현은 신부와 함께하는 젊은 여성들을 가리킵니다. 혼인 행렬에 동행하며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신부의 동무들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궁정 직책까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14절의 「안에 있는」이 정확히 어느 궁전이나 방의 안쪽을 가리키는지도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왕의 아들들이 조상들을 대신할 것이다
왕권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그대의 아들들이 조상들의 뒤를 이을 것이며, 그대는 그들을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실 것입니다.시편 45:17 · 두루새김
시인은 신부를 향한 노래를 마친 뒤 다시 왕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관심은 왕 자신이 아닙니다. 왕의 아들들입니다.
시인은 왕의 조상들과 아들들을 대조합니다. 조상은 과거를 나타내고, 아들들은 미래를 나타냅니다. 왕은 이전 세대가 세운 왕권을 물려받은 사람이지만, 그의 통치는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왕실 혼인의 의미를 더욱 넓게 만듭니다. 왕의 혼인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맺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왕조의 미래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왕에게 아들들이 태어나고, 그들이 지도자로 세워진다는 것은 왕실의 지위와 권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냅니다.
영원한 왕좌와 죽을 수밖에 없는 왕
여기서 앞의 7절 「하나님, 당신의 왕좌는 영원합니다」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왕의 아들들이 조상들을 대신한다고 말합니다.
왕좌는 영원하다고 노래하지만, 인간 왕은 한 세대에 속해 있습니다.
그에게는 조상들이 있고, 아들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시간의 흐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영원한 왕좌에 대한 고백을 지금 혼인하는 한 인간 왕이 영원히 죽지 않고 통치한다는 문자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왕권의 지속은 후손을 통해 이어지는 왕조의 미래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왕조의 미래 역시 결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과 통치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점에서 시편의 왕권은 매우 높은 이상을 지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진 인간 왕권입니다.
시인의 붓이 왕의 이름을 남긴다
마지막 절은 다시 시인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나는 그대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되게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민족들이 영원히, 또 영원히 그대를 찬양할 것입니다.시편 45:18 · 두루새김
이것은 2절과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처음에 시인은 자신의 혀가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붓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이 그 일을 왜 하는지 밝힙니다. 왕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는 인간 왕권의 중요한 역설도 드러납니다. 왕은 강력한 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궁전과 귀한 금, 화려한 혼인 잔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후대에 어떻게 기억될지는 왕의 힘만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남아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노래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혀는 왕을 위한 붓이 되었고, 이제 그 붓은 왕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는 도구가 됩니다.
여기서 이름이 기억된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책에 기록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시인은 그 이름이 민족들의 찬양 가운데 남기를 바랍니다. 왕의 통치가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것이 되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의 「온 땅 곳곳」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이스라엘의 통치 영역 전체를 뜻하는지, 왕의 영향력이 널리 뻗어 나가는 모습을 시적으로 묘사하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왕의 후손에게도 다스릴 권한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사무엘하 7:12~16의 다윗 언약과 중요한 주제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다윗 이후 그의 후손을 세우시고 왕국을 굳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시편 45편이 다윗 언약을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왕의 후손을 통해 왕권이 계속되리라는 기대는 그 약속과 어울립니다. 시편 2편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진 왕을 노래하고, 시편 72편은 정의로운 통치와 넓은 영향력을 가진 왕을 기대합니다. 시편 45편은 이러한 왕권의 주제 가운데 혼인과 왕조가 오래 이어지는 일이라는 독특한 요소를 더합니다.
아름다운 왕을 기억하는 이유
시편 45편의 왕은 아름답습니다.
그의 입술에는 고운 말이 넘치고, 위엄과 빛나는 영광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의 옷에서는 향기가 나고, 궁전에서는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시인은 왕의 아름다움을 겉모습에만 묶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그가 의로움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동료들보다 그에게 기쁨의 기름을 더 부으셨다고 말했습니다.
왕에게 주어진 힘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왕에게 주어진 영광도 그 자체로 정당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 영광이 하나님의 정의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시인의 마지막 소원은 왕의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남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노래 안에 왕의 이상을 함께 남겼습니다.
칼을 차고 나아가는 용사이면서,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왕입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받은 통치자이면서, 의로움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해야 하는 왕입니다.
향기로운 옷을 입고 궁전의 기쁨을 누리지만, 하나님께 받은 권위를 잊어서는 안 되는 왕입니다.
그것이 시인이 후대에 남기려는 왕의 모습입니다.
시편 45편의 끝에서 다시 혼인 행렬을 바라봅니다.
왕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왕비는 오피르의 금으로 꾸몄습니다. 수놓은 옷을 입은 신부와 그 동무들이 기쁨과 즐거움 속에 왕의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음악이 있고, 향기가 있으며, 축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시편의 처음에 등장한 시인은 자신의 혀가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의 붓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붓은 칼을 찬 왕을 그렸습니다. 의로움을 사랑하는 왕의 왕좌를 그렸습니다. 금으로 꾸민 신부와 왕궁으로 들어가는 행렬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들과, 후대에 왕의 이름을 기억할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현재의 혼인 잔치가 미래의 왕조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 가운데 시인이 왕에게 요구한 가장 중요한 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진실과 겸손과 의로움을 위해 말을 타고 나아가십시오.」
왕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시인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통치가 무엇인지도 함께 노래했습니다.
왕의 영광은 눈부시지만, 그 영광이 어떤 왕의 영광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의로움입니다.
시편은 의로움을 사랑하는 왕이 영광 가운데 통치하고, 새로운 왕비가 기쁨 가운데 왕궁으로 들어가며, 그들의 후손이 왕조의 미래를 이어 가기를 바라며 끝납니다. 그리고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할을 밝힙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되게 하겠습니다.」
왕궁에서는 혼인 잔치가 열리고, 사람들은 기쁨 속에 들어갑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시인은 왕을 위해 준비한 노래를 마칩니다.
그의 혀에서 시작된 노래가 이제 왕의 이름을 다음 세대로 전하려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