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44장

이 장의 자리 · 44–50장 · 조상들을 기림

잊힌 이름들 사이에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

집회서 44장은 한 가지 질문으로 독자를 역사 속으로 데려갑니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름이 남고 어떤 사람은 존재한 적도 없는 듯 잊힙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듭니까?

저자는 먼저 왕과 지도자, 예언자와 지혜로운 사람, 음악가와 글을 남긴 사람들을 찬양합니다. 이들은 각자의 시대에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았고, 후대에도 칭송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아무리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라도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떤 능력과 업적으로 이름을 얻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자비와 의로움,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을 통해 이어지는 후손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역사 속에 어떻게 이어 가시는가를 기억하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앞 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해와 달, 별과 바다를 찬양했습니다. 이제는 그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신 일을 돌아봅니다. 창조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들의 삶과 세대의 흐름 속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장은 이어지는 조상 찬양의 출발점입니다. 저자는 모든 인물을 한꺼번에 소개하지 않고, 먼저 어떤 삶을 기억해야 하는지 설명한 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을 차례로 불러냅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44장 본문 읽기 →

왕과 예언자와 음악가 — 위대함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집회서 44:1–7 본문 →

조상들을 찬양하자

이제 이름난 사람들과 우리를 낳아 준 조상들을 찬양하자.집회서 44:1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번에는 인간의 조상들을 찬양하자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사람에게 드리는 칭송은 어떻게 다릅니까?

주는 아득한 옛날부터 큰 영광, 곧 자기 위엄을 창조했다.집회서 44:2 · 두루새김

이 표현을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자신의 위엄을 새로 만들어 내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문맥은 하나님이 옛날부터 역사 속에 드러내신 위대한 일들과 영광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읽힙니다. 곧이어 다양한 능력을 지닌 조상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이 그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셨다는 이해가 자연스럽습니다.

저자는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의 위대함을 하나님의 일하심과 연결합니다.

다만 이것이 뒤에 등장하는 조상들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승인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의 삶에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부분을 선택하여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왕만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

3절부터 저자는 이름난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나열합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들을 다스렸고, 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자기들의 깨달음으로 의논할 것이며, 예언으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이었다.집회서 44:3 · 두루새김
그들은 조언으로, 또 백성의 글과 지식을 이해하는 힘으로 백성을 이끌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지혜로운 말들이 있었다.집회서 44:4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혜가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백성을 이끌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판단을 제공합니다.

그들의 깨달음은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5절에 이르면 조금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음악의 가락을 찾고, 글로 이야기를 펼쳤다.집회서 44:5 · 두루새김

저자는 위대한 조상들의 업적을 정치적 권력이나 군사적 승리로만 제한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도 기억할 만한 업적에 포함합니다. 시편 전통에 나타나는 노래와 찬양, 잠언에 남아 있는 지혜의 말들 역시 그런 문화적 유산에 속합니다.

한 시대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지혜를 가르치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들도 그 시대를 형성합니다.

부와 평화도 영광의 목록에 들어 있다

힘을 넉넉히 받은 부유한 사람들이었고, 자기들이 머무는 곳에서 평화롭게 지냈다.집회서 44:6 · 두루새김

저자는 부나 힘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의로운 삶을 보증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 단락의 목적은 먼저 과거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명성을 얻었는지를 폭넓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러 세대에 걸쳐 영광을 받았고, 자기들이 살던 시대의 자랑이었다.집회서 44:7 · 두루새김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영광을 받았다고 해서 그 영광이 반드시 오래 남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존재한 적도 없는 듯 사라진 사람들

집회서 44:8–10 본문 →

이름을 남긴 사람과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

그들 가운데는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어,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전한다.집회서 44:8 · 두루새김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호칭을 넘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관한 기억을 가리킵니다. 이름이 남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후대가 계속 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9절은 냉정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자취가 없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사라졌고, 생겨난 적도 없는 것처럼 되었다. 그들 뒤에 남은 자녀들도 그렇게 되었다.집회서 44:9 · 두루새김

이 반복은 얼마나 철저히 잊혔는지를 강조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이름과 업적이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도 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명성은 생각보다 연약합니다.

저자는 이름이 남지 않은 모든 사람이 악했다거나 가치 없는 삶을 살았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의롭지 않다는 판단은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행실은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비로운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의로운 행동은 잊히지 않았다.집회서 44:10 · 두루새김

여기서 저자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만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다만 10절의 「이들은」이 정확히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지는 문맥상 다소 열려 있습니다. 앞서 이름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 자비로운 이들을 다시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름이 잊힌 사람들에 관한 언급 이후, 인간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름과 남아 있는 의로운 유산을 대비하는 전환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저자는 자비와 의로운 행동을 기억해야 할 중요한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다음 구절에서 그것은 후손과 언약, 그리고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유산으로 발전합니다.

무덤에 묻힌 몸과 살아 있는 이름

집회서 44:11–15 본문 →

좋은 유산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좋은 유산인 그들의 자손은 그들의 후손과 함께 길이 남을 것이다. 그들의 후손은 언약들 안에 굳게 섰고, 그들의 자녀들도 그들 덕분에 굳게 섰다.집회서 44:11–12 · 두루새김

그런데 그 유산은 재산이나 토지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후손이 남고, 그 후손이 언약 안에서 굳게 서는 것을 말합니다. 조상의 삶은 그 사람 한 명의 생애로 끝나지 않습니다.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의로운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자녀도 자동으로 의로워진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개인의 도덕성이 혈통을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손이 「언약들 안에」 굳게 섰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의 후손이 이어지는 일은 단순히 가문이 살아남는 문제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약속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뒤에 등장할 노아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미리 준비합니다.

의로운 조상들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유산은 그들 자신의 위대함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도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몸은 묻히지만 이름은 살아 있다

그들의 몸은 평화롭게 묻혔고, 그들의 이름은 대대로 살아 있다.집회서 44:14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죽은 사람이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이름과 그 이름에 담긴 기억이 후대의 삶 속에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은 한 사람의 생애를 끝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지혜와 행동은 다른 사람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도 설명합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지혜를 이야기할 것이고, 모인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하는 말을 널리 알린다.집회서 44:15 · 두루새김

이름은 저절로 살아남지 않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기억은 개인적인 추억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하는 일이 됩니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과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지혜로웠으며, 누가 하나님께 신실했는지를 기억합니다.

이제 저자는 실제로 그 일을 시작합니다.

에녹 — 긴 업적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삶

집회서 44:16 본문 →

왜 첫 번째 인물이 에녹인가?

에녹은 주를 기쁘게 했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는 대대로 회개의 본보기가 되었다.집회서 44:16 · 두루새김

앞에서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가르치고, 음악과 글을 남긴 사람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에녹에게서는 그러한 업적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맺은 관계만을 말합니다.

창세기 5:21–24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에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의 족보에는 반복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각 사람이 몇 해를 살고 자녀를 낳았는지 기록한 다음, 대부분의 경우 그가 죽었다는 말로 끝납니다.

에녹의 기록에서는 그 반복이 달라집니다.

앞 단락에서는 의로운 조상들의 몸이 평화롭게 묻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로 등장하는 에녹에게서는 매장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셨다는 특별한 전승을 그대로 따릅니다.

에녹이 회개의 본보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창세기 5장에는 에녹이 어떤 죄를 짓고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회서 44:16은 에녹을 「회개의 본보기」라고 부릅니다. 한 가지 가능한 이해는 에녹의 삶이 후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돌아가는 삶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을 많이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떻게 살았는가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남아 있는 집회서의 히브리어 전승에서는 에녹을 「지식의 표지」 또는 「깨달음의 징표」로 묘사합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삶 자체가 후대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표지가 되었다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그리스어 표현은 그 삶이 후대의 회개를 촉구하는 모범이 된다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드러냅니다. 두 전승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느 단계에서 현재의 표현이 형성되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노아 — 세상이 사라질 때 남겨진 한 사람

집회서 44:17–18 본문 →

분노의 때에 의로운 사람으로 드러나다

노아는 온전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드러났고, 분노의 때에 대신 치를 값이 되었다. 이 때문에 땅에 남은 사람들이 생겼고, 이 때문에 홍수가 일어났다.집회서 44:17 · 두루새김

창세기 6:9에서도 노아는 의롭고 그 시대에 온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소개됩니다. 창세기는 두 사람 모두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집회서는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는 사실과 노아가 의로운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을 나란히 놓습니다.

노아의 의로움은 특별한 시기에 의미를 갖습니다.

창세기 6:11–13에서는 땅에 폭력이 가득했고, 하나님이 그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노아의 의로움은 평화로운 시대에 인정받은 평판이 아닙니다.

땅 전체가 폭력과 부패로 가득한 가운데 나타난 의로움입니다.

노아는 누구를 대신하여 무엇을 치렀는가?

그런데 저자는 노아를 「대신 치를 값」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노아가 멸망의 시기에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는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이를 노아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아 속죄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6–9장은 노아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존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44:17의 중심은 멸망의 때에 노아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은 노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홍수로 사라지지 않도록, 노아와 영원한 언약들이 맺어졌다.집회서 44:18 · 두루새김

언약은 노아와 맺어졌지만, 그 언약의 목적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시 홍수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9:8–17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후손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생물에게도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언약은 한 가족의 생존을 넘어서 땅에 살아가는 생명 전체와 관계됩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심판에서 보존의 약속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노아의 언약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보존과 관계되었다면, 아브라함의 언약은 여러 민족이 복을 받는 미래와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에는 「이 때문에」라는 표현이 두 차례 나타납니다. 그런데 두 번째 표현을 노아의 의로움과 직접 연결하면, 노아 때문에 홍수가 일어났다는 부자연스러운 의미가 됩니다. 히브리어 전승은 노아로 말미암아 남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와 맺은 언약으로 홍수가 그쳤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본문 차이를 고려하면 노아의 의로움이 홍수의 원인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민족에게 이르는 복

집회서 44:19–21 본문 →

수많은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수많은 민족의 위대한 아버지였고, 그만큼 영광스러운 사람은 없었다.집회서 44:19 · 두루새김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붙이는 첫 번째 칭호는 왕이나 전사가 아니라 「수많은 민족의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7:4–5의 언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며, 그가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받았을 때는 아직 이삭조차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민족의 위대한 아버지」라는 칭호는 아브라함이 이미 소유한 것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모세의 율법을 지켰는가?

그는 지극히 높은 이의 율법을 지켰고, 지극히 높은 이와 언약을 맺었다. 자기 몸에 언약을 세웠으며, 시험을 받을 때 믿음직한 사람으로 드러났다.집회서 44:20 · 두루새김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먼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26:5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말씀을 듣고, 명령과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집회서의 표현은 이러한 전승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율법을 지켰고」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따랐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자기 몸에 언약을 세우다

여기서 「자기 몸에 언약을 세웠으며」라는 말은 할례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17:10–14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할례를 언약의 표지로 주십니다.

언약이 몸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믿음이나 마음속 결심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지가 됩니다.

그런데 이어서 시험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22:1–19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며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을 통해 후손이 이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미래와 하나님의 명령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충실함을 드러낸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삭 대신 숫양이 제물로 바쳐집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아브라함이 아들을 실제로 죽였기 때문에 신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식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맹세가 아브라함의 생애를 넘어간다

이 때문에 지극히 높은 이는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약속을 굳게 세웠다. 민족들이 그의 후손 안에서 복을 받게 하고, 그에게서 난 사람들을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게 하며, 그의 후손을 별들처럼 높이겠다고 했다. 또 그들이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의 땅을 물려받게 하겠다고 했다.집회서 44:21 · 두루새김

「민족들이 그의 후손 안에서 복을 받게 하고」라는 말은 창세기 22:18의 약속과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은 아브라함과 그의 직계 후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민족이 그 후손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다음에는 땅의 먼지와 별들이 등장합니다. 이 두 이미지는 각각 창세기 13:16과 15:5 등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의 먼지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후손을 나타냅니다. 하늘의 별들도 마찬가지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후손을 상징합니다.

앞 장에서는 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지키는 창조물이었습니다. 이제 그 별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된 미래를 나타내는 이미지가 됩니다. 창조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고,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에는 땅에 관한 약속이 등장합니다.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라는 표현은 시편 72:8의 왕권에 관한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는 왕의 다스림이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집회서 저자는 이러한 넓은 지역을 나타내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질 유산의 규모를 찬양합니다.

여기서 「강」은 구약의 약속의 땅에 관한 문맥에서 유프라테스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창세기 15:18). 저자는 여러 창세기 본문에 나타나는 후손과 땅의 약속에 넓게 펼쳐지는 왕권의 언어를 결합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지를 표현합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이 그의 생애를 훨씬 넘어 수많은 후손과 여러 민족의 미래로 확장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서 11:5–7은 에녹과 노아를 믿음의 사람들로 소개하며, 11:8–22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집회서와 동일한 본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창세기의 조상들을 신앙의 본보기로 기억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갈라디아서 3:6–9와 3:16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의 약속이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집회서 44장의 직접적인 해석이라기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읽으며 그 의미를 펼쳐 가는 신약의 설명입니다.

이삭과 야곱 — 한 사람의 복이 열두 지파의 유산이 되다

집회서 44:22–23 본문 →

아브라함에게서 끝나지 않는 언약

지극히 높은 이는 이삭에게도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한 복과 언약을 이와 같이 세웠고,집회서 44:22 · 두루새김

이삭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삭에게도 굳게 세우십니다. 창세기 26:2–5와 26:24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과 함께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대목은 집회서의 표현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언약은 한 세대의 생애와 함께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세대와 관계를 맺으시면서도 이미 하신 약속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복은 야곱의 머리 위에 머문다

그 복과 언약을 야곱의 머리 위에 머물게 했다. 자기 복으로 야곱을 인정하고, 그에게 물려받을 몫을 주었다. 야곱의 몫을 가르고 열두 지파에 나누어 주었다. 또 야곱의 후손 가운데서 자비로운 한 사람을 이끌어 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얻는 사람이었다.집회서 44:23 · 두루새김

하나님이 주신 복과 언약이 야곱의 머리 위에 머문다는 것은 그 복이 야곱에게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창세기 28:13–15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땅과 후손의 약속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그때 형 에서를 피해 집을 떠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안전한 집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그를 지키시며,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집회서가 야곱의 머리 위에 복이 머물렀다고 말할 때, 그 복은 야곱이 언제나 평탄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 이어졌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열두 지파로 나누어지는 유산

이제 한 사람에게 주어진 복이 열두 지파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저자는 야곱에게 주어진 몫을 열두 지파에 나누어 주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직접 가나안 땅의 모든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는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 야곱에게서 비롯된 열두 지파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각각 몫을 받게 되는 역사를 짧게 압축한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열두 아들을 불러 그들의 미래에 관한 말을 남깁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약속의 땅을 나누어 받습니다(여호수아 13–21장). 집회서는 그러한 긴 역사를 하나의 유산으로 연결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얻는 한 사람

44장은 마지막에 새로운 인물을 암시합니다.

「자비로운 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앞서 10절에서 등장했던 자비로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막연한 조상들의 집단이 아니라 특별한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이 인물은 모세로 밝혀집니다(집회서 45:1). 다만 44장의 끝에서는 아직 이름보다 그의 성격과 하나님의 행동이 먼저 소개됩니다. 저자는 그 인물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먼저 나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이끌어 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끝난 역사가 아닙니다.

열두 지파로 이어진 한 사람의 약속

집회서 44:1–23 본문 →

누군가의 업적이 얼마나 널리 알려졌는가와 그 사람이 얼마나 의롭고 신실하게 살았는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억되는 까닭은 그들 자신의 능력만으로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4장의 처음에서 저자는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서는 한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이름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도 오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기억하는 이 역사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한 세대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복은 이삭에게 이어지고, 야곱의 머리 위에 머물며, 마침내 열두 지파가 물려받을 몫으로 나뉩니다.

한 사람은 자기 생애를 다 살고 떠나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약속은 다음 세대를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

집회서 44장은 바로 그 약속이 이어지는 자리에서 멈춥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