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못 본 체하지 않는 삶과 공동체의 경계
신명기 22장은 길을 잃은 짐승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남의 소가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이어서 본문은 새 둥지에서 어미 새를 놓아주는 일, 집을 지을 때 지붕에 난간을 설치하는 일, 밭과 옷에서 서로 다른 재료를 섞지 않는 일로 옮겨 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집니다. 남편이 아내를 모함하고, 성읍 장로들이 재판하며, 성적 관계와 폭력에 관한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음까지 선고됩니다.
이 모든 규정이 어째서 한 장에 모여 있을까요?
하나의 원칙으로 모든 조항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짐승을 돌려주는 의무와 서로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옷을 금지하는 이유가 같다고 단정할 수 없고, 새 둥지에 관한 배려와 성범죄에 대한 사형 규정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이 있습니다.
신명기 22장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삶에서 사소하다고 여길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고대 이스라엘의 법질서가 지닌 한계까지 정직하게 마주하도록 만듭니다.
못 본 체하지 말라 — 이웃의 손실을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일
첫 규정에서 눈여겨볼 것은 잃어버린 물건보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동족의 소나 양이나 염소가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지 마라. 반드시 그 동족에게 돌려주어라.」신명기 22:1 · 두루새김
주인이 가까이 살지 않거나 누구인지 모르면 짐승을 자기 집에 데려와야 합니다.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돌보아야 하고, 그가 오면 돌려주어야 합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뿐 아니라 나귀, 겉옷, 그 밖의 모든 분실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금지를 넘어섭니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때에도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만날 때까지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발견한 짐승을 자기 집에 데려오면 먹이고 돌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동족」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 표현은 우선 언약 공동체에 속한 동료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23:4–5에서는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었을 때에도 돌려주고 도와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면 이러한 책임이 단순한 친분이나 호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동족의 나귀나 소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지 마라. 반드시 그와 함께 일으켜 주어라.」신명기 22:4 · 두루새김
그리고 명령의 마지막에 「그와 함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상대방이 겪는 어려움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겪는 손실을 외면하지 않고, 회복을 위해 자기 몫의 수고를 감당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남자의 옷이나 장비와 여자의 옷 — 구별을 요구하는 규정의 의미와 한계
5절은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일임을 들어 금지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옷이나 장비를 몸에 걸쳐서는 안 되며,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누구나 역겨워하시기 때문이다.」신명기 22:5 · 두루새김
여자에게 금지된 것은 「남자의 옷이나 장비」입니다. 반면 남자에게 금지된 것은 구체적으로 「여자의 옷」입니다.
첫 표현의 클리는 옷만이 아니라 도구나 장비 같은 물품을 넓게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옷이나 장비」로 옮겨 그 범위를 드러냅니다. 따라서 두 금지를 단순히 남녀가 서로의 옷을 바꾸어 입지 말라는 문장으로 똑같이 다루면 원문의 차이가 사라집니다.
남녀의 사회적 구별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정 종교의식이나 사회적 행위에서 성별을 나타내는 옷과 물품을 바꾸는 일을 금지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규정을 특정 이방 종교의 풍습을 금지한 것이라고 확정하거나, 반대로 모든 시대의 옷과 외모를 판단하는 자세한 기준으로 넓혀 적용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역겨워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강한 표현은 이 명령이 단순한 예절 규정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본문에 없는 금지의 목적까지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구별에 관한 규정이 등장한 뒤, 모세는 다시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작은 생명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어미 새를 놓아주라 — 가져갈 수 있다는 것과 모두 가져가도 된다는 것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나무 위나 땅 위에 있는 새 둥지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어미는 반드시 놓아주어라. 새끼들은 가져도 된다. 그래야 너희가 잘되고 오래 살 것이다.」신명기 22:7 · 두루새김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미를 살려 두어 번식이 계속되도록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먹이를 얻는 과정에서도 생명을 끝없이 차지하지 않도록 절제하게 한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두 설명은 서로 함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규정을 현대적 의미의 생태 보전 정책과 같은 것으로 볼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관한 구체적인 원리를 제시하기보다, 사람이 무엇을 가져갈 수 있고 무엇을 남겨 두어야 하는지를 명령합니다.
신명기 5:16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도 잘되고 오래 살게 된다는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두 규정이 같은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오래 살고 잘되는 것에 관한 약속이 새 둥지 앞에서의 행동에도 연결된다는 사실은 인상적입니다.
사람이 어떤 생명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생명의 모든 것을 차지할 권리까지 뜻하지는 않습니다.
새끼를 가져가면서도 어미는 날아가도록 놓아주는 장면에는 이 규정이 요구하는 절제가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지붕에 난간을 만들라 —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지는 책임
8절에서는 새집을 짓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새집을 지을 때에는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라. 누군가 거기서 떨어져 죽어 너희 집에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생기는 일이 없게 하여라.」신명기 22:8 · 두루새김
고대 이스라엘에서 평평한 지붕은 사람이 올라가 활동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6에는 지붕 위에 널어 놓은 삼대가 등장하고, 사무엘하 11:2에서는 다윗이 왕궁 지붕 위를 거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고가 발생한 뒤 어떻게 배상할 것인지를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집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길가에서 쓰러진 짐승을 발견했다면 이미 일어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집을 지을 때에는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일어날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집주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라는 표현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안전시설을 소홀히 해서 사람이 죽게 되는 일을 단순한 불운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9:10에서는 죄 없는 사람의 피가 흘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도피 성읍이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여기에서는 개인의 집에 설치한 난간이 그 역할을 합니다.
신명기는 이러한 책임을 선의에만 맡겨 두지 않고 집을 짓는 사람의 의무로 규정합니다.
밭과 짐승과 옷 — 왜 서로 다른 것을 섞지 말라고 하는가
9–11절에는 세 가지 금지가 이어집니다.
포도밭에는 다른 작물의 씨를 섞어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소와 나귀를 함께 부려 밭을 갈아서는 안 됩니다. 양털과 아마실을 함께 섞어 만든 옷을 입어서도 안 됩니다.
서로 다른 재료나 종류를 결합하지 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각의 명령이 지닌 이유를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포도밭에 다른 작물의 씨를 섞어 뿌리지 마라. 그렇게 하면 뿌린 씨에서 난 것과 포도밭에서 거둔 것이 모두 거룩한 것으로 따로 구별된다.」신명기 22:9 · 두루새김
여기서는 수확물이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상태가 되는 결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수확물을 성소에 바쳐야 하는지, 거두어 빼앗아야 하는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섞어 뿌린 씨앗이 자라서 생물학적으로 해로운 열매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질서 안에서 허용되지 않은 결합이 어떤 법적·종교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있습니다.
소와 나귀를 함께 부려 밭을 갈지 말라는 10절에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짐승을 한 멍에에 묶을 때 한쪽에 더 큰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 자체는 동물의 고통을 그 이유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11절의 양털과 아마실을 섞는 일을 금지하는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재료를 섞으면 실제로 무엇이 잘못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9:19에도 서로 다른 종류를 섞지 말라는 규정들이 등장합니다. 이와 함께 읽으면 세 명령은 이스라엘의 일상생활에서 일정한 구별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규정들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2절은 금지에서 적극적인 명령으로 바뀝니다.
「너희 몸을 덮는 옷의 네 귀퉁이에 실을 꼬아 만든 술을 달아라.」신명기 22:12 · 두루새김
그 의미는 민수기 15:38–41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그곳에서는 옷의 술을 보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여 행하도록 합니다. 신명기 22장은 술의 목적을 따로 설명하지 않지만, 민수기를 통해 보면 몸에 걸치는 옷 자체가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특별한 예배 시간뿐 아니라 농사와 노동과 옷에서도 표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3절부터는 이러한 생활 규정과 성격이 다른 재판 사례들이 이어집니다. 이제 구별의 문제는 혼인 관계와 사람의 생명에까지 연결됩니다.
아내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린 남자 — 누구의 말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가
13절은 한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잠자리를 같이한 뒤 그 여자를 미워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건은 단순한 의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먼저 아내를 미워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아내를 비난할 구실을 내세우고 나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아내에게서 「처녀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가 제기한 의심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아내를 내쫓기 위해 꾸며 낸 비난인지가 재판의 중심 문제가 됩니다.
성문에서 펼쳐지는 옷
15절에서는 여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딸이 처녀였다는 증거를 가지고 성문으로 나아갑니다.
성문은 고대 이스라엘 성읍에서 공적인 재판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신명기 21:19에서도 장로들이 성문에서 가족 문제를 다룹니다.
여자의 부모는 이곳에서 남편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아버지는 남편이 딸을 미워하고 있으며, 비난할 구실을 내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장로들 앞에 옷을 펼쳐 보입니다.
처녀 여부를 핏자국이나 특정한 몸의 흔적만으로 믿을 만하게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고대 사회가 인정하던 증거와 혼인에 관한 생각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날에도 유효한 과학적 판정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거짓 비난에 대한 벌
장로들이 남편의 비난이 거짓이라고 판단하면 그에게 벌을 주고 은 백 셰켈의 벌금을 물립니다.
「또 은 백 셰켈을 벌금으로 물려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어야 한다. 그 남자가 이스라엘의 처녀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계속 그의 아내로 있어야 하며, 그는 평생 그 여자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신명기 22:19 · 두루새김
여기서 문제는 단지 부부 사이의 다툼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여자의 혼인 관계와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 법은 남편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거짓 비난을 했을 경우 공적으로 벌을 줍니다.
하지만 이 처벌을 아내에게 충분히 유익한 조치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시 혼인 관계에서 여자가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일을 막으려는 장치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내가 그 남편과 계속 살기를 원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여자의 보호가 혼인 관계의 유지와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판결
20–21절에서 사건이 뒤집힙니다.
남편의 고발이 사실이고, 여자가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여자는 아버지 집 문간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합니다. 판결이 내려지는 장소도 의미심장합니다. 부모가 딸을 변호하던 성문에서 이제 여자는 아버지 집 문간으로 옮겨집니다.
본문은 이 일을 이스라엘 가운데 저지른 수치스러운 행위로 규정하고, 「이렇게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라」라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이 규정은 고대 이스라엘이 혼인과 성적 관계를 개인의 사생활만이 아니라 가문과 공동체의 질서에 관련된 문제로 다루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설명이 형벌의 가혹함이나 남녀 사이의 권력 차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법에는 여성을 향한 거짓 고발을 처벌하려는 의도와, 여성의 성적 행위를 아버지와 남편 중심의 가족질서 안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 구조가 함께 나타납니다.
둘 중 하나만 보아서는 본문을 충분히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 증거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혼인 첫날밤의 피 묻은 천을 가리킨다는 전통적인 이해가 있지만, 본문은 단지 「처녀였다는 증거」와 그것을 보여 주는 옷에 관해 말합니다.
성읍과 들 — 누가 잘못했으며, 누가 구제받아야 하는가
22절은 남편이 있는 여자와 다른 남자가 잠자리를 같이한 경우 두 사람 모두 죽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 뒤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정해진 젊은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벌어진 두 가지 상황이 제시됩니다. 여기서는 장소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먼저 23–24절에서는 성읍 안에서 다른 남자가 결혼하기로 정해진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경우를 다룹니다. 본문은 여자가 도와 달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결혼하기로 정하는 것은 단순한 교제 약속이 아니라 이미 혼인에 준하는 법적 효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24절은 결혼하기로 정해진 여자를 「이웃의 아내」라고 부릅니다.
다음 사례에서는 마찬가지로 결혼하기로 정해진 여자가 들에서 남자에게 붙잡힙니다.
「그러나 어떤 남자가 들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정해진 젊은 여자를 만나, 힘으로 붙잡아 잠자리를 같이했다면, 그 남자만 죽여야 한다.」신명기 22:25 · 두루새김
성폭력을 살인에 비유하다
「그 여자에게는 아무 벌도 주지 마라. 그 여자는 사형을 받을 죄가 없다. 이 일은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신명기 22:26 · 두루새김
두 사건 모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공격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 사건에서 공격받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처럼, 강제로 성적 침해를 당한 여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죄의 증거가 아닙니다. 죄를 지은 사람과 그 행위의 피해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읍과 들을 구별하는가?
「그 남자가 그 여자를 만난 곳은 들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로 정해진 그 여자가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만,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신명기 22:27 · 두루새김
핵심은 여자가 소리쳤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녀를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반면 성읍에서는 누군가가 소리를 듣고 도울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장소와 도움을 받을 가능성을 기준으로 사건을 구별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늘날의 성폭력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소리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동의를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위협이나 공포 때문에 저항하지 못할 수 있고, 주변에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대 법문은 성읍과 들이라는 전형적인 상황을 통해 책임을 구별하지만, 현실의 모든 강제적 성관계를 판별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 기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단락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것은 특정 장소에 따른 기계적인 판정이 아니라, 강제로 침해당한 사람에게 가해자의 죄를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판단입니다.
붙잡힌 여자와 강요된 혼인 — 마지막 규정이 남기는 어려운 질문
마지막 사례는 아직 누구와도 결혼하기로 정해지지 않은 젊은 여자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아직 누구와도 결혼하기로 정해지지 않은 처녀인 젊은 여자를 만나, 붙잡아 잠자리를 같이한 일이 드러나면,」신명기 22:28 · 두루새김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셰켈을 주어야 합니다. 그 여자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하며, 남자는 평생 그 여자를 내보내지 못합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읽기
한 가지 읽기는 28–29절을 남자가 아직 결혼하기로 정해지지 않은 여자를 유혹하거나 붙잡아 성관계를 맺은 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규정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읽기는 이 구절 역시 여자를 붙잡아 성적으로 침해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 규정을 단순한 연애 사건으로 바꾸어 읽거나, 앞선 사건과의 차이가 전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모두 신중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비슷한 규정과 차이
출애굽기 22:16–17에는 아직 결혼하기로 정해지지 않은 처녀를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한 남자가 혼인과 관련된 금전적 책임을 지는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버지가 그 여자를 남자에게 주기를 거절할 수 있으며, 거절하더라도 남자에게는 금전적인 의무가 남습니다.
반면 신명기 22:28–29는 아버지의 거절 가능성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출애굽기의 조항을 참고하여 신명기에서도 혼인이 거절될 수 있었다고 이해할 여지는 있지만, 본문 자체가 그 선택권을 규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본문은 남자가 평생 여자를 내보내지 못하게 하여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고 버리는 일을 막으려는 법적 효과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원치 않는 혼인에 놓일 수 있다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습니다.
성적 침해를 당한 사람이 가해자와 혼인하도록 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 혼인 가능성과 가족 소속이 여자의 경제적·사회적 안전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배경은 이 법이 왜 이런 형식을 취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자의 의사와 자유가 충분히 존중받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상대방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과 상대방이 자기 삶을 결정할 자유를 보장하는 법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에서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로 정해진 여자를 남자가 「힘으로 붙잡아」 잠자리를 같이한 사건을 다룹니다. 여기서는 아직 누구와도 결혼하기로 정해지지 않은 여자를 「붙잡아」 잠자리를 같이한 사건입니다. 첫 번째 해석에서는 앞의 강제적인 성폭력 사건과 구별되는 동사의 선택, 그리고 남자가 혼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처벌 방식에 주목합니다. 다른 해석에서는 28절의 물리적으로 붙잡는 행위와 29절의 「욕보였으므로」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결론 — 지붕 위에 세워진 작은 난간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삶입니다. 신명기 22장은 그 물음에 대해 다양한 규정으로 답하며, 어떤 자리에서는 오늘의 독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적 판단도 남깁니다. 그 긴장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난간을 설치할 때에는 아무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집주인은 아직 아무런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언제 지붕에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지붕에 올라올 사람의 생명이 자기 집을 짓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은 짐승 앞에서 시작된 「못 본 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서도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지붕 위의 작은 난간은 그 질문에 조용히 대답합니다.
누군가 떨어진 뒤에야 책임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을 위해 난간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