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돌려주어야 할 것과 되찾아서는 안 되는 것

신명기 24장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명령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이혼한 아내에 관한 것입니다. 한 남자가 아내를 내보냈고,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다시 혼인 관계가 끝났습니다. 이때 첫 남편에게 내려지는 명령은 다시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난한 사람의 겉옷에 관한 것입니다. 누군가 돈을 빌려주고 겉옷을 담보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자 모세는 명령합니다. 그 겉옷을 반드시 돌려주십시오.

세 번째는 추수하는 농부에 관한 것입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두다가 곡식 한 묶음을 잊고 두고 왔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기억하더라도 되찾으려고 돌아가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세 규정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지만, 히브리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슈브(⁨שׁוּב⁩), 곧 돌아가거나 되돌린다는 뜻을 지닌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반복이 의도적인 문학적 구성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 규정을 함께 읽으면 신명기 24장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게 어떤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혼인 관계에서, 빚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자기 밭의 수확물을 거두는 과정에서 그 권리는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까요?

이 장의 법은 당시 사회의 권력 차이를 없애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의 혼인제도와 종의 존재, 땅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차이를 그대로 전제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 안에서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여러 경계를 세웁니다.

신명기 24장은 사람이 무엇을 소유하고 어떤 권한을 가졌는지만 묻지 않습니다. 그 권한을 행사한 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묻습니다.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1024장 본문 읽기 →

첫 남편은 다시 아내로 맞을 수 없다 — 이혼법에서 실제로 금지하는 것

신명기 24:1–4 본문 →

신명기 24장의 첫 네 절은 이혼에 관한 규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읽으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실을 발견합니다.

1절은 한 남자가 여자와 결혼했으나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더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혼 문서를 써서 아내에게 건네고 집에서 내보냅니다. 여자는 그 집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나 나중 남편도 여자를 내보내거나 죽어서 그 혼인 관계가 끝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한 뒤에야 4절에서 금지가 등장합니다.

「그 여자를 내보냈던 첫 남편은 그 여자가 부정해진 뒤에 다시 자기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역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몫으로 주시는 땅을 죄에 빠뜨리지 마라.」신명기 24:4 · 두루새김

여기서 결정적인 사실은 1–3절이 사건의 조건을 설명하고, 4절이 실제로 금지하는 행동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의 직접적인 목적은 어떤 이유로 이혼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혼과 재혼이 이루어진 경우 첫 남편이 그 여자를 다시 아내로 맞을 수 없다는 경계를 세웁니다.

「수치스러운 일」은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은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혼인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문제까지 이혼 사유로 인정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간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신명기 22:22는 간음 사건을 별도의 중대한 범죄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소한 불만이 정당한 이혼 사유였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 해석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혼 문서가 의미하는 것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 문서」를 써서 건넵니다. 본문은 문서의 구체적인 형식을 설명하지 않지만, 남편이 단순히 말로 아내를 거절하는 것과 달리 혼인 관계가 끝났음을 문서로 나타내는 절차를 전제합니다.

이 문서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2절에서 여자는 첫 남편의 집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됩니다.

본문은 그 두 번째 혼인 자체를 간음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마저 끝났을 때 첫 남편이 여자를 다시 아내로 맞는 것은 금지됩니다.

왜 첫 남편에게 돌아갈 수 없는가

두 번째 남자와의 혼인 관계가 첫 남편과의 재혼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태를 만들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법적·종교적 원리로 설명되는지는 본문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혼인이 불법이었다거나 그 여자가 간음죄를 지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규정되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4절은 그 여자에게 새로운 형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금지의 직접적인 대상은 다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려는 첫 남편입니다.

이 규정이 남편이 제멋대로 이혼과 재혼을 이용하는 행위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은 가능합니다. 한 번 내보낸 아내를 다른 혼인 관계가 끝난 후 마음대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을 만든 유일한 목적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설명하는 이유는 그 일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역겨운 일」이며, 하나님이 몫으로 주시는 땅을 죄에 빠뜨리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인에 관한 사적인 결정이 땅 전체의 거룩함과 연결됩니다.

신명기는 혼인을 두 사람의 사적인 계약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므로, 그 관계를 맺고 끊는 방식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혼인 관계를 끝내는 사람은 남편으로 나타나고, 여자의 의사나 선택권은 별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법은 고대 이스라엘의 남성 중심 혼인제도 안에서 작동합니다. 그 제도를 완전한 혼인 관계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과, 그 안에서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혼인 관계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봅니다.

이제 관심의 중심은 아내를 내보내는 남자가 아니라, 새로 맞은 아내를 기쁘게 해야 하는 남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신명기 24장의 이혼 규정을 직접 다루십니다(마태복음 19:3–9).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혼을 허용한 이유를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과 연결하시고, 창세기 2:24의 결혼 관계로 시선을 돌리십니다. 이는 신명기의 이혼 규정을 결혼의 이상적인 모습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존재하던 인간의 완고함 속에서 주어진 규정으로 이해하는 읽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규정을 신약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는지를 보여 주는, 후대의 성경 본문과의 연결입니다.

새로 맞은 아내를 기쁘게 하라 — 국가의 요구보다 먼저 보호받는 시간

신명기 24:5 본문 →

앞에서는 혼인 관계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인 관계가 시작된 직후를 다룹니다.

새로운 혼인 관계가 안정적으로 시작되도록 공적인 의무에 제한을 두는 규정입니다.

신명기 20:7에서는 약혼하고도 아직 아내를 맞이하지 못한 남자에게 전쟁터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가 전쟁에서 죽고 다른 사람이 그의 아내를 맞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24:5는 이미 결혼한 남자에게도 한 해의 시간을 보장합니다.

두 규정을 함께 보면 혼인이 단순히 개인이 결정한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관계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기쁘게 해야 하는가

「새로 결혼한 남자는 군대에 나가서는 안 되며, 그에게 다른 의무도 맡겨서는 안 된다. 한 해 동안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 자기 집에 머물며, 자기가 맞은 아내를 기쁘게 해야 한다.」신명기 24:5 · 두루새김

기뻐한다는 의미의 동사가 사역형으로 사용되어, 남편이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남편이 군대에 나갈 의무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집에서 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새로 맺은 관계를 돌보고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남자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의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가정을 위해 보호받아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맷돌을 담보로 잡지 말라 — 물건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가는 일

신명기 24:6–7 본문 →

5절에서는 새로 이루어진 가정이 보호받습니다. 6절에서는 가정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보호받습니다.

「곡식을 가는 맷돌 한 벌도, 윗돌 하나도 담보로 잡지 마라. 그것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신명기 24:6 · 두루새김

맷돌이 왜 생명인가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에서 맷돌은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손맷돌은 일반적으로 아랫돌과 윗돌을 사용하여 곡식을 갈았습니다. 하루하루 먹는 빵을 만들려면 곡식이 필요하고, 곡식을 가루로 만들려면 맷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맷돌을 빼앗는 것은 단순히 집에서 쓰는 물건 하나를 가져가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가정이 먹을 것을 마련하는 수단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맷돌 한 벌뿐 아니라 윗돌 하나만 담보로 잡는 일도 금지합니다. 맷돌의 일부만 빼앗아도 맷돌 전체를 쓰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 맷돌은 빚을 돌려받기 위한 담보물입니다. 그러나 빚진 사람의 입장에서 맷돌은 오늘도 가족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줄 수단입니다.

같은 물건이지만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물건은 법적으로 담보가 될 수 있는 재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이 규정은 돈을 빌려준 사람의 권리보다 빚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 자체를 빼앗는 범죄

7절은 물건을 빼앗는 문제에서 사람을 빼앗는 문제로 이동합니다.

「어떤 사람이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을 납치하여 종으로 부리고 판 일이 드러나면, 그 납치범을 죽여야 한다. 이렇게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라.」신명기 24:7 · 두루새김

출애굽기 21:16에도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행위에 대한 사형 규정이 있습니다. 신명기 24:7은 특별히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한 납치와 종으로 부리는 일, 판매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든 종 제도를 폐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명기 15:12–18은 히브리 종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이스라엘 사람을 강제로 납치하여 자신의 일을 시킬 사람이나 팔 수 있는 재산으로 삼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규정됩니다.

한쪽에서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 보호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의 자유와 몸이 보호받습니다.

미리암에게 일어난 일을 기억하라 — 정결에 관한 판단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신명기 24:8–9 본문 →

8절과 9절은 앞뒤의 경제적·사회적 규정 사이에서 갑자기 등장합니다.

「차라아트의 증상에 관해서는 주의하여라.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을 철저히 지켜 행하여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지켜라.」신명기 24:8 · 두루새김

차라아트는 어떤 병인가

히브리어 차라아트(⁨צָרַעַת⁩)는 레위기 13–14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는, 병으로 생긴 이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레위기의 규정을 보면 차라아트는 사람의 피부뿐 아니라 옷과 집에 나타나는 현상에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특정한 한센병이나 하나의 피부질환을 뜻한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레위기 13–14장에서 제사장은 병으로 생긴 이상을 살피고 정결한지 판정하며, 필요한 경우 따로 머물게 하고 정결 절차를 따르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4:8의 초점은 개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정결 규정을 따르는 데 있습니다.

미리암의 사건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미리암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여라.」신명기 24:9 · 두루새김

9절의 배경은 민수기 12장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비판하며 하나님께서 오직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모세가 다른 예언자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신실한 종임을 밝히십니다.

그 후 미리암에게 차라아트가 나타납니다(민수기 12:10).

모세는 그를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을 칠 일 동안 진영 밖에 머물게 한 뒤 다시 들어오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민수기 12:15는 이스라엘 백성이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행진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20은 그를 예언자로 부릅니다. 그런 미리암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고, 정해진 기간 동안 진영 밖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에게 정결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리암이 특정한 잘못을 범한 후 차라아트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모든 차라아트 환자가 어떤 죄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레위기 13–14장은 병으로 생긴 이상을 판정하고 정결 절차를 따르는 규정을 제시하지, 모든 환자의 개인적인 죄를 찾아내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또한 민수기 12장에서 중요한 것은 미리암이 진영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가 돌아오기까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빚진 사람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 — 채권자의 권한이 멈추는 문턱

신명기 24:10–13 본문 →

10절에서 모세는 다시 빚과 담보에 관한 문제로 돌아옵니다.

「이웃에게 무엇이든 빌려줄 때에는, 담보로 받을 물건을 가져오려고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지 마라.」신명기 24:10 · 두루새김
「너희는 밖에서 기다려라. 너희에게 빌린 사람이 담보로 맡길 물건을 밖으로 가져와야 한다.」신명기 24:11 · 두루새김

왜 문밖에 서 있어야 하는가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령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집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골라 가져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면 빚진 사람의 생활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행동이 제한됩니다. 담보로 맡길 물건을 밖으로 가져오는 행동도 빚진 사람에게 맡겨집니다.

빚을 졌다는 사실이 자기 집의 문턱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밤이 되면 누구에게 겉옷이 필요한가

12절은 담보로 물건을 맡긴 사람이 가난한 경우를 특별히 다룹니다.

「그 사람이 가난하면, 담보로 받은 물건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지 마라.」신명기 24:12 · 두루새김
「해가 질 때에는 반드시 그 물건을 돌려주어라. 그러면 그 사람이 돌려받은 겉옷을 덮고 자며 너희에게 복을 빌어 줄 것이다. 이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너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신명기 24:13 · 두루새김

고대에는 겉옷이 낮에 입는 옷이면서 밤에는 몸을 덮는 데 쓰일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2:26–27에도 같은 상황을 다루는 규정이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겉옷은 빚을 돌려받기 위한 보증입니다. 빚진 사람에게 겉옷은 밤의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하는 물건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담보물이 법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보다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도록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빚 자체를 없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빚을 돌려받을 권리를 전부 포기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날 밤에는 빚진 사람이 자기 겉옷을 덮고 잠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축복이 의로움이 되는 순간

빚진 사람의 겉옷을 돌려주는 행동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 특별히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행동입니다.

의로움은 큰 재판이나 엄숙한 종교의식에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추운 밤을 견디지 않도록 그의 겉옷을 돌려주는 행동에서도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는 돌려준다는 동사가 강조되어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의 「반드시 그 물건을 돌려주어라」에서도 드러나듯,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품삯을 그날 지급하라 — 해가 지기 전에 끝내야 할 또 하나의 일

신명기 24:14–15 본문 →

담보로 받은 물건에 관한 규정 다음에는 일꾼의 품삯에 관한 명령이 나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의 일꾼을 억누르지 마라. 동족이든 너희 땅의 성읍에서 함께 사는 외국인이든 마찬가지다.」신명기 24:14 · 두루새김

앞 장에서 동족과 외국인을 구별하여 이자에 관한 규정을 제시했다면, 여기서는 가난한 일꾼에 대한 보호가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까지 분명하게 확대됩니다. 모세는 품삯을 주는 일을 구체적으로 명령합니다.

「일한 대가인 품삯은 그날 주고, 주지 않은 채 해가 지게 하지 마라. 그는 가난해서 그 품삯을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가 너희를 두고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어 너희에게 죄가 생기는 일이 없게 하여라.」신명기 24:15 · 두루새김

같은 해가 두 번 등장한다

13절에서는 해가 질 때 담보로 받은 물건을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15절에서는 품삯을 주지 않은 채 해가 지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빚진 사람에게는 밤을 지낼 겉옷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일꾼에게는 자신의 하루 일에 대한 품삯이 필요합니다.

돈을 가진 사람은 하루나 이틀 늦게 주는 일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품삯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하루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품꾼

여기서 가난한 일꾼은 결코 침묵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을 두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23–25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고된 노동 때문에 신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신명기 24장에서는 이스라엘 자신이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과거 파라오가 행사했던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동족인 일꾼이든 함께 사는 외국인 일꾼이든, 그들이 억눌려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그 외침은 고용주에게 죄가 되는 문제가 됩니다.

이집트에서 억압당하던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 억압당하는 일꾼의 부르짖음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조금 더 깊이

「그 품삯을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표현은 문맥에서는 그 품삯에 간절히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아모스 8:4–6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곡식의 양을 속이고, 저울을 조작하며,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은이나 신발 한 켤레 값에 사들이는 행위가 고발됩니다. 신명기 24장이 담보와 품삯을 규정했다면, 아모스는 그러한 경제적 책임이 무너진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또한 예레미야 22:13은 이웃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행위를 고발합니다.

각자가 지은 죄 때문에 —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지 말라

신명기 24:16 본문 →

16절은 앞뒤의 경제적 규정 사이에서 짧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아버지를 자녀의 죄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되며, 자녀를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죽여서도 안 된다. 사형은 각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만 내려야 한다.」신명기 24:16 · 두루새김

가족은 왜 처벌에 함께 끌려들어 가는가

고대 사회에서 가족은 단지 함께 사는 개인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재산과 생업과 사회적 지위가 가족 단위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잘못이 가족 전체의 문제로 여겨지기 쉬웠습니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범죄자를 처벌할 때 그의 가족까지 함께 없앤다면, 그 처벌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넘어 가족 전체에 대한 보복으로 커집니다. 신명기 24:16은 그러한 확대를 제한합니다.

열왕기하 14:5–6에서 유다 왕 아마츠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언급합니다. 바로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의 죄 때문에 죽임당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개인의 책임이라는 말의 범위

그러나 이 구절을 모든 죄와 그 사회적 결과가 오직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 원리로 넓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의 행동이 가족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 구절이 직접 금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대신 사형에 처하는 일입니다.

에스겔 18:20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죽고,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아버지도 아들의 죄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이 더 넓은 도덕적 책임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신명기는 재판과 처형에서의 책임을 분명히 제한하고, 에스겔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지를 더 깊이 다룹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을 빌린 사람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듯이, 재판할 권한을 가진 사람도 범죄자의 가족에게 마음대로 형벌을 확대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도 정의의 경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재판을 그르치지 말라 — 권리가 약한 사람의 편에서

신명기 24:17–18 본문 →

「함께 사는 외국인이나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재판을 그르치지 마라. 남편을 잃은 여자의 옷을 담보로 잡지 마라.」신명기 24:17 · 두루새김

왜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인가

함께 사는 외국인은 이스라엘 땅에 살지만 그 땅의 이스라엘 가족과 같은 혈연관계나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당시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와 경제적 도움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재판관이 강한 사람의 주장만 받아들이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면 이들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의 재판을 그르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의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하라는 명령입니다.

남편을 잃은 여자의 옷은 왜 특별히 보호되는가

앞선 10–13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더라도 해가 질 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남편을 잃은 여자의 옷을 담보로 잡는 행위 자체를 금지합니다.

본문은 왜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더 엄격한 보호 규정을 적용하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여성이 경제적·사회적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상황을 고려한 규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절차를 적용하는 것만으로 정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는 더 강한 보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왜 이집트를 기억해야 하는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종이었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그곳에서 구해 내셨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신명기 24:18 · 두루새김

모세는 바로 그 기억을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재판, 남편을 잃은 여자의 담보 문제에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해 내셨다는 사실은 과거의 위대한 구원 사건으로만 남아서는 안 됩니다. 그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바꾸어야 합니다.

출애굽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이 억압받았다는 사실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해 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겪었던 억압만 기억하면 원망과 보복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 내신 하나님의 행동까지 기억하면, 이제 다른 사람이 억압당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이 생깁니다.

잊고 두고 온 곡식 한 묶음을 가지러 돌아가지 말라 — 기억해야 할 것과 잊은 채 남겨 둘 것

신명기 24:19–22 본문 →

신명기 24장의 마지막 규정들은 곡식을 거두는 밭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두다가 곡식 한 묶음을 잊고 두고 왔다면, 그것을 가지러 돌아가지 마라. 그것은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신명기 24:19 · 두루새김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누구에게 기회가 되는가

일반적으로 농부가 밭에 곡식 한 묶음을 두고 온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면 다시 가지러 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씨를 뿌리고 가꾸어 얻은 수확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자연스러운 행동을 금지합니다.

본문은 그것을 농부가 특별히 마음이 내킬 때 주는 선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단순한 개인적 선의에만 맡기지 않고, 수확의 과정 안에 포함시키는 방식입니다.

올리브와 포도도 마찬가지다

「올리브나무를 두드려 열매를 거둔 뒤에는 가지에 남은 열매를 다시 따지 마라. 남은 열매는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신명기 24:20 · 두루새김

올리브 열매는 나무를 두드려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거둘 수 있었습니다. 21절에서는 포도밭에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포도밭에서 포도를 거둔 뒤에는 남은 포도를 다시 따 모으지 마라. 남은 포도는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신명기 24:21 · 두루새김

행동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농부는 수확을 끝낼 때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자기 밭과 나무에 남은 것 가운데 일부가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몫으로 남습니다.

소유권을 없애지 않으면서 제한하는 법

이 규정은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없애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여전히 「당신의 밭」, 「당신의 올리브나무」, 「당신의 포도원」이라고 말합니다. 농부는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확물을 끝까지 거두어 갈 권한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신명기 23:25–26에서는 이웃의 포도밭이나 곡식밭에 들어간 사람이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그릇에 담거나 낫으로 수확하는 것은 금지했습니다. 신명기 24장에서는 수확하는 농부의 편에서 남겨 두어야 할 것을 규정합니다. 두 규정은 모두 농작물에 대한 소유권과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이 필요한 상황 사이에 경계를 세웁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과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남편을 잃은 여자는 앞선 17절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로 등장했습니다. 법정에서 이들의 권리를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 밭에서는 이들의 몫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정의는 재판에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먹을 것이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룻이 이 법의 의미를 보여 주다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유다 땅에 돌아온 뒤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습니다. 룻은 남편을 잃은 여자이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외국인입니다. 따라서 그는 신명기 24장에서 보호받는 사람들과 직접 연결됩니다.

룻기 2:7은 룻이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단순히 이삭을 줍도록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룻이 다른 밭으로 가지 않고 자기 밭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일꾼들에게 그를 괴롭히지 말라고 지시합니다(룻기 2:8–9). 나중에는 일꾼들이 묶어 놓은 곡식 사이에서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고, 일부러 이삭을 뽑아 남겨 두어도 된다고 합니다(룻기 2:15–16).

룻기의 보아스가 행한 모든 일이 신명기 24장의 직접적인 의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수확 규정이 실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룻기의 이야기는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밭에 남겨진 이삭은 누군가에게는 작은 수확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룻과 나오미에게는 그날의 먹을 것이 됩니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기억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신명기 24:22 · 두루새김

18절에서도 이집트의 종살이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셨다는 사실까지 강조되었습니다. 22절에서는 종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수확 규정 뒤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을 때, 그들은 자기 노동의 결과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자기 밭을 일구고 수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소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과거의 종살이를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기억 때문에 밭에 남겨야 할 것이 생깁니다.

19절에서는 잊고 두고 온 곡식 한 묶음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 22절에서는 이집트에서 종이었던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것은 기억해야 하고, 어떤 것은 되찾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끝까지 움켜쥐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 —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온 겉옷

신명기 24:1–22 본문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자유와 땅은, 이스라엘이 다른 사람을 제한 없이 지배할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기 때문에,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의 생명과 필요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은 때때로 자신에게 있는 것을 더 많이 내놓는 일이 아니라, 자기 손에 쥐고 있어도 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제때 돌려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신명기 24장에서 발견하는 보호의 원칙들을 현대의 모든 인권과 사회보장 제도가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했다는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돈을 빌렸습니다. 그는 가난합니다. 그래서 자기 겉옷을 담보로 내놓았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 옷을 가지고 있습니다. 빚을 돌려받기 전까지 담보로 받은 물건을 보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 갑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해가 질 때에는 반드시 그 물건을 돌려주어라.」

가난한 사람은 그 옷을 받아 몸을 덮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복을 빌어 줍니다. 모세는 이 행동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의로움이라고 부릅니다.

신명기 24장의 마지막에는 농부가 잊고 두고 온 곡식 한 묶음이 밭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그 곡식 묶음을 가지러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겉옷이 돌아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곡식 묶음이 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와 같이 살아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