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12장 · 유다를 향한 경고
분노가 물러간 자리의 노래
이사야 12장은 단 여섯 절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노래에는 앞선 장들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말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9:11, 9:16, 9:20, 10:4에서는 하나님의 분노가 물러가지 않았고 그분의 손이 여전히 뻗어 있다는 같은 선언이 네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심판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12장에서는 하나님이 그 분노를 거두셨다고 노래합니다.
이사야 12장의 기쁨은 심판을 모르는 사람의 기쁨이 아니라, 심판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알게 된 사람의 기쁨입니다.
이 장은 앞선 11장에서 약속된 회복에 대한 찬양의 응답으로 읽힙니다. 흩어진 백성이 돌아오고, 막혔던 길이 열리며, 하나님이 새로운 통치를 세우실 미래를 바라본 뒤, 이사야는 그날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지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고백합니다. 이어 여러 사람이 함께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긷습니다. 그다음에는 여러 민족을 향해 하나님의 일을 알리라고 외칩니다. 마지막에는 시온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불러 기뻐 노래하라고 합니다.
분노가 물러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날에 너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화를 내셨지만, 그 분노를 거두시고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이사야 12:1 · 두루새김
그날이 정확히 어느 해, 어느 날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바로 앞의 11장에서도 그날을 가리키는 표현이 새로운 왕의 통치와 흩어진 백성의 회복을 가리키며 반복되었습니다(11:10–11).
따라서 12장의 노래는 이미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는 역사적 보고가 아닙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바라보며, 그날 백성이 부르게 될 찬양을 미리 들려주는 예언의 노래입니다.
보통 감사의 노래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하나님의 분노를 먼저 인정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하셨기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미 그들의 교만과 우상숭배, 불의한 재판과 약자를 착취한 일을 고발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아무 이유 없이 폭발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이 저지른 악과 불의에 대한 반응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위로는 심판의 역사를 지우지 않는다
백성은 하나님의 분노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노를 영원히 계속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분노를 거두시고 다시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본문은 심판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그 심판 이후에 새로운 관계를 여실 것을 바라봅니다. 이사야 40:1에서 다시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선언도 같은 주제와 연결됩니다. 두 본문은 각각의 문맥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의 백성을 향한 마지막 행동은 아니라는 전망을 함께 보여 줍니다.
분노가 물러가는 것은 심판의 끝입니다.
위로가 찾아오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입니다.
이사야가 기다리는 구원은 단순히 더 이상 벌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고백
「참으로 하나님은 저의 구원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의지하며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야 여호와야훼께서 저의 힘과 노래이시며, 저의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이사야 12:2 · 두루새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와 「하나님은 저의 구원이십니다」
두 표현은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구원이십니다」라는 말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없으므로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구원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의지하며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신뢰의 근거가 환경에서 하나님 자신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8:12–13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함께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을 거룩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24에서도 시온에 사는 백성에게 앗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제는 백성이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 됩니다.
밖에서 주어진 말씀이 한 사람의 신뢰와 노래가 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출애굽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야 여호와야훼께서 저의 힘과 노래이시며」라고 고백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15:2의 노래와 거의 같습니다. 홍해를 건넌 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불렀던 노래에 같은 고백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군대에서 벗어나 바다를 건넌 뒤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사야 12장에서는 흩어진 백성이 돌아오고 새로운 구원이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과거의 구원이 미래의 구원을 이해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 연결은 바로 앞의 11:15–16과도 어울립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바다와 강에 길을 만드시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큰길을 여시는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그 구원을 경험할 백성이 부르는 노래는 과거 바다를 건넌 조상들이 불렀던 노래를 이어받습니다.
「야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
본문은 「야 여호와야훼」라는 두 형태를 나란히 둡니다. 야는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의 짧은 형태이며, 시편의 찬양 표현에도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할렐루야」는 야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이름이 노래 안에서 연이어 나타난 것입니다.
힘은 위기를 견디게 하는 능력이고, 노래는 기쁨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둘의 근원이 모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견디게 하시는 힘이시면서, 구원받은 사람이 기뻐 노래할 이유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넘어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118:14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원문에서는 나의 힘과 노래는 야(יָהּ)이며, 그가 나의 구원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과거 구원의 말을 통해 현재의 신뢰를 고백하고 미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구원을 설명하는 말도 이러한 출애굽과 회복의 전통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사야 12장은 특정한 신약 사건을 직접 예언하는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하는 백성의 찬양으로 읽는 것이 먼저입니다.
구원을 경험한다는 것은 샘에서 물을 긷는 것과 같다
너희는 구원의 샘들에서 기뻐하며 물을 길어 올릴 것입니다.이사야 12:3 · 두루새김
앞선 1–2절은 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너희」라는 여러 사람의 청중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고백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경험하는 기쁨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왜 하필 물을 긷는 장면일까
고대 팔레스타인의 생활에서 물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었습니다.
물은 마시는 데 필요했고, 음식을 준비하고 가축을 돌보는 일에도 필요했습니다. 특히 건조한 기후에서는 물을 꾸준히 얻을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긷는 일은 대단한 영웅적 행동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노동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성대한 승전식이나 왕의 즉위식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긷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한순간의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다음 날에도 필요하고, 그다음 날에도 필요합니다. 샘이 있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할 물이 공급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한 번 경험하고 끝나는 사건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도록 해 주는 풍성한 공급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의 샘이 아니라 「샘들」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샘이 풍성한 공급을 느끼게 합니다.
물을 긷는 일이 기쁨이 되는 순간
물 긷기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 일을 어떤 처지에서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이 부족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샘을 찾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물 긷기는 고된 노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목말랐던 사람이 마침내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한다면, 물을 긷는 일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이 없어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이제 구원의 샘에서 기뻐하며 물을 긷습니다.
예레미야 2:13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살아 있는 물의 근원으로 부르시며, 백성이 그분을 버리고 물을 담아 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고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55:1에서도 목마른 사람들이 물로 나아오라는 초대가 등장합니다. 이 본문들이 모두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지닙니다.
구원의 노래는 입술에서 시작하지만, 그 구원이 약속하는 삶은 사람들이 매일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는 일상까지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곧 자기들 안에만 머물지 않게 됩니다.
「저의 구원」에서 「여러 백성에게」로
그날에 너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이름을 불러라.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여러 백성에게 알려라. 그분의 이름이 드높다는 것을 전하여라.」이사야 12:4 · 두루새김
4절은 1절과 같이 「그날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1절에서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4절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말을 건넵니다.
첫 노래에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고백했습니다. 두 번째 노래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여러 백성에게」 알리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의 이름을 불러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며 그분을 인정하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창세기 4:26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2:8에서는 아브람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사야 12장의 문맥에서도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인정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여러 백성에게 알려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예배와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찬양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행하신 일들을 알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 일을 바탕으로 그분이 어떤 분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온 땅에 알려진 일을 다시 알리라고 하는 이유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며 노래하여라. 그분께서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 일이 온 땅에 알려져 있다.」이사야 12:5 · 두루새김
4절은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여러 민족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5절은 그 일이 얼마나 넓은 범위에서 알려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한 공동체 안에 숨겨져 있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사야 11:10에서는 여러 민족이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통치자를 찾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12장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여러 민족에게 알려집니다. 그러므로 민족들의 참여는 단지 다윗 왕조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나라를 세우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알게 되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마지막 절에서 다시 시선을 좁힙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는 명령형이 이어진 뒤, 마지막에 어떤 일이 알려져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수동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앞선 명령문의 흐름에 맞추어 모두 알려라는 명령으로 바꾸기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를 드러내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시온이 기뻐해야 하는 마지막 이유
「시온에 사는 이들아, 소리 높여 외치고 기뻐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다.」이사야 12:6 · 두루새김
이사야 1장에서는 시온이 불의와 심판을 경험하는 도시로 등장했습니다. 1:21에서는 한때 신실하던 도시가 불의로 가득해졌다고 탄식합니다. 그런데 12장 마지막에서는 시온이 기뻐 노래하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관계가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기쁨의 이유가 된다
이사야서에서 이 호칭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함께 드러냅니다. 그런데 앞선 장들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종종 두려움과 심판의 이유였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 예언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습니다. 이사야 10:17에서는 이스라엘의 빛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 불과 불꽃이 되어 앗시리아의 교만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 거룩하신 분이 시온의 기쁨의 이유가 되십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분이 아니십니다. 동일한 거룩하신 하나님이 불의를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는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디 먼 곳에서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시온이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시온 가운데 계시며 위대하시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위로의 가장 깊은 근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다시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왜 마지막에는 큰 소리로 노래하라고 할까
처음에는 한 사람이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시온 전체가 소리 높여 환호하도록 초대받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고 널리 알릴 만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 명령이 슬픔이나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밝은 감정을 내보이라고 강요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노래는 하나님이 분노를 거두시고 위로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주어집니다. 기쁨의 근거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입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시온에 사는 여러 사람을 부르는 말로 옮겼지만, 원문의 호칭과 명령은 여성 단수형입니다. 원문에서 이사야는 시온을 하나의 인격처럼 부릅니다.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공동체이지만, 마치 한 여성을 향해 말하듯 직접 부르는 것입니다.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긷는 사람들
한 사람의 감사가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온 땅을 향한 찬양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12장의 찬양은 하나님이 얼마나 멀리까지 위대한 일을 행하실 수 있는지를 노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그분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로 돌아옵니다.
다만 그날의 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샘가에 모여 있습니다. 한때 심판과 두려움 속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물을 길으며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물러간 자리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움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물을 긷고,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