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39장

이 장의 자리 · 34–45장 · 무너지는 예루살렘

무너진 성읍에서 누가 살아남는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 왕은 눈을 잃고, 감옥에 갇혀 있던 예언자는 자유를 얻으며, 외국에서 온 왕궁 관리에게는 생명이 약속됩니다.

이 세 사람의 운명을 나란히 놓으면 뜻밖의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성읍이 무너지는 날, 하나님은 누구를 지키십니까?

예레미야 39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록하지만,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오랜 포위가 단 두 절로 지나가고, 성벽이 뚫린 뒤에는 시선이 몇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639장 본문 읽기 →

성읍이 뚫리고, 다른 사람들이 문에 앉다

예레미야 39:1–3 본문 →

39장은 날짜로 시작합니다.

시드기야 왕이 다스린 지 아홉째 해 열째 달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열한째 해 넷째 달 9일에 성벽이 뚫렸습니다. 포위가 시작된 때부터 성벽이 뚫린 때까지 약 18개월이 흐른 셈입니다.

그 긴 시간이 본문에서는 두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은 다른 본문에 남아 있습니다. 열왕기하 25:3은 마지막에 이르러 성읍의 굶주림이 극심해졌고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예레미야 38:9에서도 에벳멜렉은 빵이 떨어진 성읍에서 예레미야가 굶어 죽을 것을 염려했습니다.

바벨론 왕의 모든 관리가 들어와 가운데 문에 자리 잡았습니다. 네르갈사레셀, 삼갈느보, 내시들의 우두머리 살스김, 랍마그 네르갈사레셀을 비롯한 관리들이었습니다.예레미야 39:3 · 두루새김

성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출입구 이상의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판결하고, 공적인 거래와 행정이 이루어지며, 지도자들이 권위를 행사하는 장소였습니다. 룻기 4:1–11에서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법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본문은 그들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문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는 행동 자체가 도시의 권력이 바뀌었음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권한은 더 이상 유다 왕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성벽의 붕괴이면서 동시에 그 성읍을 다스리던 권력의 종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장면을 보고 시드기야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가운데 문」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3절에 나오는 바벨론 관리들의 이름과 관직을 어디에서 구분해야 하는지도 해석이 갈립니다. 두루새김이 「내시들의 우두머리」로 풀어 쓴 원문의 「랍사리스」(⁨רַב־סָרִיס⁩)와, 그대로 옮긴 「랍마그」(⁨רַב־מָג⁩)는 바벨론의 고위 관직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네르갈사레셀이라는 이름이 두 번 나오는 문제까지 모든 세부 사항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 — 시드기야의 도주와 실명

예레미야 39:4–7 본문 →

시드기야와 군인들은 바벨론 관리들이 들어온 것을 보고 밤에 달아납니다.

그들이 달아난 길은 비교적 구체적입니다. 왕의 정원 길을 따라 두 성벽 사이의 문으로 빠져나가고, 아라바로 향하는 길을 택합니다. 아라바는 요단 계곡과 사해 일대에 이어지는 낮은 지대를 가리키는 지리적 표현입니다.

하지만 여리고 평야에서 붙잡힙니다.

예레미야 38:17–18에서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 왕의 관리들에게 항복하면 왕이 살아남고 성읍도 불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으면 성읍이 불타고 왕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왕이 망설인 이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미 바벨론에 항복한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넘겨져 모욕당할까 두려워했습니다(38:19).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두려워했고, 자기 백성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그는 결단하지 못한 채 포위가 끝나는 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39장에서 왕이 도망치는 모습은 그 망설임의 결말입니다.

그의 도주는 실패하고, 칼데아 군대는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느부갓네살에게로 데려갑니다. 리블라는 예루살렘 북쪽 시리아 지역에 있는 곳으로, 당시 바벨론 왕이 군사와 정치에 관한 일을 처리하던 중심지였습니다. 유다의 왕이 자기 나라를 떠나 정복자의 심판을 받으러 끌려간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리블라에서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유다의 모든 귀족도 죽였습니다.예레미야 39:6 · 두루새김
그리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멀게 하고, 바벨론으로 데려가려고 청동 족쇄로 묶었습니다.예레미야 39:7 · 두루새김

본문은 그것이 왕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광경이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임당한 다음 눈이 멀었다는 순서는, 그 장면이 얼마나 잔혹한 처벌이었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당연히 벌을 받았다」는 교훈으로 줄여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아들들의 죽음과 두 눈을 멀게 하는 참혹한 폭력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폭력을 실행한 사람은 바벨론 왕입니다.

예레미야서는 바벨론을 여호와야훼의 심판을 수행하는 세력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이 바벨론이 저지른 모든 잔혹한 행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50–51장은 바벨론 자신도 심판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더 깊은 비극은 왕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권력이 자신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가 지키려 했던 왕권은 사라지고, 바벨론 왕의 족쇄만 남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34:3에서 여호와야훼는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눈을 마주 보고 직접 말하게 될 것이며, 바벨론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한편 에스겔 12:13에는 예루살렘 통치자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그 땅을 보지는 못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말씀이 39장의 사건에서 함께 이해됩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 앞에 끌려갔고, 눈이 먼 채 바벨론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땅이 주어지다

예레미야 39:8–10 본문 →

시드기야의 운명을 전한 뒤, 이야기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칼데아 사람들은 왕궁과 백성의 집들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뭅니다. 39장이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이제 왕궁도, 집도, 성벽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나뉩니다.

느부사라단은 남아 있던 사람들과 항복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경비대장 느부사라단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유다 땅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날 그는 그들에게 포도밭과 밭을 주었습니다.예레미야 39:10 · 두루새김

왕족과 귀족들은 죽거나 끌려가고, 그동안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일부 가난한 사람들이 포도밭과 밭을 받습니다. 이는 사회적 처지가 뚜렷하게 뒤바뀌는 일입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정의로운 토지 개혁이나 완전한 회복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땅을 나누어 준 사람은 바벨론의 경비대장이며, 그 결정은 정복한 땅을 관리하고 농사를 계속 짓게 하려는 제국의 정책과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가 어떤 이유로 땅을 나누어 주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땅에 남는 것이 곧 안전하거나 넉넉한 삶을 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예레미야 40–43장에서 보듯이 유다 땅에는 또 다른 정치적 혼란과 폭력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의 국가적 멸망이 그 땅에 살아갈 모든 사람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시의 기존 질서는 무너졌지만, 그곳에 남아 포도밭을 돌보고 밭을 일굴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레미야가 앞서 선포한 심판과 미래의 회복 사이를 생각하게 하는 긴장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2:15에서 여호와야훼는 심판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다시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밭을 사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포로들이 돌아오지도 않았고, 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습니다.

심판 이후의 역사는 폐허 위에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계속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39장은 멸망의 여러 사건을 짧게 모아 전합니다. 예레미야 52:12–14는 성벽이 뚫린 넷째 달의 사건과, 다섯째 달에 이루어진 성전 및 성읍의 방화를 구별하여 기록합니다. 따라서 39:8에서 불을 지른 일을 성벽이 뚫린 바로 그날의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전이 불탔다는 사실은 예레미야 52:13과 열왕기하 25:9에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왕을 구하지 못한 성읍에서 예언자가 풀려나다

예레미야 39:11–14 본문 →

이제 본문은 예레미야의 운명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를 데려다가 잘 돌보아라. 그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말고,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해 주어라.」예레미야 39:12 · 두루새김

바로 앞에서는 유다 왕이 바벨론 왕에게 잔혹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같은 바벨론 왕이 예레미야를 특별히 보호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에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한 것은 바벨론을 사랑하거나 바벨론 제국의 통치를 이상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심판을 선언하셨기에, 그 심판 앞에서 백성이 살아남을 길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유다 왕이 원하는 정치적 충성과 충돌했고, 그를 감금과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무너진 후에는 사정이 뒤바뀝니다.

그를 가두어 두었던 유다 왕의 권력은 사라지고, 적국의 군대가 그를 풀어 줍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경비대 뜰에서 데려와,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랴에게 맡겨 집으로 데리고 나가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 가운데 머물렀습니다.예레미야 39:14 · 두루새김

예레미야 26:24에 따르면, 예레미야가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아히감이 그를 보호했습니다. 그 아들의 보호 아래 예레미야가 머물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보호하는 일이 한 개인의 한 번뿐인 행동에 그치지 않고, 이 집안과 계속 연결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예레미야의 「그 집」(합바이트)이 그달랴의 집인지 예레미야 자신의 집인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했던 예언자는 그 멸망의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해야 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는 다음 장과의 연결에서 살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40:1–6은 예레미야가 라마에서 끌려갈 사람들 가운데 쇠사슬에 묶여 있다가 느부사라단에게 풀려나는 장면을 전합니다. 39:14는 경비대 뜰에서 나와 그달랴에게 맡겨진 것으로 서술합니다. 두 기록을 하나의 자세한 시간 순서로 재구성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에벳멜렉에게 주어진 약속 — 심판의 날에 기억된 한 사람

예레미야 39:15–18 본문 →

예레미야가 풀려난 장면 뒤에는 시간이 갑자기 거꾸로 흐릅니다.

15절은 「이보다 앞서」라고 시작하며, 예레미야가 아직 경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야훼께로부터 말씀이 왔다고 전합니다. 이야기는 함락 이전으로 돌아가, 그때 주어졌던 말씀을 마지막에 배치합니다.

39장은 성벽이 무너지고 왕이 사로잡혔으며 예언자가 풀려났다는 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은 예레미야조차 아닙니다.

쿠시 사람 에벳멜렉입니다.

에벳멜렉은 왕궁에서 일하던 쿠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찾아가, 그를 그렇게 다룬 것이 악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허락을 받아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그때의 행동은 세심했습니다. 밧줄을 곧바로 예레미야의 몸에 걸지 않고 낡은 천과 옷을 가져와 겨드랑이에 받치게 했습니다. 예언자를 끌어올리면서 몸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왕궁 관리로서 그는 관리들의 결정에 반대했고, 죽음의 위험에 놓인 사람을 실제로 구해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쿠시 사람 에벳멜렉에게 가서 이렇게 전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내가 이 성읍에 관해 한 경고를 이루겠다. 좋은 일이 아니라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날 그 일이 네 눈앞에서 일어날 것이다.』」예레미야 39:16 · 두루새김
「『그러나 그날 내가 너를 구해 내겠다. 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너는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않을 것이다.』」예레미야 39:17 · 두루새김

바로 앞 절의 「그날」은 재앙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17절의 「그날」도 같은 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이 오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그날에 에벳멜렉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의 용기는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를 구했던 그는 이 약속을 받을 때 두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는 그 두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목숨을 전리품처럼 건진다는 말의 의미

마지막 절에서 약속은 더욱 강해집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구해 낼 것이니, 너는 칼에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처럼 네 목숨을 건져 살아남을 것이다. 네가 나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예레미야 39:18 · 두루새김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은 적에게서 빼앗은 물건과 재산을 전리품으로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에벳멜렉이 얻을 것은 재산이나 영토가 아닙니다.

자기 목숨입니다.

예레미야 21:9와 38:2에서는 성읍에서 나와 바벨론에 항복하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전리품으로 얻으리라고 선포되었습니다. 45:5에서도 바룩에게 그의 목숨이 전리품처럼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됩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던 자리에서는, 누구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약속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네가 나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앞선 38장은 에벳멜렉이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죽어 가는 예언자를 구했습니다. 39장은 그 행동의 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 밝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를 의지했습니다.

그의 구출을 선한 일을 했으니 당연히 받는 보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밝히시는 것은 에벳멜렉의 신뢰입니다. 38장에서 드러난 용기와 배려는 그 신뢰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의 가장 뜻밖의 대조

시드기야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에벳멜렉은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옳지 않은 일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왕은 포로가 되고, 에벳멜렉은 구출을 약속받습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드기야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밖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에벳멜렉을 여호와야훼의 돌보심에서 제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폐기하시고 다른 민족으로 옮겨 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에게도 책임을 물으시고, 이스라엘 바깥에서 온 사람이 자신을 의지할 때도 그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 라합은 여리고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했고, 성읍이 무너지는 날 가족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여호수아 6:22–25). 라합과 에벳멜렉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이며,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직접 바탕으로 삼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뚜렷한 주제를 공유합니다.

어느 성읍에 속해 있는지와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제는 이사야 56:3–7에서도 이어집니다. 그곳에서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이방인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예레미야 39장은 하나님에 관한 이 가르침을 추상적인 원리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쿠시 출신 왕궁 관리 한 사람의 이름과 운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에벳멜렉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는 두 가지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예레미야를 구하면서 맞서야 했던 유다의 관리들입니다. 38장에서 그는 그들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바벨론 군대입니다. 16–17절이 성읍에 닥칠 재앙의 날을 말하고 있으므로, 전쟁 중에 자신을 해칠 사람들을 두려워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두려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무너진 성읍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39:1–18 본문 →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이 현실이 되는 자리에서도, 그분을 의지하는 한 사람을 향한 약속을 잃지 않습니다. 그분은 성읍 전체에 대해 선언하신 심판을 잊지 않으시고, 동시에 한 사람에게 주신 약속도 잊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39장은 하나님의 보호를 위험이 전혀 없는 삶과 같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험을 분명히 인정하면서,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줍니다.

성벽은 뚫렸고, 왕궁은 불탔습니다. 왕은 두 눈을 잃은 채 청동 족쇄에 묶였습니다. 예언자는 경비대 뜰에서 나와 백성 가운데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끝에서, 여호와야훼는 성읍을 구한 장군도,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도 아닌 쿠시 사람 에벳멜렉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처럼 네 목숨을 건져 살아남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그는 승리의 전리품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너진 성읍에서 자기 목숨을 건져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왕좌도, 성벽도, 군대도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반드시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생명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