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7–26장 · 거룩한 삶의 규정
하나님이 구별하신 백성의 책임
레위기 20장은 매우 엄중한 형벌 규정으로 시작합니다. 자기 자손을 몰렉에게 넘겨주는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간음과 여러 종류의 금지된 성관계에도 죽음이나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형벌이 선언됩니다.
이 장을 처음 읽으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가혹한 형벌이 반복됩니까? 바로 앞의 19장에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여기서는 왜 그토록 엄중하게 심판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문제 삼으시는 것은 금지된 행위를 저지른 사람만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못 본 척합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그 사람에게 맞서십니다.
사람들이 외면한 일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장은 어떤 행위에 어떤 형벌을 내리는지 알려 주는 법률 조항의 모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가 무엇을 용납해서는 안 되며,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고도 못 본 척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구별하셨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그 사이에 엄중한 형벌 규정들이 놓여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과 눈감아 준 사람 —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다
2절은 자기 자손을 몰렉에게 넘겨주는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사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이것은 이 행위가 단순히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에게만 금지된 종교적 관습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서 누구도 행해서는 안 되는 일로 규정된다는 뜻입니다.
「『나도 그 사람에게 맞서서 그를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 그가 자기 자손을 몰렉에게 넘겨주어 내 성소를 부정하게 하고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레위기 20:3 · 두루새김
자녀를 몰렉에게 넘겨주는 일이 반드시 성소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행위는 여호와야훼의 성소를 부정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으로 규정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녀를 다른 숭배 대상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그런 행위는 단지 한 가족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훼손하는 일이 됩니다.
그다음 4절에서는 공동체의 책임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 자손을 몰렉에게 넘겨주는데도 그 땅의 백성이 못 본 척하여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레위기 20:4 · 두루새김
4절의 표현에는 적극적으로 눈을 감고 외면하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어떤 사건을 알지 못했거나 적법한 판단이 불가능했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책임을 묻는 말씀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 사람과 그의 친족들에게 맞서겠다. 그 사람과, 그를 따라 나를 저버리고 몰렉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레위기 20:5 · 두루새김
여기서 그 사람의 친족들이 언급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친족이 자동으로 같은 죄의 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를 따라 몰렉을 섬기는 사람들을 특별히 명시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악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것뿐 아니라, 그 행위를 공동체의 정상적인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오늘날의 사적 보복이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령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2절은 고대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주어진 형벌 규정이며, 현대의 개인에게 타인을 처벌할 권한을 부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책임을 묻는 일에는 사실의 확인과 공정한 판단, 피해자의 보호와 정당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현대 법적 원칙들이 레위기 20장에 모두 분명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대의 형벌 규정을 오늘에 가져올 때에는 적어도 본문이 현대의 개인에게 폭력을 허가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구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몰렉이라는 말이 특정한 신의 이름인지, 종교 의식과 관련된 명칭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레위기 20장 자체는 자손을 넘겨주는 의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치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레미야 32:35와 열왕기하 23:10은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일을 말하며, 후자는 불도 명시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이해할 때 자녀를 다른 숭배 대상에게 넘겨주는 심각한 종교 의식이라는 배경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20:2–5만으로 그 의식의 모든 세부 사항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못 본 척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엘렘 야알리무(עָלַם)로, 같은 어근의 부정사와 동사를 결합하여 행동을 강조합니다. 원문에서는 그 뒤에 「그들의 눈을」이라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문자적으로는 그들이 그 사람에게서 자신의 눈을 철저히 감추는 모습입니다. 에스겔 20:30–31에서도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르고 자녀를 제물로 넘기는 행위가 다시 문제로 등장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여호와야훼는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하신다
6절에서는 몰렉을 따르는 사람들에 이어 죽은 이의 영을 불러 묻는 사람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을 저버리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을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에서는 이 일을 음행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일반적인 성관계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숭배 대상을 따르는 일을 불충실한 관계에 비유한 것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나를 저버리고 그들을 따르는」이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몰렉에게 자녀를 넘겨주는 행위와 죽은 이의 영을 불러 묻는 사람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행위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여호와야훼 이외의 대상에게 자신을 맡긴다는 점에서 함께 놓입니다.
그런데 곧이어 7–8절에서는 명령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거룩하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이기 때문이다.』」레위기 20:7 · 두루새김
「『내 규정을 지키고 실천하여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20:8 · 두루새김
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일과 그 백성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일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하나님의 규정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하게 살아서 여호와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자기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9절부터는 다양한 행위가 나열되지만, 그 규정들은 모두 7–8절의 선언 아래 놓입니다. 이제 본문은 가족과 혼인, 성적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일이 왜 죽음의 형벌과 연결되는가?
9절은 가족관계에 관한 규정의 첫머리에 놓입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사람은 누구든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했다.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레위기 20:9 · 두루새김
바로 앞의 레위기 19:3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출애굽기 21:17에도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레위기 20:9는 단순히 부모와 의견이 다르거나 부모에게 불편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하라는 규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직접 다루는 것은 부모를 저주하는 행위이며, 고대 이스라엘의 법적 질서 안에서 그것을 엄중하게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왜 이런 형벌을 정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사회적 배경을 이 절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 안의 권위와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보았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형벌이 행위의 심각성에 걸맞은지를 현대의 법적 감각으로 그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는 표현은 뒤의 11–13절과 16절에서도 반복됩니다. 법률적 문맥에서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레위기 17장에서 피는 생명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형벌과 죽음의 책임을 설명하는 데 피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같은 「피」라는 말이라도 두 본문의 쓰임은 구별해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고대의 사형 규정이 오늘날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주어졌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10절부터는 혼인과 성적 관계를 침범하는 행위들에 관한 형벌이 이어집니다.
금지된 행위들의 형벌은 모두 같은가?
10–16절에는 일곱 가지 상황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일, 아버지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 며느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 한 여자와 그 어머니를 함께 아내로 삼는 일, 남자나 여자가 짐승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이 규정됩니다. 모든 행위에는 죽음의 형벌이 선언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 덧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행위에 대한 특별한 평가가 등장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불에 태우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간음은 두 사람의 관계만을 침범하는 일이 아니다
10절은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일을 다룹니다.
「『어떤 남자가 남의 아내와 간음하면, 곧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면, 간음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레위기 20:10 · 두루새김
여기서는 「남의 아내」라는 표현을 다시 「자기 이웃의 아내」라고 설명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사건은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성적 결합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를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다만 이 구절이 모든 성폭력 상황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언급한다고 해서 강요나 폭력이 있었던 경우에도 두 사람이 동일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2:25–27은 강제로 성관계가 이루어진 경우 피해 여성에게 죄가 없다는 구별을 명시합니다.
아버지의 아내와 며느리
11절에서는 아버지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을 다룹니다. 이때 본문은 그 행위를 「아버지의 잠자리를 침범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성관계의 상대방만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맺고 있는 혼인 관계가 침범되었다는 사실까지 포함합니다.
12절에서는 며느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그 행위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이라고 평가합니다.
아버지의 아내는 단순히 한 남자가 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 며느리 역시 단순히 한 남자가 자기 뜻대로 결합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특정한 가족관계 안에 있습니다.
본문은 그 관계가 성적 행위에 의해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13절의 금지와 해석의 범위
13절에서는 남자가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듯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행위에 대해 죽음의 형벌을 선언합니다. 이 구절은 18:22의 금지에 형벌을 덧붙인 규정입니다.
이 구절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형벌이 선언된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현대적 의미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또한 특정한 강제성이나 착취 상황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남성 간 성행위를 일반적으로 금지한다고 읽는 해석과, 고대의 특정한 성적 관행과 지위 관계를 배경으로 이해하려는 해석을 구별해야 합니다. 전자는 구절 자체에 나이나 신분, 특정 종교 의식과 같은 제한 조건이 명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합니다. 후자는 고대 사회의 성별 역할과 성관계의 사회적 의미를 고려합니다.
본문은 현대의 모든 관계 유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이 규정의 고대적 의미와 현대의 윤리·법적 적용을 동일한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의 형벌 규정을 현대의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성소수자에게 폭력이나 처벌을 가할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불에 태우라는 명령
14절은 한 여자와 그 어머니를 함께 아내로 삼는 일을 다룹니다. 그 행위를 「악한 짓」이라고 부르며, 그 남자와 그 여자들을 불에 태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처형 방식인지, 다른 방식으로 죽인 뒤 시신을 불태우는 절차인지는 이 구절 자체가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처형 방법을 확정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본문은 어떤 상황에서 두 여자가 이 결합에 놓였는지, 각각 어떤 의사와 책임을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오늘날의 다양한 가족관계나 피해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짐승과의 성교
15–16절은 사람이 짐승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일을 금지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경우를 각각 규정하며, 사람뿐 아니라 그 짐승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짐승을 죽이는 이유가 짐승에게 도덕적인 죄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행위에 연루된 짐승도 제거하도록 명령할 뿐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는 형벌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모든 행위에 죽음의 형벌이 선언되지 않습니다.
「끊어질 것이다」와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와 「자식이 없을 것이다」
17절부터는 앞 단락과 다른 형벌 표현들이 이어집니다.
누나나 여동생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들에게는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는 선언이 주어집니다. 월경 중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경우에도 끊어질 것이라는 선언이 주어집니다. 이모나 고모와 잠자리를 같이한 경우에는 자기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큰어머니나 작은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들은 자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하며, 형이나 남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차이를 모두 같은 죽음의 형벌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형벌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제외되는 것, 죽음의 심판, 하나님이 내리시는 제재 등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본문은 각각의 경우에 구체적인 집행 절차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밝힌 사형 명령과 끊어질 것이라는 선언을 자동으로 같은 뜻으로 볼 수 없습니다.
특히 17절에서는 「자기 백성이 보는 앞에서」라는 표현이 덧붙습니다. 이는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처벌받는지까지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가 흐르는 곳」을 드러냈다는 말
「『어떤 남자가 월경 중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면, 남자는 그 여자의 피가 흐르는 곳을 드러낸 것이고, 여자도 자기 피가 흐르는 곳을 드러낸 것이다. 두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레위기 20:18 · 두루새김
여기서는 월경혈이 나오는 몸의 근원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금지된 성관계를 몸의 부정함과 연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월경 자체를 도덕적인 죄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금지되는 것은 월경으로 부정한 기간에 성관계를 맺는 행위입니다.
또한 이 구절이 그 여자의 실제 의사나 행위가 강제로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법을 다루는 문장이 두 사람을 함께 언급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실제 상황에서 같은 책임을 전제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선언
20절에서는 자식이 없는 상태와 죽음이 함께 언급됩니다. 21절에서는 자식이 없는 상태가 결과로 선언됩니다.
자녀가 없는 상태로 죽게 된다는 선언인지, 법적으로 인정되는 후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인지, 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후손이 끊긴다는 의미인지에 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의학적 불임의 확정적인 예고로 해석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21절은 형이나 남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일을 금지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25:5–10에서는 형제가 아들 없이 죽었을 때 살아 있는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는 규정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두 법이 서로 다른 상황을 다룬다는 읽기입니다. 레위기 20:21은 일반적으로 형이나 남동생의 혼인 관계를 침범하는 일을 금지하고, 신명기 25장은 형제가 죽고 아들이 없는 특별한 경우에 그 금지와 구별되는 의무를 정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두 법이 서로 다른 법의 전통이나 적용 범위를 반영한다고 보는 읽기입니다. 두 본문이 각자의 법적 문맥에서 무엇을 명령하는지는 분명하지만, 그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어느 읽기에서든 신명기 25장의 특별한 경우를 무시하고 레위기 20:21을 형이나 남동생의 아내가 재혼하는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가족과 혼인 관계는 개인이 자신의 뜻만으로 마음대로 침범하거나 새롭게 짤 수 있는 영역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들이 단지 개인의 잘못을 처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다음 절에서 드러납니다.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 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 내지 않도록
22절에서는 개별 형벌 규정이 끝나고, 다시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말씀이 시작됩니다.
「『너희는 내 모든 규정과 모든 법을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데려가 살게 할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을 것이다.』」레위기 20:22 · 두루새김
여기서 레위기 18:28의 경고가 다시 등장합니다. 18장에서는 여러 금지 명령을 제시한 뒤 땅이 부정해지는 문제를 설명했습니다. 20장에서는 형벌 규정들이 끝난 다음 그 형벌들이 왜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과 관련되는지 밝힙니다.
그 땅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며,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나는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레위기 20:24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땅을 얻는 일이 자신의 공로나 권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는 죽음의 형벌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풍요로운 땅이 등장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목축과 농업의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약속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잘못된다면, 풍요로운 땅조차 이스라엘이 계속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그 선물 안에서 살아갈 책임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23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다른 민족의 생활 방식을 따라 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그 일들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역겨워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같은 일을 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다면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 낼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민족을 멸시할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 구별은 자신들이 따라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7:7–23은 북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의 규정을 버린 결과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건을 설명합니다. 레위기 20:22–23에서 경고한 일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문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연결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악한 민족으로 규정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은 오히려 선택받은 백성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선택은 인간의 불순종을 자동으로 없애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셨으므로, 너희도 구별하여라
24절 후반부에서 여호와야훼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
「『너희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고, 부정한 날짐승과 정결한 날짐승을 구별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부정한 것으로 구별해 둔 짐승과 날짐승과 땅에서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로 너희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지 마라.』」레위기 20:25 · 두루새김
왜 사람들의 성적 행위와 우상숭배, 형벌을 길게 설명한 뒤 갑자기 짐승의 정결 문제로 돌아갈까요? 이것은 단순히 앞에서 빠뜨린 음식 규정을 덧붙인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4–26절에는 같은 어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20:24에서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해 내셨고, 20:25에서 이스라엘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20:26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것이 되도록 구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구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별하신 백성이 행해야 하는 구별이 있습니다.
어떤 짐승은 먹을 수 있고 어떤 짐승은 먹을 수 없는지 구별합니다.
무엇이 정결하고 무엇이 부정한지 구별합니다.
어떤 행위가 허락되고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도 구별합니다.
물론 짐승의 정결과 성적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완전히 같은 종류의 구별은 아닙니다. 정결하지 않은 짐승이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면 이 장에서 금지된 여러 행위는 책임과 형벌이 따르는 위반으로 규정됩니다.
그럼에도 본문은 두 종류의 구별을 나란히 놓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성소와 식탁, 가족과 공동체의 법 모두가 관련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 나 여호와야훼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가 내 것이 되도록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해 냈다.』」레위기 20:26 · 두루새김
「내 것이 되도록」이라는 표현은 구별의 목적을 관계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구별은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보다 높이 세우기 위한 선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밝히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20장에서 거룩함의 마지막 목적은 차이 자체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0:26의 선언은 출애굽기 19:5–6과 깊이 연결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뒤, 그들이 자신의 언약을 지키면 여러 민족 가운데서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민족으로 부르십니다. 레위기 20장은 그 거룩한 민족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규정합니다. 또 신명기 7:6에서도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거룩한 백성이며, 여러 민족 가운데서 특별한 소유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설명됩니다.
왜 마지막은 다시 죽은 이의 영을 불러 묻는 사람과 점쟁이인가?
26절은 장 전체를 끝내기에 충분할 만큼 강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안에 죽은 이의 영이나 점치는 영이 있으면,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레위기 20:27 · 두루새김
6절에서는 죽은 이의 영을 불러 묻는 사람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그들을 따르는 사람을 다루었습니다. 27절에서는 자기 안에 죽은 이의 영이나 점치는 영이 있는 사람을 다룹니다. 같은 주제가 장의 앞부분과 마지막에 놓인 것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것으로 구별되었다는 선언을 단순한 신분 표시로 남겨 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실제로 누구를 따르며 누구에게 의지하는지가 그 관계와 일치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쓰인 「죽은 이의 영이나 점치는 영」이 실제로 불려 오는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지, 그러한 영을 다루는 사람을 가리키는지, 두 낱말이 정확히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들이 어떤 기술이나 의식으로 점을 쳤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특정한 고대의 영을 부르는 의식이나 초자연적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앞에서
레위기 20장은 무거운 형벌 규정들을 지나 뜻밖에도 풍요로운 땅에 이릅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민족과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구별하신 여호와야훼께 속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에는 분별해야 할 것들을 분별하고, 지켜야 할 경계를 지키며, 하나님께 속했다는 고백을 실제 삶에서 드러내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가축을 기르고 밭을 일구며, 가족과 이웃을 이루고, 자녀들을 키울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그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들 앞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주시는 분은 그들이 누구의 백성인지 먼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내 것이 되도록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해 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