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7–26장 · 거룩한 삶의 규정
제단의 제한과 거룩한 음식
레위기 21장은 죽은 가족을 애도하는 문제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형이나 남동생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까지 여호와야훼가 정하십니다.
일반 제사장은 가까운 가족 때문에 부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부모가 죽어도 그 시신 때문에 부정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애도할 권리까지 제한받아야 합니까?
그런데 장의 뒷부분에 이르면 또 다른 어려움이 등장합니다.
아론의 자손 가운데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러 제단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다리를 저는 사람, 몸의 일부가 손상된 사람 등이 그 대상입니다. 몸에 장애나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제한하는 것이 공정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는 일과 하나님께 바친 음식을 먹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제사를 맡아 하는 일이 제한됩니다. 그러나 그 제한이 거룩한 음식에 참여할 자격까지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경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과 접촉하는 경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소의 제단에 다가가는 경계입니다.
그리고 두 경계 모두 제사장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무엇을 맡은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제사장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다
1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제사장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 때문에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21:1 · 두루새김
죽은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에서 부정함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민수기 19:11–13은 죽은 사람의 시신에 닿은 사람이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되며, 정결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21장의 명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 도덕적인 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시신과의 접촉으로 생기는, 제사 규정상의 부정함입니다.
그러나 2절은 곧바로 예외를 둡니다.
「『다만 가까운 가족인 어머니나 아버지, 아들이나 딸, 형이나 남동생 때문에 부정하게 되는 것은 허용된다.』」레위기 21:2 · 두루새김
그리고 3절에서는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고 남자의 아내가 된 적도 없는, 가까운 가족인 누나나 여동생도 포함합니다. 이 목록을 보면 제사장이 가족의 죽음 앞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거룩한 일을 맡은 사람이면서도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해집니다.
「『제사장은 자기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이므로, 부정하게 되어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레위기 21:4 · 두루새김
두루새김이 「우두머리」로 옮긴 히브리어 바알(בַּעַל)은 문맥에 따라 주인, 남편, 소유자 등의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제사장이 자기 백성 가운데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따른 관계를 가리켜, 남편 또는 결혼으로 연결된 친족이라는 지위에서 생기는 부정함을 제한하는 말씀으로 읽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에 따라 이 구절이 제한하는 친족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4절을 근거로 제사장이 배우자의 장례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었는지까지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는 시신에 가까이 가는 문제에서, 슬픔을 몸에 어떻게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로 이동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에스겔 44:25–27에서는 제사장이 시신에 다가가지 말아야 하지만 부모와 자녀, 형제와 결혼하지 않은 누나나 여동생의 죽음에 관해서는 예외를 두는 규정이 등장합니다. 특히 에스겔 44장에서는 그러한 접촉으로 부정해진 제사장이 정결해진 뒤 다시 일을 맡기 위한 절차가 설명됩니다. 이 연결은 제사장의 죽음 관련 규정이 단순히 슬픔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서 일을 맡기 위한 정결의 문제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머리와 수염, 몸에 상처를 내는 애도
5절에서는 세 가지 행위가 금지됩니다.
머리털을 밀어 머리에 빈 곳을 만드는 일, 수염 가장자리를 깎아 없애는 일, 몸에 상처를 내는 일입니다. 이 규정은 앞선 레위기 19:27–28과 연결됩니다. 거기에서도 머리와 수염을 특정한 방식으로 훼손하는 일, 죽은 사람을 위해 몸에 상처를 내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모든 종류의 이발이나 머리 손질을 금지하는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형태로 몸을 훼손하는 일과 애도 관습을 다룹니다. 신명기 14:1도 죽은 사람을 위해 몸을 베거나 두 눈 사이의 머리털을 미는 일을 금지합니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자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여호와야훼께 불로 태워 바치는 제물, 곧 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룩해야 한다.』」레위기 21:6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제사장이 다른 사람들보다 본래 더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맡은 일이 거룩한 제물과 관련되기 때문에 특별한 규정이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배가 고프셔서 음식을 드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단 위에서 바쳐지는 제물을 음식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민수기 28:2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그분의 음식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표현은 제물이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바쳐지는 거룩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제사장의 혼인은 왜 별도의 규정을 따르는가?
7절은 제사장의 결혼을 다룹니다.
「『제사장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나 더럽혀진 여자를 아내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도 아내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제사장은 자기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레위기 21:7 · 두루새김
특히 「더럽혀진 여자」가 어떤 경위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스스로 행한 행동 때문인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인지, 또는 법이나 제사 규정상의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지 여기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가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은 여자의 도덕적 책임을 각각 평가하는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아내로 삼을 수 없는 대상으로 이들을 열거합니다. 이 구별을 놓치면 제사장의 결혼 규정을 해당 여성들이 모두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선언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이제 8절에서는 말씀을 듣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너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그가 네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기 때문이다. 너는 그를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나 여호와야훼가 거룩하기 때문이다.』」레위기 21:8 · 두루새김
이것은 제사장의 거룩함이 제사장 개인에게만 맡겨진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동시에 공동체도 그가 맡은 일을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제사장에 관한 규정을 말씀하시면서 여호와야훼는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는」이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이 맡은 일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거룩함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분이며, 그 가운데 제사장은 특별한 일을 맡습니다.
제사장의 딸에 대한 엄중한 판결
9절은 특별히 무거운 형벌을 선언합니다.
「『제사장의 딸이 음행하여 자신을 더럽히면, 자기 아버지도 더럽히는 것이다. 그 여자는 불에 태워져야 한다.』」레위기 21:9 · 두루새김
제사장의 가족이 그가 제사장으로 맡은 일과 완전히 분리된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본문은 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아닌 딸의 행위를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서 「음행하여」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과 행위까지 포함하는지, 당사자에게 어떤 강요나 착취가 있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규정을 설명할 때는 고대의 가족적 책임과 제사장 신분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같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은 성별과 신분에 따라 서로 다른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구조를 보여 줍니다.
이렇게 일반 제사장의 규정이 끝나면, 본문은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직무를 맡은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조금 더 깊이
불에 태운다는 명령이 실제 처형 방법을 가리키는지, 죽인 뒤 시신을 태우는 절차를 가리키는지도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제사장은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부정해질 수 없다
10절은 대제사장을 일반 제사장과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제사장들 가운데 대제사장은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고, 제사장 옷을 입도록 위임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옷을 찢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21:10 · 두루새김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8장은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기름 부음과 거룩한 옷은 제사장의 직무가 개인의 결심만으로 얻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름 부음과 옷 때문에 대제사장에게는 더욱 엄격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옷을 찢는 것은 슬픔이나 충격을 표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창세기 37:34에서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옷을 찢습니다. 죽음을 애도할 때 나타낼 수 있는 행동까지 그의 직무에 따라 제한되는 것입니다.
11절은 그 제한을 더욱 엄격하게 만듭니다.
「『그는 어떤 시신에도 다가가서는 안 된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때문에도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레위기 21:11 · 두루새김
일반 제사장에게는 부모의 죽음에 따른 부정함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게는 그 예외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감정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가 시신에 다가가 부정하게 되는 일과 특정한 애도 행동을 제한합니다. 물론 그러한 제한은 실제로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무거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대제사장이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므로 가족을 덜 사랑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논리는 감정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가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맡아 하는 일이 시신으로 인한 부정함과 함께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성소를 떠나서는 안 되며」
「『그는 성소를 떠나서는 안 되며, 자기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자기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21:12 · 두루새김
이 말씀을 대제사장이 평생 성소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앞뒤 문맥에서 금지되는 것은 죽음과 애도 때문에 맡은 거룩한 일을 저버리거나 성소를 더럽히는 일과 관계됩니다.
여기서 대제사장의 높은 지위는 자유를 늘려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한을 늘립니다.
그의 특별한 지위는 스스로 얻은 권력이 아니라 기름 부음을 통해 맡겨진 직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위는 특권과 함께 제한을 가져옵니다. 물론 오늘날 종교 지도자에게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요구할 근거로 이 규정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 제한은 죽음과 애도에서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을 때, 모세는 아론과 살아남은 두 아들에게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레 10:6). 그리고 만남의 천막 입구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 위에 여호와야훼의 기름 부음을 위한 기름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레 10:7). 레위기 21장에서는 그와 관련된 구별이 대제사장이 계속 지켜야 하는 직무 규정으로 제시됩니다. 먼저 민수기 6:6–7은 나실인으로 자신을 구별한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구별되어 있는 기간에는 죽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심지어 부모나 형제자매가 죽었을 때에도 시신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본문 모두 특별히 하나님께 구별된 상태와 죽음 때문에 생기는 부정함 사이의 경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나실인은 대제사장과 같은 일을 맡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별되는 방식과 기간도 다릅니다.
대제사장의 아내는 왜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여야 하는가?
13절은 짧고 단호합니다.
「『그는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한다.』」레위기 21:13 · 두루새김
14절은 그 의미를 구체화합니다. 남편이 죽은 여자나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 더럽혀진 여자나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를 아내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자기 백성 가운데서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앞의 일반 제사장 규정보다 엄격합니다.
7절에서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나 더럽혀진 여자,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와의 결혼을 금지했지만, 남편이 죽은 여자는 분명하게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경우에는 남편이 죽은 여자도 금지 대상에 포함됩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에서 남편이 죽은 여자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2:22–24에서는 남편이 죽은 여자와 고아를 괴롭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남편이 죽은 여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선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대제사장은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는 여자와만 결혼해야 합니까? 15절이 직접적인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는 자기 백성 가운데서 자기 자손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나 여호와야훼가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때문이다.』」레위기 21:15 · 두루새김
대제사장의 직무는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 가운데 이어지는 직무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결혼과 자손은 단순히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만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자손의 생물학적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유전학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더럽힘은 제사장 가문의 결혼과 자손에 관한, 제사 규정과 법상의 자격 문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구절을 설명할 때는 두 가지 사실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는 대제사장의 결혼이 제사 규정상의 특별한 기준을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기준이 여성의 결혼 이력에 따라 결혼 가능성을 제한하며, 양쪽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고대의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왜 그런 기준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이라는 특정한 직무와 그 자손에 관한 규정으로 제시할 뿐입니다.
몸에 흠이 있는 제사장은 왜 제단에 나아갈 수 없는가?
16절에서 새로운 말씀이 시작됩니다.
「아론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대대로 네 자손 가운데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러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레위기 21:17 · 두루새김
앞에서는 일반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이 어떤 몸의 상태에 있는지가 제사장의 일을 맡을 자격과 연결됩니다.
18–20절은 여러 몸의 상태를 나열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얼굴이 손상되거나 팔다리 하나가 지나치게 긴 사람, 손발이 부러진 사람, 등이 굽거나 몸이 몹시 야윈 사람, 눈이 흐려지거나 가려운 피부병이 있는 사람, 피부에 딱지가 생기거나 고환이 손상된 사람 등이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일부 히브리어의 정확한 뜻은 불확실합니다. 특정한 몸의 부위가 손상되거나 길이가 다른 것을 가리키는지, 몸의 모양이나 자란 상태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현대 의학의 병 이름과 하나씩 맞추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목록에서 중요한 사실은 몸의 상태가 생긴 원인을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는지, 사고나 질병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잠깐 그런 상태인지 오래 이어지는 상태인지에 따라 목록을 따로 나누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의 도덕적인 행동이나 하나님을 믿는 정도를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이 규정의 기준은 몸의 흠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기준이 필요한 것일까요? 이 문제에는 몇 가지 설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제단에서 거룩한 일을 맡는 사람에게 온전한 몸을 요구하는 제사의 생각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앞서 제물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과도 주제가 이어집니다.
둘째, 제사장이 성소에서 맡는 일이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몸도 특정한 상태여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든 본문이 밝히지 않은 상징을 지나치게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몸의 흠을 하나님 앞에서의 죄나 영적인 결함과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21장은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이 죄를 더 많이 지었기 때문에 제단에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몸의 상태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라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 가운데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여호와야훼께 불로 태워 바치는 제물을 드리러 다가와서는 안 된다. 몸에 흠이 있으므로 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러 다가와서는 안 된다.』」레위기 21:21 · 두루새김
그 사람이 아론의 자손이라는 신분을 잃는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다는 말도 없습니다. 제단에서 맡는 특정한 일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규정을 단지 맡는 일의 구별이라고만 설명하면 중요한 현실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 제한은 실제로 몸에 흠이 있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몸의 상태 때문에 제사장으로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독자가 이것을 차별적인 규정으로 느끼는 것은 본문의 내용을 잘못 읽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 법에는 몸의 상태를 기준으로 제단에서 맡을 수 있는 일에 차이를 두는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불편한 사실을 감추지 않으면서 본문이 밝힌 근거와 허용 범위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22절이 등장합니다.
제단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람도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
22절은 앞의 금지 규정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 갑니다.
「『그러나 자기 하나님께 바친 음식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든 거룩한 것이든 먹을 수 있다.』」레위기 21:22 · 두루새김
같은 음식이지만 그 음식을 바치는 일과 먹는 일이 구별됩니다. 하나는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맡을 자격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사장 집안에 속한 사람으로서 거룩한 음식을 먹는 자격입니다. 본문은 첫 번째를 제한하면서 두 번째는 허락합니다.
레위기에서는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음식 가운데서도 지극히 거룩한 것과 거룩한 것이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6:25–26과 7:1–6은 정화 제물과 속건 제물의 거룩함과 그것을 먹는 제사장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22절은 몸에 흠이 있는 아론의 자손에게 하찮거나 중요하지 않은 음식만 허락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23절은 다시 그가 다가갈 수 없는 장소들을 밝힙니다.
「『다만 몸에 흠이 있으므로 휘장 쪽으로 들어오거나 제단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 그는 내 거룩한 곳들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나 여호와야훼가 그곳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기 때문이다.』」레위기 21:23 · 두루새김
제사장 가운데서도 누구나 휘장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가장 거룩한 장소로 들어가는 일에는 특별한 자격과 절차가 있었습니다.
앞에서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이제는 「내 거룩한 곳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제사장이 맡는 일과 성소의 거룩함은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속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단에 나아갈 수 없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여호와야훼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성소의 거룩함과 연결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묻는 장애와 평등, 능력과 맡는 일이 서로 맞는지에 관한 모든 질문에 직접 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규정을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오늘날 종교 공동체에서 지도자나 봉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명령으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21장은 아론의 자손과 성소의 제단에서 맡는 특정한 제사 일을 규정합니다. 그 제도를 현대의 모든 종교적 역할에 똑같이 적용할 근거는 이 장 자체에 없습니다.
본문은 제단에서 물러나게 한 사람을 모든 거룩한 것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도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남겨 둡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이사야 56:3–5에서는 자녀를 얻을 수 없는 내시들이 여호와야훼의 언약을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집 안에서 이름과 기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레위기 21장의 제사 일에 관한 제한을 직접 없애는 법률 조항이 아닙니다. 내시와 몸에 흠이 있는 아론의 자손을 법에서 같은 부류로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 안에서도 몸의 상태와 자손을 얻는 능력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왜 모세는 이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전하는가?
마지막 절은 짧습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레위기 21:24 · 두루새김
1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16–17절에서는 아론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4절에서는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왜 제사장에 관한 규정을 온 이스라엘이 들어야 할까요? 한 가지 이유는 이 장의 규정이 제사장들만의 개인적인 생활 규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누가 제단에서 일을 맡을 수 있는지, 누가 어떤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는 온 공동체와 관계됩니다.
또한 8절은 제사장을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제사장 자신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도 그가 맡은 일을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제사장은 백성 가운데서 구별되지만, 백성을 떠나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단에 서지 못하는 사람의 몫
하나님께 맡겨진 일은 개인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다른 몫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21장 끝에는 두 장소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제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한 음식을 먹는 자리입니다.
아론의 자손 가운데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제단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사장이 되고 싶었는지, 그 제한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한 문장이 놓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이든 거룩한 것이든」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는 자기 하나님께 드리는 음식을 바치러 제단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하나님께 바친 음식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
레위기 21장은 그 차이를 없애지 않습니다.
제단의 경계는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도 거룩한 음식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그 두 사실을 함께 남겨 둔 채, 모세는 이 말씀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