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28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식탁에서 이스라엘의 평화까지

시편 128편은 한 사람이 자기 손으로 얻은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평화의 기도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는 집 안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특별한 기적이나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하고, 먹고, 가족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시인은 바로 이러한 평범한 삶을 가리키며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복은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시인은 가정의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시온을 바라보고,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을 말하며, 마침내 이스라엘 전체의 평화를 구합니다.

한 가정의 식탁과 이스라엘의 평화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시편에서 복은 개인이 원하는 것을 많이 소유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자신의 노동을 누리고, 가족과 생명을 나누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평화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복의 출발점에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삶이 있습니다.

앞선 시편 127편이 인간의 수고가 여호와야훼의 일하심을 떠나서는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128편은 그분의 복 안에서 인간의 수고와 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누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7128편 본문 읽기 →

누구나 복이 있습니다 — 경외와 삶의 방향

시편 128:1 본문 →

오름의 노래. 복되구나,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여.시편 128:1 · 두루새김

시편은 놀랍도록 폭넓은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을 특정한 왕이나 제사장, 부유한 사람이나 특별한 업적을 이룬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원문도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시인은 화려한 궁전이나 막대한 재산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일하는 사람과 평범한 가정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도 여호와야훼의 복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첫 절에서부터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분을 경외하고 존중하며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말 뒤에 곧바로 「그분의 길을 걷는」이라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길을 걷는 행동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길을 걷는다는 표현은 실제 도로를 이동하는 행동뿐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선택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시편 128편에서 경외는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나 예배의 한순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와 연결됩니다.

시인은 먼저 복을 얻는 비결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복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소개합니다.

복된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에서 출발하지 않고, 누구의 길을 따라 살아가느냐에서 출발합니다.

이제 시인은 그런 사람이 경험하는 첫 번째 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는 놀라울 정도로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손으로 일하고, 그 결과로 얻은 음식을 먹고 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0:12–13에서도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며 그분의 모든 길을 걷고, 그분을 사랑하며 섬기라고 요구합니다.

당신은 두 손으로 애써 얻은 것을 먹을 것입니다 — 노동의 열매를 누리는 복

시편 128:2 본문 →

그대가 두 손으로 애써 얻은 것을 그대가 먹을 것입니다. 복되구나, 그대여. 그대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시편 128:2 · 두루새김

수고하는 사람과 그 수고로 얻은 것을 먹는 사람이 같습니다. 원문에서는 당신의 두 손으로 얻은 것을 당신이 먹는다고 하며, 수고하는 사람 자신을 거듭 가리킵니다.

이것은 당연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일하면 그 대가를 얻고, 그 대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당연해 보이는 일이 언제나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보여 줍니다.

신명기 28:30에서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의 모습 가운데, 사람이 집을 지어도 거기에 살지 못하고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일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65:21–22에서는 회복된 삶의 모습으로 사람들이 집을 지어 그 안에 살고, 포도원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과 그 결과가 부당하게 갈라지지 않는 삶입니다.

사람은 자기 손으로 일하지만 그 열매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대가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억압 때문에 자신이 가꾼 것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수고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그 열매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데 쓰이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재산을 소유하거나 거두어들인 것을 쌓아 두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먹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소유와 누림은 서로 다릅니다.

많은 것을 쌓아 두고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먹으며 삶의 만족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편 128편에서도 노동은 저주의 표시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복 안에서 그 열매를 누릴 수 있는 활동으로 등장합니다.

127편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일하심을 떠난 인간의 수고가 헛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128편에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애써 얻은 것을 먹는 사람이 복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노동이 모든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노동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복인지를 보여 줍니다.

노동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노동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식탁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8:33에서는 알지 못하는 민족이 그 땅에서 난 것과 수고의 열매를 먹게 되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전도서 5:18–19에서도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것을 먹고 마시며 즐거움을 누리는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자 선물로 그려집니다. 인간의 수고를 무조건 헛되다고 선언하는 대신,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일 자체가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 집 안에서 자라나는 생명

시편 128:3 본문 →

그대의 아내는 집 안쪽에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 같고 그대의 자녀들은 식탁 둘레의 어린 올리브나무들 같습니다.시편 128:3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한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제 시인은 그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가 가족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왜 시인은 아내와 자녀를 서로 다른 나무에 비유했을까요?

두 나무는 모두 이스라엘의 생활에서 중요한 식물이었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와 포도주를 제공하고, 올리브나무는 열매와 기름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열매 맺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반면, 아들들은 이미 다 자란 올리브나무가 아니라 어린나무들로 그려집니다.

집 안쪽의 열매 맺는 포도나무

원문의 표현은 집의 안쪽이나 깊숙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아내를 집 안의 깊은 자리와 연결하여 그립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표현을 아내가 반드시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명령으로 읽지 않는 것입니다. 시인은 가정 안에서 여성이 해야 할 활동의 범위를 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집 안에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라는 비유를 통해 가정에 생명과 풍요가 있는 모습을 그립니다.

물론 이 이미지는 당시 가정생활에서 아내와 어머니가 차지하던 역할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풍성함을 자녀를 많이 낳는 능력 하나로만 좁혀 볼 필요는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 식물이 살아 있으며, 제 역할을 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풍성함을 제공한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는 집 바깥의 밭이나 포도원에서만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시인은 집 안쪽이라는 가장 가까운 생활의 공간에서 그것을 바라봅니다. 가정의 복은 밖에서 얻어 오는 재산의 크기로만 판단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집 안에 생명과 풍요가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복입니다.

식탁 둘레의 어린 올리브나무들

원문의 표현은 올리브나무의 어린 묘목들이나 심겨 자라는 어린나무들을 가리킵니다.

어린나무는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자라 굵은 줄기를 이루고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린나무는 미래의 가능성을 이미 품고 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오래 살아가며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시인이 자녀들을 어린 올리브나무에 비유한 것은 지금의 어린 생명뿐 아니라 앞으로 자라날 생명과 이어질 세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어린나무들은 식탁 둘레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식탁 둘레에 함께 있는 모습을 어린나무들이 자라나는 광경에 빗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열매 맺는 포도나무에 비유되는 아내가 있고, 식탁 둘레에는 어린 올리브나무처럼 자라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는 식탁이 있습니다.

2절에서는 한 사람이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을 먹었습니다. 3절에 이르면 그 먹는 자리가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넓어집니다. 음식을 충분히 먹는 것도 복이지만, 그 음식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있는 것도 복입니다.

시편이 그리는 복은 모든 성장이 끝나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완성된 상태가 아닙니다.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상태입니다. 포도나무는 지금 열매를 맺고 있고, 어린 올리브나무들은 앞으로 자라날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읽을 때 당시 사회의 시선을 구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인은 가정의 남성 구성원에게 말을 건네며 아내와 아들들을 그의 가정에 주어진 복으로 그립니다. 이 표현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조를 반영합니다.

그렇다고 이 시편을 모든 사람의 복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삶이 어떤 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한 가정의 풍경으로 보여 주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동일한 가족 구성이 주어진다고 약속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성경에서도 포도나무는 종종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4:25에서는 솔로몬 시대의 평안을 설명하며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았다고 말합니다. 미가 4:4 역시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평화의 약속으로 제시합니다.

보십시오, 참으로 이렇게 복을 받을 것입니다 — 복의 근원을 다시 밝히다

시편 128:4 본문 →

보십시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참으로 이렇게 복을 받습니다.시편 128:4 · 두루새김

시인은 1절에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복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 그 복이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4절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1절과 4절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1절에서 사용된 아슈레는 어떤 사람의 복된 상태를 선언하는 말입니다. 반면 4절의 예보라크(⁨בָּרַךְ⁩)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수동형 동사입니다. 복된 상태를 그리는 데서 나아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이 차이는 5절을 준비합니다. 4절에서는 복을 받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는 그 복을 주시는 분의 이름이 직접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이십니다.

「보십시오」라는 말로 시인은 가정의 풍경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독자가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보도록 요청합니다. 자신의 수고로 얻은 음식을 먹고, 가족이 식탁 둘레에 모여 있으며, 어린 자녀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특별한 성공이라고 부르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놓치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있고, 자신의 노동을 누릴 수 있으며, 가족과 생명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편이 끝났다면, 이 노래는 한 가정의 행복을 축하하는 시로 남았을 것입니다.

집 안의 식탁에서 시온을 향해 눈을 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시온에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한 가정의 복과 예루살렘의 번영

시편 128:5 본문 →

여호와야훼가 시온에서 그대에게 복을 주시기를. 사는 날 내내 예루살렘이 잘되는 것을 보기를.시편 128:5 · 두루새김

지금까지는 한 사람과 그의 가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시온은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는 장소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시온에서」라는 표현은 단순히 축복이 흘러오는 지리적 방향을 가리키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신앙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이전 절들과 형태가 다릅니다.

1–4절은 복된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선언하고 그렸습니다. 그러나 5절부터는 복을 빌어 주는 말이 시작됩니다. 시인은 앞에서 그린 복이 모든 경건한 사람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결과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 복이 실제로 주어지기를 여호와야훼께 구하는 방향으로 노래를 이끕니다.

한 사람의 식탁에서 시작한 복이 이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전체가 잘되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왜 한 가정의 복을 이야기하다가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을 보기를 바랄까요?

시인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정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려면 그 가정이 속한 공동체 역시 평안해야 합니다. 도시가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며, 생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한 가정의 평화가 지속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공동체가 안정되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그 안의 가정들도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의 번영을 소유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눈으로 구경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그 도시가 좋은 상태를 누리는 모습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축복입니다.

시편 128편은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을 「당신이 사는 동안 내내」라고 표현합니다. 시인은 일생 동안 그 도시의 좋은 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복을 구합니다.

처음에는 오늘 자기 손으로 얻은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평생에 걸쳐 공동체가 잘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복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132:13–14는 여호와야훼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시편 122:6–9에서도 시인은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하며, 여호와야훼의 집을 위해 그 도시의 복을 구합니다. 예레미야 29:7에서 포로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도시의 평화를 구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 도시가 평안해야 그들도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과 시편 128편은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나 가정의 평안이 공동체의 평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당신이 아들들에게서 난 손자들까지 보기를 바랍니다 —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평화

시편 128:6 본문 →

그대의 손주들을 보기를.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기를.시편 128:6 · 두루새김

시인은 마지막에 다시 자녀들을 언급합니다.

3절에서 아들들은 식탁 둘레에 있는 어린 올리브나무들이었습니다. 이제 6절에서 시인은 그 아들들에게도 아들들이 있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 두 장면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식탁 둘레에 앉아 있던 어린 자녀들이 성장하고, 그들에게도 자녀가 생깁니다. 어린나무는 지금 당장 완성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생명을 이어 갑니다.

5절에서는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을 보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당신이 아들들에게서 난 손자들까지 보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원문에서도 두 바람은 모두 「그리고 보아라」(⁨רָאָה⁩)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이 잘되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음 세대의 생명입니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한 사람이 오늘 잘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공동체가 잘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볼 수 있는 삶입니다. 5절의 「당신이 사는 동안 내내」는 한 사람에게 주어진 생애 전체를 바라보고, 6절의 「아들들에게서 난 손자들까지」는 그 생애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삶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마지막 문장은 가족의 번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많은 자녀와 손자들을 보게 되더라도, 그들이 살아갈 공동체에 평화가 없다면 그 복은 얼마나 온전할 수 있을까요? 전쟁이 계속되고, 불의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며, 공동체가 무너진다면 다음 세대의 삶 역시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인은 다음 세대가 이어지는 것을 축복하면서 그들이 살아갈 이스라엘 전체의 평화를 함께 구합니다.

복은 한 가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는 시편 125:5의 마지막 축복과 동일합니다. 시편 125편에서는 여호와야훼를 신뢰하는 백성이 악한 지배와 굽은 길의 위협 가운데서도 보호받기를 바라며 이스라엘의 평화를 구했습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한 가정의 풍요와 다음 세대의 생명을 축복한 뒤 이스라엘의 평화를 구합니다. 또한 신명기 28:1–6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복을 도시와 들, 태어나는 자녀와 땅에서 나는 것,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 걸쳐 그립니다. 시편 128편의 복 역시 노동과 가정, 자녀와 공동체의 삶을 함께 아우릅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식탁

시편 128:1–6 본문 →

이 시편에서 처음과 끝을 이어 주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삶입니다. 1절은 그 삶에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4절은 그 복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복을 주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이 흐름을 보면 복은 인간이 자신의 경건함을 통해 얻어 내는 재산처럼 그려지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복을 누리는 사람은 자기 삶의 좋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 복이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하나님을 경외하면 반드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배우자와 여러 자녀를 얻고, 오래 살며 손자들까지 보게 된다는 보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시편 73편은 악인들이 번영하는 현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의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욥기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큰 고난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 128편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도, 엄청난 재산을 모은 부자도,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낸 왕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애써 얻은 음식을 먹는 식탁이 있습니다.

집 안에는 열매 맺는 포도나무 같은 아내가 있고, 그 식탁 둘레에는 어린 올리브나무처럼 자라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집에서 시선을 들어 시온과 예루살렘을 바라봅니다. 가족이 평안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갈 도시도 잘되어야 하고, 자녀들의 자녀들이 살아갈 이스라엘에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했던 복이 식탁으로, 가족으로, 도시로,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시편 128편은 그렇게 작은 식탁 하나를 보여 주면서, 그 식탁을 둘러싼 생명이 자라고 마침내 이스라엘 전체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