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8편
이 장의 자리 · 1–41편 · 첫째 권
하늘을 굽혀 내려오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하시려고 하늘을 휘어 내리고 내려오십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을 받치는 기초가 뒤흔들리며, 하늘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쏟아집니다. 물길이 보이고 세상의 기초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장면의 끝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분은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저를 붙잡으시고, 큰 물에서 저를 건져 내셨습니다」(17절).
온 세상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힘이 한 사람을 붙잡는 손길로 모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개인의 구원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에서 건짐받은 사람은 다시 일어서고, 하나님께 힘을 받아 원수들과 싸우며, 마침내 여러 민족을 다스리는 왕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마지막에는 그 왕 한 사람을 넘어 그의 자손에게 이어질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처음에는 죽음의 밧줄에 묶여 있던 사람이, 끝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 여러 민족 가운데 찬양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설명하는 이미지들의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바위와 성이신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이어서 폭풍 속에서 내려오시는 하나님, 물에서 건져 내시는 하나님, 발걸음을 굳게 하시는 하나님, 전쟁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차례로 나타나십니다.
모두 같은 하나님이지만, 각각의 이미지가 보여 주는 구원의 측면은 다릅니다.
모든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하는 말
지휘자를 위한 여호와야훼의 종 다윗의 노래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아귀와 사울의 손에서 구해 내신 날, 다윗은 이 노래를 여호와야훼께 불렀습니다.시편 18:1 · 두루새김
시편 18편은 다른 시편보다 유난히 긴 표제로 시작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윗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의 손아귀와 사울의 손에서 자신을 구해 내신 일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오랫동안 쫓았던 이스라엘의 첫 왕입니다. 사무엘상 18–26장에는 사울의 위협 때문에 다윗이 여러 차례 도망하고, 광야와 굴에서 살아가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는 사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을 비롯한 외부의 적들과 싸웠고, 왕이 된 뒤에도 여러 위기를 겪었습니다. 표제가 특정한 한 번의 탈출보다 「모든 원수의 손아귀」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이 노래가 다윗의 여러 경험을 아울러 돌아보는 노래로 읽힐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의 표제는 다윗을 특별히 「여호와야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됩니다. 그가 이룬 승리와 통치는 스스로 만들어 낸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결과라는 관점에서 노래됩니다.
그런데 거대한 구원과 전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문장은 뜻밖에도 다정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야훼, 나의 힘이신 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 18:2 · 두루새김
이 한 문장은 사무엘하 22장의 같은 노래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편 18편의 독특한 시작입니다.
왜 그는 자신의 힘이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할까요?
이어지는 노래 전체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막연한 능력의 근원이 아니셨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그의 소리를 들으셨고, 그를 붙잡으셨으며, 다시 살아갈 자리를 주신 분이셨습니다.
이 고백은 노래의 순서를 결정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 왕이 되었는지부터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구하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그 하나님을 일곱 겹의 이미지로 부릅니다.
여호와야훼는 나의 바위 벼랑, 나의 성채, 나를 건져 내시는 분, 내가 몸을 피하는 바위이신 나의 하나님, 나의 방패, 나를 구하는 뿔, 나의 높은 피신처이십니다.시편 18:3 · 두루새김
바위 벼랑과 자신을 지키는 성은 접근하기 어려운 안전한 장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방패는 적의 공격을 직접 막아 주는 도구입니다. 높은 피난처는 위험에 처한 사람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보호의 공간입니다.
「구원의 뿔」은 현대 독자에게 조금 낯섭니다. 구약에서 뿔은 힘과 권세를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뿔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강한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다윗 자신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바위가 아니라 바위에 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성이 아니라 성 안에서 보호받는 사람입니다. 방패를 가진 전사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자신의 방패로 삼는 사람입니다.
훗날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자신을 설명하는 첫 번째 방식이 이것입니다.
찬양받으실 여호와야훼를 내가 부르면 원수들에게서 구원받습니다.시편 18:4 · 두루새김
4절은 노래 전체의 줄거리를 짧게 예고합니다. 부르짖음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은 그 사이에 놓여 있었던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날」이라는 말도 반드시 한 날짜에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이 이루어진 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사무엘하 22장에도 거의 같은 형태로 실려 있으며,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의 통치와 삶을 돌아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두 본문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일부 낱말과 문장이 다릅니다. 「사랑합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어근에서 나오지만, 여기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독특한 형태로 쓰였습니다. 뿔이 힘의 이미지인 것은 동물의 뿔이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강한 수단이기 때문이며, 시편 92:10에서도 뿔은 높여지는 힘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죽음의 줄에 묶여 있던 사람의 부르짖음
죽음의 밧줄들이 나를 휘감고 파멸의 물살들이 나를 두렵게 했습니다. 스올의 밧줄들이 나를 에워싸고 죽음의 덫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시편 18:5–6 · 두루새김
밧줄과 덫은 사람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거센 물살은 사람의 힘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물의 흐름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위험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의 처지에서는 같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음이 자기 앞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자신을 휘감고 둘러싸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뒤로 길이 막히고, 사방에서 압박을 받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스올」은 죽은 사람들의 영역을 가리키는 구약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실제로 죽었다가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영역에 사로잡힐 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시편 18편의 죽음은 단순히 생명이 끝나는 순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을 잡아채는 사냥꾼처럼 행동합니다. 이 표현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전투나 도피 사건을 가리키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느낀 위협의 성격은 분명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힘에 사로잡혀 벗어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이 한 행동은 짧게 기록됩니다.
막막한 가운데 여호와야훼를 불렀습니다. 내 하나님께 도와 달라 부르짖으니 그분이 성전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고 내 외침이 그분 앞에 이르러 귀에 닿았습니다.시편 18:7 · 두루새김
다윗에게는 상황을 다스릴 능력이 없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성전은 반드시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뜻하지 않습니다. 곧이어 하나님이 하늘을 휘어 내리고 내려오시는 장면이 나타나므로, 하늘의 성전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모습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밧줄에 둘러싸여 땅에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거리가 기도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다윗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귀에 닿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단지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닿은 뒤, 땅과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성전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왕궁이나 성전을 가리킬 수 있으며, 이 구절에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거처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에 하늘과 땅이 움직이다
그분의 분노가 타오르자 땅이 요동치며 떨고 산들의 기초도 떨며 뒤흔들렸습니다.시편 18:8 · 두루새김
7절과 8절 사이에서 장면의 규모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방금 전까지 다윗은 죽음의 덫에 걸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땅이 흔들리고 산을 받치는 기초가 움직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단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작은 도움을 보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온 세계가 하나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처럼 그분의 구원을 묘사합니다.
이것을 다윗이 구조될 때 실제로 모든 산이 흔들리고 전 세계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보고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지닌 압도적인 힘을 온 우주에 걸친 시적 언어로 나타냅니다. 시인이 전달하려는 진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위기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움직일 수 없는 세계의 기초까지도 그분의 권세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분노하셨다고 말할까요?
다윗의 고통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원수들에게 당한 위협을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당한 위협에 맞서 행동하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분의 코에서 연기가 솟고 입에서 나온 불이 집어삼켰습니다. 그분에게서 숯불이 타올랐습니다.시편 18:9 · 두루새김
시인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코와 입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몸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분노와 능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코를 가리키는 말은 분노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화가 난 사람이 거칠게 숨을 내쉬는 모습을 떠올리면, 코에서 연기가 올라온다는 비유의 강렬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은 더욱 뜻밖입니다.
그분이 하늘을 드리우고 내려오시니 발아래에는 짙은 구름이 깔려 있었습니다.시편 18:10 · 두루새김
하늘은 인간이 마음대로 열거나 움직일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하늘을 휘어 내리고 내려오십니다.
다윗은 아래에서 위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이를 수 없었던 자리까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낮은 곳에서 위협받는 사람을 향해 움직이십니다.
커룹을 타고 날아오르셨습니다.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셨습니다.시편 18:11 · 두루새김
「커룹」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왕좌에 연결되는 하늘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커룹을 타고 날아오르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위엄 있게 움직이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땅의 군대는 말과 병거를 사용해 이동하지만, 하나님은 커룹과 바람을 타고 나아가십니다.
어둠을 숨는 곳으로 삼으시고 물을 머금은 어둠과 하늘의 두꺼운 구름으로 둘레에 천막을 치셨습니다.시편 18:12 · 두루새김
하나님은 강렬한 빛만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분의 모습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오심을 알려 주면서 동시에 그분을 가립니다.
그러다가 눈부신 빛이 비치고 우박과 타는 숯불이 쏟아집니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날아갑니다. 14절에서 시인은 천둥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묘사합니다. 15절에서는 번개를 하나님이 쏘시는 화살로 그립니다.
인간의 왕은 군대를 동원하고 무기를 사용하여 적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자연 세계 전체를 자신의 권세 아래 두신 분으로 그려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인간의 왕권보다 훨씬 크다는 시적 선언입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꾸짖음에, 당신의 코에서 뿜어 나온 거센 숨결에 물길들이 보이고 세상의 기초가 드러났습니다.시편 18:16 · 두루새김
물이 물러가고 감추어져 있던 세상의 기초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같은 하나님이 혼란스러운 물의 힘을 다스리시고 자기 백성을 구하신다는 구약의 구원 이미지가 이 노래에서도 살아 움직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모든 장면의 결말을 전쟁이나 파괴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음 순간, 하나님이 손을 뻗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며 나타나시는 모습을 그릴 때 쓰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19:16–19에서도 하나님이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이 나타나고 산이 크게 흔들립니다. 사사기 5:4–5의 드보라 노래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나아오실 때 땅이 떨고 하늘이 물을 쏟으며 산들이 흔들립니다. 언약궤 위에는 날개를 펼친 커룹의 형상이 있었고(출애굽기 25:18–22), 사무엘상 4:4에서는 여호와야훼를 커룹들 위에 앉으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20:21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이 계시는 짙은 어둠으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16절은 출애굽기 14:21–22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바람으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지나게 하신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출애굽기 15:8에서도 하나님의 코에서 나오는 숨결과 물의 움직임이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시편 18편이 출애굽 사건을 그대로 다시 이야기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큰 물에서 건져 넓은 곳으로 이끄시다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나를 붙드시고 큰물에서 나를 끌어 올리셨습니다.시편 18:17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시편의 시선이 다시 한 사람에게 모입니다.
앞에서는 땅과 산과 하늘과 바다가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다윗을 붙잡으시는 모습만 남습니다.
「건져 내셨습니다」(מָשָׁה)는 물에서 끌어낸다는 뜻을 지닌 동사에서 왔습니다. 이 동사는 출애굽기 2:10에서 모세의 이름을 설명할 때도 사용됩니다. 모세의 이야기에서는 물에서 건짐받은 사람이 훗날 이스라엘을 이끄는 인물이 됩니다. 시편 18편에서는 물에서 건짐받은 다윗이 하나님께 힘을 받아 왕의 자리에서 여러 민족을 다스리는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힘센 원수와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나보다 강했기에 그들에게서 나를 건져 내셨습니다.시편 18:18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이 원수보다 강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신보다 강했다고 인정합니다.
이 인정은 뒤에 나오는 전쟁의 승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다윗의 승리는 본래 자신이 남보다 강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원수에게서 하나님이 건져 내신 결과입니다.
원수들이 그를 가로막은 날, 하나님은 그가 기대어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셨습니다(19절). 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넓게 트인 곳으로 나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나를 기뻐하셨기에 나를 빼내 주셨습니다.시편 18:20 · 두루새김
앞에서 다윗은 죽음의 밧줄과 덫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움직일 곳이 없었습니다. 파멸의 거센 물살이 밀려오고 원수들은 그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를 넓은 곳으로 이끄십니다.
이 문맥에서는 단순히 넓은 땅을 얻었다는 뜻보다는 압박과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묶여 있던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갇혀 있던 사람이 넓은 곳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구하신 것은 그분께 능력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만한 공로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곧장 옮길 수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그분의 호의와 기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다윗의 입으로 설명합니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능력의 중심에, 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셨다는 고백 뒤에, 자신이 하나님의 길을 지켜 왔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의 의로움에 따라 갚으셨는가
여호와야훼가 내 올바름을 따라 갚아 주시고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돌려주셨습니다.시편 18:21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시편 18편에서 가장 신중하게 읽어야 할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이 의롭게 산 대로, 그의 손이 깨끗한 만큼 갚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자신에게 죄가 없고, 자신의 완전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읽으면 다윗에 관한 성경의 다른 기록과 맞지 않는 점이 생깁니다. 사무엘하 11–12장은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야에게 저지른 중대한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8편을 다윗의 생애 전체에 죄가 전혀 없었다는 선언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설명은 구체적입니다.
참으로 나는 여호와야훼의 길을 지켰고 악을 저질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시편 18:22 · 두루새김
그분의 모든 법이 내 앞에 있었고 정하신 것들을 멀리하지 않았으며시편 18:23 · 두루새김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도덕적 성적표라기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삶의 방향입니다.
사무엘상 24장과 26장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그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위협했음에도, 여호와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시편 18편에서 의롭게 살았다는 말은 특별히 자신에게 맞선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길을 버리지 않았다는 정당성의 고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편 자체가 이 구절을 사울을 살려 준 특정 사건에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분 앞에서 흠 없이 살고 죄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지켰습니다.시편 18:24 · 두루새김
여기서 「떳떳하게 살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תָּמִים)는 흠이 없거나 온전하다는 뜻을 지닙니다. 문맥상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실하고 흠잡힐 일을 피하려는 삶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죄의 위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켰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21절과 25절은 거의 같은 고백을 반복하며, 그 사이에 자신의 충성과 행실을 설명합니다. 이 반복은 다윗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묶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내 올바름을 따라, 보시기에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돌려주셨습니다.시편 18:25 · 두루새김
사람들이 다윗을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보시기에」 그의 손이 깨끗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이 고백을 모든 고난과 잘되는 삶에 적용되는 기계적인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반드시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의 바로 앞부분에서 다윗은 자신이 원수보다 약했고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자기 경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말합니다.
뒤틀린 사람에게 하나님도 뒤틀리게 대하시는가
주님, 사랑을 지키는 이에게는 당신도 사랑을 지키시고 흠 없는 사람에게는 당신도 흠 없이 대하십니다. 깨끗한 이에게는 당신도 깨끗하게 대하시고 뒤틀린 이에게는 당신도 뒤틀리게 대하십니다.시편 18:26–27 · 두루새김
이 두 절은 네 쌍의 표현으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같은 어근이나 의미가 가까운 표현들을 짝지어 하나님의 대응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원문의 마지막 말이 거슬립니다.
하나님이 뒤틀린 사람에게 뒤틀리게 대하신다니, 하나님도 악한 사람처럼 부정직하게 행동하신다는 뜻일까요?
두루새김이 「빈틈없이 맞서십니다」로 옮긴 자리에는 히브리어 티트파탈(פָּתַל)이 사용됩니다. 비틀거나 얽는다는 어근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이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빈틈없이 대응하시거나, 그의 비뚤어진 계략을 꺾으시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부정직하거나 불의해지신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뒤 문맥에서 하나님은 길에 흠이 없고 말씀이 순수한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방법으로 자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 계략이 무너지는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짓눌린 백성을 구하시고 높이 치켜든 눈들을 낮추십니다.시편 18:28 · 두루새김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는 모습은 교만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자신을 남보다 높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힘과 지위가 하나님의 판단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원수보다 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이 그 힘의 차이를 뒤집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참으로 당신은 내 등불을 켜 주십니다. 여호와야훼 나의 하나님께서 내 어둠을 밝히십니다.시편 18:29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늘의 번개와 불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등불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번개를 쏘실 수 있는 분이지만, 한 사람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도 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하 21:17에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여기서 등불은 단순히 마음이 밝아지는 경험만이 아니라, 다윗의 생명과 앞날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당신을 힘입어 군대를 향해 달려들고 내 하나님을 힘입어 성벽을 뛰어넘습니다.시편 18:30 · 두루새김
이제 그는 더 이상 죽음의 밧줄에 묶여 있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두 번이나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길에는 흠이 없고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불로 거른 말씀입니다. 그분께 몸을 피하는 모든 이에게 그분은 방패가 되십니다.시편 18:31 · 두루새김
「불에 달구어 깨끗하게 한 금속처럼 순수합니다」(צָרַף)로 옮긴 자리의 히브리어는 불로 시험하거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금속이 불 속에서 그 참된 성질을 드러내듯,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고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31절은 3절에서 등장한 방패의 이미지를 다시 가져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제 방패」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피하는 모든 사람의 방패」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시인은 왕으로서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노래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고백을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다시 왕과 전사의 모습이 앞에 등장합니다.
저를 크게 만드신 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돌보신 일입니다
여호와야훼 말고 누가 하나님이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말고 누가 바위이겠습니까?시편 18:32 · 두루새김
처음에 다윗은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바위 벼랑과 자신을 지키는 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희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인 고백이 공동체의 고백으로 넓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허리에 힘을 둘러 주시고 내 길을 흠 없게 하셨습니다.시편 18:33 · 두루새김
허리에 힘을 띠처럼 둘러 주신다는 말은 전쟁에 나서는 사람이 허리띠를 단단히 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할 힘도 주십니다.
내 발을 암사슴의 발처럼 만드시고 나를 내 높은 곳에 세우셨으며시편 18:34 · 두루새김
암사슴의 발은 험한 산길에서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윗이 광야와 산악 지형에서 사울을 피해 다니던 기록을 생각하면 이 이미지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에 다윗은 바위와 자신을 지키는 성에 숨어 보호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험한 높은 곳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두 팔이 청동 활을 휘었습니다.시편 18:35 · 두루새김
이 구절의 중심은 무기의 정확한 구조가 아닙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발휘하는 힘과 능숙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의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뜻밖의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 당신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고 당신의 오른손으로 나를 붙드셨으며 당신의 겸손이 나를 크게 키웠습니다.시편 18:36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자신을 크게 만드셨다는 말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까닭이 「주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돌보셨기에」라는 말은 놀랍습니다.
히브리어 안바테카(עַנְוָה)는 겸손 또는 낮추심과 연결되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래를 담은 사무엘하 22:36에는 형태가 다른 표현이 나타나며, 이를 하나님의 응답 또는 도움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겸손이나 낮추심을 원문의 가능한 의미로 존중하되,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겸손이라는 덕목을 실천하신다는 자세한 교리를 이 한 단어에서 끌어내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루새김이 옮긴 「자신을 낮추어 돌보셨기에」를 따라 읽으면 시편 전체와 연결되는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은 하늘을 휘어 내리고 내려오셨습니다. 17절에서는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다윗을 붙잡으셨습니다.
다윗이 높아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왕의 권력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꿉니다. 실제로 그는 강한 원수에게서 벗어나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높아짐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내가 디딜 자리를 넓혀 주셔서 내 발목은 흔들리지 않았고시편 18:37 · 두루새김
20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넓은 곳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발 디딜 곳 자체를 넓혀 주십니다.
구원은 한 번의 탈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건짐받은 사람이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붙드시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원수에게 쫓기던 사람이 이제 원수를 뒤쫓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청동 활」이 청동으로 만든 실제 활을 가리키는지, 청동으로 보강한 활이나 매우 강한 활을 묘사하는 시적 표현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원문의 동사 형태에도 해석의 여지가 있어 활이 굽혀지는 모습이나 두 팔이 활을 다루는 모습을 달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34절도 특정한 도피 사건을 직접 가리킨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망하던 사람이 원수를 뒤쫓다
나는 원수들을 뒤쫓아 따라잡았습니다. 그들을 끝장낼 때까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시편 18:38 · 두루새김
시편 18편에서 가장 강렬한 반전이 일어나는 부분입니다.
18절에서 원수들은 다윗보다 강했습니다. 그러나 38절에서 다윗은 그들을 따라잡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시인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은 오늘의 독자에게 불편함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빻아 버리고 거리의 진흙처럼 쏟아 버렸습니다.시편 18:43 · 두루새김
이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자기 원수를 끝까지 제거하라고 가르치는 도덕적 지침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던 적들에게서 벗어나 왕으로 세워진 다윗이, 자신의 승리를 하나님의 구원과 연결하여 돌아보는 왕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본문의 폭력적인 언어를 모두 상징으로 바꾸어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 긴장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 전체가 다윗의 모든 전쟁 행위나 모든 왕의 폭력을 무조건 옳다고 평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시편 18편의 승리 언어를 오늘날 개인적 보복이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본문의 역사적 성격과 성경 안의 다른 증언들을 무시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단락 안에는 또 하나의 대조가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살려 달라 외쳐도 구할 이가 없었고 여호와야훼께 외쳐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시편 18:42 · 두루새김
7절에서 다윗은 괴로울 때 여호와야훼를 불렀고, 하나님은 그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같은 부르짖음이지만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 맥락에서 하나님은 억압받는 다윗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를 공격하던 자들의 호소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모든 기도를 언제나 거절하신다는 보편적 원리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과 원수들의 특정한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판결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다윗의 승리는 개인적인 원수와의 싸움을 넘어섭니다.
당신은 백성의 다툼에서 나를 빼내시고 여러 민족의 우두머리로 세우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던 백성이 나를 섬겼고시편 18:44 · 두루새김
「백성의 다툼」을 이스라엘 내부의 갈등으로 한정할지, 여러 집단과의 충돌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읽을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결과는 분명합니다. 다윗 한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내신 사건이 그의 통치와 연결되고, 그 통치가 여러 민족과의 관계로 넓어집니다.
낯선 나라 사람들은 시들어 갔고 틀어박혀 있던 성에서 떨며 나왔습니다.시편 18:46 · 두루새김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는 성이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던 성에서 떨며 나옵니다.
다윗이 의지한 성과 그들이 의지한 성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이는 고대 왕의 승리를 노래하는 문맥이며, 모든 민족 관계가 영원히 그런 방식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구절은 아닙니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일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는 시는 적의 패배를 매우 강한 언어로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모든 원수에게 정당한 방식으로 행동했다는 객관적 역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1–12장에서 다윗이 권력을 이용하여 저지른 악은 엄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44절의 「백성의 다툼」은 원문이 말들의 관계를 짧게 압축해 놓았기 때문에 읽기가 갈립니다.
다윗 한 사람의 구원에서 그의 자손에게 이어지는 인애까지
여호와야훼는 살아 계십니다! 나의 바위이신 분이 찬양받으시기를, 나를 구하시는 하나님이 높아지시기를!시편 18:47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살아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제 바위이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의 고백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피하기 위한 바위가 아닙니다. 이미 구원을 경험하고 승리를 돌아보는 사람이 찬양하는 바위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시고 여러 백성을 내 아래 굴복시키셨으며시편 18:48 · 두루새김
여기서 「저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시고」라는 표현은 다윗이 자기 사적인 분노를 마음껏 풀었다는 뜻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래 전체에서 그는 자신을 위협하던 강한 원수에게서 구원받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적대하던 자들에게 판결을 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 여러 민족 가운데서 당신께 감사하며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겠습니다.시편 18:50 · 두루새김
앞에서는 민족들이 다윗에게 복종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그 민족들 가운데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는 왕이 등장합니다. 왕이 얻은 권력과 승리는 그 자체가 최종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마지막 절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을 넘어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자기 왕을 크게 구원하시고 기름 부으신 이에게, 다윗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시편 18:51 · 두루새김
처음에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으로 등장합니다.
「자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이」로 옮긴 히브리어(מָשִׁיחַ)는 본래 기름 부음을 받아 특별한 직분을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문맥에서는 직접적으로 다윗 왕을 가리키며, 곧이어 그의 자손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처음부터 후대의 특정 인물만을 가리키는 말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뒤를 이을 자손을 세우시고, 그의 왕국과 왕위를 굳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7:15에서는 다윗의 뒤를 이을 왕에게서 자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거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8:51의 「한결같은 사랑」은 그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것이 다윗의 후손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보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사무엘하 7:14는 다윗의 뒤를 이을 왕이 잘못을 저지를 경우 징계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죄와 책임의 문제를 지워 버리는 면허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변함없이 충실한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는 말이며, 26절에서도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열왕기의 기록은 다윗 왕조의 죄와 심판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한결같은 사랑과 왕조가 겪는 현실적인 위기 사이의 긴장은 시편 89편에서 깊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신약에서 로마서 15:9는 시편 18:50을 직접 인용하여 여러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신약은 다윗의 자손에게 이어지는 왕권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읽습니다(누가복음 1:32–33). 이 가운데 시편 18:50과 로마서 15:9는 직접적인 인용 관계이며, 다윗 왕조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왕권은 성경 전체를 통해 이어지는 더 넓은 연결입니다. 시편 18편 자체의 역사적 출발점은 여전히 다윗의 구원과 왕권, 그리고 그의 자손에게 이어질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뻗어 내려온 손
시편 18편을 마지막까지 읽고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새롭게 보입니다.
다윗은 처음에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으로 시작된 노래가 다윗과 그의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노래의 더 근본적인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을 오늘의 개인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약속으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전쟁 승리와 왕권은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산을 받치는 기초를 뒤흔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을 휘어 내리고 내려오시며, 커룹을 타고 바람의 날개 위로 날아오르십니다. 천둥은 그분의 목소리가 되고 번개는 그분의 화살이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웅장한 이미지의 중심에는 17절의 짧은 장면, 「그분은 높은 곳에서 손을 뻗어 저를 붙잡으시고, 큰 물에서 저를 건져 내셨습니다」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물을 가르지 못했습니다. 거센 물살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원수들을 물리칠 힘도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를 붙잡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는지를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시편의 마지막에서 다윗은 여러 민족 가운데 서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의 발은 더 이상 죽음의 밧줄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를 삼킬 듯 밀려오던 큰 물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강하게 만든 그 손을 잊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뻗어 내려와 자신을 붙잡으셨던 하나님의 손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