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6–11장 · 봉인과 나팔의 심판
달콤한 말씀과 쓰라린 배
요한계시록 10장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봉인해 두고, 그것을 기록하지 마라」는 명령입니다(10:4). 다른 하나는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서 다 먹어라」, 그리고 「많은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많은 왕들에 관해 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10:9, 11). 한쪽에서는 들은 것을 전하지 말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받은 것을 반드시 전하라고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라고 해서 하나님이 아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어떤 말씀은 듣고도 기록하지 못하고, 어떤 말씀은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여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예언자의 사명은 모든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에 충실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앞 장에서 재앙을 겪고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9:20–21), 마지막 나팔은 아직 울리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기대를 잠시 멈추고, 예언을 전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지금까지 요한은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자신이 환상 안으로 들어가 두루마리를 받아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사람에서, 그 말씀을 자기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입고 내려온 천사
나는 또 다른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구름을 두르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해 같았고, 두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요한계시록 10:1 · 두루새김
요한계시록에는 여러 천사가 등장하지만, 이 천사의 모습은 특별합니다. 하나하나가 낯익은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16에서 예수님의 얼굴은 힘껏 빛나는 해처럼 묘사되었습니다. 4:3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1:7에서는 예수님께서 구름과 함께 오시는 모습이 선포되었습니다.
불기둥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출애굽기 13:21–22).
이 천사의 모습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구약의 이미지들이 겹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사는 예수님 자신일까요?
실제로 그렇게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천사의 얼굴이 해 같다는 표현은 1장의 예수님을 강하게 떠올리게 하고, 구름과 무지개 역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존재를 분명히 「또 다른 힘센 천사」라고 부르며, 6절에서 그는 자신이 아닌 영원히 살아 계신 창조주를 두고 맹세합니다. 요한계시록 5:2에도 힘센 천사가 등장했으므로, 이 천사 역시 하나님의 권위를 전달하는 특별한 사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어느 쪽인지를 분명하게 판정하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님 자신인지, 예수님의 영광을 비추는 천사인지는 논의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천사가 무엇을 가지고 내려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천사의 손에 있는 작은 두루마리
손에는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을 바다 위에, 왼발을 땅 위에 디뎠습니다.요한계시록 10:2 · 두루새김
천사는 바다와 땅을 동시에 밟고 서 있을 만큼 거대한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 하나가 있습니다.
거대한 몸과 작은 두루마리가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런데 두루마리는 이미 펼쳐져 있습니다.
5장에서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가 일곱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누구도 그것을 열 수 없었지만, 죽임당하셨으나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열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이제 10장에서는 다른 천사가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두루마리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해석은, 예수님께서 인장을 여셨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계획이 열려 전달된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두루마리로 이해하는 해석은, 5장의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장 환상이 펼쳐지는 과정에, 10장의 작은 두루마리는 요한에게 새롭게 맡겨지는 예언의 말씀에 연결된다고 봅니다. 본문은 두루마리가 같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한쪽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장면 사이에는 분명한 흐름이 있습니다. 5장에서는 누가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지가 문제였고, 10장에서는 누가 열린 두루마리를 받아서 전할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열어 드러내는 권위에서, 그 드러난 뜻을 세상에 전해야 할 책임으로 초점이 옮겨갑니다.
천사가 밟고 선 바다와 땅은 세계의 주요 영역을 함께 나타냅니다. 곧 이어지는 맹세에서도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언급됩니다. 천사의 자세는 그가 전할 하나님의 선언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 관계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나중에 요한에게 주어지는 사명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는 한 마을이나 한 민족에 관한 예언만이 아니라, 많은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많은 왕들에 관해 예언해야 합니다.
천사가 딛고 선 넓은 세계가, 마지막에 요한이 전해야 할 말씀의 범위로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작은 두루마리」(βιβλαρίδιον)는 책이나 두루마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의 작은 형태입니다. 5장의 예수님과 10장의 요한은 계시 앞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임당하셨으며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하나님께 속하도록 사셨기에 두루마리를 여실 자격을 가지신 분이고, 요한은 두루마리를 스스로 열어 그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펼쳐진 두루마리를 받아 먹는 종입니다. 이 둘을 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감추어진 채 끝나지 않고, 그 목적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예언자에게 맡겨집니다.
일곱 천둥이 말했지만, 요한은 기록하지 못했다
천사는 사자가 울부짖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외치자 일곱 천둥이 자기들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요한계시록 10:3 · 두루새김
사자의 울부짖음은 단순히 큰 소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존재들을 긴장시키고 두렵게 만드는 권위와 힘이 느껴집니다. 구약에서는 이와 같은 이미지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자가 부름받는 일에 연결됩니다.
특히 아모스 3:7–8이 그렇습니다. 아모스 3:7에서 예언자는 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밀을 종인 예언자들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사자가 울부짖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0장에서도 같은 요소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사자의 울부짖음이 나오고(10:3), 하나님의 비밀이 언급되며(10:7), 하나님의 종인 예언자들이 등장하고(10:7), 마지막에는 요한에게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10:11). 사자라는 비유 하나가 닮은 것이 아니라, 아모스의 예언과 연결되는 여러 요소가 한 장 안에 모여 있습니다.
아모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자를 움직이게 하듯,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씀은 요한을 다시 예언하도록 이끕니다. 그래서 사자의 울부짖음은 천사의 위엄을 드러내는 소리일 뿐 아니라, 앞으로 요한에게 맡겨질 예언의 사명을 예고하는 소리로도 들립니다.
그런데 그 외침에 응답하듯 일곱 천둥이 말합니다.
천둥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말을 한다
천둥이 친다고 하지 않고, 일곱 천둥이 「자기들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요한에게 천둥은 의미 없는 큰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소리가 말한 내용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기록하려고 합니다.
시편 29편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천둥과 연결됩니다. 시편 29:3–9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가리키는 표현은 일곱 차례 반복되고, 그 소리는 물 위에 울리며 백향목을 부러뜨리고 광야를 흔듭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천둥도 이러한 이미지와 연결하여, 하나님의 위엄 있는 말씀이 천둥처럼 들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편 29편을 직접 인용했다고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뜻밖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일곱 천둥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봉인해 두고, 그것을 기록하지 마라.」요한계시록 10:4 · 두루새김
요한은 쓰려고 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듣는 사람인 동시에, 그것을 기록하여 교회에 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1:11에서는 자신이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반대의 명령을 받습니다.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봉인해 두고」라는 표현은 다니엘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니엘 12:4에서 다니엘은 마지막 때까지 말씀을 간직하고 책을 봉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말씀을 책으로 남기되 봉하라는 명령을 받고, 요한은 일곱 천둥이 말한 내용을 아예 기록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왜 그 내용을 감추어야 했을까요?
본문은 이유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했으므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곱 재앙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런 재앙이 실제로 무엇인지, 왜 기록하지 못하게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요한은 들었지만, 독자는 그 내용을 전달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책 안에도 하나님이 드러내지 않으신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제목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아시는 모든 미래의 사건과 모든 비밀이 빠짐없이 기록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숫자 하나마다 역사적 날짜를 짝짓고, 환상 하나마다 특정한 사건을 찾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요한 자신도 기록하도록 허락받지 않은 말씀이 있습니다. 일곱 천둥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신에 차서 설명하는 것은 본문의 명령을 거스르는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본문에 더 충실한 읽기입니다.
그런데 이제 천사는 감추어진 말씀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비밀이 완성될 때는 가까워지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더는 지체가 없을 것이다
바다 위와 땅 위에 서 있던 그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습니다.요한계시록 10:5 · 두루새김
이 장면은 다니엘 12:7과 매우 가깝습니다. 다니엘이 본 아마포 옷을 입은 사람은 강물 위에서 양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다와 땅 위에 서 있는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들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맹세의 내용은 다릅니다.
다니엘 12장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등장하고, 정해진 기간에 대한 답이 주어집니다. 요한계시록 10장에서는 이제 더는 늦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다니엘서의 질문이 언제 끝나는가에 가깝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마침내 하나님의 일이 완성되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선언이 강조됩니다.
시간이 사라진다는 뜻일까?
천사는 영원히 살아 있는 이를 두고 맹세했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지으신 분입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더는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요한계시록 10:6 · 두루새김
그리스어 원문은 크로노스(χρόνος) 우케티(οὐκέτι) 에스타이(εἰμί)로, 글자 그대로 옮기면 「더 이상 시간이 없을 것이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것을 시간 자체가 사라지는 선언으로 이해한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할 그때가 언급되듯,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설명하는 시간 표현이 여전히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더 이상 늦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고, 두루새김의 「이제 더는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이러한 문맥에 따른 해석을 반영합니다.
천사가 맹세하는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천사는 지금 세계 전체에 관한 선언을 하려 합니다. 앞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선 자세가 나타났고, 이제 맹세 속에서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창조주가 선포됩니다.
곧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보증은 세계의 일부를 다스리는 신이 아니라, 온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이 그분의 창조에 속한다면, 세계 전체의 완성 또한 그분의 권한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 완성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할 그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인 예언자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하신 그대로다.」요한계시록 10:7 · 두루새김
이 절의 핵심 표현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리스어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은 사람이 지혜를 짜내어 풀어야 하는 암호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약의 여러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가 그분의 계시를 통해 알려지는 뜻이나 계획을 가리킵니다.
이 비밀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이어지는 11:15가 도움이 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는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선포가 들립니다. 따라서 10:7의 하나님의 비밀은 마지막 재앙 하나가 발생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 곧 하나님의 다스림과 목적이 마침내 드러나고 완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장 자체는 그 세부 내용을 모두 설명하지 않고, 이어지는 환상들을 통해 그 의미가 더욱 펼쳐질 것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비밀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쁜 소식과 연결합니다. 「기쁜 소식으로 전하신」(εὐαγγελίζω)에 해당하는 원문의 동사는 좋은 소식을 전하다, 복음을 알리다라는 뜻입니다.
심판이 이어지는 요한계시록에서 왜 이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를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세력에게는 그 소식이 기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와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완성하신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단순히 숨겨진 정보를 공개하는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언자들에게 알려 주신 하나님의 뜻이 마침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다시 아모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모스 3:7에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종인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시고, 요한계시록 10:7은 그 예언자들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마침내 완성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예언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기술이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이 세상을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지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 목적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완성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선언이 끝난 뒤, 이야기의 방향이 갑자기 작아집니다.
바다와 땅을 딛고 선 천사, 창조주를 두고 한 맹세, 하나님의 비밀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주제에서, 이제 한 사람이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는 장면으로 옮겨갑니다. 세계 전체에 관한 선언이 한 사람의 입과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로마서 16:25–26에서 바울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드러난 비밀이 예언자들의 글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알려졌다고 말하고, 에베소서 3:4–6에서는 그 비밀이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도 함께 약속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이 예들을 곧바로 10:7의 비밀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이 일곱째 나팔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전하신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또 7절의 「다 이루어질 것이다」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는 문맥인데도 이미 이루어진 일을 나타내는 부정과거형 동사가 쓰였습니다. 이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내는 예언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동사의 형태만으로 모든 사건이 실제로 이미 끝났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먹으라고 하신다
앞서 하늘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요한에게 말합니다. 바다 위와 땅 위에 서 있는 천사의 손에서 「펼쳐진 두루마리를 받아라」.
그런데 요한은 조금 뜻밖의 행동을 합니다.
나는 그 천사에게 가서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내게 말했습니다. 「받아서 다 먹어라. 그것을 먹으면 네 속이 쓰릴 것이다. 하지만 입에서는 꿀처럼 달 것이다.」요한계시록 10:9 · 두루새김
지금까지 요한은 환상의 대부분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직접 움직입니다.
천사에게 다가갑니다.
말을 건넵니다.
두루마리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습니다.
이 장면에서 요한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계시를 받는 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에스겔이 먼저 먹었던 두루마리
이 장면의 가장 중요한 구약 배경은 에스겔 2:8–3:3입니다. 에스겔은 처음 예언자로 부름받을 때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봅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안팎으로 슬픔의 노래와 탄식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령하시고, 그것을 먹은 에스겔은 입에서 꿀처럼 달았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0장에도 두루마리, 먹으라는 명령, 꿀처럼 단맛, 그리고 예언의 사명이라는 요소가 함께 나타납니다.
에스겔 3:1에서는 두루마리를 먹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말하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말씀을 먹어야 할까요?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은 몸 밖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입으로 들어가 몸속으로 옮겨지고,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그 말씀이 밖에서 전달받은 정보로만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 말씀은 예언자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 됩니다.
에스겔은 두루마리를 먹은 후에 이스라엘에게 말해야 했고, 요한도 두루마리를 먹은 후에 많은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많은 왕들에 관해 다시 예언해야 합니다. 먹는 행위는 예언을 준비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에스겔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요한이 먹은 두루마리는 달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썼다
나는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다 먹었습니다. 입에서는 꿀처럼 달았지만, 먹고 나니 속이 쓰렸습니다.요한계시록 10:10 · 두루새김
하나님의 말씀이 왜 달면서 동시에 쓰린 것일까요?
단맛과 쓰라림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입에 들어왔을 때는 달았지만, 그것이 몸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속이 쓰립니다.
시편 119:103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다고 고백하고, 에스겔에게도 두루마리는 꿀처럼 달았습니다. 입에서 느끼는 단맛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자체의 귀함과 기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이 쓰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루마리에 담긴 예언의 내용이 심판과 고통을 포함하기 때문이라는 읽기와, 그 말씀을 거부하는 세상에 전하면서 예언자가 겪어야 할 고통 때문이라는 읽기가 있습니다. 본문은 속이 쓰린 정확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쓰라림을 어느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들일 때 기쁘지만,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달콤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두루마리가 처음부터 쓴 것이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단맛이 속의 쓰라림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거부하는 세상의 현실과, 그 약속이 완성되기 전에 겪어야 할 고난을 바라보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요한은 달콤한 부분만 먹고 쓴 부분은 남겨 둘 수 없습니다.
그는 두루마리 전체를 먹습니다.
여기서 일곱 천둥과 작은 두루마리의 대조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일곱 천둥의 말은 요한이 들었지만 기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두루마리의 말씀은 요한이 받아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은 알고 있어도 전해서는 안 되고, 어떤 말씀은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서 받을 수 없습니다.
예언자의 자유는 자신이 전할 내용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는 말씀을 주시는 분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쓰라림을 심판의 내용으로 보는 읽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구원과 승리를 선포하면서도 악에 대한 심판과 세상의 고난을 함께 알린다는 데 근거합니다. 예언자의 고통으로 보는 읽기는 에스겔의 경험에 근거합니다. 에스겔은 두루마리를 먹은 뒤 고집을 부려 말씀을 듣지 않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지고(에스겔 3:7), 자신의 영이 격해지고 쓰라린 상태로 가게 됩니다(3:14). 요한계시록에서도 앞 장의 사람들은 심판을 겪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쓰라림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고난을 피해 이루어지지 않으며, 예수님께서는 죽임당하셨으나 살아 계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고난 속에서 충성을 지키도록 부름받습니다. 다만 10장은 요한이 실제로 어떤 박해를 당할 것인지, 쓰라림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뜻하는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왜 다시 예언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많은 왕들에 관해 다시 예언해야 한다.」요한계시록 10:11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매우 짧지만, 10장 전체가 향하던 목적지입니다. 천사는 땅과 바다를 밟고 섰고, 일곱 천둥이 말했으며, 창조주를 두고 한 맹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모든 사건은 마지막에 요한에게 하나의 사명을 맡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 말을 하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10:8에서는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10:9에서는 천사가 직접 말했는데, 10:11의 원문에서는 그들이 요한에게 말했다는 복수 표현이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나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로 옮겼습니다.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으므로, 핵심은 요한에게 주어진 명령의 내용입니다.
예언을 다시 한다는 것은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라는 말은 요한이 이전에도 예언의 사명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요한은 이미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을 기록했고, 하늘의 보좌와 예수님, 인장과 나팔에 관한 환상을 전했습니다. 본문은 새로운 명령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이 사명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롭게 맡겨지는 사명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요한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지켜보았지만, 그 심판을 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예언자의 사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앞 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예언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을 없애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인간이 끝없이 거절해도 반드시 계속 경고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에게 주어진 것은 특정한 예언의 사명입니다. 다만 이 장면에서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고집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한은 다시 말씀을 맡습니다.
민족과 언어뿐 아니라 왕들에게도
요한계시록에서 백성과 민족과 언어를 나열하는 표현은 인류의 다양한 집단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5:9에서는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각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속하도록 사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10:11에서는 「많은 왕들」이 특히 눈에 띕니다. 앞으로 전해질 말씀은 여러 민족의 일반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지배의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도 관계됩니다. 이 책은 누가 하나님께 경배하는가를 묻는 동시에, 세상을 다스린다고 주장하는 권력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가를 계속해서 묻습니다. 왕과 제국의 권력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는 앞으로 펼쳐질 환상에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예언해야 한다」는 말은 여러 민족과 왕들을 직접 찾아가 연설하라는 구체적인 여행 명령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문맥의 그리스어 전치사는 그들을 대상으로 또는 그들에 관하여 예언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고, 두루새김의 「관해」는 예언의 내용이 그들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한다는 뜻을 잘 드러냅니다.
천사가 서 있던 세계 전체가 요한의 예언이 관계할 세계가 됩니다. 하지만 그 넓은 세계에 관한 말씀은 먼저 작은 두루마리의 모습으로 요한에게 주어졌습니다.
입에서는 꿀처럼 달았는데
요한계시록 10장은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비밀이 곧 완성될 것이라고 맹세했지만, 정작 이 장의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천사가 아닙니다.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요한입니다.
요한은 일곱 천둥의 말을 듣고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라는 명령은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밝히지 않으신 것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와, 이미 주어진 말씀을 자신의 삶과 분리하지 않는 태도를 함께 요구합니다. 우리가 알도록 허락된 말씀은 단순히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이제 요한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가, 더 이상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수 없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많은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많은 왕들에 관해 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마지막 명령이 주어집니다. 이 장은 요한이 실제로 다시 예언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지 않고, 그 명령 앞에서 끝납니다.
처음에는 바다와 땅을 딛고 선 거대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일곱 천둥의 소리가 울렸고, 영원히 살아 계신 창조주를 두고 맹세하는 선언이 들렸습니다. 그 모든 웅장한 장면이 지나간 뒤, 이제 남은 것은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먹은 사람입니다.
그의 입에는 꿀처럼 단맛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속은 쓰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예언해야 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