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왕이 된 솔로몬

평화의 시대, 성전을 짓는 사람들

열왕기상 5장에는 두 가지 풍경이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는 평화로운 왕국의 풍경입니다. 주변 나라들이 솔로몬에게 예물을 바치고, 백성은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다른 하나는 거대한 건축 현장의 풍경입니다. 레바논의 숲에서는 나무를 베고, 사람들은 그것을 바다로 운반합니다. 산에서는 커다란 돌을 캐내고, 수많은 일꾼이 짐을 나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에서 삼만 명을 강제로 일에 동원합니다.

이 두 풍경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노동과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집을 짓기 위해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입니까?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75장 본문 읽기 →

모든 왕국을 다스리는 왕과 포도나무 아래의 백성

열왕기상 5:1–5 본문 →

본문은 솔로몬의 통치 범위를 먼저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유프라테스강에서 블레셋 땅과 이집트 국경에 이르는 모든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 왕국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에게 예물을 바치며 그를 섬겼습니다.열왕기상 5:1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그 강」(⁨נָהָר⁩)이라고 부르며, 문맥상 유프라테스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프라테스강은 고대 서아시아의 중요한 지리적 경계였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실 때에도 등장합니다(창세기 15:18).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이 솔로몬 시대의 왕국을 통해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본문은 여러 왕국이 예물을 바치며 솔로몬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이는 솔로몬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본토와, 예물을 바치며 그의 우위를 인정하는 주변 왕국들 사이에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솔로몬이 딥사에서 가자까지 유프라테스강 서쪽 전역과 그곳의 모든 왕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변 모든 지역과 평화를 누렸습니다.열왕기상 5:4 · 두루새김

딥사는 일반적으로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딥사와 연결되고, 가자는 블레셋 지역의 가자를 가리킵니다. 원문에서는 「강 건너편」(⁨עֵבֶר⁩)이라고 표현하지만, 어느 쪽을 기준으로 건너편이라고 하는지는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문맥에 따라 「유프라테스강 서쪽 전역」으로 옮겼습니다.

솔로몬의 시대 내내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았습니다.열왕기상 5:5 · 두루새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무엘서에서도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사무엘상 3:20; 사무엘하 3:10).

왕의 통치가 넓은 지역에 미쳤다는 사실이 이제 백성의 삶으로 옮겨 옵니다.

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인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작물입니다.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그 열매를 누리며, 외부의 침략이나 폭력에 쫓겨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백성은 왕의 포도나무 아래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왕국의 평화가 왕궁의 안전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26:6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평화의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땅에 평화를 주시고, 백성이 누워도 두렵게 할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가 4:4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고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않을 때를 바라봅니다. 스가랴 3:10도 사람들이 서로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는 날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평화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더 온전한 평화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왕의 관점에서 평화는 주변 세력이 복종하고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백성의 관점에서 평화는 자기 삶의 터전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입니다. 두 모습은 서로 연결되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왕국이 강하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평화의 표지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왕국을 유지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왕의 식탁과 말의 구유 — 번영의 크기를 보여 주는 숫자들

열왕기상 5:6–8 본문 →

본문은 솔로몬 왕궁에서 하루 동안 필요한 먹을거리를 매우 자세히 기록합니다.

솔로몬의 왕궁에서 하루에 쓰는 먹을거리는 고운 밀가루 삼십 코르와 보통 밀가루 육십 코르, 살진 소 열 마리와 풀밭에서 기른 소 스무 마리, 양과 염소 백 마리였습니다. 이 밖에도 사슴과 가젤과 노루와 살찌운 새들이 있었습니다.열왕기상 5:2–3 · 두루새김

이것은 솔로몬 개인의 식사량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왕의 식탁과 그곳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하루 먹을거리의 규모를 보여 줍니다.

고운 밀가루와 보통 밀가루가 구별되고, 살진 소와 풀밭에서 기른 소가 구별되며, 기른 가축 외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왕궁에 공급되는 먹을거리가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종류도 다양했음을 보여 줍니다.

매일 이만큼의 먹을거리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생산하고 거두고 운반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지방관들은 각자 맡은 달에 솔로몬 왕과 왕의 식탁에서 먹는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을 대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했습니다.열왕기상 5:7 · 두루새김

여기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했습니다」라는 표현은 행정이 제 역할을 했음을 보여 줍니다. 왕궁에 먹을 것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식탁만 관리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투용 수레를 끄는 말들을 위한 마구간 사만 칸

솔로몬에게는 전투용 수레를 끄는 말들을 위한 마구간 사만 칸과 말을 탄 병사 만 이천 명이 있었습니다.열왕기상 5:6 · 두루새김

말에게도 먹이가 필요하고, 그것을 돌볼 사람과 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말과 빠른 말들에게 보리와 짚을 공급했다고 기록합니다. 군사력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노동도 커집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왕이 전투용 수레와 군사적 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위험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열왕기상 5장은 여기서 솔로몬이 그 명령을 어겼다고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가 그의 군사적 번영을 무조건적인 축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성경적 기준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 본문은 그 모든 규모를 능가하는 또 하나의 선물로 시선을 옮깁니다.

왕이 소유한 먹을거리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숫자에는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5:6의 두루새김이 따르는 히브리어 본문은 사만으로 전하지만, 같은 내용을 다루는 역대하 9:25에는 사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숫자가 더 오래된 전승을 보존하는지는 이 두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군대에서 쓰는 말의 수를 구체적인 역사적 통계로 단정하기보다는, 이 본문이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강조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넓은 마음

열왕기상 5:9–14 본문 →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아주 뛰어난 판단력, 바닷가의 모래처럼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열왕기상 5:9 · 두루새김

열왕기상 4:20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솔로몬의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넓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반복이 의도적으로 연결되었다면, 매우 아름다운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도록 세우신 왕에게, 그 백성의 크기와 다양함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이해, 판단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폭넓게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3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이제 서술자는 그 마음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 넓음은 한 번의 어려운 재판을 해결하는 능력에 머물지 않습니다.

동방과 이집트의 지혜를 넘어선다는 말

솔로몬의 지혜는 동쪽 나라 사람들의 모든 지혜와 이집트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습니다.열왕기상 5:10 · 두루새김

이집트와 고대 서아시아에는 오래전부터 지혜와 교훈을 전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특히 왕과 관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훈 문학이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나라들과 이집트의 지혜보다 뛰어났다는 말은 그의 능력을 국제적으로 알려진 지혜 전통들과 비교하여 높이 평가하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은 에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들인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를 비롯한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웠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변의 모든 민족에게 알려졌습니다.열왕기상 5:11 · 두루새김

그들이 어떤 지혜의 업적으로 명성을 얻었는지는 이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역대상 2:6에는 같은 이름들이 유다의 계보에 등장하지만, 두 본문의 인물들을 모두 같은 사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왕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큰 군대나 넓은 영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혜가 그 이유로 제시됩니다.

백향목에서 히솝까지, 세상을 살펴보는 지혜

그는 잠언 삼천 개를 말했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나 되었습니다.열왕기상 5:12 · 두루새김

잠언은 인간의 행동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짧고 기억하기 쉬운 말로 표현하는 지혜의 한 형식입니다. 노래는 지혜와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솔로몬은 단순히 재판을 잘하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관찰과 생각을 말과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백향목부터 담벼락에서 자라는 히솝까지 여러 식물에 관해 말했습니다.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들과 물고기에 관해서도 말했습니다.열왕기상 5:13 · 두루새김

레바논의 백향목은 크고 웅장한 나무로 유명했습니다. 왕궁과 성전 건축에 사용할 만큼 가치 있는 목재를 제공했습니다. 반면 히솝은 담벼락에서도 자라는 작은 식물입니다.

이 나열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한 생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의 생물과 하늘의 새, 물의 생명체들이 솔로몬의 관찰 대상이 됩니다.

지혜는 인간의 문제를 판단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 다양함을 이해하는 일로도 넓어집니다. 솔로몬은 백향목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었고, 이제 그 백향목으로 성전을 지으려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와 그 안의 자원을 활용하는 지혜가 한 이야기 안에 놓여 있습니다.

지혜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

모든 민족에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의 지혜에 관한 소식을 들은 세상의 모든 왕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열왕기상 5:14 · 두루새김

예물을 바치러 오는 사람과 지혜를 들으러 오는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왕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앞의 사람은 정치적 지배 관계 안에 있고, 뒤의 사람은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관심 때문에 찾아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영향력이 군사적·정치적인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는 그의 후손을 통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창세기 12:3; 22:18). 이 구절을 그 약속의 완전한 성취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의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다른 민족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알려지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이방 왕은 단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실제로 협력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방 왕의 입에서 나온 여호와야훼 찬양

열왕기상 5:15–21 본문 →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신하들을 보냅니다.

히람과 다윗의 관계는 사무엘하 5:11에서도 등장합니다. 히람은 다윗에게 사절과 백향목, 건축 기술자들을 보내 왕궁을 짓는 일을 도왔습니다. 이 관계가 다윗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짓지 못한 집을 솔로몬이 짓는 이유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 아버지 다윗은 사방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원수들을 제 발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성전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열왕기상 5:17 · 두루새김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그는 자신이 백향목 궁전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는 천막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는 일을 맡기지 않으시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이 그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2–13).

솔로몬은 이제 자신의 시대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제게 사방에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맞서 싸우는 적도 없고 재난도 없습니다.」열왕기상 5:18 · 두루새김

다윗 시대의 전쟁을 지나 이제 평안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을 지으려 합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업적이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평안과 약속 위에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내 이름을 위한 성전」

「그래서 저는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제 아버지 다윗에게 『내가 너를 이어 네 왕좌에 앉힐 네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한 성전을 지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열왕기상 5:19 · 두루새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시고, 그분의 권위와 자신을 알리시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성전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곳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특별한 장소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는데 자신이 지은 집이 어떻게 하나님을 담겠느냐고 말합니다(열왕기상 8:27). 그렇다면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거처가 부족하여 그분께 집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이 그분께 나아오도록 하시는 예배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왕의 궁전은 왕의 권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한 성전은 그 왕 자신도 섬겨야 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인정한 자신의 부족함

「그러니 일꾼들에게 명령하여 저를 위해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게 해 주십시오. 제 일꾼들도 당신의 일꾼들과 함께 일할 것입니다. 당신의 일꾼들이 일한 대가는 말씀하시는 대로 모두 드리겠습니다. 저희 가운데 시돈 사람들만큼 나무를 벨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당신도 아십니다.」열왕기상 5:20 · 두루새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모든 일을 혼자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백향목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성전에 사용할 목재로 준비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들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없는 전문 기술을 인정하고, 그것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는 일도 지혜로운 통치에 속합니다.

시돈 사람들은 두로와 같은 페니키아 해안 지역의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나무를 베는 기술에 뛰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이 제안은 외국의 왕과 숙련된 일꾼들의 역할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히람은 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는가?

히람은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분께서 다윗에게 이 많은 백성을 다스릴 지혜로운 아들을 주셨다.」열왕기상 5:21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이스라엘 밖의 사람에게도 드러나고, 그 사람의 입에서 여호와야훼를 향한 찬양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짓기 위한 협력이 시작되는 순간, 아직 성전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이방 왕의 입에서 여호와야훼를 향한 찬양이 나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세워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성전의 벽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본문에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이유가 다윗을 둘러싼 전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22:8과 28:3에서는 다윗이 많은 피를 흘리고 전쟁을 치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설명이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두 설명은 서로 구별되지만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맞서 싸우는 적」으로 옮긴 사탄(⁨שָׂטָן⁩)은 이 문맥에서 특정한 초자연적 존재의 고유 이름이 아닙니다. 반대하거나 적대하는 자를 뜻하는 일반적인 낱말입니다. 또한 두루새김이 「재난도 없습니다」로 옮긴 말은 솔로몬 시대에 어떤 악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도덕적인 선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과 적대 세력이 없다는 앞의 말과 함께, 국가를 위협하는 불행한 사건이나 위험이 없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12:10–11과 깊이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고, 하나님께서 사방의 원수들에게서 쉼을 주셔서 안전하게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기로 선택하신 곳에서 예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람의 찬양만으로 히람이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완전히 바꾸어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높이며 솔로몬의 지혜와 왕권을 긍정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다를 건너온 나무와 두 왕 사이의 언약

열왕기상 5:22–26 본문 →

히람은 솔로몬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백향목뿐 아니라 사이프러스 목재도 대 주겠다고 말합니다. 백향목은 오래 견디는 성질과 향기로 알려진 귀한 목재입니다.

문제는 이 나무들을 어떻게 예루살렘까지 가져오느냐입니다.

「제 일꾼들이 레바논에서 바다까지 나무를 내려보낼 것입니다. 저는 그 나무들을 뗏목으로 묶어 당신이 알려 주는 곳까지 바다로 보내고, 그곳에서 풀어 놓겠습니다. 그러면 가져가십시오. 당신도 제가 원하는 대로 제 왕궁에 먹을 것을 대 주십시오.」열왕기상 5:23 · 두루새김

히람의 나라는 해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을 비롯한 페니키아 도시들은 바다를 이용하는 활동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운송 계획은 히람이 가진 지리적 조건과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솔로몬의 왕국은 성전을 세울 장소와 건축을 추진할 자원과 일할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왕은 서로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모아 하나의 건축 사업을 진행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을 세우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원이 이스라엘 한 나라 안에만 모여 있지는 않았습니다.

백향목과 밀, 두 왕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

히람은 목재를 대 주는 대신 자기 왕궁에 먹을 것을 대 달라고 요청합니다. 솔로몬은 해마다 밀 이만 코르와 올리브를 찧어 얻은 기름 이십 코르를 줍니다.

앞에서는 여러 나라가 솔로몬에게 예물을 바치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히람과의 관계에서는 서로 의논하고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일이 중심에 놓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다른 나라들과 모두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히람과 솔로몬은 평화롭게 지냈고, 서로 조약을 맺었습니다.열왕기상 5:26 · 두루새김

앞에서 솔로몬의 지혜는 자연 세계에 관한 지식과 여러 나라에 알려진 명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의 왕과 협력하여 중요한 일을 추진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지혜는 사람을 재판하는 능력이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일을 이루어 가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솔로몬과 히람이 맺은 조약의 모든 조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재와 양식을 계속 주고받는 평화로운 협력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국제 협력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서술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왕들이 조약을 맺은 뒤 실제로 나무와 돌을 준비해야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성전의 기초 아래 놓인 수많은 사람의 노동

열왕기상 5:27–32 본문 →

솔로몬 왕은 온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을 강제로 일에 동원했습니다. 동원된 사람은 삼만 명이었습니다.열왕기상 5:2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앞에서 보여 준 평화의 풍경과 긴장을 일으킵니다.

솔로몬은 사방에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방 왕과 평화롭게 지내며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삼만 명을 강제로 일에 동원합니다.

왕은 이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돌아가며 레바논으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한 달은 레바논에, 두 달은 자기 집에 있었습니다. 아도니람이 이들을 감독했습니다.열왕기상 5:28 · 두루새김

그러나 이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공정하고 만족스러운 제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어떤 보수를 받았는지, 가족들의 생활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노동 조건이 어떠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국이 평화를 누리는 동안에도 백성의 노동은 나라의 필요를 위해 동원될 수 있었습니다.

아도니람은 앞 장의 높은 관리들 명단에서도 강제 노동을 맡은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열왕기상 4:6). 이제 그가 맡은 일이 실제로 어떤 일과 연결되어 있는지 드러납니다.

짐을 나르는 사람과 돌을 떠내는 사람

솔로몬이 동원한 사람들은 삼만 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솔로몬에게는 짐을 나르는 사람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캐는 사람 팔만 명이 있었습니다.열왕기상 5:29 · 두루새김

여기에 감독관 삼천삼백 명이 더해집니다. 이 숫자들은 건축 사업의 규모를 보여 줍니다. 레바논에서 나무를 베는 일뿐 아니라, 돌을 캐고 옮기며 다듬는 일에도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수단이 정당해지는가?

열왕기상 5장은 솔로몬이 노동자들을 학대했다고 직접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만으로 성전 건축 현장의 모든 노동이 부당한 착취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근거를 넘어섭니다. 동시에 본문에 강제로 시키는 노동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지우고, 모든 사람이 자원하여 즐겁게 건축에 참여했다고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짓는 목적이 거룩하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에게 노동을 요구하는 방식이 언제나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특히 열왕기상 12:4에서 북쪽 지파들이 솔로몬 시대의 무거운 멍에와 힘겨운 노동에 대해 호소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장의 노동 동원을 단순히 나라가 번영했다는 증거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나중에 불만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지금 등장하는 모든 노동 조건이 똑같이 가혹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두 본문은 서로 다른 시점의 사실을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신 분입니다(출애굽기 20:2).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이방인과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레위기 19:9–18, 33–34; 신명기 24:14–15). 이러한 율법의 배경에서 성전 건축을 읽으면, 건축물의 목적과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신앙의 질문이 생깁니다.

이 장은 솔로몬의 노동 동원이 그 가르침을 모두 충족했는지 직접 판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실제로 행한 일을 본문이 말하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 왕에게 요구하셨던 기준에 비추어 그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성전의 거룩함을 이야기하면서 그 성전을 짓는 사람들의 삶을 보지 않는다면, 본문이 기록한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건축자들의 손에서 준비되는 집

왕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성전의 기초에 놓을 크고 값비싼 다듬은 돌을 캐냈습니다.열왕기상 5:31 · 두루새김

「값비싼」 돌이라는 말은 여기서 보석을 뜻한다기보다, 건축에 사용할 만큼 가치 있고 질 좋은 돌을 가리킵니다. 큰 돌을 캐내고 정해진 형태로 다듬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솔로몬의 건축 일꾼들과 히람의 건축 일꾼들과 그발 사람들이 돌을 다듬고, 성전을 지을 나무와 돌을 준비했습니다.열왕기상 5:32 · 두루새김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는 말은 왕으로서 그 사업을 명령하고 추진했다는 뜻입니다. 실제 건축에는 다양한 사람의 노동과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왕의 계획이 사람들의 실제 노동을 통해 건축의 재료로 바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람들을 「강제로 일에 동원했습니다」라고 옮긴 자리의 히브리어는 마스(⁨מַס⁩)입니다. 이는 나라가 사람들에게 의무로 시키는 노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자유로운 고용 계약을 통해 일하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그렇다고 이 삼만 명이 모두 평생 노예로 살았다고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바로 다음 절에 이들의 근무 방식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칠만 명과 팔만 명에 대해 열왕기상은 이 절에서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이스라엘 땅에 사는 외국인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다루는 역대하 2:17–18에서는 솔로몬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외국인들의 수를 세고, 그들 가운데 짐을 나르는 사람과 돌을 캐는 사람들을 배정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5장이 직접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출신보다 많은 사람이 조직을 이루어 성전 건축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발은 페니키아 해안의 성읍으로, 일반적으로 비블로스와 연결됩니다. 에스겔 27:9에서도 그발 사람들은 두로의 배를 수리하는 기술과 관련하여 등장합니다.

끝맺음 — 아직 세워지지 않은 성전의 기초 앞에서

열왕기상 5:1–32 본문 →

열왕기상 5장은 평화로운 왕국에서 시작하여 건축 현장에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전은 왕의 지혜로 준비되었지만, 왕의 손만으로 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은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방법을 직접 명령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전을 짓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만으로 노동자들의 형편을 살펴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아직 성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기둥도 세워지지 않았고, 지성소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언약궤가 그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있는 것은 나무와 돌입니다.

솔로몬과 히람의 건축 일꾼들, 그발 사람들은 큰 돌을 다듬고 나무를 준비합니다. 아직 아무도 그 돌 위에 완성된 성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기초가 될 돌을 캐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5장은 바로 그 현장에서 끝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은 이제 비로소 땅 위에 세워질 준비를 마쳤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