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의 입에서 들리는가

신명기 18장에는 서로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쪽에는 앞날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징조를 살피고, 점을 치고, 죽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일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씁니다.

다른 한쪽에는 예언자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미래의 비밀을 찾아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말씀을 넣어 주시고, 그는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합니다.

겉으로 보면 두 부류 모두 사람이 직접 알 수 없는 것을 알려 주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이 둘을 엄격하게 구별합니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신명기 18장의 핵심은 미래를 얼마나 정확히 알아맞히느냐가 아닙니다. 누가 말씀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장은 곧바로 점술과 예언자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먼저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지파처럼 나누어 받을 땅이 없습니다. 대신 여호와야훼께서 친히 그들의 몫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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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야훼께서 친히 그들의 몫이 되십니다

신명기 18:1–5 본문 →

땅을 나누어 받지 못하는 사람들

1절은 레위 지파에 관한 특별한 규정으로 시작됩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비롯한 레위 지파 전체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몫으로 나누어 받을 땅이 없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불로 바치는 제물과 그분께 속한 몫을 받아 먹어야 한다.」신명기 18: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각 지파에게 물려받을 재산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땅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 먹고살고 후손이 삶을 이어 가는 데 중요한 바탕입니다.

이것이 레위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나 개인 재산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수기 35:1–8은 다른 지파들이 받은 땅에서 레위 사람들이 살 성읍과 그 주변의 목초지를 제공하도록 합니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 가운데서 땅을 물려받지 못한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야훼께서 친히 그들의 몫이시다.」신명기 18:2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몫이 되신다는 말에는 실제 생활을 위한 질서가 뒤따릅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을 맡으며, 그 일에 따라 정해진 제물과 예물의 몫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몫이 되신다는 사실은 현실의 생계와 동떨어진 영적인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몫으로 구별된 사람들의 생활을 공동체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까지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받아야 할 것은 호의가 아니라 정해진 몫입니다

「백성이 짐승을 제물로 잡아 바칠 때 제사장에게 주어야 할 몫은 이렇다. 소든 양이든 염소든, 그 짐승의 앞다리와 양쪽 턱과 먹이를 소화하는 위를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신명기 18:3 · 두루새김

레위기 7:28–36에서는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제물의 몫으로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가 나옵니다. 신명기 18장의 목록은 그 규정과 같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신명기 18:3을 「백성이 짐승을 제물로 잡아 바칠 때」라고 옮겼습니다. 원문에서 이 말이 제사로 바치는 짐승을 잡는 경우만을 뜻하는지, 일반적으로 먹기 위해 짐승을 잡는 경우까지 포함하는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신명기 12:15–16은 제사를 드리지 않고도 각 성읍에서 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허용합니다. 이 규정과 18:3을 함께 읽으면, 제사장의 몫이 먹기 위해 짐승을 잡는 경우에도 적용되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원문의 표현 자체는 두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므로, 이 규정이 정확히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 특별히 마음이 내킬 때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3절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할 몫」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과 함께 정해진 권리입니다.

왜 곡식과 포도주뿐 아니라 양털도 주어야 하는가

「너희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의 첫 몫, 양과 염소에게서 깎은 털의 첫 몫도 제사장에게 주어라.」신명기 18:4 · 두루새김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은 농사를 지어 얻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에게서 깎은 털은 가축을 기르며 얻는 것입니다. 음식이 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옷과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까지 포함됩니다.

이스라엘은 거두고 생산한 것 가운데 먼저 구별한 것을 제사장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생산물이 완전히 확보되고 자기 가족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사용한 다음, 남은 것 가운데 일부를 나누라는 방식과 다릅니다.

제사장의 몫이 공동체의 생활에서 미리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모든 지파 가운데서 제사장을 선택하여, 그와 그의 아들들이 늘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을 맡게 하셨기 때문이다.」신명기 18:5 · 두루새김

그의 권리는 그에게 맡겨진 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제사장과 레위 지파 전체를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그러나 원문에서 이 둘을 나란히 놓았다는 사실만으로 레위 지파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제사장의 일을 맡는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18:1–7은 아론 계열 제사장과 다른 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을 구별합니다. 신명기 18:3–5 역시 제사장이 받는 몫과 섬기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셨다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도 공동체의 질서 안에 놓여 있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레위 사람도 같은 몫을 받아야 합니다

신명기 18:6–8 본문 →

「간절히 원해서」 찾아오는 사람

6절에서는 한 레위 사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어느 성읍에 살던 레위 사람이든, 간절히 원해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곳으로 오면,」신명기 18:6 · 두루새김

히브리어 원문은 말 그대로 그의 영혼의 모든 바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가 강하게 원하여 그곳으로 온다는 뜻입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서서 섬기는 다른 레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다.」신명기 18:7 · 두루새김

이 규정은 선택된 곳에서 이미 섬기고 있는 사람들과 새로 찾아온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룹니다. 기존에 섬기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독점하여 다른 레위 사람의 참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 역시 정해진 일에 따라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다른 몫을 받아도 되는가

「그도 다른 레위 사람들과 똑같은 몫을 받아 먹어야 한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팔아 얻은 것은 그 몫과 별개이다.」신명기 18:8 · 두루새김

일반적으로 조상에게서 받은 재산을 팔아 얻은 소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지만, 원문의 짧은 표현만으로 재산의 정확한 종류나 팔게 된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을 그런 의미로 읽으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새로 찾아온 레위 사람이 자기 집안에서 얻은 별도의 소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때문에 섬기는 일에 따라 받아야 할 몫을 줄여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재산에서 얻은 소득과 공동체가 맡은 일에 따라 정해 놓은 몫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가 맡은 일에 따른 권리는 별도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제 본문은 전혀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듯 보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점술과 주술을 금지하십시오 — 알 수 없는 것을 알려는 욕망

신명기 18:9–14 본문 →

이스라엘은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하는가

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면, 그곳 민족들이 하는 역겨운 일을 배워서 따라 하지 마라.」신명기 18: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의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이스라엘이 경험하지 못한 여러 관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민족들이 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똑같이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종교적 행위를 배우고 따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10–11절은 그 행위들을 나열합니다. 자녀를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일, 점을 치는 일, 좋고 나쁜 운을 점치거나 징조를 보고 점치는 일, 주술을 부리고 주문을 거는 일, 죽은 사람의 영이나 점치는 영에게 묻는 일, 죽은 사람에게 답을 구하는 일입니다.

자녀를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는 다른 본문에서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과 연결됩니다. 열왕기하 16:3과 21:6에도 이러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다만 신명기 18:10은 자녀를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한다고 말할 뿐, 그 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어지는 점술과 징조 해석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보이지 않는 뜻을 알아내려는 행위들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죽은 사람의 영에게 묻거나 죽은 사람에게 답을 구하는 일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그와 관련된 영적 대상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행위들을 가리키는 말들이 정확히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모두 분명하지 않습니다. 서로 겹치는 의미를 지닌 표현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근하고, 거기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지식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이런 행위가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본문은 점을 치거나 죽은 사람들에게 묻는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합니다.

수확이 잘될지, 전쟁에서 이길지, 가족이 무사할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미리 알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점술과 징조 해석은 그런 불확실성에 답을 얻으려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 문제는 단지 미래를 알려고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닙니다.

누구에게 묻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얻으려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와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다른 민족들이 사용하는 점술과 주술을 배워 그곳에서 삶의 방향을 찾으려 한다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벗어나 다른 권위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 됩니다.

「온전히 충실하여라」라는 말의 의미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충실하여라.」신명기 18:13 · 두루새김

여기서 타밈은 온전함, 완전함, 흠이 없음을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문맥에서 「온전히 충실하여라」라고 옮겼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여러 신이나 영적 권위를 오가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구하지 않고,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속하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7: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 맡기고 누구의 말씀을 따를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충실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몰아낼 민족들은 좋고 나쁜 운을 점치는 사람들과 점을 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른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신명기 18:14 · 두루새김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요?

「나와 같은 예언자」 —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을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신명기 18:15–19 본문 →

금지 명령 뒤에 약속이 이어집니다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가운데서, 너희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너희를 위해 세워 주실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따라라.」신명기 18:15 · 두루새김

이 말씀은 바로 앞의 점술 금지와 대조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방식으로 뜻을 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와 함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말씀의 통로를 마련하실 것인지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예언자의 권위는 그가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맡기셨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셔서 섬기게 하신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맡은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 일의 출발점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왜 모세와 같은 예언자여야 하는가

15절에서 모세는 그 예언자를 「나와 같은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는 어떤 점에서 모세와 같아야 할까요?

「이것은 너희가 호렙에 모였던 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요청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때 너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목소리를 더는 듣지 않게 해 주시고, 이 큰 불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간청했다.」신명기 18:16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신명기 5:23–27에서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자신들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기를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두려움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이 옳다.』」신명기 18:17 · 두루새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려움을 단순히 믿음이 없는 태도로 몰아붙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맞게 말씀을 전할 사람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그들을 위해 세우겠다. 내가 전할 말을 그의 입에 넣어 주겠다. 그는 내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신명기 18:18 · 두루새김

적어도 이 문맥에서 그가 모세와 같은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역할에 있습니다.

예언자의 입에 넣어 주신다는 말

출애굽기 4:12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이 모세의 입과 함께하시며 무엇을 말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9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는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며 자신의 말을 그의 입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말씀을 맡기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예언자의 권위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예언할 권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해야 합니다.

점치는 사람은 정해진 방법이나 의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보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가 제시하는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로 하신 것을 받습니다.

말씀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와 같은 예언자」는 한 사람인가, 여러 예언자인가

15절과 18절에서는 예언자가 단수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미래에 나타날 특정한 한 사람을 예고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가운데 계속 나타날 예언자들이 맡을 일을 말한 것일까요?

두 읽기가 반드시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18장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길이 열릴 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모세와 같은 특별한 예언자를 향한 기대를 남기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언자를 알아보는 일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내가 직접 책임을 묻겠다.』」신명기 18:19 · 두루새김

그러므로 그가 전하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일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의견을 거절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거부가 됩니다.

바로 다음 절부터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를 엄격하게 경계합니다. 따라서 19절의 책임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사람의 이름이나 지위가 말씀의 진실성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 말이 정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조금 더 깊이

그가 모세와 같은 모든 능력과 권위를 똑같이 가진다는 뜻까지 이 구절에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민수기 12:6–8은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다른 예언자들의 경험과 구별합니다. 또한 20–22절은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 약속을 예언자가 맡는 일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단수 표현이 어떤 부류의 대표적인 한 사람을 가리키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특정한 한 예언자에 대한 약속으로 읽는 근거도 있습니다. 모세는 단수형으로 「나와 같은 예언자」를 말하고, 하나님께서도 「너와 같은 예언자」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더욱이 신명기 34:10은 모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돌아봅니다. 다만 34:10은 특히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아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 구절은 모세의 특별한 지위를 말하는 것이며, 18장이 약속한 예언자들의 역할을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3:22–23에서 베드로는 신명기 18:15–19을 인용하며 예수님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7:37에서도 스데반은 모세가 예고한 예언자를 언급합니다. 이는 신명기의 약속을 예수님께 연결하는 신약의 분명한 해석입니다. 다만 신명기 18장 자체를 읽을 때에는 이 후대의 적용에 곧장 도달하기보다, 먼저 이스라엘이 모세 이후에도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신다는 본문의 약속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지만 하나님이 보내지 않으신 사람

신명기 18:20–22 본문 →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20절은 거짓 예언자에 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않은 것을 감히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신명기 18:20 · 두루새김

어떤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1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전할 말을 예언자의 입에 넣어 주십니다. 20절에서는 예언자가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 것을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뒤에서는 사람이 그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28장에서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립은 이 문제를 잘 보여 줍니다. 하나냐는 바벨론의 억압이 곧 끝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말이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신 말씀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예레미야 28:15–17은 하나냐가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예언자의 말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쁘거나 위로가 되는지는 그 말이 참된지를 판단하는 충분한 기준이 아닙니다. 그 말이 누구에게서 왔는지가 중요합니다.

20절은 고대 이스라엘이 언약에 따라 지키던 법질서 안에서 거짓 예언자에게 내리는 형벌을 분명히 밝힙니다. 오늘날에는 이 본문의 사형 규정을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집행할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너희는 마음속으로 『여호와야훼께서 하시지 않은 말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신명기 18:21 · 두루새김

그 질문은 믿음이 없다는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예언자의 말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지 살필 수 있는 기준이 주어집니다.

「예언자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말했는데 그 말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 예언자가 제멋대로 한 말이니,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신명기 18:22 · 두루새김

여기서 기준은 예언자의 자신감이나 말솜씨가 아닙니다. 그가 말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언자의 말이 참된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 줍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은 언제나 거짓인가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제나 거짓 예언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18:7–10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어떤 민족을 뽑아 버리고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셨더라도, 그 민족이 악에서 돌아서면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실 수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반대로 어떤 민족을 세우고 심겠다고 말씀하셨더라도, 그들이 악을 행하면 약속하신 좋은 일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요나서 3장도 그 예를 보여 줍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자 하나님께서는 예고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근거로 요나가 거짓 예언자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요나의 선포는 니느웨가 돌이키도록 하는 하나님의 경고였고, 그 경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결과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명기 18:22을 적용할 때에는 예언의 성격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조건 없는 선언인지, 회개나 순종을 요구하는 경고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반드시 참된 것인가

어떤 사람이 한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예언자일까요?

신명기 13:2–6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예언자나 꿈꾸는 사람이 표징을 제시하고 그 표징이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도, 그가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한다면 그의 말을 듣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8:22은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말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반면 신명기 13장은 어떤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말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확정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예언자의 말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가 백성을 어느 하나님에게로 이끄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거짓 예언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앞으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거스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말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음이 드러난다면, 그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참된 예언자가 전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을 물으십니다(19절). 그러나 거짓 예언자의 말에는 그런 권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의 권위를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22절은 참되지 않은 예언이 드러났을 때 그 예언자의 권위에 굴복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 절 자체가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한 개인에게 처형할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그의 말이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자기 자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참된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신명기 18장은 두 경우 모두에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기준으로 삼도록 가르칩니다.

맺음 — 불 가운데서 들려오던 목소리

신명기 18:1–22 본문 →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자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이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은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듣고 따르는 일입니다.

호렙의 불 앞에서 백성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말씀을 잃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전할 말을 사람의 입에 넣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남은 일은 그 말씀이 참으로 여호와야훼에게서 온 것인지 분별하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 듣는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