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9장
이 장의 자리 · 12–26장 · 새 땅에서 지킬 규정
정의는 분노보다 먼저 길을 마련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숲으로 들어갑니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입니다.
한 사람이 도끼를 들어 나무를 내려칩니다. 그 순간 쇠 도끼날이 빠져나가 옆에 있던 사람을 맞힙니다. 그 사람은 죽고 맙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이 죽일 뜻이 없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가족이 그 사실을 믿어 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도망쳐야 합니다.
그를 뒤쫓는 사람은 죽은 이의 가까운 친척입니다.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 그 친척은 누군가가 자기 가족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 모세는 뜻밖의 명령을 내립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마련하고」. 아직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죽을지도 모르고, 누가 도망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리 길을 마련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정의는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처벌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처벌받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분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이웃의 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정의를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19장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어떤 질서가 세워져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앞 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를 구별하는 기준을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가리고, 정당한 판결을 내리는 문제로 시선을 옮깁니다.
성읍을 정하기 전에 길부터 마련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가장 먼저 준비할 것
1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후의 상황을 바탕으로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의 민족들을 없애시고,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여 그들의 성읍과 집에서 살게 되면,」신명기 19:1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 다른 민족들을 없애는 일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신명기는 이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는 사건의 일부로 설명합니다. 그 정복에 따르는 폭력은 따로 살펴야 할 중요한 해석 문제로 남지만, 이 장이 곧이어 다루는 것은 죄 없는 사람이 그 땅 안에서 죽임당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차지하라고 주시는 그 땅 안에 성읍 셋을 따로 정하여라.」신명기 19:2 · 두루새김
이 성읍들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도피성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마련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몫으로 주실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라. 사람을 죽인 이는 누구나 그곳으로 달아날 수 있게 하여라.」신명기 19:3 · 두루새김
도피성은 성벽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까지 살아서 도착할 수 있는 길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세 성읍은 어디에 있었는가
신명기 4:41–43에서 모세는 이미 요단 동쪽에 세 성읍을 따로 정했습니다. 르우벤 지파의 땅에 있는 베셀, 갓 지파의 땅에 있는 길르앗의 라못, 므낫세 지파의 땅에 있는 바산의 골란입니다. 따라서 19:2에서 명령하는 세 성읍은 앞으로 요단 서쪽 가나안 땅에 마련할 도피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0:7–8에서는 요단 서쪽에 게데스와 세겜과 헤브론이 지정됩니다. 동쪽의 세 성읍과 합하면 모두 여섯 성읍입니다. 민수기 35:13–15 역시 도피성을 여섯 곳으로 규정합니다.
이렇게 여러 지역에 성읍을 마련하는 이유는 어느 한곳에만 피신할 기회를 집중시키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에 따라 보호받을 가능성이 지나치게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제도는 실제로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아가는지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도끼날이 빠져 사람이 죽었다 — 죽음의 결과와 죽일 의도는 다르다
법이 구체적인 사고를 이야기하는 이유
4절은 도피성에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을 밝힙니다.
「사람을 죽인 이가 그곳으로 달아나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는 이렇다. 전부터 미워하지 않던 이웃을 뜻하지 않게 쳐서 죽인 경우이다.」신명기 19:4 · 두루새김
본문은 단지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만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죽인 사람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를 살핍니다.
5절의 도끼 사고는 이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사례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사람은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쇠 도끼날이 빠져나가 이웃을 맞혔고,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무를 베려던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죽었습니다. 그 죽음은 실제이며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죽인 사람을 일부러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했더라도, 그 결과에 이른 사람의 의도와 행동이 같지 않다면 책임도 똑같이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사람의 원수를 갚을 가까운 친척은 누구인가
「죽은 사람의 원수를 갚을 가까운 친척이 분노에 휩싸여 그를 뒤쫓을 수 있다. 성읍을 정하고 길을 마련하는 것은, 피신할 곳까지 길이 너무 멀어 그가 붙잡혀 죽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전부터 그 이웃을 미워하지 않았으므로 사형을 받아서는 안 된다.」신명기 19:6 · 두루새김
죽은 사람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의 죽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친척 집단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정확한 판결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길이 멀다는 이유로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
6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표현은 「피신할 곳까지 길이 너무 멀어」입니다. 도피성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도망치는 사람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힐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남은 사람에게 사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원수를 갚을 가까운 친척이 그를 붙잡아 죽인다면, 정당한 사형의 근거가 없는 사람이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35:12은 도피성이 공동체 앞에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도피성은 재판을 피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정당한 판단의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본문은 분노한 사람에게 단지 침착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노한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 결과를 막을 제도를 마련합니다.
도피성은 아무에게나 열려 있었는가
민수기 35:15에서는 도피성이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그곳에 자리 잡고 사는 외국인과 그들 가운데 머무는 외국인에게도 제공된다고 밝힙니다. 신명기 19장 자체는 피신자의 출신에 관한 모든 세부 규정을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의 같은 주제를 다루는 규정과 함께 읽으면, 이 제도가 단순히 특정한 지파의 사람만을 위한 보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히브리어 원문은 쇠 부분이 「나무에서」 빠져나갔다고 표현합니다. 이 나무가 도끼의 나무 자루인지, 베고 있던 나무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도끼날이 자루에서 떨어져 나와 사람을 맞혔다는 이해입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도끼가 나무를 치는 과정에서 쇠 부분이 튀거나 빗나간 상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땅이 넓어지면 보호할 길도 넓혀야 한다
왜 성읍을 세 곳 더 정해야 하는가
8–9절에서는 도피성의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땅을 넓혀 주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히 지키며 그분의 길을 걸으면 성읍 세 곳을 더 정해야 합니다. 땅이 넓어지는 것과 언약에 대한 순종이 함께 제시된 조건부 규정입니다.
이때 추가로 마련해야 할 성읍이 실제 역사에서 언제 어디에 지정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 20장이 이름을 밝히는 도피성은 모두 여섯 곳이며, 신명기 19:8–9의 조건에 따라 별도의 세 성읍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그 기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땅이 넓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복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그 복이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을 줄여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보호해야 할 범위를 넓힙니다.
땅이 넓어졌는데도 보호의 길이 그대로라면, 멀리 사는 사람은 가까이 사는 사람보다 더 큰 위험에 놓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커질수록, 그 복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할 책임도 함께 커져야 합니다.
「죄 없는 사람이 피를 흘려 죽는 일」은 누구의 죽음인가
「그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몫으로 주시는 땅에서 죄 없는 사람이 피를 흘려 죽는 일이 없게 하여라. 너희가 그 피를 흘린 책임을 지지 않게 하여라.」신명기 19:10 · 두루새김
사형을 받을 근거가 없는 사람이 원수를 갚으려는 친척에게 붙잡혀 죽는 일입니다. 이 문맥에서 「죄 없는 사람이 피를 흘려 죽는 일」은 바로 그러한 부당한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음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문제가 됩니다.
공동체가 부당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질서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그 죽음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경고하는 것은 부당한 보복으로 사람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도피성과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무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이 함부로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야 할 땅입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4:8–10에서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그의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는지 물으시고, 아벨의 피가 땅에서 자신에게 부르짖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억울하게 빼앗긴 생명과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드러냅니다. 신명기 19:10과 13에서 죄 없는 사람이 흘린 피와 그 피를 흘린 책임을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구약의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뒤 라멕은 자신에게 입힌 상처에 대해 훨씬 큰 보복을 선언합니다(창세기 4:23–24). 폭력은 쉽게 더 큰 폭력을 부를 수 있습니다. 신명기 19장은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한 법적 질서를 제시합니다.
도피성에 들어갔다고 모두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도끼 사고와 매복 살인의 대조
11절은 앞의 사례를 정반대로 뒤집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웃을 미워하여 숨어서 기다리다가 그를 덮쳐 죽인 뒤, 이 성읍들 가운데 하나로 달아나면,」신명기 19:11 · 두루새김
4절에서는 전부터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이 도피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입니다. 11절에서는 이웃을 미워했다는 사실이 고의적인 살인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렇게 신명기는 죽음의 결과뿐 아니라 그 이전의 관계와 행동을 살펴 책임을 판단하게 합니다.
도피성은 죄를 감추는 장소가 아니다
「그가 살던 성읍의 장로들은 사람을 보내 그를 그곳에서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를 죽은 사람의 원수를 갚을 친척에게 넘겨 죽임을 당하게 해야 한다.」신명기 19:12 · 두루새김
그의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판단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를 데려와야 합니다. 이 제도는 오늘날 범죄를 다루는 사법 제도와 매우 다르며, 사형 집행에 친척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피성은 우연한 사고로 사람을 죽인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고의적인 살인자가 그 제도를 이용해 책임을 피하려 한다면, 도피성의 목적이 뒤틀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책임을 피하는 수단으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라」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마라.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없애라. 그래야 너희가 잘될 것이다.」신명기 19:13 · 두루새김
이 명령은 모든 상황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버리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고의적인 살인이 확인되었을 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는 이유로 정해진 벌을 면제하지 말라는 법의 명령입니다.
본문의 엄격함은 분명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법은 이 경우 사형을 요구합니다. 그 벌을 현대의 독자가 그대로 정당하다고 평가해야 한다거나, 오늘날 집행할 권한을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노 때문에 죽일 이유가 없는 사람을 죽여서도 안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고의적인 살인의 책임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10절에서는 부당한 보복으로 죄 없는 사람의 피가 흘러서는 안 됩니다. 13절에서는 고의적인 살인으로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없애야 합니다. 두 구절은 서로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죄 없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보호가 있습니다.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 — 보이지 않는 약탈
왜 갑자기 땅의 경계가 등장하는가
14절은 앞의 긴 도피성 규정을 마친 뒤 짧은 명령을 제시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몫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앞선 세대가 정해 놓은 이웃 땅의 경계를 옮기지 마라.」신명기 19:14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 안에서 죄 없는 사람이 죽지 않도록 성읍과 길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땅 안에서 이웃의 몫을 침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명기에서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와 가족이 하나님께 몫으로 받아 물려주는 생활의 기반입니다. 그렇다면 경계석을 옮기는 일은 단순히 땅의 모양을 조금 바꾸는 행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몫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경계석 하나가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고대의 땅 경계는 오늘날처럼 정확한 땅 지도와 컴퓨터 기록으로만 관리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이나 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경계를 조금 옮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겉으로는 아주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한 가족이 소유한 밭은 줄어들고, 다른 가족의 밭은 넓어집니다. 땅에서 곡식을 거두어 생활하는 사람에게 밭의 크기는 수확과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더욱이 본문은 그 경계를 「앞선 세대가 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계를 옮기는 행위는 현재의 이웃에게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세대에서 정해 놓은 상속의 질서를 깨뜨리고, 그 가족의 후손이 물려받을 몫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잠언 22:28도 선조들이 세운 오래된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잠언 23:10–11은 고아의 밭을 침범하는 문제와 함께 경계석을 옮기는 일을 금지합니다.
자기 땅을 지킬 힘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경계를 옮길 때 제대로 맞서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재산을 보호하려면 경계를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분명한 규정이 필요합니다.
살인과 토지 경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살인은 이웃의 생명을 빼앗는 일입니다.
경계석을 옮기는 일은 이웃의 상속 재산을 빼앗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웃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의 생명뿐 아니라 그가 살아갈 기반까지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세는 한 가지 더 위험한 문제로 넘어갑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경계를 옮기지 않고도, 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거짓 증언을 통해서입니다.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정에서 말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가
15절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어떤 잘못이나 죄든, 증인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그 사람의 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증인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에 따라 확정해야 한다.」신명기 19:15 · 두루새김
17장에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건을 다루면서 두세 증인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떤 잘못이나 죄든」이라는 표현으로 여러 종류의 잘못과 혐의에 같은 원칙을 적용합니다.
누군가가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거짓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는 사건을 잘못 보고, 기억을 혼동하거나, 사실의 일부만 알면서 전체를 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한 사람의 말만으로 판결이 내려진다면, 재판받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증언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그만큼 책임이 따릅니다.
두세 증인이 있으면 언제나 충분한가
그렇다고 두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말이 반드시 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얻으려 했을 때, 이세벨은 나봇을 고발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두 사람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하고, 결국 나봇은 죽임당합니다. 증인의 숫자만 갖추었다고 해서 정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신명기 19:15은 혐의를 확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16–19절은 그 증언이 참된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증인의 숫자와 증언이 참인지의 문제는 서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나봇은 아합 왕에게 자기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넘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열왕기상 21:3).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의 권력이 끼어들면서 나봇은 거짓 증언으로 죽임당하고, 아합은 그의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침해되고, 거짓 증언이 사용되며, 죄 없는 사람의 피가 흘려집니다. 법이 존재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법을 뒤틀어 이용한다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법을 통해 죽임당할 수 있습니다.
거짓 증인에게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하려던 일을 돌려주라
거짓 증언은 다른 사람의 삶을 겨냥한 공격이다
16절에서는 단순히 잘못 기억하거나 착각한 증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고발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남을 해치려는 증인이 나서서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증언하면,」신명기 19:16 · 두루새김
거짓 증언에는 직접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행동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여 죄 없는 사람에게 형벌을 받게 한다면, 그 증언은 실제로 폭력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거짓 증언을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서로 다투는 그 두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에 나와, 그때 일을 맡고 있는 제사장들과 재판관들 앞에 서야 한다.」신명기 19:1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17:8–13의 어려운 재판에 관한 규정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 앞에」라는 표현은 재판이 단지 사람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 아래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재판관들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 증인이 동족을 거슬러 거짓 증언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신명기 19:18 · 두루새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판단할 때에도 철저히 조사해야 했습니다.
거짓 증언의 문제를 판단할 때에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신명기는 재판관이 종교적인 확신이나 맡은 자리의 권위만으로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조사해야 합니다.
왜 실제 피해가 아니라 꾀한 일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가 동족에게 받게 하려고 꾀한 벌을 그에게 내려라. 이렇게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라.」신명기 19:19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피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려고 계획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사형을 받게 하려고 거짓 증언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재판관들이 그 거짓을 밝혀내어 이웃이 처형당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거짓 증인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재산을 빼앗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재판관의 손을 빌려 그 일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실제로 입으로 내뱉은 말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말로 다른 사람에게 가하려던 해와 연결됩니다.
거짓 증언은 법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려는 시도입니다. 신명기는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책임을 묻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라」
「너희 가운데서 악을 없애라」라는 표현은 신명기에서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13:5과 17:7, 17:12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상숭배나 고의적인 살인뿐 아니라, 거짓 증언이라는 행위에 적용됩니다.
공동체를 해치는 것은 공개적인 폭력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말을 믿고 판단해야 하는 재판제도가 거짓 증언에 이용되는 일도 공동체를 해칩니다. 그러므로 거짓 증언에 대한 규정은 한 사건의 피해자만을 보호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정의로운 판결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질서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하여, 너희 가운데서 그런 악한 일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신명기 19:20 · 두루새김
「눈에는 눈으로」 — 보복을 허락하는 말인가, 처벌을 제한하는 말인가
가장 유명하지만 자주 문맥에서 떨어져 나가는 구절
신명기 19장은 다음 문장으로 끝납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라.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아야 한다.」신명기 19:21 · 두루새김
지금 모세가 다루는 사람은 거짓 증인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형벌을 받게 하려고 거짓 증언했습니다. 따라서 21절의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는 거짓 증언에 대한 형벌의 원칙을 설명하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분노에 따라 복수해도 된다는 허가가 아닙니다. 재판관들이 형벌을 판단하는 문맥에서 주어진 규정입니다.
왜 동일한 정도의 형벌을 요구하는가
이 표현은 흔히 동해보복법이라고 불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한 해에 맞는 처벌을 내린다는 원칙입니다. 출애굽기 21:23–25과 레위기 24:19–20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19장의 문맥에서는 실제로 입힌 상처뿐 아니라 거짓 증인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려고 의도한 해가 기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들려고 한 사람의 행동을 단순한 말실수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형벌은 재판관의 분노나 피해자의 복수심에 따라 끝없이 커져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해에 맞는 처벌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형벌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게 하는 원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으로」라는 문구 자체는 실제 몸의 부위에 맞추어 벌을 내리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를 처음부터 단순히 돈으로 보상하는 규정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 규정이 모든 사건에 실제로 몸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집행되었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그러한 구체적인 집행 방식을 모두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마지막에도 「불쌍히 여기지 마라」라고 말하는가
21절의 첫 문장은 13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13절에서는 고의적인 살인자를 불쌍히 여긴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1절에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거짓 증언한 사람에게 정해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고의적인 살인과 남을 해치려는 거짓 증언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의 권리를 무시한 채 가해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으로 정해진 법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38–42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규정을 인용하신 뒤 악에 대한 개인의 대응 방식을 새롭게 가르치십니다. 이는 신명기 19장의 재판 규정을 직접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복과 폭력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를 다루는 후대의 가르침입니다. 두 본문을 연결할 때에는 법정에서 형벌을 정하는 문제와 개인이 자신에게 행해진 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구별해야 합니다.
맺음 — 도피성으로 이어지는 길
분노가 잘못된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피성과 길을 마련하고, 욕심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를 지키게 하며, 거짓말이 부당한 판결로 이어지지 않도록 증언과 조사에 관한 규정을 세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사람의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때에도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질서로 나타나야 합니다.
나무를 베던 사람이 도끼를 휘둘렀습니다. 쇠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졌고, 함께 일하던 이웃이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압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가까운 친척은 분노하여 그를 뒤쫓을 수 있습니다. 그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외치는 말만이 아닙니다. 살아서 도착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미리 성읍을 정하고 길을 마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길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누가 도망쳐야 할지, 어느 가족이 슬픔을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를 때부터 마련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길은 사람의 분노가 정당한 판단보다 앞서 달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길입니다.
죽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의 생명까지 잃지 않도록 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땅에는 그런 길이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일이 정말 사고였는지, 고의적인 살인이었는지 가릴 수 있도록, 분노한 친척보다 먼저 정의로운 판단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에서 죄 없는 사람이 함부로 피를 흘려 죽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의 구체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