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12장 · 유다를 향한 경고

초막 위에 드리우는 하나님의 보호

이사야 4장은 불과 여섯 절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은 크게 뒤바뀝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내로 불리기를 구합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덮어 주십니다.

그 사이에는 하나님의 싹이 돋아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불리며, 더러워진 성읍이 씻겨 깨끗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읽는 시간 13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자기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사야 4:1 본문 →

그날에는 여자 일곱이 남자 하나를 붙잡고 말할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옷은 저희가 마련할게요. 그저 당신의 아내로 불리게 해 주세요. 저희의 수치를 없애 주세요.」이사야 4:1 · 두루새김

이사야 4장은 새로운 장이지만, 1절은 앞 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집니다.

3:25에서는 예루살렘의 남자들이 전쟁에서 쓰러졌고, 3:26에서는 성읍이 텅 빈 채 땅바닥에 앉았습니다. 4:1은 그 전쟁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보여줍니다.

3:6–7에서 사람들은 겉옷을 가진 남자를 붙잡아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에 먹을 것도 겉옷도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앞에서는 사람들을 돌볼 능력이 없는 남자에게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에게 생계를 책임질 부담도 지우지 않겠다며 그의 아내로 불리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람들이 정상적인 관계에 따르는 책임과 조건을 포기하면서까지, 무너진 삶을 붙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혼인과 가족 관계는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족에 속하는지와 생계, 자녀와 상속, 공동체 안에서의 지위가 함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1:10에도 혼인 관계 안에서 음식과 옷에 관한 책임이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4:1에서 여자들이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스스로 마련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보통 혼인 관계에서 기대하는 부양을 내려놓는 말로 들립니다.

「당신의 아내로 불리게 해 주세요」라는 요청은 단순히 호칭 하나를 얻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맺어진 관계를 통해 자신의 소속과 지위가 인정되기를 바라는 말입니다. 원문에서는 상대의 이름으로 불리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수치」 역시 당시 사회에서 혼인하지 못하거나 자녀를 두지 못하는 여성이 겪을 수 있었던 사회적 수치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일곱 여성이 모두 자녀가 없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공동체의 붕괴가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는지, 사람으로서 존중받는지, 어디에 속하는지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들의 간절한 요청 직후에 전혀 다른 말씀이 시작됩니다.

폐허에서 돋아나는 여호와야훼의 싹

이사야 4:2 본문 →

그날 여호와야훼의 싹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랑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이사야 4:2 · 두루새김

1절과 2절에는 모두 「그날」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절의 그날은 전쟁으로 무너진 공동체의 상처가 드러나는 날입니다. 2절의 그날은 아름다움과 영광이 나타나는 날입니다. 예언자는 「그날」이라는 표현을 통해 심판의 결과와 회복의 전망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구체적인 시간 간격이나 연대는 밝히지 않습니다.

싹은 작은 것입니다. 아직 나무도 아니고, 풍성한 열매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전에 보이지 않던 생명이 땅을 뚫고 나타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여줍니다.

싹과 열매는 서로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하나는 새로 자라나는 생명을, 다른 하나는 그 생명이 맺는 풍요로운 열매를 떠올리게 합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 남자들이 전쟁에서 쓰러진 성읍, 먹을 것과 입을 옷조차 부족한 사람들의 세계에 다시 생명이 나타납니다.

앞 장에서는 시온의 딸들이 화려한 장신구와 옷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아름다움이 수치와 상실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름다움과 영광이 다시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장식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야훼의 싹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우며, 땅의 열매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랑과 영광이 됩니다.

회복된 시온의 자랑은 사람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자신을 꾸몄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생명을 다시 자라나게 하셨는가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4:2의 「여호와야훼의 싹」을 미래에 나타날 특별한 통치자, 곧 메시아적 인물로 이해하는 읽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5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의로운 싹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사야 4:2 자체에서는 그 싹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땅의 열매」와 나란히 놓여 있기 때문에 식물과 풍요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이 절을 처음 읽는 단계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자라나게 하시는 생명과 회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읽기를 무조건 하나로 합칠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 4장 자체의 표현과 이후 성경에서 발전하는 싹의 이미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불리다

이사야 4:3 본문 →

시온에 남은 사람과 예루살렘에 남겨진 사람, 곧 예루살렘에서 살아갈 사람으로 기록된 이들은 모두 거룩하다고 불릴 것입니다.이사야 4:3 · 두루새김

여기에는 「남은 사람」, 「남겨진 사람」, 「살아갈 사람으로 기록된 이들」이라는 표현들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 무리를 뜻한다기보다, 심판 이후에도 예루살렘에서 살아가게 된 사람들을 여러 방향에서 묘사하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생존자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람들로 불립니다.

1절의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아내로 불리게」 해 달라고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의 수치가 없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3절의 사람들에게는 거룩하다는 새로운 호칭이 주어집니다.

그들이 누구인지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새롭게 정해집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갈 사람으로 기록된 이들」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32:32–33에서 하나님께 속한 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장면이나, 다니엘 12:1에서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표현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은 누가 어떤 책에 기록하는지, 그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이 우연히 남겨진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시온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심판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거룩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적었기 때문일까요?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절에서, 그들이 거룩하다고 불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씻으시는 하나님, 태우시는 하나님

이사야 4:4 본문 →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고, 예루살렘 안의 피를 씻어 없애시면,이사야 4:4 · 두루새김

이사야는 회복의 전망을 보여주면서도 예루살렘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는지 잊지 않습니다.

그 성읍은 씻겨야 합니다.

「시온의 딸들의 오물」은 앞 장에서 드러난 교만과 더러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루살렘 안의 피」는 성읍 안에서 벌어진 폭력과 죽음, 생명을 해친 죄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 1:15에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6에서는 그들에게 씻고 깨끗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4:4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씻으시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앞에서는 백성이 자신의 악한 행실을 버리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책임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시온의 더러움과 예루살렘 안의 피를 없애시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책임을 없애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실제로 여성들만이 예루살렘을 더럽혔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3장에서는 지도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서 빼앗은 것과 그들을 짓밟은 행위가 고발되었습니다. 따라서 4:4의 씻음은 시온 전체가 지닌 죄와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로 씻는가, 불로 태우는가?

하나님은 더러움을 씻어 없애십니다. 그런데 그 씻음은 단순히 표면을 닦아 내는 부드러운 행위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심판과 태움이 함께 등장합니다.

씻는다는 말은 오물이 없어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태운다는 말은 불순물이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두 이미지는 서로 다른 방법을 기계적으로 나열한다기보다, 하나님이 죄를 철저히 없애시는 행동을 강렬하게 묘사합니다.

앞서 이사야 1:25에서 하나님은 찌꺼기가 된 은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없애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제련은 성읍을 회복하기 위한 심판의 이미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씻으시는 것은 잘못을 보이지 않게 덮어 두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더럽힌 악을 실제로 없애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폭력과 불의를 심판하시는 바로 그 일이, 폭력과 불의로 병든 공동체가 새롭게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말이 심판의 고통을 가볍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불에 타고 씻겨 나가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상태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읍 위에 단순히 아름다운 덮개만 씌우지 않으십니다.

먼저 씻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רוּחַ⁩)는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을 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태우시는 영의 작용으로 읽을 수 있고, 심판하고 불태우는 강력한 바람이나 기운의 이미지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문만으로 이 구절이 정확히 어떤 물리적 현상을 묘사하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4절은 「씻어 없애시면」이라는 조건의 형태로 이어집니다. 히브리어 임(⁨אִם⁩)은 일반적으로 만일이라는 조건을 나타낼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씻어 내시는 일이 이루어진 뒤 이어질 결과를 소개하는 것으로도 이해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나님이 회복하실지 말지를 불확실하게 추측하도록 하기보다, 이어지는 거룩함과 보호가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광야의 구름과 불이 시온 위에 나타나다

이사야 4:5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 시온산의 모든 터와 그곳의 모임들 위에 낮에는 구름과 연기를, 밤에는 타오르는 불빛을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모든 영광 위에는 덮개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사야 4: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뒤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셨습니다(출애굽기 13:21–22). 또한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는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습니다. 광야의 여정 동안 낮에는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고 밤에는 그 구름 가운데 불이 있었습니다(출애굽기 40:34–38).

이사야가 보는 미래에서는 구름과 불이 「시온산의 모든 터와 그곳의 모임들 위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성전 안쪽의 한 장소에만 한정되어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온의 여러 장소와 그곳에서 모이는 사람들 위로 넓게 펼쳐집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모습보다, 하나님이 시온 위에 자신의 보호를 펼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보호의 현실을 만드십니다.

예루살렘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시온의 삶을 새롭게 감싸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영광이 나타난 시온 위에 보호하는 덮개가 드리워지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곳이 동시에 백성이 보호받는 장소가 됩니다.

이사야 2:19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과 빛나는 영광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의 영광 아래에서 사람들이 보호받습니다.

같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일이 죄와 교만을 심판하는 위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깨끗하게 된 백성을 지키는 보호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달라진 것은 그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의 상태입니다. 그들은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 씻겨 거룩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모든 영광 위에는 덮개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문장의 「영광」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시온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킬 수도 있고, 구름과 불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빛나는 임재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말씀하신 회복된 시온의 영광과 연결해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리키든, 여기서 덮개는 그 영광을 보호하고 감싸는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버려졌던 초막이 피난처가 되다

이사야 4:6 본문 →

그 덮개는 오두막이 되어 낮의 더위를 피할 그늘을 만들고, 폭풍과 비를 피해 숨을 곳이 될 것입니다.이사야 4:6 · 두루새김

오두막은 튼튼한 성이나 웅장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잠시 머물며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소박한 구조물입니다.

이사야 1:8에서 시온은 포도밭에 남은 오두막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그 오두막의 이미지는 외로움과 위태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때 번성하던 성읍이 넓은 밭 가운데 홀로 남은 임시 움막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장면의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1장에서는 오두막이 성읍의 처량한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4장에서는 오두막이 안전과 보호를 보여줍니다.

이 차이는 오두막 자체가 이전보다 더 튼튼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시온 위에 구름과 불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그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낮의 더위와 폭풍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는 자연의 위협입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그늘을 필요로 하고, 몸을 피할 곳을 필요로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삶을 그런 일상적인 보호의 이미지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더위 속에서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고, 폭풍과 비 속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그 영광은 사람들의 실제 삶과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그 덮개는 오두막이 되어」라고 옮겨, 5절의 덮개와 6절의 오두막을 하나의 보호 시설로 이어 읽습니다. 원문에서는 하나의 시설을 이어 묘사하는지, 서로 다른 보호의 이미지를 겹쳐 놓은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구절이 하나의 장면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시온의 회복은 무엇이 달라지는 일인가

이사야 4:1–6 본문 →

이사야 4장이 보여주는 회복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이전의 화려함을 되돌려 주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곳에 머무시며, 사람들이 그분의 보호 아래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들의 삶을 더럽힌 것을 씻으시고, 새 생명이 자라게 하시며, 그분이 함께 계시는 곳에 머물 수 있게 하십니다.

이사야가 보는 회복된 시온은 아무런 위험도 없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곳입니다.

이사야 4장은 그 약속을 거대한 궁전이나 성벽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작은 오두막 하나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두막 아래에 그늘이 있습니다. 뜨거운 낮에도 쉴 수 있고, 폭풍과 비가 몰아칠 때도 몸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구름과 타오르는 불빛이 있습니다.

한때 버려진 것처럼 보였던 오두막이 이제는 사람들을 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장은 그 오두막 위에 드리운 하나님의 보호를 보여주며 조용히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