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풀어 읽기 · 54장
이 장의 자리 · 40–55장 · 포로들에게 주는 위로
먼저 노래하라 하시는 하나님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에게 기뻐 외치라고 하십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징조가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여인에게 먼저 노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다음 명령도 이상합니다. 가족이 늘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천막을 넓히라고 하십니다.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하게 박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시온에게는 그 모든 일을 이루어 낼 힘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직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이며, 버림받은 아내이고, 폭풍에 시달려 위로받지 못한 도시입니다.
앞 장에서 한 종은 많은 사람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신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54장은 시선을 그 종에게서 시온으로 옮깁니다. 죄악과 고난의 이야기에 뒤이어, 회복된 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펼쳐 보입니다.
자녀가 없는 여인에게 천막을 넓히라고 하시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노래하라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여, 아이를 낳아 본 적 없는 너는 기뻐 외쳐라. 아이 낳는 진통을 겪어 본 적 없는 너는 기쁨의 함성을 터뜨리고 소리 높여 외쳐라. 홀로 남은 여자의 자녀들이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들보다 많기 때문이다.」이사야 54:1 · 두루새김
같은 현실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독자가 충분히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할수록 기뻐하라는 명령은 더욱 뜻밖으로 들립니다.
이사야 54장은 한 개인의 출산을 예고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맥상 이 여인은 시온, 곧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한 사람처럼 나타낸 존재입니다.
이사야 49:20-21에서도 시온은 자녀를 잃고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뜻밖에 많은 자녀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자신이 버림받고 홀로 남았는데 누가 이 자녀들을 낳아 주었느냐고 묻습니다.
54장은 그 장면을 더욱 대담하게 발전시킵니다.
시온은 단순히 잃어버린 자녀를 되찾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여인처럼 묘사됩니다. 이것은 포로 생활과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얼마나 깊은 단절로 경험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민족에게 후손은 미래가 계속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전쟁과 강제 이주, 도시의 파괴를 겪은 시온에게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을 것입니다.
미래가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공동체에 하나님이 다시 미래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창세기 11:30에서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셨고, 창세기 21장에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사야 51:2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부르시고 복을 주어 번성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신 것입니다.
54장은 그 약속의 방식을 시온의 미래에 적용합니다.
처음에 자녀가 없었던 사라에게 후손을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 미래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시온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약속하십니다. 이 비유는 실제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모든 개인에게 많은 자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보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모습과 출산은 황폐해진 시온과 공동체의 회복을 나타냅니다.
자녀가 오기 전에 집을 준비하라
2절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뀝니다.
「네 천막 자리를 넓혀라. 천막을 덮는 천을 아끼지 말고 펼치게 하여라.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이사야 54:2 · 두루새김
천막은 돌로 지은 집과 달리 필요에 따라 넓힐 수 있는 거처입니다. 천막을 크게 만들려면 덮개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지탱할 줄을 길게 늘여야 하고, 더 커진 천막이 무너지지 않도록 말뚝도 단단히 고정해야 합니다.
줄은 길게 늘여야 합니다. 그러나 말뚝은 더욱 단단해야 합니다.
천막을 넓히려면 더 많은 천과 줄이 필요합니다.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지금 가진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아끼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미래를 현재의 부족함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54장의 신뢰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태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삶의 자리를 준비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 명령을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사업을 확장하거나 큰 위험을 감수하라는 일반적인 지침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천막을 넓히는 근거는 시온에게 주어진 여호와야훼의 구체적인 약속입니다.
천막을 넓히기 때문에 자녀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천막을 넓힙니다.
후손들이 황폐한 도시들에 살게 될 것이다
3절은 천막을 넓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네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뻗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네 후손은 여러 민족의 땅을 차지하고, 황폐한 도시들에 사람이 살게 할 것이다.」이사야 54:3 · 두루새김
시온의 자녀들이 늘어나는 일은 단순히 한 가족의 규모가 커지는 일이 아닙니다. 황폐한 도시들에 다시 사람들이 살게 되는 일과 연결됩니다. 전쟁과 포로 생활은 건물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시온의 회복은 단순히 옛 건물을 복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시 그곳에 살며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 민족의 땅을 차지하고」라는 표현에는 살아갈 땅과 물려받을 몫이 넓어지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러한 말은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과 연결됩니다.
다만 이 구절이 이후 모든 시대의 신앙인에게 다른 민족의 땅을 무력으로 정복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시온의 후손과 삶의 터전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약속을 말합니다. 그 회복의 구체적인 정치적 경계나 역사적 과정까지 여기서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처럼 풍성한 미래를 약속하시면서도 곧바로 수치와 부끄러움의 문제를 말씀하실까요?
자녀가 많아지고 거처가 넓어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처가 시온에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53:10에서는 종이 후손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런데 54:1에서는 자녀가 없던 시온에게 많은 자녀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구절에서 말하는 후손과 자녀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는 이사야 53–54장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른 종에게 미래가 약속되고, 황폐한 시온에게 새로운 공동체가 약속된다는 글의 연결은 의미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갈라디아서 4:27이 이사야 54:1을 직접 인용하여 자유에 속한 예루살렘과 그 자녀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합니다.
너를 만든 내가 바로 네 남편이다
수치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마라. 네가 젊은 날의 수치를 잊고, 남편을 잃었던 때의 모욕도 더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54:4 · 두루새김
이사야서에서 시온의 고난은 단지 물질적 손실이나 정치적 패배가 아닙니다. 시온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수치를 경험했습니다. 한때 하나님의 도시라고 불렸지만, 예루살렘은 정복당했고 주민들은 끌려갔습니다. 다른 민족들의 눈에는 그 도시가 하나님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한 곳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모욕이 더 이상 시온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날의 수치」와 「남편을 잃었던 때의 모욕」이라는 두 표현은 여성의 생애를 통해 시온이 겪은 수치를 묘사합니다. 젊은 날의 수치가 이스라엘의 어느 한 역사적 시기를 정확히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을 잃었던 때」라는 표현도 실제로 남편이 사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뒤에서 여호와야훼가 여전히 시온의 남편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남편을 잃은 여인의 모습은 남편의 보호와 관계를 잃어버린 것처럼 살아야 했던 시온의 처지를 나타냅니다.
그런 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를 만든 내가 바로 네 남편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야훼다. 너를 구해 내는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다. 나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불릴 것이다.」이사야 54:5 · 두루새김
창조주가 남편이라는 뜻
시온은 자신의 미래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시온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녀의 남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온은 강대국들에게 정복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야훼이십니다.
시온은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를 구해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이스라엘만의 작은 신이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 땅의 하나님이십니다.
보통 창조와 혼인은 서로 다른 관계입니다. 창조자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분이고, 남편은 언약을 맺고 서로 인격적으로 만나는 배우자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4장은 두 관계를 함께 사용합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세우신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언약의 관계를 맺으신 공동체입니다. 그 관계에는 사랑과 신실함, 책임과 회복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림받은 아내를 다시 부르다
6절은 그 관계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시온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야훼가 너를 불렀다. 너는 버림받아 마음이 슬픈 아내 같았고, 젊어서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여자 같았다.」이사야 54:6 · 두루새김
특히 「마음이 슬픈」이라는 표현은 수치의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속 고통까지 드러냅니다. 그녀가 버림받은 것처럼 살아온 현실을 인정하시면서, 바로 그 여인을 다시 부르십니다.
이 대목은 이사야 50:1의 이혼 문서에 관한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시온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셨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시온을 버리신 적이 없는 것일까요?
7절에서 여호와야훼는 그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접 대답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두루새김의 「젊어서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여자 같았다」라는 읽기 외에, 젊어서 맞은 아내를 어찌 버리겠느냐는 반문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버림받은 것처럼 고통받았던 시온의 처지를 강조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 관계를 끝내 버리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통해 관계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원문이 이 한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앞뒤 문맥에서 하나님이 시온을 다시 부르시고 관계를 회복하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잠깐의 분노와 떠나지 않는 사랑
하나님은 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신다
「내가 아주 잠깐 너를 버렸지만, 크게 불쌍히 여겨 너를 모아들이겠다.」이사야 54:7 · 두루새김
하나님은 시온이 겪은 고난을 단순히 잘못된 감정이나 오해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시온은 실제로 심판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시간을 겪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크기의 대비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주 잠깐」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불쌍히 여겨」입니다.
8절에서는 그 대비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시온을 구해 내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분노가 넘쳐 잠시 네게 얼굴을 숨겼지만,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이사야 54:8 · 두루새김
「잠시」와 「영원한」이 서로 마주 놓입니다. 이 대비는 시온의 고통이 짧거나 가벼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포로 생활과 도시의 파괴를 겪은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관계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를 비교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시온을 향한 그분의 마지막 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이 시온에게 맺으신 관계를 지속시키는 근거로 제시됩니다.
특히 7절의 「모아들이겠다」는 말은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은 감정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흩어진 백성을 실제로 다시 모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야훼는 시온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시면서도, 그 고통이 자신과 시온의 관계에서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노아의 홍수를 떠올리시는가
9절에서 여호와야훼는 갑자기 노아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이 일은 내게 노아 때의 홍수와 같다. 그 홍수가 다시는 땅을 뒤덮지 않으리라고 내가 맹세했듯이, 너에게 분노하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이사야 54:9 · 두루새김
노아의 홍수는 세상을 심판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시온을 위로하시면서 그 심판의 사건을 떠올리실까요?
중요한 것은 홍수 자체보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하신 맹세입니다.
창세기 9:8-17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후손,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언약의 중심에는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명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앞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홍수 이후에도 인간에게 악을 행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으로 세상이 계속 이어질 것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은 그 언약의 형식을 시온의 회복에 적용합니다.
노아에게 주어진 약속은 온 땅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포함합니다. 반면 이사야 54장의 약속은 심판을 겪고 회복되는 시온에게 주어집니다. 두 약속은 대상과 역사적 배경이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된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으로 미래가 계속 이어질 것을 보장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산보다 견고한 언약
10절에서는 그 맹세가 더욱 장엄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시온을 불쌍히 여기는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산들이 자리를 옮기고 언덕들이 흔들려도, 내 사랑은 네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맺은 평화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54:10 · 두루새김
여기서 산과 언덕은 인간의 눈에 오래되고 견고하게 보이는 것들입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그 자리에 있고,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은 움직여도 사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언덕은 흔들려도 언약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온전한 삶과 관계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관계 안에서 공동체가 안정과 온전함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4장은 이 평화의 언약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추상적인 말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폭풍에 시달리던 도시를 보석으로 세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베리트 셸로미는 「나의 평화의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내가 맺은 평화의 언약」으로 옮겼습니다.
보석으로 세워진 도시에서 자녀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폭풍에 시달리는 여인에서 보석의 도시로
「고통받는 이여, 폭풍에 시달리고 위로받지 못한 이여, 보아라. 내가 검은 안료 위에 네 돌들을 놓고, 청옥으로 네 기초를 놓겠다.」이사야 54:11 · 두루새김
「위로받지 못한 이여」라는 표현은 이사야서의 위로 약속과 연결됩니다. 이사야 40:1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전히 위로받지 못한 처지에 있는 시온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시온이 경험하는 현실 사이의 간격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바로 그 여인을 향해 도시를 세우는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처음에는 천막을 넓히라고 하셨습니다. 천막은 옮길 수 있고 넓힐 수 있는 거처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튼튼한 기초를 놓고 보석으로 도시를 세우십니다. 넓어지는 거처의 이미지가 안정되고 아름다운 도시의 이미지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시온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가 그 기초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네 성벽 꼭대기는 카드코드라는 보석으로, 네 성문은 불꽃처럼 빛나는 돌로 만들겠다. 네 둘레도 모두 귀한 돌로 두르겠다.」이사야 54:12 · 두루새김
일반적인 건축에서 보석은 건물의 구조를 지탱하는 재료라기보다 장식에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환상에서는 도시의 기초와 성문까지 보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사람이 실제로 지어 올릴 수 있는 건축물을 자세히 설계한 도면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회복하실 시온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최대한 드러낸 시적 이미지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한때 돌이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되었던 도시가 이제 귀한 돌로 세워집니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건축물이 아니다
「네 자녀들은 모두 나 여호와야훼에게 배울 것이며, 네 자녀들은 큰 평화를 누릴 것이다.」이사야 54:13 · 두루새김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만으로는 공동체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사야 50장에서 종은 여호와야훼에게 듣고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54장에서는 시온의 자녀들이 모두 여호와야훼에게 배울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앞에서는 한 종의 특징이었던 배움이 이제 공동체 전체의 특징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특별한 소수의 지도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온의 자녀들이 모두 그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31:33–34에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말씀하시며 자신의 법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시고, 그들이 모두 자신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두 본문은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공동체의 삶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는 미래를 바라봅니다.
또한 요한복음 6:45는 54:13의 하나님에게 배울 자녀들에 관한 말씀을 인용하여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온다는 가르침과 연결합니다. 다만 이사야 54장 자체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심판을 겪고 미래를 잃은 것처럼 보였던 시온을 여호와야훼가 다시 부르시고, 언약에 근거하여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과 평화를 누리는 것을 함께 놓습니다. 여기서 평화는 앞서 10절에 등장한 「평화의 언약」과 연결됩니다. 그 약속 아래 살아가는 자녀들의 삶에서 평화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시온의 아름다움은 성벽에 박힌 보석으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안의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배우며 평화롭게 살아갈 때 그 도시의 회복이 온전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검은 안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푹(פּוּךְ)은 눈가에 바르던 검은 안료를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건축물의 돌을 놓는 자리에 안료가 등장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검은 바탕과 아름다운 보석의 대비를 의도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다른 종류의 장식 재료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12절에 나오는 보석의 이름들도 정확히 어떤 광물인지 모두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무기와 고발의 혀가 더 이상 승리하지 못한다
의로 세워진 공동체
14절은 회복된 시온의 기초를 다시 설명합니다.
「너는 의로움으로 굳게 세워질 것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억압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라. 공포가 네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니 공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라.」이사야 54:14 · 두루새김
보석으로 세워진 기초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안정성을 나타낸다면, 의로움은 공동체를 실제로 지탱하는 관계와 질서를 가리킵니다. 이 문맥에서는 시온이 하나님의 의로운 회복 행위에 근거하여 세워진다는 의미가 중심에 있습니다. 동시에 회복된 공동체의 삶이 억압과 불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도 어울립니다.
본문은 시온이 안전한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억압과 거리를 두라는 적극적인 요청을 함께 제시합니다. 이 명령은 두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더 이상 억압하는 자의 폭력 아래 놓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온 자신도 억압과 불의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의로움과 정의가 공동체의 삶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번째 의미 역시 제외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평화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신 공격도 있는가
15절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보아라, 누가 다툼을 일으키더라도 그 일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너와 다투는 자는 누구든 너 때문에 쓰러질 것이다.」이사야 54:15 · 두루새김
시온이 과거에 겪은 심판은 여호와야훼의 분노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자신이 시온을 회복시키기로 하셨으며, 앞으로 시온을 공격하는 자들의 행동이 그분의 새로운 심판 명령이라고 볼 수는 없음을 밝히십니다.
이것은 이사야 54장을 읽는 독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폭력을 함부로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고난을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하시기 위해 그 고난을 일으키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이 구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보아라, 숯불에 바람을 불어 넣고 쓰임에 맞는 무기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를 내가 창조했다. 부수고 무너뜨리는 파괴자도 내가 창조했다.」이사야 54:16 · 두루새김
여기서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능력과 특정한 적대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당하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 자신도 창조주 하나님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능력의 근원이 아닙니다. 파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사람과 도시를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힘이 하나님과 대등하거나 하나님을 넘어서는 권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낸 무기와 파괴자의 힘까지도 자신의 다스림 밖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파괴자가 행하는 모든 폭력과 악을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시온을 향한 적대 행위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파괴자와 무기를 만드는 사람까지 창조하신 분이라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행사하는 힘이 과연 하나님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무기와 혀라는 두 가지 공격
「너를 공격하려고 만든 어떤 무기도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재판에서 너를 고발하는 모든 자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할 것이다. 이것이 나 여호와야훼의 종들이 물려받을 몫이며, 그들이 의롭다는 판결은 나에게서 나온다.」 여호와야훼의 선언입니다.이사야 54:17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공격 수단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무기이고, 다른 하나는 고발하는 말입니다. 원문에서는 이 말을 혀로 나타냅니다.
무기는 사람의 몸과 도시를 공격합니다.
혀는 재판에서 사람을 고발하고 죄인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실제로 전쟁과 정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눈에 보이는 파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도시는 수치를 당했고,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판단까지 받았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짓밟힌 자존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라는 표현은 공격이 전혀 시도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과 다릅니다. 바로 앞에서 무기가 만들어지고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하나님의 백성이 앞으로 단 한 번도 공격당하거나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하나님의 회복 목적을 무너뜨리려는 적대 행위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의 재판 이미지는 특히 앞의 종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이사야 50:8–9에서 종은 자신을 옳다고 판결하시는 분이 가까이 계시며, 자신을 고발할 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회복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판결에 근거하여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한 종에서 여러 종으로
이사야 53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종을 단수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54장의 마지막에서는 「나 여호와야훼의 종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이 등장합니다.
앞 장의 종은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그들을 의롭다고 판정하는 일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54장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물려받을 몫」과 「그들이 의롭다는 판결」이 언급됩니다. 이것만으로 54장의 모든 종이 53장의 종과 동일한 방식으로 고난받거나, 53장의 종이 행한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흐름에서 한 종의 사명과 여러 종들이 누리는 회복 사이에 글의 흐름과 하나님을 이해하는 면에서 연결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것은 두 장이 서로 독립된 행복과 고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이어서 보여 주는 구성으로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종들이 옳다는 판결을 받는 근거는 그들 자신이 언제나 완전하게 행동했다는 주장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 구절은 공동체의 회복을 자기 의로움에 대한 자랑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몫으로 돌립니다.
시온의 마지막 안전은 성벽의 높이나 무기의 강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녀를 의롭다고 판결하시는 여호와야훼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5절의 히브리어에서 「다툼을 일으키더라도」와 관련된 동사는 문맥에 따라 모이거나 머무르는 행동, 적대적인 행동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문장은 시온을 공격하는 사람이 쓰러진다는 뜻으로도, 시온의 편으로 넘어온다는 뜻으로도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하나님의 방식
이 장에서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는 이유는 시온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녀를 향한 자신의 뜻을 밝히시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함이 먼저이고, 공동체의 회복은 그 결과입니다.
이사야 54장은 아직 자녀가 없는 여인에게 기뻐 외치라고 명령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의 숫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언제 모여들지도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녀에게 천막 자리를 넓히고 천막 줄을 길게 늘이며 말뚝을 단단히 박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녀가 준비하는 거처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시온은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 천막을 넓힙니다. 그녀가 붙들고 있는 것은 현재의 풍성함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부르신 여호와야훼의 흔들리지 않는 언약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