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지파별로 나눈 땅

갈렙이 청한 산지

여호수아 14장에는 뜻밖의 노인이 등장합니다.

그의 나이는 여든다섯 살입니다. 사십오 년 전,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못했던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함께 갔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땅으로 올라가자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왔고, 여러 왕을 무너뜨렸으며, 대대로 물려받을 땅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자기 몫을 청하면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지역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갈렙은 사십오 년 동안 약속을 기다렸지만, 그 약속을 받는 순간에도 자신이 직접 감당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14장은 바로 이 장면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나누는 과정에서, 한 노인이 오래전에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며 여호수아 앞에 섭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1014장 본문 읽기 →

땅을 나누는 자리는 왕의 궁정이 아니었다

여호수아 14:1–5 본문 →

여호수아 14장은 가나안 땅을 나누는 일을 책임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받았습니다. 제사장 엘아자르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집안 우두머리들이 그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여호수아 14:1 · 두루새김

엘아자르는 아론의 아들이며, 아론이 죽은 뒤 제사장 일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민수기 20:25–28). 그다음에 여호수아가 등장하고, 이어서 각 지파의 집안 우두머리들이 언급됩니다.

가나안 정복을 이끌었던 군사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나 땅을 나누는 일은 여호수아 혼자 결정하지 않습니다. 제사장과 지파 대표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34:16–29에서 주어진 명령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엘아자르와 여호수아, 각 지파에서 뽑힌 지도자들이 대대로 물려받을 땅을 나누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군사 지도자가 땅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땅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동체가 대대로 물려받을 몫으로 나누어 줍니다.

왜 제비뽑기로 나누는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대로, 아홉 지파와 한 지파의 절반이 대대로 물려받을 땅을 제비뽑기로 나누어 받았습니다.여호수아 14:2 · 두루새김

이는 민수기 26:55–56과 33:54에 제시된 방식과 연결됩니다. 민수기 26:53–54에서는 지파의 인구 규모도 땅의 몫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땅을 나누는 과정에서 어느 지파에게 어떤 몫이 돌아갈지를 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땅을 주시겠다는 여호와야훼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땅을 나눌 때에도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방식을 따릅니다.

열두 지파인데 왜 아홉 지파 반에게만 나누는가?

요단강 동쪽에서는 이미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 절반이 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서쪽에서는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지파 절반이 땅을 나누어 받습니다.

또한 요셉의 자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라는 두 지파를 이룹니다. 반면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과 같은 방식으로 따로 지파의 땅을 물려받지 않습니다. 4절은 레위 사람들에게 살 곳인 성들과 가축과 소유물을 둘 성 주변의 빈터가 주어졌다고 밝힙니다.

땅을 나누는 기본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공식적인 절차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옵니다.

갈렙입니다.

갈렙은 왜 제비뽑기보다 오래된 약속을 이야기하는가

여호수아 14:6 본문 →

유다 지파 사람들이 길갈에서 여호수아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니스 사람 여푼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저와 여호수아님에 관해 하신 말씀을 여호수아님도 아십니다.」여호수아 14:6 · 두루새김

이것은 갈렙의 요청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땅 나누기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기에게 특별한 땅을 주어야 하는 이유를 자신의 공로나 오랜 봉사에서 찾지 않습니다.

먼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을 꺼냅니다.

민수기 14:30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여푼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예외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사십여 년 전에 같은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땅에 관하여 다른 보고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처지는 달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어 땅을 나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갈렙은 자기와 자손에게 주어질 몫을 요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주어진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그니스 사람」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할까?

그니스 사람이라는 이름은 그나스 또는 케나스라는 이름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15:19에는 그니스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에 살던 민족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36:11에도 에서의 후손 가운데 그나스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러한 연결 때문에 갈렙의 집안이 본래 이스라엘 밖의 집단과 관계되어 있었다고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수기 13:6은 갈렙을 분명히 유다 지파의 대표자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갈렙이 외부 집단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들어온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유다 지파 안에서 그나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집안에 속했는지는 본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 14장이 그의 출신을 나타내는 이름을 두 차례 기록하면서도, 그가 땅을 물려받은 이유를 뛰어난 혈통에서 찾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그가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같은 땅을 보고도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여호수아 14:7–8 본문 →

갈렙은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종 모세께서 그 땅을 살펴보도록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저를 보내셨을 때, 저는 마흔 살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 모세께 보고했습니다.」여호수아 14:7 · 두루새김

이 말의 배경은 민수기 13–14장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살펴보도록 각 지파에서 대표들을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 땅이 좋은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강하고 성벽이 튼튼하다는 사실도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같은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실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였습니다.

대부분의 정탐꾼들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 주민들보다 약하며, 그들과 싸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민수기 13:28–33).

그러나 갈렙은 달랐습니다.

민수기 13:30에서 갈렙은 그 땅으로 올라가 차지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도 강한 주민들을 보았고 성벽이 튼튼한 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 현실을 여호와야훼의 약속과 따로 떼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있는 그대로 모세께 보고했습니다」(⁨לֵבָב⁩)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갈렙이 자기 마음에 있는 바에 따라 말을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는 판단을 그대로 보고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무너지게 한 말

「저와 함께 올라갔던 동족들은 백성을 두려움에 빠뜨려 마음이 무너지게 했지만, 저는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습니다.」여호수아 14:8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백성의 마음을 녹였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녹는다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용기와 결심이 무너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두루새김은 이 표현의 뜻을 풀어 옮겼습니다.

여호수아 2:11에서 라합은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자기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5:1에서는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갈렙이 돌아보는 사건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주민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자기들만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백성 전체를 두려움에 빠뜨려 마음이 무너지게 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한 말이 공동체 전체의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알리는 일과, 그 어려움만을 근거로 공동체가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갈렙은 위험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험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다」는 말의 의미

여호수아 14:9 본문 →

갈렙의 이야기에는 한 표현이 세 번 등장합니다.

8절에서는 갈렙 자신이 「저는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9절에서는 갈렙이 모세의 맹세를 인용합니다.

「그날 모세께서 이렇게 맹세하셨습니다. 『네가 밟은 땅은 반드시 너와 네 자손이 영원히 물려받을 몫이 될 것이다.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다.』」여호수아 14:9 · 두루새김

14절에서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갈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입니다」라고 그 이유를 다시 설명합니다. 갈렙 자신의 기억, 모세의 평가, 그리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설명이 모두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온전히 따랐습니다」라는 말은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맞추는 충실함을 가리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때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위험을 이유로 물러서자고 했을 때, 그는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갈렙이 하나님께 완벽하게 순종하여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갈렙의 삶 전체를 평가할 만큼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말은 특히 가데스 바르네아에서의 중요한 선택과 그 이후에 이어진 태도를 가리킵니다.

모세의 맹세는 신명기 1:36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갈렙이 밟은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돌아봅니다. 민수기 14:24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는 갈렙에게 다른 영이 있으며 그가 자신을 온전히 따랐으므로, 그가 갔던 땅으로 그를 이끄시고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렙에게 약속된 땅은 막연히 좋은 지역이나 넓은 땅이 아닙니다. 그가 실제로 가서 보았던 땅입니다. 민수기 13:22에서는 정탐꾼들이 헤브론에 이르렀으며, 그곳에 아낙의 자손들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갈렙은 오래전에 발로 밟았지만 차지하지 못했던 땅을 다시 청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십오 년 동안 무엇을 기다렸는가

여호수아 14:10 본문 →

갈렙은 모세가 자기에게 했던 맹세를 기억합니다.

마흔 살에서 여든다섯 살까지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광야를 다니던 때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신 뒤로 마흔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여호와야훼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저를 살려 두셨습니다. 이제 저는 여든다섯 살입니다.」여호수아 14:10 · 두루새김

갈렙은 광야 생활과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의 시간을 모두 포함하여 약속을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이 오랜 세월을 설명하면서 자기의 인내심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을 살려 두셨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정탐꾼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따라 불순종했던 세대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민수기 14:29–35).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살아남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모든 신실한 사람이 반드시 오래 산다는 약속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갈렙에게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갈렙은 왜 사십오 년을 강조하는가?

그는 그 긴 시간이 약속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주어진 말씀은 광야의 오랜 세월과 세대가 바뀌는 일, 전쟁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든다섯 살의 힘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여호수아 14:11 본문 →

갈렙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지금도 모세께서 저를 보내셨던 날처럼 힘이 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데도, 나가고 들어오며 활동하는 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힘이 같습니다.」여호수아 14:11 · 두루새김

여기서 「나가고 들어오며 활동하는」(⁨יָצָא⁩)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활동과 행동의 범위를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활동한다는 뜻을 밝혀 옮겼습니다.

민수기 27:17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사람이 그들 앞에서 나가고 들어오며, 그들을 이끌어 나가고 들어오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14:11에서는 바로 앞에 전쟁이 언급되므로, 이 표현은 군사 활동을 포함한 활발한 행동 능력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 13:1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여호수아가 늙었고 차지할 땅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는 땅을 나누어 주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반면 갈렙은 여든다섯 살이지만 아직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며 어려운 산지를 요청합니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은 다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두 하나님께 충실했다고 해서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처지에서 맡겨진 일을 해냅니다.

갈렙이 청한 산지는 왜 특별한가

여호수아 14:12 본문 →

「그러니 여호와야훼께서 그날 말씀하신 이 산지를 제게 주십시오. 그곳에 아낙 사람들이 있고, 성벽이 튼튼한 큰 성들이 있다는 것을 여호수아님도 그날 들으셨습니다. 어쩌면 여호와야훼께서 저와 함께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그들을 쫓아내겠습니다.」여호수아 14:12 · 두루새김

이 설명은 민수기 13장의 정탐 보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흔다섯 해 전 다른 정탐꾼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이제 같은 사실을 말하면서 그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합니다.

변하지 않은 위험 앞에서, 변하지 않은 약속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받은 땅을 차지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에게 대대로 물려받을 땅이 주어졌다는 사실과, 그 땅을 실제로 차지하는 일이 모두 끝났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갈렙은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땅을 받는 순간부터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갈렙에게 약속은 싸움을 피하게 해 주는 보증서가 아니라, 아직 싸워야 할 땅으로 나아갈 근거였습니다.

「어쩌면 여호와야훼께서 저와 함께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갈렙은 약속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질 과정에서 자신이 모든 상황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그 일의 결과를 자신의 능력만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행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이미 승리를 손에 넣은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갈렙의 믿음을 무조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무조건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연결된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오래 기다리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약속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늘의 독자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무조건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부르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분별하고, 그 말씀에 따라 오래도록 충실하게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어쩌면」에 해당하는 말은 울라이입니다. 이 낱말은 가능성이나 기대를 나타내며, ‘어쩌면’, ‘혹시’, ‘아마도’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갈렙은 이미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가 앞으로 치를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실지를 겸손하게 바라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갈렙을 축복했는가

여호수아 14:13–14 본문 →

갈렙의 요청을 들은 여호수아는 길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복을 빌어 주고, 여푼네의 아들 갈렙에게 헤브론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주었습니다.여호수아 14:13 · 두루새김

갈렙은 아직 아낙 사람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청 뒤에 여호수아가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는 사실은, 그가 앞으로 감당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까지」 남은 상속 재산

그래서 헤브론은 오늘까지 그니스 사람 여푼네의 아들 갈렙이 물려받은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갈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14:14 · 두루새김

여기서 「오늘까지」라는 표현은 이 기록이 전해지는 시점까지 갈렙의 집안과 헤브론의 관계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맹세에는 갈렙과 그의 자손이 영원히 물려받을 몫이 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14:9). 이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 약속이 실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갈렙이 기다렸던 약속은 그의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다음 세대의 삶과 연결됩니다.

물려받을 땅은 한 사람이 잠시 차지했다가 사라지는 전리품이 아닙니다. 그의 자손들이 이어받아 살아갈 몫입니다.

조금 더 깊이

앞에서는 제비뽑기로 땅을 나누라고 했는데, 갈렙은 왜 특정한 땅을 요청하여 받습니까? 갈렙의 경우에는 모세의 맹세가 특별한 근거로 제시됩니다. 오래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을 공동체의 지도자 앞에서 확인받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4장은 이 두 방식이 실제 절차에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헤브론은 어떤 땅이었는가

여호수아 14:15 본문 →

본문은 헤브론의 옛 이름을 소개합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였습니다. 아르바는 아낙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 땅은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습니다.여호수아 14:15 · 두루새김

기럇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브론이 아낙 사람들의 역사와 깊이 연결된 장소였다는 사실입니다.

갈렙은 바로 그곳을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 두려워했던 장소

민수기 13:22에서는 정탐꾼들이 헤브론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아낙의 자손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였습니다. 갈렙은 마흔다섯 해 전에 이스라엘의 두려움이 집중되었던 장소를 다시 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계속됩니다.

여호수아 15:13–14에서는 갈렙이 헤브론에서 세사이와 아히만과 탈마이를 쫓아내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여호수아 11:21–22에서는 이미 여호수아가 헤브론을 비롯한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없앴다고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억이 남아 있는 헤브론

헤브론은 갈렙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성경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13:18에서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 곁에 살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23:2에서는 사라가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사라를 묻기 위해 막벨라 밭과 굴을 샀습니다(창세기 23:17–20). 이 땅은 아브라함이 아직 가나안을 자기 소유로 차지하지 못했을 때, 가족을 묻을 곳으로 마련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갈렙은 헤브론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받습니다.

물론 여호수아 14장은 갈렙이 아브라함의 기억 때문에 헤브론을 요청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따라 읽는 독자는 헤브론이라는 장소에 담긴 오랜 약속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나중에 레위 사람들에게도 주어진다

여호수아 21:11–12에서는 헤브론 성과 그 주변의 빈터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성에 딸린 밭과 마을들은 갈렙의 소유로 남았다고 기록합니다. 갈렙은 약속에 따라 자기 몫을 받았지만, 그 땅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더 넓은 땅 나누기 질서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땅은 약속이 이루어진 결과이면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왜 갈렙의 이야기 끝에 평온이 등장하는가

「그 땅은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습니다」라는 표현은 여호수아 11:23에도 등장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주요 왕들을 무너뜨리고 땅을 차지한 뒤, 그 땅이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다고 기록했습니다.

우선 이 평온을 모든 지역에서 모든 전투가 영원히 끝났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서 자체가 아직 차지해야 할 땅과 남아 있는 주민들이 있음을 밝힙니다. 다음 장에서도 갈렙이 실제로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여호수아가 이끈 큰 정복 전쟁이 하나의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요약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원문에서는 11:23과 같은 문장이 반복되면서, 갈렙이 물려받을 땅에 관한 이야기가 전체 정복의 결말과 연결되는 효과도 생깁니다.

평온이 찾아왔다는 말과 아직 감당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은 이 장에서 함께 존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가장 큰」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몸집이 매우 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그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아낙 사람들이 다른 본문에서 큰 몸집과 관련되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몸의 크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여호수아 14:15의 표현만으로 어느 한쪽을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호수아 11장과 14–15장의 정복 기록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11장의 기록이 전체 정복의 성과를 요약한 것이고, 14–15장은 그 가운데 헤브론 지역의 정복을 갈렙의 이야기로 구체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요 전투에서 아낙 사람들을 무너뜨린 일과 그 지역을 계속 차지하고 있던 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는 일이 서로 다른 단계였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읽기 모두 본문이 알려 주는 사실과 연결되지만, 정확한 시간 순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그 산지 앞에 선 사람

여호수아 14:1–15 본문 →

마흔다섯 해 전에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그 땅을 향해 올라가자고 말했을 때도, 여든다섯 살이 되어 그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갈렙의 방향은 같았습니다. 갈렙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세월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가 따르는 분은 달라지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곳은 한때 이스라엘이 너무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못했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 앞에 선 갈렙은 그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하고, 여호수아는 그에게 복을 빌어 주며 헤브론을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줍니다.

갈렙의 손에는 아직 차지해야 할 산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마흔다섯 해 전에 주어진 약속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 산지가 이제 갈렙과 그의 자손이 물려받을 땅으로 주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