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1장 · 문서로 세운 약속
하나님의 집을 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느헤미야 10장은 긴 이름 목록으로 시작하여 성전의 운영 비용과 물품을 마련하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이름들이 이어지고, 결혼과 안식일과 빚에 관한 규정이 나오며, 성전에 낼 돈과 나무와 곡식과 포도주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자세히 기록됩니다.
앞장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장엄한 기도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백성은 이제 하나님께 무엇을 말씀드릴 것인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이 모든 일 때문에 우리는 굳은 약속을 맺고 그 내용을 문서로 적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그 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느헤미야 10:1 · 두루새김
「이 모든 일 때문에」라는 표현은 앞장의 기도와 이번 장의 약속을 연결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역사를 고백했고, 자신들도 그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셨지만 자신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현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마친 뒤 그들이 선택한 행동은 새로운 약속을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기도에서 그들은 과거의 불순종을 말했지만, 문서에서는 앞으로의 순종을 약속합니다. 자신들이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정치적 현실보다,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삶의 문제들을 먼저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현실을 바꾸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자신들도 바꾸어야 할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왜 이 약속은 그렇게 구체적일까요? 느헤미야 10장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도장을 찍은 사람들과 그 뒤에 서 있는 백성
10장 앞부분에는 지도자와 제사장, 레위 사람, 백성의 우두머리들의 이름이 길게 이어집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총독 느헤미야입니다. 그 뒤에 제사장들이 나오고, 레위 사람들이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기록됩니다.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인 일을 맡은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모두 약속에 참여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서명으로 문서에 대한 동의를 표시하는 일이 익숙하지만, 고대 근동에서는 도장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나 그 사람의 권한을 확인하고 공식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백성이 단순히 말로 결심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결심을 문서로 남겼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동족인 지도자들과 함께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며, 우리 주 여호와야훼의 모든 명령과 법과 규정을 지켜 행하고, 이를 어기면 저주를 받겠다는 맹세였습니다.느헤미야 10:30 · 두루새김
이미 하나님과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다시 받아들이는 기록입니다. 「이를 어기면 저주를 받겠다는 맹세」라는 표현은 신명기 27–28장에 나타나는 언약의 축복과 저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데는 실제적인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조상들은 하나님께 수없이 순종을 약속했지만, 반복하여 그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지금 약속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9절에 이르면 도장을 찍은 사람들의 목록 뒤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음 사람들 가운데 그 뜻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맹세에 참여했습니다. 나머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 다른 민족들에게서 따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이었습니다.느헤미야 10:29 · 두루새김
대표자들이 도장을 찍었지만, 그 약속에 따라 살아갈 책임은 공동체 전체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전문적인 임무에만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가정과 그 가족들 역시 하나님과 맺은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백성은 앞선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광야에서 반역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고,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그들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셨다고 말했습니다(느헤미야 9:17, 19, 31). 그런데 이제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집을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고백한 백성이, 이제 자신들도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의 삶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혼인과 장사와 빚 —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일상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세 가지 생활 영역에서 시작됩니다.
결혼, 안식일의 거래, 일곱째 해의 땅과 빚입니다. 모두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이익과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혼인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의 경계
우리는 우리 딸들을 이 땅의 다른 민족 남자들과 결혼시키지 않고, 그들의 딸들을 우리 아들들의 아내로 데려오지 않기로 했습니다.느헤미야 10:31 · 두루새김
여기에는 실제 집단 사이의 결혼 경계를 정하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7:3–4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의 민족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두 집안을 연결했고, 재산과 상속, 사회적 관계와 종교적 관습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가족과 집안이 일상적인 종교생활의 중요한 단위였던 사회에서 결혼은 공동체의 신앙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 9:1–2에서는 다른 민족들과의 결혼이 이스라엘의 신앙적 구별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로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구약 전체가 모든 다른 민족 사람과의 결혼을 단순히 혈통을 이유로 금지한다고 읽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룻기에서는 모압 여자 룻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룻기 1:16),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집안에 들어갑니다(룻기 4:13–22).
따라서 느헤미야 10장의 결혼 규정을 이해할 때에는 실제로 집단의 경계를 정했다는 사실과, 그 경계를 세운 신앙적 이유가 하나님께 신실하려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규정을 오늘날의 모든 민족 간 결혼에 대한 보편적인 금지 명령으로 직접 옮기는 것은 본문의 역사적 상황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거래를 멈추고 빚을 내려놓는 시간
다음 약속은 안식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땅의 다른 민족 사람들이 안식일에 물건이나 온갖 곡식을 팔러 와도, 우리는 안식일과 거룩한 날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일곱째 해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 하며, 모든 빚을 없애 주기로 했습니다.느헤미야 10:32 · 두루새김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행동을 바꾸는 일이 먼저 명시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8–11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곱째 날에 쉬신 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신명기 5:12–15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이었던 일을 기억하면서 종들도 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의 질서를 인정하고,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쉼을 허락하는 날입니다.
느헤미야 10장에서 백성은 이 명령을 자신들의 실제 경제생활에 적용합니다. 돈을 벌거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그날에는 거래를 멈추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3:10–11과 레위기 25:2–7에서는 여섯 해 동안 땅을 경작하고 일곱째 해에는 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가지만, 그 땅을 끝없이 착취할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빚을 없애 주는 규정은 신명기 15:1–3과 연결됩니다. 다만 느헤미야 10:32에서 「모든 빚을 없애 주기로」라는 표현에 해당하는 원문의 정확한 범위에는 해석상 여지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일곱째 해의 면제와 빌려준 돈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포기하는 것을 압축해서 말합니다. 이를 빚 자체를 없애 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고, 안식년 동안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는 조치와 관련지어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들은 땅을 계속 경작하여 얻을 수 있는 수확물과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일정하게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이 약속은 느헤미야 5장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장에서 가난한 유다 사람들은 곡식을 구하기 위해 밭과 포도밭과 집을 저당 잡혀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금을 낼 돈을 빌려야 했고, 자녀들이 종으로 팔리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에 분노하여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것을 돌려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겪은 공동체에서 일곱째 해의 빚에 관한 규정은 단순한 종교적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사람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얻지 않기로 선택하는지도 결정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경제활동에 경계를 두기로 했습니다. 그 경계는 단순히 욕심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땅과 이웃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제 약속은 성전의 운영으로 옮겨 갑니다.
또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집에서 하는 일에 쓰도록 해마다 3분의 1세겔씩 내기로 스스로 규정을 세웠습니다.느헤미야 10:33 · 두루새김
에스라 6:15에 따르면 성전 건물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보다 앞서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제사와 섬기는 일이 계속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건물을 완성하는 데는 건축 자재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완성된 건물에서 계속 제사를 드리고 명절을 지키려면, 해마다 새로운 비용과 물품이 들어갑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주신 율법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그 율법이 요구하는 일을 공동체 안에서 계속하기 위해 구체적인 부담을 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차려 놓는 빵과 정기적으로 바치는 곡식 제물과 번제, 안식일과 매달 첫날과 명절에 바치는 제물, 거룩한 제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제물,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느헤미야 10:34 · 두루새김
여기서 성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장소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율법에 따라 제사와 경배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동체가 책임지는 장소로 나타납니다.
또한 이 약속은 돈을 내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인 우리는 나무를 바치는 일을 두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집안별로 해마다 정해진 때에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나무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치는 제단에서 태울 나무였습니다.느헤미야 10:35 · 두루새김
레위기 6:12–13에서는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고, 제사장이 아침마다 나무를 태우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누가 언제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에 관한 세부적인 운영 방식이 모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공동체가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제단의 불을 계속 피우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누군가 실제로 나무를 가져와야 했습니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그 책임을 특정한 사람의 호의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집안이 나누어 맡도록 정했다는 뜻입니다.
성전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일은 제사장의 임무였지만, 그 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나무를 마련하는 일에는 백성 전체가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드리는 제사는 눈에 띄는 종교적 행위만으로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여러 사람의 책임이 함께 필요했습니다.
첫 수확물과 십일조 — 누구의 몫을 먼저 생각할 것인가
나무를 마련하는 약속 뒤에는 땅에서 거둔 것에 관한 규정이 이어집니다.
또 해마다 우리 땅에서 처음 거둔 것과 모든 나무에서 처음 딴 열매를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느헤미야 10:36 · 두루새김
백성은 모든 수확을 마친 뒤 남은 것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3:19과 신명기 26:1–11에는 땅에서 처음 거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규정이 나옵니다. 특히 신명기 26장에서는 첫 수확물을 바치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들이 떠돌던 사람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땅을 주셨다는 역사를 고백하게 합니다.
첫 수확물을 바친다는 것은 단순히 수확량의 일부를 떼어 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과 열매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다시 땅을 경작하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수확물을 얻는 것은 생존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얻는 열매의 첫 몫을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수확의 첫 순간에 인정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첫 새끼, 그리고 소와 양과 염소의 첫 새끼를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와 그곳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드리기로 했습니다.느헤미야 10:3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맏아들을 실제로 제물로 바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3:12–15에서는 처음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도록 명령하며, 맏아들은 값을 치르고 되찾도록 합니다. 민수기 18:15–16에서도 사람의 맏아들은 값을 치르고 되찾아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사람의 맏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는 모두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칙 아래 놓이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은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십일조 규정에서는 또 다른 차원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반죽의 첫 몫과 바치는 예물, 모든 나무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우리 하나님의 집에 있는 방들로 가져와 제사장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땅에서 거둔 것의 십일조는 레위 사람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농사짓는 모든 도시에서 십일조를 거두는 사람들은 바로 레위 사람들이었습니다.느헤미야 10:38 · 두루새김
민수기 18:21–24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일반적인 토지 상속을 받지 않는 대신, 그들이 맡은 성막에서 섬기는 일에 대한 몫으로 십일조를 받도록 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단순히 성전 건물에 물품을 쌓아 두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공동체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거둘 때에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이 그들과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10분의 1을 떼어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와, 창고로 쓰는 방들에 들여놓아야 했습니다.느헤미야 10:39 · 두루새김
이 규정은 민수기 18:26–28과 연결됩니다. 레위 사람들도 자신들이 받은 것을 전부 개인적인 몫으로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백성은 자신들의 수확물을 나누어 레위 사람들이 섬기는 일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들도 자신들이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었습니다.
누가 수확물을 모으는지, 누가 함께 있어야 하는지, 어떤 몫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지까지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돌보겠다는 결심은 실제로 운영할 수 있도록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집을 버려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은 좋은 마음을 품겠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이 실제로 유지되도록 자신들의 생활에서 일정한 몫을 내놓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기도는 자신들의 역사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약속은 그 역사에서 배운 것을 앞으로의 삶에 반영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규정들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오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과 안식년의 규정도 모세의 율법 아래 놓인 이스라엘의 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위한 3분의 1세겔의 부담과 제물 공급 역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체계를 전제로 합니다.
느헤미야 10장은 백성이 새로운 결심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결심을 앞으로 완전하게 지켰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약속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신실함을 완성된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키는 일 사이에는 지속적인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우리의 시선은 더 이상 문서 위의 이름들에 머물지 않습니다.
제단에서 태울 나무를 가져오는 집안들이 있고, 땅의 첫 수확물을 가져오는 농부들이 있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보관하는 방들이 있고, 그 물품으로 섬기는 일을 이어 가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방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예물을 가져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성전 기구들이 있었고,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집을 버려두지 않기로 했습니다.느헤미야 10:40 · 두루새김
이 말은 단순히 건물을 수리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섬기는 일과 경배가 계속되도록 공동체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도장이 찍힌 문서가 실제 삶이 되려면, 이제 그 물품들이 해마다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느헤미야 10장은 바로 그 책임을 공동체의 손에 맡겨 둔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