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48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온 하늘과 땅이 찬양하는 하나님

시편 148편은 특별한 일을 합니다. 노래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노래하라고 명령합니다.

해와 달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산들은 목소리가 없고, 나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모든 것을 향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위대함이 인간의 찬양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단순히 찬양의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누구의 것이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늘의 천사들부터 바다의 깊은 물까지, 해와 달부터 기어 다니는 생물까지, 왕과 지도자부터 어린아이까지 차례로 부릅니다. 하늘의 천사도, 땅의 왕도, 작은 벌레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근거를 스스로 마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48편에서 찬양은 단지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으며 누구의 다스림 아래 있는지를 드러내는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전환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높고 그분의 위엄은 땅과 하늘 위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 이르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뿔을 높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온 세계보다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높이시는 것입니다.

왜 온 우주를 향한 찬양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백성의 이야기로 끝날까요?

시편 148편은 크게 두 부분과 마지막 결말로 이루어집니다. 첫 부분인 1–6절은 하늘을 향합니다. 천사와 하늘의 군대, 해와 달과 별들, 가장 높은 하늘과 그 위의 물들이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들이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명령하시어 그들을 창조하시고 세워 두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부분인 7–13절은 땅을 향합니다. 바다의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날씨의 여러 현상, 산과 나무, 동물과 새들을 지나 마침내 모든 인간에게 이릅니다. 이들이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야훼의 이름만이 드높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14절에서는 그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일이 노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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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모든 존재도 창조주를 찬양한다

시편 148:1–6 본문 →

1–2절: 하늘의 군대도 찬양하는 존재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 높은 곳에서 그분을 찬양하라.시편 148:1 · 두루새김

여기서 「하늘에서」라는 표현은 찬양이 울려 퍼지는 장소를 가리키면서, 곧이어 등장하는 하늘의 존재들을 부르는 도입이 됩니다.

그분을 찬양하라, 그분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을 찬양하라, 그분의 온 군대야.시편 148:2 · 두루새김

천사들은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활동하는 존재들로 묘사되지만, 시인은 그들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늘의 존재들이 아무리 영광스럽고 강력하더라도 그들 역시 여호와야훼를 찬양해야 합니다.

어떤 존재가 인간보다 높거나 강하다는 사실이 그 존재를 경배의 대상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3–4절: 해와 달, 별들까지 불러내는 이유

해와 달아, 그분을 찬양하라. 빛나는 모든 별들아, 그분을 찬양하라.시편 148:3 · 두루새김

고대 근동의 여러 문화에서 해와 달과 별들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었습니다.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거나 인간의 운명과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하늘의 권세와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런 천체 숭배를 금지합니다. 신명기 4:19는 해와 달과 별들을 보고 그것들에 이끌려 경배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해와 달은 경배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는 존재입니다.

시인은 해와 달이 아름답지 않거나 힘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낮과 밤을 밝히는 천체의 영광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영광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분명하게 합니다. 빛나는 별들은 아무리 높이 있어도 창조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빛이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4절에 이르면 시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합니다.

그분을 찬양하라, 하늘 위의 하늘아,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시편 148:4 · 두루새김

「가장 높은 하늘」(⁨שָׁמַיִם⁩)은 히브리어로 말 그대로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이런 반복은 가장 높거나 가장 넓은 것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등장하는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은 현대 독자에게 낯섭니다. 시인이 말하려는 것은 하늘의 물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가가 아닙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하늘과 그 너머로 상상되는 가장 높은 영역까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천사도, 해와 달도, 별도, 하늘 위의 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5절은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밝힙니다.

5절: 찬양의 근거는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찬양하기를. 그분이 명령하시자 그들이 지어졌으니.시편 148:5 · 두루새김

히브리어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과 창조의 결과를 짧게 연결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세계가 존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찬양해야 할 이유는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거나 어떤 위험에서 구출되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찬양의 이유입니다.

사람은 흔히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음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창조 세계 전체를 사람처럼 부르고 있습니다. 하늘의 존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습과 질서 안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시인은 그것을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동으로 노래합니다.

6절: 창조하신 하나님은 질서도 세우셨다

그들을 영원히 영원토록 세워 두셨고 법을 정하셨으니 그 법은 사라지지 않으리라.시편 148:6 · 두루새김

5절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했습니다. 6절은 창조된 세계가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존재하게 하신 뒤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세계가 지속되도록 세우시고 규정을 정하셨습니다.

여기서 「규정」은 정해진 법이나 규칙, 한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을 뜻할 때도 있지만, 이 구절에서는 하늘의 존재들이 유지되는 질서와 관련됩니다.

6절의 마지막 표현은 「그 규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로도, 「그것들이 그 정해진 한계를 넘지 않을 것이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지속되고 그분의 정하신 바가 헛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핵심은 같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가 시작되게 하셨고, 그 세계가 지속되도록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창조는 단지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가 질서 있게 존재한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질서 아래 있는 세계는 아름답고 온화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군대들」에 해당하는 원문의 말은 하늘의 군대나 무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 표현은 문맥에 따라 하늘의 존재들을 가리키거나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천사들이 앞에, 해와 달과 별들이 뒤에 등장하므로 하늘의 무리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두 범주 사이의 의미가 겹칠 가능성까지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세기 1:14–18에서도 해와 달은 신적인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고 낮과 밤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빛을 내는 것들로 묘사됩니다.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은 창세기 1:6–8에서 하나님이 물과 물 사이에 하늘을 만드시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시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은 고대의 세계 이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역을 찬양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현대 과학의 관점으로 하늘 위에 실제 물의 저장고가 있는지를 증명하려 하거나, 반대로 시인이 이해한 세계를 현대 기상학의 설명으로 바꾸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창조 세계를 사람처럼 부르는 시적 표현은 시편 19:1–4에서도 발견됩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하늘에 펼쳐진 공간은 그분의 손이 이룬 일을 알리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인간의 말과 다릅니다. 6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규정을 정했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마지막 동사의 주어를 규정으로 이해하면 두루새김처럼 「그 규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욥기 38:31–33에서도 별자리와 하늘의 질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예레미야 31:35–36은 해와 달과 별들의 정해진 질서를 언급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한결같으심과 연결합니다. 「영원히」라는 표현은 천체의 물리적 수명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무질서한 우연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명령과 질서 아래 있다는 사실을 찬양합니다.

바다 괴물과 폭풍도 찬양에 참여한다

시편 148:7–8 본문 →

7절: 찬양은 가장 깊은 바다에서 다시 시작된다

땅에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 바다 괴물들과 모든 깊은 물들아,시편 148:7 · 두루새김

여기서 시편의 두 번째 큰 부분이 시작됩니다. 앞에서는 「하늘에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땅에서」 찬양하라고 합니다.

왜 산이나 나무, 사람이 먼저 등장하지 않을까요?

바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문학에서 생명과 풍요의 장소인 동시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깊고 두려운 영역으로 나타납니다. 폭풍이 일어나는 바다와 그 깊은 곳은 혼돈과 위협을 상징하는 이미지로도 사용됩니다.

시편 148편의 문맥에서는 바다 괴물들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고 혼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들도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는 독립적인 권세가 아닙니다. 시인은 그것들을 없애 버린 뒤 찬양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 존재들까지 찬양하도록 부릅니다.

인간이 두려워하고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까지도 창조주의 다스림 아래 있습니다.

8절: 위험한 자연도 하나님의 말씀 밖에 있지 않다

불과 우박, 눈과 안개,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폭풍아,시편 148:8 · 두루새김

이 목록은 특별히 온화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현상들이 모여 있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어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폭풍을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폭풍」이라고 부릅니다. 폭풍은 인간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때로 집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위협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폭풍조차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독립적인 힘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다는 표현이 모든 폭풍의 피해를 하나님이 특정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내리신 심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특정 자연재해의 원인을 판정하지 않습니다.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게 느껴지는 자연의 힘조차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속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 두려운 세계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이 온 세계의 창조주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조금 더 깊이

「바다 괴물들」로 옮긴 원문의 말은 문맥에 따라 거대한 바다 생물이나 위협적인 괴물 같은 존재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1에서는 하나님이 큰 바다 생물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반면 시편 74:13에서는 하나님이 바다 괴물들의 머리를 깨뜨리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승리를 표현하는 신화적·시적 이미지가 두드러집니다. 바다 괴물의 정확한 정체를 특정 동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8절의 「불」은 이 문맥에서 번개나 번개를 동반한 폭풍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은 「불」이라고 말하며, 특정 기상 현상으로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짙은 연기」로 옮긴 원문의 말은 연기나 김,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정확히 어떤 대기 현상을 묘사하는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이루는 폭풍」은 시편 147:15–18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을 움직이는 장면과 가까이 연결됩니다. 구약의 다른 본문들은 자연의 힘이 갖는 두 가지 면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9:18–26에서는 우박이 이집트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고, 시편 104편에서는 바람과 물을 포함한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지혜로운 다스림 아래 묘사됩니다.

산과 나무, 동물과 새들이 이루는 찬양

시편 148:9–10 본문 →

산들과 모든 언덕, 열매 맺는 나무와 모든 백향목들아,시편 148:9 · 두루새김
들짐승과 모든 가축, 기어 다니는 것들과 날개 달린 새들아,시편 148:10 · 두루새김

시인의 시선이 이제 바다와 하늘의 기상 현상에서 땅 위의 생명들로 옮겨 옵니다. 이 목록을 자세히 보면 시인이 일부러 서로 다른 종류의 존재들을 짝지어 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과 언덕은 높이와 규모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열매 맺는 나무와 백향목도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닙니다. 열매 맺는 나무는 사람과 동물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향목은 거대한 크기와 우람한 모습, 좋은 목재로서의 가치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열매 맺는 나무와 백향목을 나란히 부르는 것은 서로 다른 모습과 쓰임을 가진 나무들이 모두 창조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10절에서도 비슷한 배열이 이어집니다. 들짐승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들을 떠올리게 하고, 가축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동물들입니다. 기어 다니는 것들과 날개 달린 새들은 움직이는 방식에서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시인은 어떤 존재가 인간에게 유익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크고 강한지에 따라 찬양의 자격을 나누지 않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못하고, 나무는 말을 하지 않으며, 동물들은 인간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을 모두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바라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존재가 인간에게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기준으로 그 가치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시편 148편에서 산과 나무와 동물들이 찬양하도록 불리는 이유는 인간에게 유익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창조 세계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자원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존재는 창조주 앞에 놓여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함부로 무시할 대상도 아닙니다.

이것을 곧바로 현대의 특정 환경 정책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이 그 세계를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제 그 세계 안에서 가장 특별한 책임을 지닌 존재들, 곧 인간을 부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에서 레바논의 백향목은 특히 크고 귀한 나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5장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들여오는 일을 기록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식물과 물속의 생명, 새들과 땅의 동물들을 차례로 창조하시며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마련하십니다. 시편 148편은 창조의 순서를 그대로 되풀이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창조 세계를 두루 살피며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을 찬양으로 불러 모읍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세우셨는지 서술합니다. 시편 148편은 그 창조 세계가 누구를 찬양해야 하는지 선포합니다. 같은 세계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왕도 아이도 같은 찬양을 해야 합니다

시편 148:11–12 본문 →

11절: 땅의 왕들이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다

땅의 왕들과 모든 민족, 지도자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아,시편 148:11 · 두루새김

시인은 마침내 사람들을 부릅니다.

이들은 사회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고, 법을 집행하거나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에서는 그들 역시 명령을 받는 위치에 놓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았듯이, 땅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천사의 영광도, 왕의 권력도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인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왕이나 백성만 부르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민족과 지도자들을 부릅니다. 시편 148편 역시 하나님이 특정 지역의 한 신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찬양해야 할 창조주이심을 선언합니다.

왕은 자기 나라에서 높은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재판관은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권력은 최종적인 권위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 살며,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시편 148편의 독특함은 그 왕들이 별이나 산, 동물들과 함께 한 목록 안에 놓인다는 사실입니다. 왕은 다른 사람들 위에 설 수 있지만, 창조 세계 전체와 구별되는 신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12절: 젊은이와 노인, 아이들이 함께 서다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아, 노인들도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라.시편 148:12 · 두루새김

여기서 특별히 눈여겨볼 표현은 「함께」입니다. 젊은이들이 먼저 찬양한 다음 노인들이 찬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노인들과 아이들이 각각 다른 찬양을 맡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찬양의 명령 아래 함께 부름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지위와 나이, 성별에 따라 찬양의 자격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시적 선언입니다. 왕과 재판관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명령을 듣고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서는 왕도 아이도 동일하게 부름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왕의 권력이 아이에게 없는 특별한 찬양의 자격을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모든 민족들」을 부르는 11절은 시편 96:7–10과 같은 보편적 찬양의 전통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여러 민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요청받으며,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이 선포됩니다. 시편 2편에서는 땅의 왕들과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맞서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두 시편의 문맥과 표현은 다르지만, 인간의 왕권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는 주제는 공통됩니다. 12절은 원문에서 7절부터 이어진 긴 문장의 끝이기도 합니다. 원문에서는 땅에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는 명령이 7절에 한 번 등장하고, 이후 바다 괴물과 깊은 물부터 젊은이와 노인과 아이들까지 계속 나열됩니다. 두루새김은 이 긴 부름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각 절에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여라」를 되풀이합니다. 원문에서 시인은 매번 새로운 명령을 내리지 않고, 하나의 명령 아래 모든 존재를 모읍니다.

모두가 찬양해야 하는 이유

시편 148:13 본문 →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찬양하기를. 그 이름만이 드높으니, 그 위엄은 땅과 하늘 위에 있다.시편 148:13 · 두루새김

13절은 5절과 호응하면서 노래의 두 번째 큰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자 그들이 지어졌다는 사실이 찬양의 이유였습니다. 13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높다는 사실이 찬양의 이유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어떤 권위와 성품을 지니셨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분의 이름이 드높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의 이름만이」 드높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앞에서 불러 모은 모든 존재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천사도 영광스럽습니다. 해와 달도 밝고, 별들도 빛납니다. 산은 높고, 백향목은 웅장하며, 왕은 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창조 세계 안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1절에서는 하늘에서 찬양하라고 시작했습니다. 7절에서는 땅에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는 「땅과 하늘」이라는 순서로 말합니다. 시편이 진행되는 동안 시인의 시선이 높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 뒤바뀐 순서는 앞에서 불러 모은 두 영역을 다시 하나로 묶는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 시인은 그 넓은 시야를 갑자기 한 백성에게 집중시킵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높으며, 그분의 영광이 하늘 위에 있다고 찬양합니다. 이어 인간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시고 돌보시는지 묻습니다. 시편 148편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고 그 위엄이 하늘과 땅 위에 있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만이 아니라 온 창조 세계가 찬양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시편 8편이 인간에게 맡겨진 특별한 자리와 책임에 주목한다면, 시편 148편은 인간을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인간은 창조 세계 안에서 특별한 책임을 맡았지만, 창조 세계 전체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 세계보다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높이십니다

시편 148:14 본문 →

그분이 그 백성을 위해 뿔을 높이 세우셨으니,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들, 그분 가까이 있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찬양할 일이라. 할렐루야!시편 148:14 · 두루새김

앞의 열세 절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찬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천사, 군대, 해와 달, 별, 바다 괴물, 폭풍, 산, 나무, 동물, 왕, 민족, 노인, 아이들까지 모두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는 이스라엘이 나옵니다.

뿔을 높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동물의 뿔은 힘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특히 들소나 숫양처럼 뿔을 가진 동물에게 뿔은 힘과 위세를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이미지를 사람이나 왕국의 힘, 명예, 높아진 지위를 표현하는 데 사용합니다.

사무엘상 2:1에서 한나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뿔이 높아졌다고 고백합니다. 오랫동안 고통받고 멸시당했던 한나에게 이 표현은 하나님이 자신을 높이시고 기쁨을 주셨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쓰임을 고려하면 시편 148:14의 「뿔을 높이셨습니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힘과 지위를 회복시키시고 높이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어떤 특정한 왕이나 군사적 승리를 지목하지 않습니다. 또한 「뿔」이 왕권을 상징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여기서 반드시 한 왕이나 메시아 개인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뿔을 높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힘과 명예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이 백성의 뿔을 높이십니다

여기서 13절과 14절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13절에서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드높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뿔을 높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보다 높으십니다. 그런데 그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높이기 위해 행동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올려 드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무언가를 하십니다. 모든 존재보다 높으신 하나님은 그 높으심을 자신의 백성과 무관하게 간직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위해 힘을 나타내시고 그들을 높이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절을 단순한 이스라엘의 자랑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백성이 높아진 것은 그들 자신의 위대함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운 백성

여기서 이스라엘은 「그분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라고 불립니다. 이 표현은 지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신명기 4:7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를 때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이 다른 민족들과 비교하여 강조됩니다.

시편은 가장 높은 하늘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 하나님이 가까이하시는 백성이 등장합니다.

높으심과 가까우심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속하고 다른 민족들은 제외된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앞의 11–12절에서 시인은 이미 땅의 모든 민족과 왕들,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불렀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절의 이스라엘은 보편적인 찬양을 취소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온 세계의 창조주를 찬양하는 노래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한 백성의 감사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신적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창조 세계에 속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특별히 기억하고 찬양할 이유를 가진 백성입니다.

14절의 끝은 하나님이 백성을 높이신 일이 그분께 충실한 사람들에게 찬양의 이유가 되었다는 읽기와, 그들에게 영광이나 명예가 되었다는 읽기로 갈립니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일이 그들에게 기쁨과 찬양의 이유가 되었다는 중심 의미는 유지됩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75:10에서는 의인들의 뿔이 높아지는 것과 악인들의 뿔이 꺾이는 것이 대조됩니다. 13절과 14절의 히브리어 동사는 같지 않습니다. 13절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들려 있다는 상태를, 14절은 하나님이 뿔을 높이시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시적인 의미에서는 뚜렷한 연결이 있습니다. 147편은 하나님이 자신의 규정과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알려 주셨다는 사실로 끝났습니다. 148편은 온 세계가 찬양하도록 부른 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뿔을 높이셨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두 시편은 모두 하나님의 보편적인 창조와 통치 안에서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노래합니다. 14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뿔을 높였다는 표현 뒤에 「그의 모든 신실한 이들을 위한 찬양」이라는 명사구를 이어 놓습니다. 첫 번째 읽기는 하나님의 행동이 찬양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에 초점을 둡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백성이 높아졌다는 결과를 강조합니다. 두루새김은 「그분께 충실한 모든 사람, 곧 그분 가까이에 있는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이 찬양할 일입니다」라고 옮겨 첫 번째 읽기를 선택했습니다. 이 시편 전체가 찬양을 촉구하는 노래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연결입니다. 이사야 44:23에서는 하늘과 땅의 깊은 곳, 산과 숲과 나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야곱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창조와 구원이 구약에서 서로 분리된 두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5:13에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시편 148편을 직접 인용한 것이라기보다 온 창조 세계의 찬양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킨 성경 전체 안의 연결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높이시는 것

시편 148:1–14 본문 →

시편 148편은 하늘에서 시작했습니다. 천사들과 군대들이 부름받고, 해와 달과 별들이 뒤따랐습니다. 이어서 노래는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바다 괴물과 깊은 물, 폭풍과 우박, 산과 나무, 들짐승과 새들이 등장했습니다. 왕과 지도자, 젊은이와 노인, 아이들도 그 찬양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창조주의 위대함은 그분이 모든 것보다 높으시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다스리시고,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며, 그들을 위해 행동하신다는 사실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같지 않으시지만, 창조 세계와 무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지만,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것이 온 우주의 찬양이 이스라엘의 감사로 끝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찬양은 자신이 다른 민족보다 본래 더 위대하다는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감사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운 백성이라는 고백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 자신을 높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시편이 시작할 때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높이신 백성을 바라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뿔을 높이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찬양의 중심에 세우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와 함께 그들을 높이신 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