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높아지는 사람의 겸손
한때 아버지는 자녀보다 강했습니다. 자녀가 걸음마를 배울 때 손을 잡아 주었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 주었으며,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힙니다. 자녀는 힘이 왕성해지고, 아버지는 늙어 갑니다. 젊은 시절에는 쉽게 이해하던 것을 더디 이해하고, 스스로 처리하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자녀는 아버지를 어떻게 대할 것입니까?
집회서 3장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익숙한 가르침으로 시작하지만, 그 가르침이 가장 날카로워지는 곳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집회서가 묻는 것은 단순히 부모가 얼마나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자녀가 자신보다 약해진 부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8절에서는 큰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추라고 말합니다. 21절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함부로 캐묻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마지막에는 불을 끄는 물과 죄를 씻는 자선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점차 인간의 지위와 지식, 고집 센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로 시야를 넓혀 가는 것입니다. 이 서로 다른 가르침을 연결하는 것은 한 가지 질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지식과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왜 하나님과 관계되는가
얘들아, 아버지인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도록 그 말대로 행동해라.집회서 3:1 · 두루새김
여기서 아버지는 가르치는 사람의 위치를 가리킵니다. 고대 지혜 문학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을 자녀처럼 부르며 가르치는 형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잠언 4:1에서도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으라고 권합니다.
주께서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를 높이셨고, 어머니가 아들들을 이끌 권한을 굳게 세우셨기 때문이다.집회서 3:2 · 두루새김
본문은 부모의 권위를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사실에서 찾지 않습니다. 주께서 그 관계 안에 부모의 자리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20:12와 신명기 5:16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의 일부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단지 개인적인 친밀감이나 가족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질서와 연결됩니다.
고대 사회의 가족 구조는 오늘날과 달랐고,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가정의 대표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어머니를 단지 아버지에게 딸린 사람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역시 자녀가 존중해야 할 권위를 가진 존재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듭 나란히 등장하는 것도 같은 방향을 보여 줍니다.
자기 어머니를 높이는 사람은 보물을 쌓아 두는 사람과 같다.집회서 3:4 · 두루새김
아버지를 공경하는 사람은 자녀들 덕분에 기뻐할 것이다. 자기 어머니를 높이는 사람은 보물을 쌓아 두는 사람과 같다. 또 그가 기도하는 날에는 응답받을 것이다.집회서 3:5 · 두루새김
아버지를 높이는 사람은 오래 살 것이다. 주의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 어머니를 편히 쉬게 하고, 자기를 낳은 부모를 주인처럼 섬길 것이다.집회서 3:6–7 · 두루새김
이 복들은 모두 부모 공경이 단순한 예절 이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부모를 대하는 행동은 그 사람의 삶 전체와 하나님과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다만 3:5의 두루새김 본문에서 「자기 어머니를 높이는 사람은 보물을 쌓아 두는 사람과 같다」는 부분은 3:4와 중복되어 있습니다. 대조한 그리스어 본문에는 5절에 이 문장이 없으므로, 의도된 반복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정확합니다.
부모 공경은 어떻게 죄를 씻는가
아버지를 공경하는 사람은 죄를 씻을 것이다.집회서 3:3 · 두루새김
부모를 공경하면 죄가 용서된다는 뜻입니까? 인간의 선행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표현을 단지 부모 공경이 좋은 행동이라는 뜻으로 약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실제로 부모 공경과 죄의 속함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집회서의 지혜 전통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이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올바르게 나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다른 사람에게도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별개로 쌓는 공로가 아니라, 그 신앙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 문제는 14–15절과 30절에서 더욱 구체화됩니다. 거기서는 부모를 돌보는 자선과 일반적인 자선이 죄를 씻는 일에 연결됩니다.
말과 행동으로 세우는 집
아버지에게서 복을 받도록, 말과 행동으로 네 아버지를 공경해라.집회서 3:8 · 두루새김
공경은 마음속의 존경심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정중한 말을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도우면서도 모욕적인 말과 태도로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함께 부모 공경의 내용을 이룹니다.
아버지의 축복은 자녀들의 집을 굳게 세우지만, 어머니의 저주는 집의 기초를 뿌리째 뽑기 때문이다.집회서 3:9 · 두루새김
여기서 집은 단순히 건축물을 뜻하기보다 가정과 그 삶의 안정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구절은 부모의 말에 마술적인 힘이 있어 축복을 선언하면 반드시 부유해지고 저주하면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지혜 문학은 인간관계의 도덕적 무게를 생생한 모습과 대조로 표현합니다.
가족 안에서 주고받는 존중과 모욕은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그 관계가 이어지는 삶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여기서 스승이 주목하는 것은 부모가 가진 힘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가보다, 자녀가 부모와의 관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입니다.
그 관계의 진실함은 부모가 강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을 때보다, 약하고 초라해졌을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아버지가 약해졌을 때 공경은 무엇이 되는가
아버지의 수치를 네 자랑으로 삼지 마라. 아버지의 수치로 네가 영광을 얻지는 못하기 때문이다.집회서 3:10 · 두루새김
사람의 영광은 아버지가 받는 존중에서 나오고, 어머니가 수치를 당하면 자녀들도 부끄러움을 당하기 때문이다.집회서 3:11 · 두루새김
집회서가 기록된 고대 사회에서 개인의 명예는 가족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과 평판은 그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가족 전체의 영광과 수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수치를 자기 자랑으로 삼지 말라는 말은, 부모가 낮아졌다고 해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승은 부모와 자녀를 경쟁 관계로 보지 않습니다.
자녀의 영광은 부모를 밟고 올라서는 방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숨기거나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가족의 명예가 중요하다는 고대 사회의 관점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부모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특히 11절의 어머니에 관한 표현은 당시의 명예와 수치 문화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것을 자녀가 부모의 사회적 평판이나 불행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명령으로 적용하는 것은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어서 12절부터는 부모의 명예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로 바뀝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늙으면 도와드려라.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집회서 3:12 · 두루새김
앞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할 때에는 부모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가 늙고 이해하는 능력까지 약해지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공경받을 능력이 약해져도 공경의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깨닫는 힘을 잃더라도 너그럽게 대해라. 네 힘이 한창이라고 해서 아버지를 업신여기지 마라.집회서 3:13 · 두루새김
늙은 아버지가 예전처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예민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힘이 왕성한 자녀는 자신의 능력을 기준으로 부모를 판단하기 쉽습니다. 왜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답답해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잘하던 일을 이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했던 관계가 이제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자녀의 힘은 부모를 지배하고 모욕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 부모를 도와주고 보호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부모에게 힘이 있을 때 인정하는 권위만이 아니라, 그 힘을 잃은 뒤에도 존중받아야 할 존엄과 관계됩니다.
부모가 약해졌을 때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며, 그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는 행동이 공경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부모 공경은 부모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부모와 맺은 관계에 대한 책임으로 나타납니다.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나 학대까지 정당화하면서 자녀에게 참기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본문이 가르치는 돌봄과 자비의 의미에 어긋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과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정당한 경계를 세우는 일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베푸는 자선
14절은 이러한 돌봄에 새로운 이름을 붙입니다.
아버지에게 베푼 자선은 잊히지 않고, 네 죄를 대신하여 너를 위해 차곡차곡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3:14 · 두루새김
부모는 자녀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년의 부모는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 공경과 자선이 만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부모의 축복이 자녀의 집을 굳게 세웠습니다. 이제는 부모를 돌보는 자선이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더 쌓아 올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네가 고난을 겪는 날, 그 자선은 너를 위해 기억될 것이다. 맑은 날씨에 서리가 녹듯이 네 죄도 녹아 없어질 것이다.집회서 3:15 · 두루새김
사람이 다른 이에게 베푼 자비는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승은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자비의 실천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죄의 문제를 말하면서도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아버지를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람과 같고, 자기 어머니를 성나게 하는 사람은 주께 저주받은 사람이다.집회서 3:16 · 두루새김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관계 안에서 돌봄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그분 앞에서도 중대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7:9–13에서 종교적인 관행을 이유로 부모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비판하십니다. 이는 집회서가 강조하는 부모 공경의 실제적인 성격과 맞닿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 후반부에서 두루새김이 「차곡차곡 쌓일 것」으로 옮긴 그리스어 프로사노이코도메테세타이(προσανοικοδομέω)는 이미 있는 것 위에 더 쌓아 올리는 건축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죄를 대신하여」에 해당하는 안티(ἀντί)는 대신함이나 맞바꿈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베푼 자선이 죄를 대신하여 세워진다는 모습과, 죄를 가리거나 없애는 효과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함께 가능합니다. 본문은 그 관계를 법률적인 계산처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무엇이 기억되는지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앞절의 자선이 기억된다고 읽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큰 사람일수록 왜 더 낮아져야 하는가
얘야, 온화한 태도로 네 일을 해 나가라. 그러면 인정받는 사람에게 사랑받을 것이다.집회서 3:17 · 두루새김
여기서부터 화제가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힘이 왕성한 자녀가 약해진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큰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온화한 태도로」는 단지 말투가 조용하거나 성격이 순하다는 뜻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힘과 권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거칠고 거만하게 사용하지 않는 삶의 태도와 연결됩니다.
네가 큰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어라. 그러면 주 앞에서 은혜를 얻을 것이다.집회서 3:18 · 두루새김
일반적으로 사람은 높은 위치에 오르면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이룬 성취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회서는 정반대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높아졌기 때문에 더 낮추어야 합니다.
주의 다스리시는 힘은 크고, 그분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집회서 3:20 · 두루새김
여기에는 인간의 큼과 하나님의 큼이 대조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오른다고 해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권력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의 다스리시는 힘은 큽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커질수록 그것이 어디까지나 제한된 능력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리에 서는 행동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합당하게 높이는 일과 자신을 합당하게 낮추는 일은 서로 다른 덕목이 아니라, 같은 겸손의 두 방향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도 겸손입니다. 자기보다 높은 분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겸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15:33과 18:12에서는 겸손이 영광에 앞선다고 말합니다. 집회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이 클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4:11에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집회서 3:18–20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집회서의 직접 인용이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이스라엘의 지혜 전통에서 겸손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보여 줍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캐묻지 말라는 말은 질문하지 말라는 뜻인가
네게 너무 어려운 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네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캐묻지 마라.집회서 3:21 · 두루새김
인간이 질문하고 탐구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스승의 말은 마치 지적 호기심을 억제하는 명령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말 집회서는 인간이 어려운 문제를 탐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일까요?
이미 주어진 것과 감추어진 것
네게 명령된 것들을 깊이 생각해라. 감추어진 것들을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집회서 3:22 · 두루새김
스승은 감추어진 것을 모두 알아내려는 욕망보다, 이미 알려지고 명령된 것을 깊이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명기 29:29와 가까운 생각입니다. 그곳에서는 감추어진 일은 여호와야훼께 속하고 드러난 일은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속한다고 하면서, 그 목적을 율법의 말씀을 행하는 데 둡니다.
두 본문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과 이미 주어진 가르침에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결합니다.
본문은 22절에서 「깊이 생각해라」라고 말합니다. 주어진 것을 단순히 암기하거나 따져 보지 않고 반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탐구 능력에 어떤 태도를 갖는가입니다.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충분한 근거가 없는데도 자신의 추측을 확실한 사실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의무는 실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가 할 일의 범위를 벗어나 참견하지 마라. 네게 이미 알려진 것만 해도 사람의 깨달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집회서 3:23 · 두루새김
앞에서는 감추어진 것을 알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인간의 깨달음을 넘어서는 것들이 이미 알려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아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자기 능력으로 찾아낼 수 없는 것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신 것처럼, 집회서는 계명과 가르침을 인간에게 주어진 귀한 지식으로 이해합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모든 새로운 질문이나 연구를 금지하거나, 이미 권위를 가진 사람의 판단을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일입니다.
스승이 경계하는 것은 충분한 이해 없이 함부로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지혜로운 탐구에 필요한 신중함과 겸손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측이 사람을 미끄러지게 한다
많은 사람이 자기 추측에 이끌려 길을 잘못 들었고, 악한 짐작 때문에 생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집회서 3:24 · 두루새김
여기서 문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입니다.
특히 원문에서는 잘못된 추측이 사람을 미끄러지게 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악한 짐작 때문에 생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잘못된 생각은 언제나 한순간에 사람을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판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추측을 반복해서 믿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판단을 바로잡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생각과 판단에서 겸손하다는 것은 생각하기를 멈추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더욱 주의 깊게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스승은 이제 단순한 추측보다 더 위험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 고집 센 마음입니다.
굳어진 마음과 듣는 귀
위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위험에 빠질 것이다. 고집 센 마음은 마지막에 고통을 당하고, 고집 센 마음은 마지막에 무겁게 짓눌릴 것이다.집회서 3:26 · 두루새김
고집 센 마음은 고통에 짓눌릴 것이며, 죄인은 죄 위에 죄를 더할 것이다.집회서 3:27 · 두루새김
여기서 고집 센 마음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을 고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앞에서는 추측이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길에서 돌아서려 하지 않는 태도를 경고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끝까지 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면, 잘못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27절의 「죄 위에 죄를 더할 것이다」는 바로 그런 모습을 그립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의 작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다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에게 닥친 재앙은 고칠 길이 없다. 악이라는 풀이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집회서 3:28 · 두루새김
이것을 거만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회개하거나 변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선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혜 문학의 강한 경고로서, 악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면 문제를 바로잡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악의 뿌리가 외부가 아니라 「그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승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모두 외부 환경이나 타인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만함이 문제를 지속시키기도 합니다.
앞에서는 부모의 축복이 집을 굳게 세우고, 부모에게 베푸는 자선이 자신을 위해 차곡차곡 쌓이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제는 악이라는 풀이 사람 안에 뿌리를 내린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을 세우고 어떤 것을 자라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비유를 깊이 생각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을 바란다.집회서 3:29 · 두루새김
이 구절의 그리스어는 듣는 이의 귀를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으로 연결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가르침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3장은 「얘들아, 아버지인 내 말을 들어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 바라는 것으로 제시합니다.
고집 센 마음은 자신의 말만 듣지만, 지혜로운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자리를 남겨 둡니다.
물이 불을 끄듯, 자선은 죄를 씻는다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끌 것이며, 자선은 죄를 씻을 것이다.집회서 3:30 · 두루새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가르치던 본문이 마지막에는 일반적인 자선의 원칙으로 확장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왜 하필 물과 불인가
죄는 파괴적인 불에 비유되고, 자선은 그 불을 끄는 물에 비유됩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죄를 지어도 일정한 금액을 기부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자선이 죄와 관계없이 외부에서 덧붙이는 종교적 거래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부모 공경과 겸손한 삶의 연장선에서 자선을 제시합니다.
자선은 단순히 자기에게 쌓일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오직 자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합니다.
이처럼 자선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생각은 집회서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집회서 29:8–13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자선을 베푸는 일을 권하면서, 그것을 보물을 쌓는 것과 연결합니다.
다만 집회서가 자선에 죄를 속하는 효력을 부여한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이 표현을 후대의 교리적 틀에 맞추어 없었던 것처럼 다룰 필요는 없습니다.
넘어질 때 발견하는 버팀목
은혜를 갚는 사람은 앞으로 닥칠 일을 마음에 두며, 넘어질 때 버팀목을 찾을 것이다.집회서 3:31 · 두루새김
여기서 「은혜를 갚는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자신이 받은 호의나 은혜에 응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 역시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응답할 줄 압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버팀목」을 반드시 자신이 도와준 사람이 나중에 똑같은 도움을 돌려준다는 뜻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구체적으로 그 버팀목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선을 일종의 보험처럼 베풀고, 나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반드시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문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좁히는 해석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위치에만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자신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한때 부모를 도와주던 자녀 역시 시간이 흐르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던 사람도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순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의 삶에서 은혜를 기억하고 서로 돕는 관계는 중요한 버팀목이 됩니다.
3장의 처음에는 부모의 축복이 자녀의 집을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넘어지는 사람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등장합니다. 집을 세우는 것과 넘어진 사람을 붙드는 것은 서로 다른 장면이지만, 둘 다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행동입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잠언 19:17은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여호와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집회서에서는 이웃을 향한 자선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씻는 일과까지 연결됩니다. 잠언 16:6은 인자와 진리로 죄악이 속하게 된다고 말하고, 다니엘 4:27은 죄를 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권합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삶과 이웃에게 베푸는 자비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행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관계되는지를 모든 성경 본문이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힘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집회서는 겸손이 사람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식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의 약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영향을 준다고 가르칩니다.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받았음을 알고,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 수 있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에는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혼자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붙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집회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끝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강할 때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언젠가 자신도 다른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던 자녀가 이제 늙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 줍니다.
그 손길 안에서 이 장의 부모 공경과 겸손과 자선이 하나로 만납니다.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붙들어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넘어질 때에도 붙들어 줄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집회서 3장은 인간이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지혜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