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5–20장 · 압살롬의 반란
좋은 계략이 무너진 밤
사무엘하 17장은 한밤중에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으로 시작하여, 광야에서 굶주린 다윗과 백성에게 음식이 도착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전투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싸움은 이미 이루어집니다.
압살롬 앞에서 두 조언자가 서로 다른 전략을 제시합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이 지쳐 있는 지금 당장 공격하라고 합니다. 후새는 다윗이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를 강조하며,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아 압살롬이 직접 공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승리할 방법까지 알고 있을 때, 무엇이 그 계획의 성패를 결정합니까?
아히도벨의 계략 — 다윗 한 사람만 죽이면 된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군사 만 이천 명을 골라 오늘 밤 곧바로 다윗을 뒤쫓게 해 주십시오.」사무엘하 17:1 · 두루새김
이 제안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군사의 숫자보다 「오늘 밤」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급히 떠났습니다. 그의 일행에는 군사뿐 아니라 가족과 여러 신하, 어린아이들도 있습니다. 광야를 향해 이동한 그들은 이미 지쳐 있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서술자는 다윗과 백성이 지친 채 도착하여 숨을 돌렸다고 기록했습니다(16:14).
다윗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군대를 다시 정비하거나 안전한 장소를 찾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그는 만 이천 명을 직접 이끌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는 압살롬이 많은 군사를 모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빠른 작전입니다.
「다윗이 지쳐 힘이 빠져 있을 때 덮쳐서 겁에 질리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달아날 것입니다. 저는 다윗 왕 한 사람만 쳐 죽이겠습니다.」사무엘하 17:2 · 두루새김
그는 다윗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왕께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돌아오는 일은 왕께서 노리시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평안히 지낼 것입니다.」사무엘하 17:3 · 두루새김
히브리어 본문은 ‘모두가 돌아오는 것’과 ‘그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이 매끄럽지 않아, 모든 백성이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처럼 돌아온다는 읽기와 한 사람을 없애는 데 모든 사람의 귀환이 달렸다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앞뒤 문맥에서 그 한 사람은 다윗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만 죽이면 나머지 백성이 압살롬의 통치 아래 돌아올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압살롬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왕에게 충성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윗이 죽으면 계속 싸워야 할 이유가 약해질 것이라고 아히도벨은 예상합니다.
효율적인 계략이 반드시 의로운 것은 아니다
4절에서 압살롬과 장로들은 그 계획을 좋게 여깁니다. 서술자도 뒤의 14절에서 아히도벨의 조언을 「좋은 조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 계획이 군사적으로 설득력 있었다는 점은 본문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히도벨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하지만, 그 평화의 조건은 다윗의 죽음입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백성이 평안히 지낼 것입니다」라는 약속은 정치적 효과에 대한 주장이지, 정의가 실현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아히도벨에게 중요한 것은 압살롬의 왕권을 안정시키는 일입니다. 다윗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지, 압살롬의 반란 자체가 옳은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지혜 전통은 지혜를 단순히 영리함이나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잠언 8:13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악을 미워하는 것을 연결하고, 잠언 21:3은 의롭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일을 제물보다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히도벨이 뛰어나게 전략을 세웠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조언을 참된 지혜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에는 약점도 하나 있습니다.
그 계획이 성공하려면 압살롬이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즉시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후새도 불러오라고 합니다.
후새는 다윗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어 말한다
압살롬이 후새의 의견까지 듣기로 한 이유는 본문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아히도벨의 계획에 의심을 품었을 수도 있고, 중요한 전쟁을 앞두고 두 조언자의 의견을 비교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아히도벨의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다른 판단이 끼어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대답했습니다. 「이번에 아히도벨이 내놓은 조언은 좋지 않습니다.」사무엘하 17:7 · 두루새김
후새는 아히도벨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가 대체로 좋은 조언을 한다는 평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번 계획만큼은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후새가 말을 이었습니다. 「왕께서도 아버지와 그분의 부하들이 용사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들에서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왕의 아버지는 싸움에 익숙한 분이라 군사들과 함께 밤을 보내지 않으실 것입니다.」사무엘하 17:8 · 두루새김
아히도벨은 다윗이 지쳤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후새는 다윗이 용사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두 사람 모두 다윗의 실제 모습 가운데 일부를 붙들고 있습니다. 다윗은 분명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오랜 전투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광야와 산지에서 여러 차례 위험을 피했습니다(사무엘상 23–24장). 작은 무리를 이끌고 강한 적을 상대해 본 경험도 있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의 군사적 능력을 모를 리 없습니다.
새끼를 빼앗긴 곰이라는 비유는 단순히 분노가 크다는 뜻을 넘어서,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후새의 말에 따르면 다윗의 일행은 공격받으면 쉽게 달아날 무기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거세게 저항할 수 있는 용사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다윗을 더욱 두렵게 만들다
「지금도 어느 구덩이나 다른 곳에 숨어 계실 것입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왕의 군사들 가운데 쓰러지는 사람이 생기면, 그 소식을 듣는 사람은 『압살롬을 따르는 군대가 패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사무엘하 17:9 · 두루새김
아히도벨은 다윗이 쉬고 있는 곳을 기습하면 그를 죽일 수 있다고 계산했습니다. 후새는 다윗이 이미 위험을 예상하여 다른 장소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만 이천 명의 군사가 달려가도 정작 다윗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후새가 다윗의 실제 은신처를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구덩이나 다른 장소는 다윗의 전쟁 경험을 근거로 제시하는 가능성입니다. 후새는 이러한 가능성을 매우 확신에 찬 말투로 전달합니다.
여기서 후새는 전투의 실제 결과보다 그 결과가 어떻게 알려질지를 이야기합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일부 손실을 입었을 뿐이어도, 다윗의 강력한 명성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큰 패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자 같은 용기를 지닌 군사라도 반드시 겁에 질려 용기를 잃을 것입니다. 왕의 아버지가 용사이시고 그분의 부하들도 용감하다는 것을 온 이스라엘이 알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17:10 · 두루새김
아히도벨은 지친 다윗에게서 힘이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후새는 용감한 압살롬의 군사에게서 용기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후새는 다윗의 약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압살롬이 더 크게 두려워할 만한 위험을 앞으로 끌어냅니다.
같은 상황도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후새의 계략 — 온 이스라엘과 함께 왕이 직접 나가야 한다
후새의 제안은 아히도벨의 계획과 거의 모든 점에서 반대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의 군사를 왕께 모으십시오.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사가 모이면, 왕께서 직접 그들을 이끌고 싸움에 나가십시오.」사무엘하 17:11 · 두루새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을 아우르는, 널리 쓰이던 지리 표현입니다(사무엘상 3:20; 사무엘하 3:10). 후새는 일부 뛰어난 군사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동원하자고 합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사」라는 표현은 단순히 군사가 충분하다는 말보다 훨씬 장엄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약속에도 모래의 이미지가 사용됩니다(창세기 22:17). 후새의 말을 들으면 압살롬은 자신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린 왕이 되어 거대한 군대를 이끄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계획에서는 아히도벨이 군대를 이끕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남아 결과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후새의 계획에서는 압살롬 자신이 군대의 중심에 섭니다.
이것은 압살롬이 이미 보여 준 왕권에 대한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왕이 직접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다윗을 제압하는 장면은 그의 권위를 뽐내기에 알맞습니다.
다만 압살롬이 실제로 개인적인 영광을 탐하여 이 제안을 선택했다고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후새의 제안이 그런 욕망에 호소할 수 있는 형태였다는 것은 문맥에서 가능한 해석입니다.
이슬처럼 덮고, 성읍까지 끌어내린다
「우리는 왕의 아버지가 어디에 있든 찾아가, 이슬이 땅을 덮듯 그분을 덮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물론이고 그분과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사무엘하 17:12 · 두루새김
이슬은 넓은 땅을 고르게 덮습니다. 후새는 대군이 다윗의 일행을 빈틈없이 둘러싸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을 것처럼 말합니다.
「그분이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시면, 온 이스라엘이 그곳으로 밧줄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성읍을 골짜기로 끌어내려, 그 자리에 조약돌 하나도 남지 않게 할 것입니다.」사무엘하 17:13 · 두루새김
성읍을 밧줄로 끌어내려 조약돌 하나까지 없앤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실행 가능한 성읍 공격 방법을 설명한다기보다 완전한 파괴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한 사람만 죽이고 나머지 백성은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후새는 다윗뿐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 가운데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후새의 조언을 더 자비로운 계획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다윗을 살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압살롬에게 제시한 계획 자체는 오히려 더욱 철저한 파괴를 약속합니다.
후새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히도벨의 계획은 빠릅니다. 후새의 계획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을 모으려면 소식을 전하고, 군사들을 모으고, 군대를 이동시켜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바로 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후새는 압살롬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더 확실한 승리를 위해 충분한 군대를 모으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후새의 말을 선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끌어내릴 대상이 다윗인지 성읍인지에 관한 문법적 논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성읍에 밧줄을 가져온다고 하고 뒤에서 조약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문맥은 성읍을 가리키는 읽기를 뒷받침합니다.
좋은 조언이 좌절된 이유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렉 사람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좋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정하셨습니다.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셨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17:14 · 두루새김
앞서 다윗은 아히도벨의 조언을 어리석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5:31). 아히도벨이 갑자기 어리석은 계략을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군사적으로 좋은 조언을 했습니다.
그의 조언을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히도벨의 지혜 자체를 없애신 것이 아니라, 그 지혜가 실행되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판단
앞 장에서 여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주장했지만, 서술자는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술자가 직접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정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압살롬과 장로들의 판단에 작용하셨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보이는 것은 두 조언자가 말하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대해 서술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밝힙니다.
후새는 실제로 상대를 설득할 전략을 세웠습니다. 압살롬도 자신이 들은 말을 판단하여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그 결과를 하나님의 결정과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그들이 의식하는 범위보다 넓게 보여 줍니다.
본문은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진술은 압살롬의 반란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드러냅니다. 그가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고 예루살렘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의 왕권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서는 사람이 보기에 성공한 일과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일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하신 이유는 다윗이 완전하기 때문인가
다윗은 앞선 사건들에서 심각한 죄를 저질렀고, 그의 집안에는 그 죄로 인해 무너진 관계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계획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다윗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의 약속이 있었습니다(사무엘하 7:12–16). 동시에 그의 죄에 대한 심판도 선포되었습니다(12:10–12).
이 두 말씀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여전히 그분의 보호 아래 있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이 여전히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가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는 판결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실패를 안고 있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이 장의 인물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지 못했습니다.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조언을 선택하는 결정이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새는 다윗을 살리기 위해 행동했지만, 자신의 설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분명히 알았다고 기록되지 않습니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알지 못하는 의미를 듣습니다.
사무엘하 17장의 서술자는 이 특정한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목적을 밝혀 줍니다. 그것을 근거로 오늘 일어나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우리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본문을 넘어섭니다.
이 점을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스리신다는 믿음은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계획이 무너졌어도 다윗에게 경고해야 한다
후새의 조언이 받아들여졌다면 다윗은 안전해진 것일까요?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후새는 곧바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찾아가 양쪽 조언의 내용을 전합니다. 그런 다음 급히 다윗에게 소식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이렇게 전해 줘. 『오늘 밤 광야의 벌판에 머물지 마시고, 반드시 강을 건너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왕도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죽게 될 수 있습니다.』」사무엘하 17:16 · 두루새김
그는 압살롬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히도벨의 계획이 실행되지 않으리라는 사실만 믿고 다윗이 그 자리에 남아 있어도 좋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위험합니다. 압살롬이 계획을 바꿀 수도 있고, 예상보다 빨리 군대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후새는 다윗과 백성 전체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한 사람만 죽일 계획을 제시했지만, 후새는 실제 공격이 이루어지면 다윗의 일행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제 다윗이 살아남으려면 정보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후새 자신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다윗에게 소식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15장에 다윗이 마련해 둔 연락망이 역할을 합니다.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그들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입니다.
17절은 두 아들이 엔로겔에 머물러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엔로겔은 예루살렘 남쪽의 물이 나는 곳과 관련된 장소로, 성읍 밖에서 소식을 주고받기에 알맞은 지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읍 안으로 들어가 눈에 띄는 일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자 종이 소식을 가져오고, 두 사람이 그 소식을 다윗에게 전달하도록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거치는 과정은 번거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후새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달 과정에서 위기가 생깁니다.
바후림의 우물 — 이름 없는 여자가 왕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한 젊은이에게 들킵니다.
그 젊은이는 압살롬에게 알립니다. 두 사람은 서둘러 바후림으로 가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 집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들은 안으로 내려가 몸을 숨깁니다.
후새는 다윗이 구덩이나 다른 곳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압살롬에게 말했습니다(17:9). 그것은 다윗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군사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몸을 숨기는 사람들은 다윗이 아니라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두 사람입니다.
집의 여자는 우물 입구를 덮개로 가리고 그 위에 빻은 곡식을 널어 둡니다. 덮개만 있었다면 수상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곡식이 널려 있으면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됩니다.
여자는 특별한 무기나 권한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생활 도구와 공간을 이용하여 두 사람을 숨깁니다.
추격자들 앞에서 여자가 한 말
압살롬의 부하들이 그 집에 와서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어디 있어요?」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개울을 건너갔어요.」 부하들은 두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사무엘하 17:20 · 두루새김
여자의 말은 추격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속임수입니다.
여자의 행동은 여호수아 2장에서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긴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라합은 자기 집에 온 정탐꾼들을 지붕 위에 숨기고, 그들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이미 떠났다고 말합니다(여호수아 2:4–6). 두 사건은 직접적인 인용 관계는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 구조를 공유합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모든 상황에서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서술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서 여자가 두 사람을 보호했고, 그들이 중요한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히도벨과 후새는 왕 앞에서 조언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그들의 아들로서 특별한 임무를 맡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여자 종이 소식을 전달해야 하고, 또 다른 이름 없는 여자가 우물에 숨은 두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한 여자는 소식이 성읍 밖으로 나오게 했고, 다른 여자는 그 소식이 목적지까지 도달하도록 두 사람을 숨겨 주었습니다. 왕의 생존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이 예루살렘 왕궁에서 내려졌지만, 그 결정이 실제 효과를 내도록 만든 사람들은 성읍 밖의 평범한 공간에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역사 안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도 포함됩니다.
밤새 요단강을 건너는 사람들
압살롬의 부하들이 돌아간 뒤 두 사람은 우물에서 나와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여기서 다윗은 길게 질문하거나 조언자들을 다시 불러 의견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는 소식을 듣고 즉시 행동합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나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날이 밝을 무렵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사무엘하 17:22 · 두루새김
아히도벨은 「오늘 밤」 다윗을 뒤쫓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다윗의 죽음이 아니라 다윗과 모든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일이었습니다.
아히도벨에게 밤은 다윗을 죽일 기회였습니다. 다윗에게 밤은 그 위험에서 벗어날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술자는 굳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라고 덧붙입니다. 후새가 걱정한 것은 다윗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공격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요단강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을 건넌다는 것의 의미
요단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입니다.
여호수아 3–4장에서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강을 건너는 일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반대 방향으로 강을 건넙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입니다.
물론 다윗이 가나안 땅 전체에서 완전히 쫓겨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단강 동쪽에도 이스라엘 지파들이 물려받은 땅이 있었습니다(민수기 32장; 여호수아 13:8–33). 그러나 왕이 자신의 수도를 떠나 강 건너편으로 피한다는 사실에는 분명히 무언가를 잃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잃고, 왕궁을 잃고, 많은 백성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도 살아 있습니다.
왕좌는 없지만 백성이 있습니다. 성읍은 없지만 피할 곳이 있습니다. 승리는 없지만 다음 날이 있습니다.
밤새 강을 건넌 사람들은 아직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이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 밤을 살아서 지나갔습니다.
아히도벨의 죽음 — 자기 조언이 거절된 것을 보고
다윗이 살아서 강을 건넌 직후, 이야기는 아히도벨에게 돌아갑니다.
아히도벨은 자기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얹어 자기 성읍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집안사람들에게 할 일을 일러 준 뒤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무덤에 묻혔습니다.사무엘하 17:23 · 두루새김
다만 서술자가 그의 죽음을 「자기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과 직접 연결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모든 일을 계산하던 사람이 계산할 수 없었던 것
아히도벨은 전쟁에서 무엇이 유리한지를 판단할 수 있었지만, 압살롬이 어떤 조언을 선택할지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정하셨다는 설명 뒤에, 그 조언을 내놓았던 사람이 자신의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보고 삶을 마감합니다.
그렇다고 아히도벨의 죽음을 단순히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형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명령하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의 행동으로 서술됩니다.
다윗은 앞날을 알 수 없는 채로 강을 건넜습니다. 아히도벨은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애를 끝냈습니다. 한 사람은 아직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는 길을 계속 갑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무너진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서술자는 두 사람의 선택을 길게 평가하지 않지만, 그들의 서로 다른 움직임을 나란히 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가 자신이 제시한 전략만이 다윗을 죽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조언이 거절됨으로써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하고 자신도 위험해질 것을 예상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정확히 무엇을 생각했고 어떤 감정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마하나임 — 압살롬은 군대를 모으고, 다윗에게는 음식이 온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두 편의 움직임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다윗은 마하나임에 도착합니다. 압살롬도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넙니다.
마하나임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입니다. 사울이 죽은 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려가 왕으로 세웠습니다(사무엘하 2:8–9). 따라서 이곳은 다윗 왕조 이전에 왕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싸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입니다.
다윗이 그곳에 이르렀다는 것은 단순히 멀리 도망했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요단강 동쪽에서 다시 사람들과 필요한 물자를 모을 수 있는 중심지에 도착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압살롬은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지휘관으로 세웁니다. 25절에 나오는 가족 관계에 따르면 아마사의 어머니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와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아마사와 요압은 어머니 쪽으로 사촌 관계입니다.
다윗 편에서 싸우는 요압과 압살롬 편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아마사는 서로 완전히 관계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까운 친척 사이에서 서로 다른 왕을 위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서는 이 내전을 서로 다른 민족 사이의 전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한 왕국과 한 가족의 관계가 갈라진 전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압살롬은 길르앗 땅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다윗을 찾아온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뜻밖의 세 사람
27절은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했을 때 찾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암몬 사람들의 랍바에서 온 나하스의 아들 소비, 로드발에서 온 암미엘의 아들 마키르, 로글림에서 온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먼저 소비는 암몬 사람들의 중심 도시인 랍바에서 왔습니다. 다윗은 앞서 암몬과 전쟁을 벌여 랍바를 차지했습니다(사무엘하 10–12장). 따라서 암몬의 랍바에서 온 인물이 다윗에게 필요한 물자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소비의 아버지 나하스는 사무엘하 10:2에 등장하는 암몬 왕 나하스와 같은 인물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 장은 그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소비가 정치적으로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다윗을 돕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둘째 인물은 마키르입니다. 다윗이 사울 집안의 살아남은 사람을 찾았을 때, 므비보셋은 로드발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키르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9:4–5). 17장의 마키르는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 살던 곳이 모두 일치하므로 앞서 므비보셋을 돌보던 그 마키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시바는 므비보셋이 다윗을 배신했다고 주장했고, 다윗은 그 말을 듣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시바에게 넘겨주었습니다(16:3–4).
그런데 이제 므비보셋을 보호했던 마키르가 다윗을 돕기 위해 찾아옵니다.
이 사실만으로 시바의 고발이 거짓이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마키르와 므비보셋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독자에게 시바의 주장만으로 사울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이 누구에게 충성하는지 단정할 수 없음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셋째 인물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이 장에서 그는 로글림에서 왔다는 사실 외에 자세히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사무엘하 19:31–39).
왕에게 필요한 것은 왕관이 아니라 먹을 것이다
잠자리에 쓸 이불과 대야와 질그릇을 가져왔습니다. 또 밀과 보리와 곡식 가루와 볶은 곡식, 잠두와 렌즈콩과 볶은 곡식, 꿀과 엉긴 젖과 양과 염소와 소젖 크림을 다윗과 그 일행이 먹도록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들이 「이 사람들이 광야에서 굶주리고 지치고 목말라」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17:28–29 · 두루새김
이 긴 목록은 이야기의 속도를 늦춥니다.
독자는 전쟁의 결과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군대가 가까이 오고 있고, 다윗이 어떻게 반격할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군사 작전 대신 잠자리에 쓸 이불과 곡식, 그릇과 엉긴 젖, 양과 염소를 하나하나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잠을 자려면 이불이 필요합니다. 음식을 보관하고 준비하려면 그릇이 필요합니다. 긴 이동을 계속하려면 곡식과 단백질을 공급할 먹을거리가 필요합니다.
왕의 군대도 먹지 않으면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 사람은 왕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선언이나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백성이 굶주리고 지쳤으며 목마르다는 사실을 먼저 말합니다.
압살롬 편에는 군대를 지휘할 아마사가 있고, 다윗 편에는 먹을 것을 가져온 소비와 마키르와 바르실래가 있습니다.
왕국의 운명이 결정될 전투를 앞두고, 본문은 먼저 생명을 유지하는 일을 보여 줍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여호와야훼의 일하심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행동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의 행동이 지닌 더 깊은 의미는 그들이 알고 있던 목적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어진 행동을 통해 다윗은 아히도벨이 노리던 밤을 무사히 벗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왕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조언들이 오갔습니다. 아히도벨은 오늘 밤 다윗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후새는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으면 다윗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말들이 오가는 동안, 바후림의 어느 집에서는 한 여자가 우물 입구에 덮개를 펼치고 곡식을 널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행동 덕분에 두 사람이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고, 다윗의 백성은 날이 밝기 전에 모두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은 것은 승리를 축하하는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이불과 그릇, 밀과 보리, 꿀과 엉긴 젖과 양과 염소를 가져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이 굶주리고 지치고 목마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국을 둘러싼 싸움의 한가운데서, 누군가는 사람을 죽일 가장 좋은 때를 찾았고,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것을 가져왔습니다.
사무엘하 17장은 그 음식들이 다윗과 백성 앞에 놓이는 장면에서 멈춥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광야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이 생겼습니다. 다윗에게 필요한 다음 날은 그렇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