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6–12장 · 가나안 성읍과의 싸움
오랜 전쟁 끝에 찾아온 평온
여호수아 11장은 거대한 군대가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해, 전쟁이 그친 땅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수많은 왕이 군대를 이끌고 나옵니다. 그들의 군사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고, 말과 병거도 아주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보다 훨씬 큰 연합군과 마주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의외의 말들이 이어집니다. 여호수아가 온 땅을 차지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아낙 사람들이 살아남은 지역이 있다고 밝힙니다. 모든 왕을 무너뜨렸다는 긴 정복 기록 뒤에는 그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차지했다는 「온 땅」은 무엇이며, 아직 남아 있는 적들 가운데서 그 땅이 평온해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군대
앞 장에서 남쪽의 다섯 왕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웠다면, 이번에는 북쪽의 왕들이 하나로 모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초르 왕 야빈이 있습니다. 야빈은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 악샤프 왕에게 전갈을 보내고, 북쪽 산지와 킨네롯 남쪽의 아라바, 서쪽 도르 지역에 있는 왕들까지 불러 모읍니다. 3절에서는 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사람들뿐 아니라 산지의 아모리 사람들, 헷 사람들, 브리스 사람들, 여부스 사람들, 그리고 헤르몬산 아래 지역의 히위 사람들까지 등장합니다.
킨네롯은 갈릴리 호수와 관계된 지명이며, 도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지역입니다. 헤르몬산은 가나안 북쪽의 높은 산악 지대에 있습니다. 이 지역들을 함께 나열하면 이스라엘에 맞서는 연합이 한 성이나 한 골짜기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습니다. 군사들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았고, 말과 병거도 아주 많았습니다.여호수아 11:4 · 두루새김
창세기 22:17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리라는 말씀도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1장에서는 바로 그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표현이 이스라엘의 적군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물론 이것이 창세기의 약속을 일부러 뒤집은 표현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바닷가의 모래는 고대의 글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에서 자신들보다 훨씬 거대해 보이는 군대를 마주합니다.
말과 병거는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강하게 싸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군사 자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로 걸어서 싸우는 군사들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과 비교하면, 적군이 가진 병거는 상당한 위협으로 제시됩니다.
모든 왕이 메롬 물가에 모여 함께 머물 자리를 잡습니다. 메롬 물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확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본문은 이곳을 북부 연합군이 함께 모인 전투 장소로 소개합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승리한 뒤 말과 병거를 없애야 하는가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일 이맘때 내가 그들 모두를 이스라엘 앞에 넘겨주어 죽게 하겠다. 그들의 말은 뒷다리 힘줄을 끊고, 병거는 불태워라.」여호수아 11:6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승리를 약속하시면서, 승리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그 병거들을 자기 군사력의 기반으로 삼지 못하게 하십니다.
말의 뒷다리 힘줄을 끊는다는 것은 말을 전쟁이나 이동에 사용할 수 없도록 심각하게 다치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명령은 실제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적인 행위라는 점을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다만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목적은 적의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7절에서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메롬 물가의 적군에게 갑자기 다가가 그들을 덮칩니다. 여기서 본문은 특별한 전술이나 긴 전투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습했고, 여호와야훼께서 적군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으며, 이스라엘이 그들을 공격했다고 기록합니다.
적군은 큰 성 시돈과 미스르폿 마임까지, 동쪽으로 미스베 골짜기까지 쫓겨 갑니다. 연합군은 함께 모였지만, 패배한 뒤에는 여러 방향으로 흩어집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적들의 말은 뒷다리 힘줄을 끊고, 병거는 불태웠습니다.여호수아 11:9 · 두루새김
본문은 여호수아가 얼마나 많은 병거를 차지했는지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실행했는지 기록합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정복이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북부 연합의 중심지였던 하초르로 돌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왜 그것을 전리품으로 확보하지 않고 파괴해야 했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20:1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갔을 때 적군의 말과 병거와 많은 군대를 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명기 17:16은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늘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규정은 왕의 권력과 군사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이 규정이 여호수아 11장의 말과 병거 파괴 명령을 직접 설명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군사적 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공통된 문제를 다룹니다.
하초르만 불태웠다는 사실
그때 여호수아는 돌아가 하초르를 점령하고 그 왕을 칼로 죽였습니다. 하초르는 이전에 이 모든 왕국을 이끄는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11:10 · 두루새김
따라서 하초르의 함락은 여러 성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사건 이상으로 기록됩니다. 북부 연합을 이끌던 중심 왕국의 패배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주민들은 칼에 죽임당하고, 성은 불타게 됩니다.
언덕 위에 서 있던 성들 가운데 여호수아가 불태운 곳은 하초르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머지 성들은 불태우지 않았습니다.여호수아 11:13 · 두루새김
여호수아서의 정복을 모든 가나안 성이 똑같이 불타 사라진 사건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장은 그런 그림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성을 점령하는 것과 그 성을 불태우는 것은 서로 다른 행동입니다.
왜 하초르만 불태웠는지는 본문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북부 연합의 우두머리였다는 앞선 설명을 고려하면, 하초르의 파괴가 연합 세력의 중심을 무너뜨렸음을 보여 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이유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불타지 않은 성읍과 죽임당한 사람들
14절은 성의 재산과 주민을 뚜렷이 구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성들의 모든 물건과 가축을 빼앗아 자기 몫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칼로 죽여 없앴습니다. 숨 쉬는 사람은 하나도 살려 두지 않았습니다.여호수아 11:14 · 두루새김
이 장면을 단순한 군사적 성공으로만 읽으면 본문이 말하는 죽음의 범위를 놓치게 됩니다. 여기서 죽임당한 대상은 군인만이 아닙니다. 성 안의 사람들까지 포함됩니다.
또한 11절과 14절에는 「온전히 바쳐 없앴습니다」와 「죽여 없앴습니다」라는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헤렘(חָרַם)과 관련된 표현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다는 의미를 배경으로 가지지만, 여기서는 주민들을 죽여 없애는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납니다. 본문은 이것을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정복의 실행으로 설명합니다. 신명기 7:1–2와 20:16–18은 가나안 민족들에게 적용되는 이러한 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설명이 인간의 죽음에 관한 윤리적 질문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11장은 남녀와 어린아이를 구별하여 보호했다는 기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성 주민을 죽이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묘사합니다.
본문이 역사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폭력을 아름다운 영적 비유로 바꾸거나, 죽음에 관한 기록을 가볍게 취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나안 정복을 여호와야훼의 명령으로 이야기하는 구약의 관점과, 그 사건이 제기하는 윤리적 어려움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장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주어진 것으로 기록됩니다. 이것을 오늘날 어떤 종교 집단이 다른 민족이나 사회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허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했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 가운데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여호수아 11:15 · 두루새김
여호수아는 스스로 새로운 정복 원칙을 만드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명령을 이어받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죽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명령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이스라엘이 장차 해야 할 모든 일까지 이미 완수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장은 여호수아가 자신에게 전달된 명령을 수행한 사실을 평가하는 것이지, 이후 이스라엘에게 남은 과제가 전혀 없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그 차이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드러납니다.
「온 땅」을 차지했지만 전쟁은 오래 계속되었다
16절부터 이야기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지금까지는 북쪽 왕들의 연합과 메롬 전투, 하초르의 함락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여호수아가 차지한 땅 전체를 돌아봅니다.
여호수아는 이 모든 땅을 차지했습니다. 산지와 네게브 전체와 고센 온 땅과 낮은 지대와 아라바, 그리고 이스라엘 산지와 그 낮은 지대였습니다.여호수아 11:16 · 두루새김
여기서 고센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집트의 고센 땅과 구별되는 가나안 남쪽의 지명입니다. 여호수아 10:41에도 같은 지역의 고센이 등장합니다.
17절은 남쪽의 할라크산에서 북쪽 헤르몬산 아래의 바알 가드까지 정복 범위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여호수아의 정복이 가나안의 남쪽과 북쪽을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는 이 모든 왕과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습니다.여호수아 11:18 · 두루새김
여호수아 10장과 11장의 전투를 차례로 읽다 보면, 여러 왕이 연합하여 싸우고 곧바로 패배하면서 정복이 빠르게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확히 몇 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나 며칠 사이에 이루어진 한 번의 작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이맘때」 적들을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6). 그 말씀은 메롬 전투의 결정적인 승리와 연결됩니다. 메롬에서는 갑작스러운 승리가 있었지만, 가나안 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면서도, 그 약속이 현실이 되기까지 걸린 긴 시간을 지우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신명기 7:22와 연결하여 읽을 만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여러 민족을 조금씩 몰아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신명기 7:22가 말하는 조금씩 몰아내는 일과 여호수아 11:18의 오랜 전쟁을 완전히 같은 과정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왜 기브온을 제외한 모든 성읍은 전쟁을 선택했는가
19절은 지금까지의 정복 이야기를 돌아보며 한 가지 예외를 언급합니다.
히위 사람들이 사는 기브온만 이스라엘 백성과 평화롭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다른 성들은 하나도 평화를 맺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그 성들을 모두 전쟁으로 차지했습니다.여호수아 11:19 · 두루새김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을 속여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주변 왕들과 싸웠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선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을 온전히 바쳐 없애고, 불쌍히 여겨 살려 두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곧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여호수아 11:20 · 두루새김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셨을까요?
마음을 완고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적대적인 태도가 굳어져 이스라엘을 향한 전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가나안 왕들이 원래 완고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전쟁에 나서게 된 일이 여호와야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직접 말합니다.
본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상,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셨고 그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셨을 뿐이라고 바꾸어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왕들이 억지로 자신들의 의지와 반대되는 전쟁을 수행했다는 구체적인 마음의 과정도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이 말하는 내용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후대의 신학적 해석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20절은 그들을 온전히 바쳐 없애고, 「불쌍히 여겨 살려 두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일반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가나안 정복이라는 특정한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야기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시고, 그 결과 그들이 전쟁에 나서 멸망하도록 하셨다는 진술은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심각한 질문을 남깁니다. 구약의 다른 본문들도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증언합니다(출애굽기 34:6–7). 그러나 여호수아 11장 자체는 그 두 주제를 하나의 완전한 논리 체계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설명으로 이 긴장을 성급하게 해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브온이라는 예외의 의미
다른 성들은 마음이 굳어져 전쟁을 선택했는데, 기브온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기브온 사람들은 평화롭게 지내기로 했지만, 그 과정은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여호수아서가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이 사실에서 가나안의 모든 주민이 기브온처럼 행동했다면 반드시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다른 성들이 평화를 요청했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지에 관한 가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 11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엄중하게 말하면서도, 그 역사 속에 존재했던 한 가지 예외를 특별히 기억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에는 강조점이 다른 두 접근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는 읽기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가나안 왕들의 완고함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더욱 굳어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출애굽기의 파라오처럼, 하나님께 대항하는 세력의 저항이 결국 자기들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정복 과정 전체를 하나님의 목적 아래 놓는 서술자의 관점을 강조하는 읽기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20절이 각 왕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석하기보다, 왜 대부분의 성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정복되었는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고 봅니다. 두 접근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심판의 목적을 약화해서는 안 됩니다.
아낙 사람들은 왜 정복 이야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가
20절에서 가나안 왕들의 전쟁에 관한 설명이 끝난 뒤, 21절은 뜻밖의 집단을 다시 등장시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산지로 가서 아낙 사람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헤브론과 드비르와 아나브, 유다의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그들을 없앴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그들의 성들과 함께 온전히 바쳐 없앴습니다.여호수아 11:21 · 두루새김
모세가 가나안 땅에 정탐꾼들을 보냈을 때, 정탐꾼들은 그 땅의 풍요로움과 함께 주민들의 강함을 보고했습니다. 특히 민수기 13:28은 가나안 땅의 주민들이 강하고 성들이 튼튼하며, 그곳에서 아낙의 자손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13:33에서는 정탐꾼들이 아낙 자손을 거인들과 연결하여 묘사하면서, 자기들이 그들 앞에서 메뚜기처럼 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낙 사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여러 집단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처음 약속의 땅 앞에서 물러섰을 때, 그 두려움을 대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 11장에서 그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전 세대의 정탐꾼들은 그들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이 살던 산지로 가서 그들과 싸웁니다. 이스라엘이 한때 두려움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던 바로 그 땅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복이 완전히 끝났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자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아 있었습니다.여호수아 11:22 · 두루새김
세 성은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지역과 관계된 곳들입니다. 이처럼 21–22절은 정복의 성과와 남아 있는 한계를 함께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14:12에서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곳에 아낙 사람들이 있고 성들이 크고 튼튼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어 여호수아 15:13–14에서는 갈렙이 헤브론에서 아낙의 자손들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여호수아 11장이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군사 작전을 요약하고, 14–15장은 그 가운데 헤브론 지역을 실제로 차지하는 과정을 갈렙의 관점에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의 초기 정복 이후에도 그 지역을 확실히 다스리는 과정이 계속되었고, 갈렙의 행동이 그 과정을 보여 준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두 사건의 정확한 시간 관계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활동을 하나의 상세한 연표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온 땅을 차지했는데, 왜 아직 남은 땅이 있는가
여호수아 11장의 마지막 절은 지금까지의 정복 이야기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대로 온 땅을 차지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지파마다 몫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땅은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습니다.여호수아 11:23 · 두루새김
실제로 지파별 땅의 분배는 여호수아 13장 이후에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11:23에서 모든 분배 절차가 이미 완료되었다고 이해하면 이후의 이야기와 맞지 않게 됩니다. 이 구절은 정복과 땅의 분배라는 큰 과정을 미리 함께 요약하는 것으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1–11장에서는 주로 전쟁과 정복이 중심이 됩니다. 12장에서는 정복한 왕들을 정리하고, 13장 이후에는 땅을 지파별로 나누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11:23은 이 두 부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쟁에서 얻은 땅은 여호수아 개인의 소유물이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대대로 물려받을 땅이 됩니다.
여기서 「대대로 물려받을 땅」으로 풀어 옮긴 히브리어는 나할라(נַחֲלָה)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재산이나 사고파는 토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집안이나 지파가 몫으로 받아 이어 가는 소유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떠돌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지파와 가족이 살아갈 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을 차지하고 각 지파의 몫으로 나누게 됩니다.
창세기 12:7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18–21에서는 그 약속이 다시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여호수아 11장의 마지막은 그 오랜 약속이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땅을 차지하는 것은 전쟁의 끝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갈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완성된 정복과 남아 있는 과제
여호수아 11장은 온 땅을 차지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3:1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아직 차지할 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1:23과 13:1을 나란히 놓으면 두 가지 사실을 구별해야 합니다. 첫째,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주요 왕들과 연합군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둘째, 그 결과 가나안의 모든 지역이 완전히 이스라엘의 다스림 아래 들어오고 모든 주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1:22에서도 이미 가자와 가드와 아스돗에 아낙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13:1–6에서는 아직 차지하지 못한 지역들을 다시 나열합니다. 따라서 「온 땅을 차지했습니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결정적인 정복을 이루었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작은 지역을 차지하고 정착하는 일까지 이미 완수되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두 진술 사이의 정확한 군사적·행정적 상태를 세부적으로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은 여호수아의 승리와 땅의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땅은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습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쉬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쉬었다고만 말하지도 않습니다.
평온해진 대상은 「그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땅에 들어가려 했고, 가나안의 왕들은 그 땅을 지키려고 싸웠습니다. 성들이 점령되고 불탔으며, 주민들이 죽임당했습니다. 이 표현은 전쟁이 가져온 결과를 군사 지도자 개인의 영광이나 이스라엘의 우월함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땅의 상태라는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신명기 12:9–10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아직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쉼과 물려받을 땅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 그 땅에 살게 되면, 여호와야훼께서 주변의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쉬게 하시고 안전하게 살도록 하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여호수아 11장의 마지막은 그 약속과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다시 여러 민족에게 억눌리고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사사기 4:2에서는 하초르에서 통치한 야빈이라는 이름의 왕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와 여호수아 11장의 야빈이 어떤 역사적 관계에 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초르라는 지역이 이후의 이야기에서도 다시 위협의 중심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승리의 끝에서 무엇이 시작되는가
평온은 아무 일도 남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전쟁이 끝나고, 그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땅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 완전히 정착한 것도 아니고, 이후의 전쟁이 영원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전투를 기록하는 동안 본문에는 왕과 군대, 말과 병거, 추격과 칼, 불타는 성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러한 무기나 전투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대대로 물려받을 몫으로 나누어진 땅입니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더 이상 어떤 왕도, 어떤 병거도, 어떤 승리의 환호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땅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그 땅은 전쟁에서 벗어나 평온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