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26장

이 장의 자리 · 17–26장 · 거룩한 삶의 규정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아무도 뒤쫓지 않는데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만 들어도 칼을 든 적군이 달려오는 것처럼 겁에 질립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고, 어디에서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장의 앞부분에는 정반대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누워 쉬어도 아무도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한쪽에는 누워도 두렵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도 쫓지 않는데 달아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레위기 26장은 흔히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장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본문에는 실제로 그러한 조건과 결과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 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축복은 비교적 짧게 제시되는데, 경고는 훨씬 길게 이어집니까? 왜 하나님은 심판을 한 번 선언하고 끝내지 않으시고, 「이렇게 되어도」라는 말을 반복하십니까? 왜 결국 백성이 땅에서 쫓겨나고 성소까지 황폐해진 다음에,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십니까?

이스라엘이 그 땅에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정작 그 땅은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쉼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지만, 땅에는 뒤늦은 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지 않은 결과, 그 땅은 사람들 없이 쉬게 됩니다.

앞 장에서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분의 땅에 사는 사람이라고 선언되었습니다. 이번 장은 그 관계를 저버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심판보다 먼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에서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32분소단락 1226장 본문 읽기 →

누구를 섬기며, 누구의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는가

레위기 26:1–2 본문 →

우상, 안식일, 성소가 함께 등장하는 이유

레위기 26장은 세 가지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너희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마라. 조각상이나 돌기둥을 세우지 마라. 그 위에 엎드려 절하려고 너희 땅에 무늬를 새긴 돌을 놓지 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이기 때문이다.』」레위기 26:1 · 두루새김
「『내가 정한 안식일들을 지키고, 내 성소를 두려워하며 공경하여라.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26:2 · 두루새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은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누구의 뜻에 따라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성소를 두려워하며 공경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사시는 거룩한 장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돌에 관한 히브리어 에벤 마스킷은 형상을 새긴 돌이나 장식된 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절하기 위해 바닥에 놓은 돌인지, 그 자체를 향해 절하는 형상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형상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를 두려워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예배 대상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시간과 공간이 대조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문제 되는 순종과 불순종은 단순히 생활 규칙 몇 가지를 잘 지키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1–2절은 모두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 선언하는 말로 끝납니다.

명령의 근거는 먼저 하나님께서 누구이신가에 있습니다.

순종의 축복 — 배불리 먹고 두려움 없이 누워 자다

레위기 26:3–10 본문 →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은 끝없는 부가 아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너희가 내 규정을 따르고 내 명령을 지켜 행하면,』」레위기 26:3 · 두루새김

그다음에 가장 먼저 나오는 축복은 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제때 비를 내려 주겠다. 땅은 수확물을 내고 들의 나무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레위기 26:4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비를 많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제때」 주겠다고 하십니다. 비가 내리는 시기는 수확량만큼 중요합니다. 필요한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곡식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고, 지나치게 부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비도 농사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곡식의 낟알을 털어 내는 일이 포도를 거둘 때까지 이어지고, 포도를 거두는 일은 씨 뿌릴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너희는 빵을 배불리 먹으며 너희 땅에서 안전하게 살 것이다.』」레위기 26:5 · 두루새김

이것은 풍성한 수확을 달력의 흐름으로 묘사한 표현입니다. 한 계절의 풍요가 다음 계절의 일과 맞닿을 만큼 땅에서 많은 수확물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은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으로 설명됩니다.

6절에서는 그 안전이 더욱 구체적인 장면이 됩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주겠다. 너희가 누워 쉬어도 아무도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로운 짐승을 그 땅에서 없애고, 전쟁의 칼이 너희 땅을 지나가지 않게 하겠다.』」레위기 26:6 · 두루새김

한 사람이 밤에 자리에 눕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 외부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평화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순종에 대한 약속의 중심에는 끝없는 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공급 속에서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다섯 명이 백 명을 뒤쫓는다는 말

7–8절에서는 군사적인 승리가 약속됩니다.

다섯 명이 백 명을 뒤쫓고, 백 명이 만 명을 뒤쫓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일정한 병력 비율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계산 공식이 아닙니다. 적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이 훨씬 많은 적군을 물리친다는 압도적인 승리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전쟁의 칼이 지나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적이 나타날 경우 이스라엘이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안전이 단지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결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땅에 평화를 주시고 그들을 돌보시는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자손을 많이 낳게 하고 너희 수를 늘리겠다.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굳게 세우겠다.』」레위기 26:9 · 두루새김

이곳의 자손을 많이 낳고 수가 늘어나는 표현은 창세기 1:28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번성의 복과, 창세기 17:2–6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후손의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번성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10절은 풍성한 수확의 장면을 다시 보여 줍니다.

「『너희는 오래전에 거두어 둔 것을 먹을 것이다. 새 수확물을 들여놓으려고 묵은 것을 밖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레위기 26:10 · 두루새김

앞에서는 새로운 수확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이 풍성했다면, 여기서는 새로운 수확을 저장하기 위해 오래된 것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넉넉합니다.

그러나 이 장의 축복은 풍성한 곡식과 안전한 생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축복의 절정 —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걸어 다니신다

레위기 26:11–13 본문 →

풍성한 수확보다 더 중요한 약속

「『내가 너희 가운데 내 성막을 두겠다. 나는 너희를 역겨워하지 않겠다.』」레위기 26:11 · 두루새김

성막은 이미 레위기 앞부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그분 앞에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막의 존재 자체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강조됩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걸어 다니며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레위기 26:12 · 두루새김

3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규정을 따르고」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리에 규정을 따라 걷는다는 표현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걸어 다니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정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걸어 다니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스르면 그 관계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풍성한 땅은 축복의 장소이지만, 그 축복의 중심에는 그 땅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멍에를 벗고 몸을 곧게 펴고 걷는 사람들

13절은 축복의 말씀을 출애굽으로 마무리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 너희가 더 이상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로 살지 않도록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냈다. 나는 너희 멍에의 막대들을 부수고, 너희가 몸을 곧게 펴고 걷게 했다.』」레위기 26:13 · 두루새김

노예는 멍에 아래에서 일합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멍에의 막대들을 부수셨습니다.

몸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억압 아래에서 구부러졌던 사람이 이제 몸을 곧게 펴고 걷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걸어 다니시고, 그들은 멍에에서 벗어나 몸을 곧게 펴고 걷습니다.

그래서 이 장의 순종은 자유를 얻기 위한 조건으로 처음 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해방하신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14절부터는 이 관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제시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는 창세기 3:8에서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두 본문이 같은 사건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생활 공간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주제적 연결은 생각해 볼 만합니다. 더 직접적인 연결은 출애굽기 29:45–46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사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목적도 그들 가운데 사시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에스겔 37:26–28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성소를 백성 가운데 두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 나타납니다. 신약의 고린도후서 6:16에서도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이 여러 말씀을 인용하고 연결하는 형태로 사용됩니다. 이 구절은 레위기 26:11–12 및 다른 구약의 언약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성경 전체의 연결은 레위기 26장의 본래 의미를 지우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경고 — 수고해도 먹지 못하고, 아무도 쫓지 않는데 도망친다

레위기 26:14–17 본문 →

불순종은 단순한 규칙 위반이 아니다

14–15절은 축복의 조건을 뒤집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레위기 26:14 · 두루새김
「『내 규정을 내버리고 내 법을 마음으로 역겨워하여 내 모든 명령을 행하지 않고 내 언약을 깨뜨린다면,』」레위기 26:15 · 두루새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단지 실행에 실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법 자체를 거부하고 싫어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이것이 뒤에 반복되는 「나를 거스르고」, 「나를 거스르면」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본문이 경고하는 것은 우연한 실수 하나가 곧바로 모든 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식의 기계적인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거부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속적으로 내버리는 공동체의 태도입니다.

이제 앞에서 약속한 축복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축복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16절에서는 질병과 공포가 등장합니다.

「『나도 너희에게 이렇게 하겠다. 몸을 쇠약하게 하는 병과 열이 나는 병을 내려 너희를 공포에 떨게 하겠다. 그 병들로 너희 눈마저 약해지고 생명이 시들 것이다. 너희가 씨를 뿌려도 원수들이 그 수확물을 먹을 것이니, 너희 수고는 헛될 것이다.』」레위기 26:16 · 두루새김

여기서 농사가 반드시 흉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씨를 뿌리고 곡식을 길러도 그 결실을 자신들이 먹지 못합니다. 원수들이 그것을 먹기 때문입니다.

17절에서는 군사적인 안전도 무너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맞서겠다. 너희는 원수들과 싸워 지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너희를 지배할 것이다. 뒤쫓는 사람이 없어도 너희는 달아날 것이다.』」레위기 26:17 · 두루새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는 것은 번성과 언약을 굳게 세우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맞서시는 것은 패배와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는 적을 뒤쫓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작 뒤쫓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스라엘이 달아납니다.

그들의 마음에서도 안전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의 말씀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와 맺어진 언약의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사람이 질병을 앓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부유하고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히 인정받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욥기는 의로운 사람도 극심한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 9:1–3에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상태를 그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판단을 거부하십니다.

두 번째 경고 — 하늘은 쇠처럼, 땅은 구리처럼

레위기 26:18–20 본문 →

「이렇게 되어도」라는 말의 의미

18절은 앞의 심판을 끝내는 문장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어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 죄 때문에 내가 벌을 일곱 배 더 내리겠다.』」레위기 26:18 · 두루새김

하나님은 한 번 경고하고 곧바로 모든 심판을 한꺼번에 선언하는 방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심판이 이루어졌는데도 백성이 듣지 않으면 다시 더 심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구조는 21절, 23–24절, 27–28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축복의 약속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바르게 관계 맺을 때의 삶을 전체적으로 그립니다. 반면 심판의 말씀은 그 관계를 계속해서 저버리는 일이 어떤 파괴로 이어지는지를 점점 더 자세히 보여 줍니다.

본문은 「일곱 배 더」라는 말로 벌의 강도가 더욱 커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일곱이라는 수가 완전함이나 충만함을 연상시킬 수 있지만, 그 상징성만으로 벌의 구체적인 강도를 수학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는 심판의 이미지가 하늘과 땅으로 확대됩니다.

「『너희가 힘을 뽐내는 마음을 꺾고, 너희 하늘을 쇠처럼, 너희 땅을 구리처럼 만들겠다.』」레위기 26:19 · 두루새김

하늘이 쇠처럼 된다는 것은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의 단단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이 구리처럼 된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고 메마른 땅의 모습을 그립니다.

「『너희는 아무 소득도 없이 힘을 다 써 버릴 것이다. 너희 땅은 수확물을 내지 않고 그 땅의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을 것이다.』」레위기 26:20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생산력이 함께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 힘이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가며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의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적대적으로 대하며 걷는 사람들

레위기 26:21–26 본문 →

같은 동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사용된다

「『너희가 나를 거스르고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너희 죄에 따라 내가 재앙을 일곱 배 더 내리겠다.』」레위기 26:2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분에게 맞서는 행동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벌을 받고도 너희가 잘못을 고치지 않고 나를 거스르면,』」레위기 26:23 · 두루새김
「『나도 너희를 거스르겠다. 너희 죄 때문에 나도 너희를 일곱 배로 치겠다.』」레위기 26:24 · 두루새김

원문의 히브리어 표현에는 걷는다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적대적으로 걷고,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향해 적대적으로 걸으신다는 식의 대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걸어 다니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이제 그들을 향해 맞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들짐승이 자녀를 앗아 가고 길들이 황폐해진다

22절에서는 들짐승의 위협이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들짐승을 보내겠다. 그것들이 너희 자녀의 목숨을 앗아 가고 가축을 없애며 너희 수를 줄일 것이다. 너희 길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레위기 26:22 · 두루새김

길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입니다. 가족을 방문하고, 물건을 옮기고, 농사를 짓고, 공동체의 여러 장소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그런 길에 사람이 다니지 않게 된다는 것은 단지 교통이 불편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땅에 누워도 두려워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길을 걸어 다니는 것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도시 안으로 도망쳐도 안전하지 않다

25절에서는 전쟁의 위협이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칼을 보내 언약을 깨뜨린 죄를 벌하겠다. 너희는 도시들로 모여들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전염병을 보내고, 너희는 원수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레위기 26:25 · 두루새김

전쟁과 패배가 무조건적인 우연이나 역사적 사고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모든 시대의 모든 전쟁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벌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적의 칼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도시 안으로 모입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의 칼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26절은 포위된 도시의 식량 부족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내가 너희의 생명을 지탱하는 빵을 끊으면, 여자 열 명이 화덕 하나에서 너희 빵을 굽고 무게를 달아 너희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너희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레위기 26:26 · 두루새김

평소에는 여러 가정에서 빵을 구울 만큼 곡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 명이 함께 사용해도 화덕 하나면 충분할 만큼 먹을 것이 부족해집니다. 아주 적은 양의 빵을 정확하게 나누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배부름에서 굶주림으로, 안전한 도시에서 포위된 도시로, 평화로운 길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나를 거스르고」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케리와 관련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 성경에서 레위기 26장에만 일곱 번 나오는 어려운 표현입니다. 그 정확한 어원과 의미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거슬러 행하는 태도, 적대적으로 맞서는 태도, 또는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심하게 대하는 태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케리라는 단어 하나에 오직 한 가지 심리적인 의미만 확정하여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문맥에서는 분명한 방향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분에게 맞서는 행동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경고 — 가족과 성소와 땅이 무너지다

레위기 26:27–33 본문 →

자녀의 살을 먹는다는 가장 끔찍한 경고

27–28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되어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거스르면,』」레위기 26:27 · 두루새김
「『나는 분노하여 너희를 거스르겠다. 너희 죄 때문에 나도 너희에게 일곱 배로 벌을 내리겠다.』」레위기 26:28 · 두루새김

여기서는 적대적인 대응에 분노가 더해집니다. 본문은 언약을 저버리는 행위가 계속될 때 삶의 붕괴가 얼마나 극심해질 수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제시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들들의 살을 먹고, 너희 딸들의 살을 먹을 것이다.』」레위기 26:29 · 두루새김

전쟁과 포위로 인한 극심한 기근 속에서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까지 붕괴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이를 단순히 자녀들을 착취한다거나 가족 관계가 나빠진다는 비유로 축소할 근거는 없습니다.

9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손을 많이 낳게 하고 이스라엘의 수를 늘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자손들이 굶주림 속에서 부모의 먹을거리가 되는 참상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식량 부족을 넘어, 이스라엘이 공동체로서 미래를 이어 갈 능력까지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우상은 이스라엘을 지켜 주지 못한다

30절에서는 심판의 시선이 다시 예배의 장소로 옮겨 갑니다.

「『내가 너희 산당들을 무너뜨리고 너희 태양 기둥들을 없애겠다. 너희 시체를 너희 우상들의 시체 위에 놓겠다. 나는 너희를 역겨워할 것이다.』」레위기 26:30 · 두루새김

1절에서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거나 조각상과 돌기둥을 세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 세운 우상숭배의 장소와 물건들이 파괴됩니다.

우상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상에게도 시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는 강렬한 조롱의 효과를 냅니다.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우상은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몸이 그 우상의 잔해 위에 놓이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은 성막을 그들 가운데 두시며 그들을 역겨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반대가 선언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성소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

「『내가 너희 도시들을 무너뜨리고 너희 성소들을 황폐하게 만들겠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의 향기를 기쁘게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레위기 26:31 · 두루새김

원문에서 이 향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향기를 가리킵니다. 레위기 앞부분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여러 제물에도 같은 표현이 쓰였습니다(레위기 1:9, 13, 17).

이스라엘이 제물을 바치는 행위 자체를 계속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자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거부하면서 제사의 형식만 유지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성소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을 자기들의 뜻대로 보장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2–33절에서는 땅 전체가 황폐해집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쫓겨납니다.

앞에서는 원수가 이스라엘의 수확물을 빼앗아 먹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땅이 수확물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자신이 그 땅에서 사라집니다.

심판은 수확의 실패에서 출발하여 그 땅에서 사는 삶 자체를 잃는 데 이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본문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쫓겨난 그 땅은 어떻게 됩니까?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8:53–57에도 비슷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적군에게 포위되어 먹을 것이 없어졌을 때 부모가 자녀의 살을 먹는 상황이 더욱 자세히 묘사됩니다. 열왕기하 6:28–29는 사마리아가 포위된 상황에서 자녀를 먹었다고 말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예레미야애가 4:10도 재앙 중에 자녀를 삶아 먹는 참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이 서로 어떤 역사적 사건을 직접 가리키는지는 신중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극심한 포위와 기근이 가족 관계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공통된 묘사는 분명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거부하면서 제사의 형식만 유지하는 문제는 아모스 5:21–24나 이사야 1:11–17에서 예언자들이 제사와 정의의 관계를 문제 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야 땅이 안식한다

레위기 26:34–35 본문 →

땅이 누리지 못했던 안식

「『너희가 원수들의 땅에 있는 동안, 너희 땅은 황폐해 있는 내내 쉬어야 했던 기간을 채울 것이다. 그때 땅은 쉬며 제 몫의 쉼을 누릴 것이다.』」레위기 26:34 · 두루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씨를 뿌리거나 포도원의 가지를 치지 말고, 정기적으로 거두는 일도 멈추어야 했습니다. 땅은 사람의 끊임없는 생산 활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위한 안식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 땅은 황폐해 있는 동안 내내 쉴 것이다. 너희가 그 땅에 살던 때 쉬어야 할 해에도 쉬지 못했던 만큼 쉴 것이다.』」레위기 26:35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안식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상황을 바탕에 둡니다. 이것은 단순히 땅이 기름져지려면 농사를 쉬어야 한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땅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땅에 안식을 정하셨다는 언약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땅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안식이, 이스라엘이 쫓겨난 뒤에야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매우 비극적인 안식입니다.

안식년에는 사람들이 땅에 살면서 그 땅에서 난 것을 먹고, 노예와 품꾼과 함께 사는 외국인, 가축과 들짐승도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6장의 안식은 다릅니다. 땅은 쉬지만 사람들이 그곳에 살지 못합니다. 도시들은 무너졌고,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땅은 쉼을 얻지만 사람들은 고향을 잃습니다.

땅도 안식을 채우고, 사람도 죗값을 치른다

땅은 쉬어야 했던 기간을 채웁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합니다.

원문에서 같은 동사가 두 대상에 쓰이면서, 땅과 사람 모두가 무너진 언약 질서의 결과와 관계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땅의 모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그 땅을 차지하고 이용하는 동안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하 36:20–21은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건을 설명하면서, 땅이 황폐해 있는 동안 안식을 누렸다고 말합니다. 이는 레위기 26:34–35의 표현을 뚜렷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레위기 26장 자체가 몇 년 동안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는지 정확한 횟수를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역대하에 나오는 포로 기간의 숫자를 이용하여 과거에 지키지 않은 안식년의 횟수까지 단순히 거꾸로 계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 안식년 규정을 그대로 현대의 농업 정책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끝없이 사용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이 본문을 현대 환경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이나 과학적 설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먼저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의 주인이시며, 그 땅의 이용과 안식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에 도망치는 사람들

레위기 26:36–39 본문 →

평화를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이 안식하는 동안, 원수들의 땅으로 쫓겨난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너희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 내가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어넣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만으로도 그들은 쫓기듯 달아날 것이다. 칼을 피하듯 도망치고, 뒤쫓는 사람이 없어도 쓰러질 것이다.』」레위기 26:36 · 두루새김

사람은 바깥의 적이 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평안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겪은 위협과 고통 때문에, 실제로 적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위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합니다. 다만 이것을 오늘날의 정신의학적 진단으로 바꾸거나, 모든 불안과 공포가 하나님의 벌이라는 뜻으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뒤쫓는 사람이 없는데도 칼을 피하듯 달아나다가 서로에게 걸려 넘어질 것이다. 너희는 원수들 앞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다.』」레위기 26:37 · 두루새김

앞에서는 다섯 명이 백 명을 뒤쫓고 백 명이 만 명을 뒤쫓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의 승리가 수가 적어도 크게 이기는 힘을 보여 주었다면, 여기서는 실제 적이 있든 없든 무너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심판은 개인의 두려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38–39절은 남은 사람들이 여러 민족 사이에서 멸망하거나 쇠약해져 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너희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들의 죄 때문에 쇠약해져 갈 것이다. 자기들의 죄에 조상들의 죄까지 더해져 쇠약해져 갈 것이다.』」레위기 26:39 · 두루새김

이 표현은 후손들이 조상의 잘못 때문에 아무런 책임도 없이 자동으로 처벌받는다는 뜻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남은 사람들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함께 언급합니다. 조상들이 언약을 저버린 역사가 후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후손들 자신도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본문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앞에서는 조상들의 죄가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자기 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 고백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길 — 죄를 고백하고 낮아진 마음

레위기 26:40–43 본문 →

조상들의 죄까지 고백한다는 것

「『그들이 자기들과 조상들이 나를 배신하여 지은 죄와 나를 거스른 일을 고백하고,』」레위기 26:40 · 두루새김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분을 거슬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본문은 앞선 세대부터 이어진 언약의 실패를 공동체의 역사로 인정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다시 바라봅니다.

고집스러운 마음이 낮아진다

「『나도 그들을 거슬러 원수들의 땅으로 데려갔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때 혹시 그들의 고집스러운 마음이 낮아지고 그들이 자기 죗값을 치른다면,』」레위기 26:41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이 마음을 「할례받지 않은 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지였습니다(창세기 17:9–14). 이것은 이스라엘이 겉으로는 언약 백성에 속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옮깁니다.

이 문맥에서는 남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마음이 낮아지며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상황이,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 기억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을 충분히 겪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42절에서 회복의 근거는 그들의 고백이 얼마나 완전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니라 야곱부터 기억하신다

「『나는 야곱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겠다. 이삭과 맺은 내 언약도,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도 기억하고, 그 땅도 기억하겠다.』」레위기 26:42 · 두루새김

성경에서 조상들을 언급할 때에는 흔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순서가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순서는 이스라엘의 현재에서 출발하여 조상들의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효과를 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직접 연결되는 야곱에서 시작해 그의 아버지 이삭으로, 다시 그보다 앞선 아브라함에게 이릅니다.

이것을 반드시 의도적으로 역사를 거꾸로 배열한 것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독자가 언약의 시작을 거슬러 생각하게 하는 효과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억은 세 조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땅은 지금 황폐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수들의 땅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면서, 그 약속과 연결된 땅까지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땅에 관해 하신 약속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43절은 땅의 안식을 다시 언급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법을 내버리고 규정을 마음으로 역겨워했기 때문에 죗값을 치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그들의 죄를 없었던 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40절의 고백과 41절의 마음이 낮아지는 일이 정확히 어떤 조건 관계로 이어지는지, 또 죗값을 치르는 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그때 혹시」와 「자기 죗값을 치른다면」이라는 표현으로 그 조건적인 성격을 살립니다. 다니엘 9:4–19와 느헤미야 9장에서도 비슷한 고백이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기 시대의 죄만 아니라 조상들의 불순종까지 인정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신명기 10:16에서도 이스라엘은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예레미야 4:4는 마음의 할례를 명령하며, 에스겔 36:26–27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규정을 따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새 마음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언약의 실패를 더 깊이 다루는 예언의 전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완전히 없애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릴 만큼 그들을 버리거나 역겨워하지는 않겠다」

레위기 26:44–46 본문 →

심판이 언약의 끝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수들의 땅에 있더라도, 나는 그들을 완전히 없애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릴 만큼 그들을 버리거나 역겨워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이기 때문이다.』」레위기 26:44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미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만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여전히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30절의 「나는 너희를 역겨워할 것이다」라는 선언과 긴장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없애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깨뜨릴 만큼」 버리거나 역겨워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44절은 앞에서 선언하신 심판이나 역겨워한다는 표현을 단순히 취소하는 문장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잃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흩어지며, 남은 사람들도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언약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린다는 말이 15절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4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충실히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님마저 자신의 언약을 버리시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 마지막에도 출애굽을 기억하시는가

45절은 다시 한번 출애굽을 언급합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겠다. 나는 그 조상들의 하나님이 되려고 여러 민족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냈다.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26:45 · 두루새김

이 장의 축복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말로 끝났습니다(13절). 그런데 심판과 회복의 말씀도 출애굽을 기억하는 말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출애굽이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뒤에도 왜 하나님의 언약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출애굽이 등장합니다. 두 경우 모두 근거는 이스라엘의 능력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행하신 일입니다.

특히 45절은 그 구원이 「여러 민족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안에서만 알려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이 보는 가운데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신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44–45절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으시고 조상들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시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심판에서 살아남는다거나,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모두 고향에 돌아오게 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모든 개인의 안전 보장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시나이산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문장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자신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우신 규정과 법과 가르침입니다.레위기 26:46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레위기 26장의 축복과 심판만이 아니라, 앞에서 주어진 여러 규정과 법의 큰 묶음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관계, 그 관계 안에서 지켜야 할 규정들, 그리고 그 규정들을 저버렸을 때의 결과가 모두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말씀으로 묶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장이 묘사한 풍성한 수확도, 전쟁과 기근도, 땅의 황폐함과 여러 민족 사이로 흩어지는 일도 아직 미래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언약을 저버리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그리고 심판이 얼마나 극심해지더라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언약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이어지는 27장은 서원과 하나님께 바친 것의 값을 매기고 처리하는 별도의 규정들을 덧붙입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26장과 가장 가까운 주제적 연결을 보여 주는 본문은 신명기 28–30장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순종에 따른 축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30:1–10에서는 백성이 여러 민족 사이로 흩어진 뒤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으시고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이 이어집니다. 레위기 26장은 특별히 땅의 안식을 강조하고, 신명기 30장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일까지 설명합니다. 그러나 두 본문 모두 심판과 흩어짐 이후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과 연결합니다.

결론 —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와 잊히지 않은 언약

레위기 26:1–46 본문 →

하나님은 언약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을 자신의 모든 약속을 없애는 마지막 말로 삼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자신의 언약을 잊지도 않으십니다.

레위기 26장의 결말은 폐허가 된 땅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모든 고난이 끝났다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원수들의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밝히십니다. 땅을 잃은 백성이 자신들의 역사를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아직 자신의 언약을 끝내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황폐한 땅은 안식하고, 흩어진 백성은 원수들의 땅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과 그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