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64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아무도 보지 못하리라는 착각
시편 64편에는 두 번의 화살 공격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화살은 사람들이 쏩니다. 그들은 몰래 숨어 있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떳떳하게 사는 사람을 향해 화살을 날립니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 화살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말입니다.
두 번째 화살은 하나님이 쏘십니다. 이번에도 공격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그러나 화살을 맞는 사람은 처음에 공격을 받았던 사람이 아니라, 그를 공격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두 장면 사이에서 시편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처음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리며, 그 일을 깨닫습니다.
시편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들이 어디에서 자신감을 얻는지를 자세히 보여 줍니다. 그들은 꼼꼼하게 계획하면 아무도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확신이 무너집니다.
이 시편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세 가지 대조입니다. 감추어진 악과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동, 사람의 화살과 하나님의 화살,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는 악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원수만이 아니다
하나님, 탄식하는 내 목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원수가 주는 두려움에서 내 목숨을 지켜 주십시오.시편 64:2 · 두루새김
악을 꾸미는 자들의 은밀한 모임에서, 악을 일삼는 자들의 소란에서 나를 숨겨 주십시오.시편 64:3 · 두루새김
시편은 하나님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는 요청으로 시작합니다.
표제에는 「다윗의 시」라고 적혀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생애에는 사울의 추격이나 압살롬의 반란처럼 음모와 적대적인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어느 하나의 사건에 직접 연결하기에는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인이 분명히 밝히는 것은 자신이 탄식하고 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위협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원수에게서 구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원수의 위협에서 제 목숨을 지켜 주십시오」라고 옮깁니다. 원문에서는 이 위협을 두려움을 가리키는 말로 나타냅니다.
히브리어 파하드(פַּחַד)는 두려움이나 공포를 가리킵니다. 원문의 표현은 원수가 일으키는 공포를 뜻할 수 있으며, 적의 위협 자체를 그 두려움과 함께 나타내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적이 사람을 위협할 때 실제로 가할 수 있는 피해도 중요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힘도 큽니다. 언제 공격할지 모르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은 사람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런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켜 달라고 구합니다.
그는 아직 적의 공격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협 아래 살아가는 일 자체가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는 고통입니다.
3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숨겨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적들이 하는 일도 몰래 숨어서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악한 의도를 감추기 위해 숨어 있고, 시인은 그 악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숨겨 달라고 구합니다.
두 종류의 숨김이 대조됩니다.
또한 적들의 행동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몰래 꾸미는 계획」은 비밀스럽게 의논하고 계획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소란스럽게 모여드는」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위협은 단순히 한 사람이 몰래 품은 악한 마음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행동하고 서로를 부추기는 조직적인 적대감입니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그들이 몰래 꾸미는 계획에서 자신을 숨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을 해치려는 계획은 어떻게 실행됩니까? 다음 장면에서 시인은 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무기를 보여 줍니다.
칼처럼 갈아 놓은 혀, 화살이 된 말
시인은 적들을 무기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칼을 갑니다. 활에 화살을 메깁니다. 공격할 사람을 겨눕니다. 그리고 숨어서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인이 가리키는 무기는 혀와 말입니다.
그들은 혀를 칼처럼 갈고 쓰디쓴 말을 화살로 겨눕니다.시편 64:4 · 두루새김
말은 칼이 아닙니다. 그러나 칼이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듯이, 말도 한 사람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닙니다. 칼을 간다는 이미지에는 준비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말을 꼼꼼하게 다듬고, 공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칼은 가까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지만, 화살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들이 숨어서 화살을 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거짓말이나 악의적인 비방은 그 사람 앞에서 직접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그 말 때문에 상대방이 피해를 입더라도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편은 어떤 구체적인 거짓말이 오갔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공격을 반드시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이나 정치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거짓말 중 하나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일부러 해를 끼치는 무기로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숨어서 흠 없는 이를 쏘려 합니다. 느닷없이 그를 쏘고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시편 64:5 · 두루새김
그들이 겨누는 대상은 「떳떳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 표현은 그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죄를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여기서 묘사되는 공격을 정당하게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악인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갑자기」는 공격받는 사람에게 준비할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공격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편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원수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고 했습니다. 원문에서는 그 위협이 주는 두려움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합니다. 이제 그는 공격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공격받는 사람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반면 공격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자신만만합니까? 다음 단락에서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떳떳하게 사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온전함, 성실함, 흠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욥기 1:1에서도 욥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때 같은 어근이 사용됩니다. 시인은 공격받는 사람이 완전무결하다는 철학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 덫들을 보겠어?」
이 단락에서는 악인들의 행동이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단순히 악한 계획을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계획을 굳게 다지고, 덫을 숨겨 놓을 일을 의논하며, 더욱 꼼꼼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여기서 「굳게 다지며」라는 표현은 서로를 격려하거나 자신들의 계획을 확실하게 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혼자서는 망설일 수 있는 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계획하고 서로 확신을 심어 주면 실행에 옮기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이 시의 악인들은 그런 집단적인 결속을 보여 줍니다.
서로 악한 꾀를 굳게 다지고 덫을 몰래 놓자고 의논하며 말합니다. 「누가 그 덫들을 보겠느냐?」시편 64:6 · 두루새김
이 짧은 질문은 단순히 누가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계획은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나타냅니다.
두루새김은 「그 덫들을」이라고 옮겼지만, 원문에서는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의 대명사는 앞에 나오는 덫들을 가리킬 수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읽으면 아무도 숨겨 놓은 덫을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뜻이 됩니다. 둘째로 읽으면 아무도 자기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는 뜻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 그들의 자신감은 가장 높아집니다.
그들은 못된 일을 궁리하며 말합니다. 「궁리하고 또 궁리해, 꾀를 다 짰다.」 사람의 속과 마음은 깊습니다.시편 64:7 · 두루새김
원문에는 「찾다」, 「탐색하다」와 관련된 표현이 되풀이됩니다. 악인들이 실제로 어떤 방법을 찾아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악을 우연히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깊이 궁리하고 계획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마지막 문장 「사람의 속과 마음은 깊습니다」를 단순히 사람의 마음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의 내용과 연결하면 더욱 날카로운 의미가 나타납니다. 악인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서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들의 마음속 의도와 비밀스러운 궁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으로 그 사람이 속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 모두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깊다는 사실과 그 마음속의 악이 영원히 감추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악인들은 그 둘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꼼꼼하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마음이 깊으므로 아무도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시편의 가장 극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의 확신은 시편 10:11에 나타나는 악인의 생각과 닮았습니다. 그곳에서 악인은 하나님이 잊으셨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셨으므로 아무것도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64편에서는 악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행동 역시 자신들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이사야 29:15는 자기들의 계획을 깊이 숨기면서 누가 자신들을 보고 알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예레미야 17:10에서는 하나님이 마음을 살피시고 사람의 행동에 따라 갚으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139:11–12에서는 어둠으로 자신을 가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대가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이 본문들이 시편 64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앎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주제를 함께 보여 줍니다. 한편 7절의 문장은 히브리어에서도 압축적이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두루새김은 「우리가 꼼꼼히 짜낸 계획을 완성했어」라는 악인들의 말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시인이 그들의 꼼꼼한 탐색을 바깥에서 묘사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완성했어」에 해당하는 형태와 그 뒤의 표현이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갑자기 화살을 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화살을 쏘시니 느닷없이 그들은 상처를 입었습니다.시편 64:8 · 두루새김
앞에서는 악인들이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들은 몰래 숨어서 떳떳하게 사는 사람을 겨누었고, 갑자기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화살을 쏘십니다.
시인은 여기서 길게 하나님의 능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악인들의 계획을 알아내셨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화살을 쏘셨다고 말합니다.
악인들의 계획은 여러 구절에 걸쳐 자세히 묘사되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준비하고, 숨을 곳을 정하고, 덫을 숨기고, 서로 의논하며, 꼼꼼히 짜낸 계획을 완성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은 단 한 구절에 담깁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궁리한 일이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들을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5절에서는 악인들이 갑자기 공격했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의 화살을 맞은 악인들이 갑자기 상처를 입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도 두 구절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갑작스러움은 공격받는 사람에게 예고 없는 위험을 뜻했습니다. 두 번째 갑작스러움은 공격자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심판을 뜻합니다.
악인들은 상대방이 대비하지 못하도록 공격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에게 닥칠 일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시인의 기도는 여기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확신으로 바뀝니다.
악인들의 화살은 「쓰디쓴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화살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반드시 실제 무기나 특정한 재난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닥친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또 하나의 숨어서 공격하는 분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숨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은 다음 구절들에서 모든 사람에게 알려집니다.
악인들의 공격은 감추어지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하나님의 행동은 드러나고 알려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조금 더 깊이
8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화살을 쏘셨습니다」라는 과거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앞의 2–3절에서는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가 나오는데, 8절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행동이 일어난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을 실제로 어떤 사건이 일어난 뒤 작성한 역사적 보고로 읽을 수도 있지만, 시의 문학적 흐름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을 확신하며 그것을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묘사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전투나 재판, 처벌 사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하나님이 언제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악인들에게 상처를 입히셨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해치던 혀가 자신을 넘어뜨리다
그들의 혀가 도리어 그들을 넘어뜨리자 그들을 본 사람은 모두 달아났고,시편 64:9 · 두루새김
8절에서 하나님의 화살이 등장한 뒤, 9절에서는 다시 혀가 등장합니다.
4절에서 악인들은 자신의 혀를 칼처럼 갈았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말이 그들의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혀가 자신들을 넘어뜨립니다.
원문의 문장 구조는 다소 어렵습니다. 그들의 말이 스스로에게 해가 되어 자신들이 무너졌다고 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이 그들의 혀를 도리어 그들에게 불리하게 만드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의 「그들의 혀가 도리어 그들을 넘어뜨렸습니다」는 시편 전체의 흐름을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번역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거짓말을 하다가 들켰는지, 서로의 말이 맞지 않아 스스로 무너졌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는 말 때문에 심판받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본문이 드러내는 것은 결과입니다.
시의 처음에는 혀가 다른 사람을 해칠 만큼 날카롭고 강력한 무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 혀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을 넘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남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듬은 말이 결국 자신을 무너뜨립니다.
악인들은 「누가 그 덫들을 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을 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자신들이 숨긴 악은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의 몰락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납니다.
「달아났습니다」(נָדַ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떠나거나 피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머리를 흔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그들을 보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경멸하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운명은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기를 원했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보이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는 시편 7:16–17과도 닮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을 빠뜨리려고 구덩이를 판 사람이 자신이 판 구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꾸민 악이 자기 머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잠언 26:27에서도 함정을 파는 사람이 거기에 빠지고, 돌을 굴리는 사람에게 그 돌이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이 옳지 않은 일을 심판하시는 방식과 악한 행동이 스스로 불러오는 결과가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 64편은 여기에 특별히 혀라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들, 그리고 두려워하게 된 모든 사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리고 그분이 하신 일을 깨달았습니다.시편 64:10 · 두루새김
시인은 여기서 단순히 악인들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갑니다. 악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말합니다.
5절에서는 악인들이 떳떳하게 사는 사람을 공격하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습니다.
같은 히브리어 어근 야레(יָרֵא)가 사용됩니다. 두려워한다는 뜻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경외한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러나 두 구절에서 두려움의 성격은 다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드러나거나 심판받을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행동을 본 사람들은 그분이 하신 일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한 공포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리고, 그 일을 깨닫습니다.
첫째, 그들은 알립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숨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집니다. 이제 말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해치는 무기로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수단이 됩니다.
둘째, 그들은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시편의 목적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생각하는 활동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악을 더 효과적으로 행할 방법을 깊이 연구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행동을 깊이 생각하여 그 의미를 깨닫습니다.
악인들은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지를 궁리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본 사람들은 무엇이 참으로 옳고 힘 있는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시인은 처음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동을 알리는 목소리를 냅니다.
시인의 탄식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이 시는 모든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삶을 바꾸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고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고 깨달았다는 사실을 전할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의 심판은 악을 막는 사건일 뿐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14:31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향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시편 64편에서도 하나님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깨달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음이 깊은 사람들에서 마음이 곧은 사람들로
의로운 이는 여호와야훼 안에서 기뻐하며 그분께 몸을 피할 것입니다. 마음이 곧은 이들은 모두 자랑할 것입니다.시편 64:11 · 두루새김
시편은 악인들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의로운 사람들의 기쁨이 등장합니다. 시편의 앞부분에서는 계속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는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 변화에 반드시 특별한 문학적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숨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로운 사람이 그분께 피한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했고, 마지막에는 그분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7절에서는 「사람의 속과 마음은 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1절에서는 「마음이 곧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두 구절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깊은 마음과 곧은 마음이 서로 대조되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이 깊다는 말 자체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악인들의 숨겨진 생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깊음이 악을 감추는 장소로 나타납니다. 반면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방향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시편은 사람이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보다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악인들은 깊은 마음속에서 남을 해칠 계획을 세웁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곧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피하고 그분 안에서 기뻐합니다.
마지막의 「여호와야훼를 자랑할 것입니다」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내세우는 자랑이 아닙니다. 앞의 문장과 연결하면 하나님이 자신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자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인들은 꼼꼼히 짜낸 계획을 완성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기뻐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믿었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
시편 64편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화살이지만, 그 화살을 둘러싸고 더 깊은 주제가 펼쳐집니다. 바로 감추어진 것과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편의 처음에서 감추어져 있던 것은 악인들의 계획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악인들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힘과 지혜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곧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를 모든 악한 계획이 곧바로 실패하고, 모든 거짓말이 즉시 드러나며, 모든 의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억울함을 풀게 된다는 보장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시의 확신은 심판이 일어나는 정확한 시기나 방법을 사람이 예측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읽으면서 말의 폭력을 겪는 사람에게 단순히 참으라거나,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본문의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탄식을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침묵하여 악을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실제 위협을 겪는 사람이 도움을 구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을 이유도 없습니다.
혀는 누군가를 향한 화살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말을 하느냐 침묵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마음에서 어떤 목적으로 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의 방향은 마음의 방향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발견되지 않을 만큼 꼼꼼하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동하시자,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꼼꼼했는지를 칭찬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탄식이 들리기를 바라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가 끝날 때에는 자기 목소리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고, 그분 안에서 기뻐하며, 그분을 자랑합니다.
몰래 숨어 있는 곳에서 날아오던 쓰디쓴 말의 화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말이 남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계획은 무너지고,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그들의 말도 힘을 잃습니다.
그리고 시편은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야훼를 자랑할 것입니다」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곧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합니다.
사람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보다 오래 남는 것은, 그 화살로부터 사람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기쁨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