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6장 · 밤에 본 환상들
작은 시작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있습니다. 그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고, 등잔마다 기름이 흐르는 관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양쪽에는 올리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화려하고 신비로운 환상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금으로 된 등잔대와 올리브나무를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은 한 사람이 시작한 건축 공사가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성전 하나를 완성하는 일에 이토록 특별한 환상이 필요했을까요?
스가랴 시대의 유다 공동체는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국가는 이전의 독립과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성전 재건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고, 눈앞의 건물은 과거 솔로몬 성전의 웅장함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로 낙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에게 충분한 힘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작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스가랴 4장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답합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정결하게 하시고 다시 맡은 일에 세우셨습니다. 이제 4장에서는 성전 재건을 이끄는 스룹바벨에게 시선이 옮겨갑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다르지만,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실 곳을 회복하신다는 흐름은 이어집니다.
올리브나무 사이의 금 등잔대 — 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깨어난 예언자가 본 것
4장은 천사가 스가랴를 깨우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잠든 사람을 깨우듯 나를 깨웠습니다.스가랴 4:1 · 두루새김
스가랴가 실제로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인지, 환상 가운데 새로운 장면을 알아보는 상태를 잠에서 깨는 경험에 비유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천사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했습니다. 「온통 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꼭대기에는 그릇이 있고, 등잔대 위에는 등잔 일곱 개가 있습니다. 그 위의 등잔마다 관이 일곱 개씩 이어져 있습니다.」스가랴 4:2 · 두루새김
이전 환상들에서 스가랴는 먼저 보고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천사가 먼저 무엇이 보이는지 묻습니다. 스가랴는 자신이 본 것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이 장면에서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성막의 등잔대입니다.
출애굽기 25:31–40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등잔대에는 일곱 등잔이 있었고, 그 등불이 성막 안을 비추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등잔이 계속 타도록 기름을 준비하고 관리해야 했습니다(출애굽기 27:20–21). 따라서 금 등잔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성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스가랴의 환상에 등장하는 등잔대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등잔대와 구조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 위에 그릇이 있고, 등잔마다 여러 관이 이어져 있으며, 양쪽에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에서는 사람들이 올리브에서 기름을 얻고, 그것을 준비하여 등잔에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의 환상에서는 올리브나무와 등잔대가 하나의 장면 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등잔보다 중요한 기름의 공급
등잔대 자체는 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금으로 만든 등잔대라도 기름이 공급되지 않으면 등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등잔대의 가치와 등불이 계속 타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등잔은 기름을 태워 빛을 내지만, 그 기름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환상은 등잔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계속 빛을 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 앞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하실 말씀을 전하십니다.
「오직 내 영으로 될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두 종류의 힘과 하나님의 영
천사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세력으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내 영으로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다.」스가랴 4:6 · 두루새김
스룹바벨은 페르시아 시대 유다의 총독이었습니다(학개 1:1). 그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성전 재건을 이끌었습니다(에스라 5:2). 그에게는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모아야 했고,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세력과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세력」과 「힘」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은 여전히 성전 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가 자기 손으로 기초를 놓았고, 자기 손으로 완성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손을 필요 없게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 손이 하는 일이 무엇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지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일하되, 그 일이 가능해지고 끝내 완성되는 것은 인간 자신의 힘에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미 그들 가운데 있었다
학개 2:4–5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에게 강하게 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영이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단지 특별한 환상을 보여 주거나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맡기신 일을 이루도록 하시는 함께하심과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세우는 일 자체가 이미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완성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을 돕기 시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직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들 가운데 계시며 일하십니다.
출애굽기 31:2–5에서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을 채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브살렐은 성막 제작을 위한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과 여러 기술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일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술과 지혜를 주셔서 자신의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브살렐은 성막을 만들었고, 스룹바벨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일이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실 곳을 마련하는 일에 인간의 손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 언급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큰 산은 어떻게 평지가 되는가
이어서 하나님은 갑자기 큰 산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너는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것이다. 스룹바벨이 꼭대기에 놓을 돌을 내올 때, 사람들이 『그 돌에 복이 있기를! 복이 있기를!』 하고 외칠 것이다.」스가랴 4:7 · 두루새김
산은 스룹바벨 앞에 가로놓인 거대한 장애물을 나타내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정치적 세력일 수도 있고, 부족한 자원과 공동체의 낙심을 포함한 여러 어려움을 아우르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거대하게 보이는 장애물이 하나님 앞에서는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스룹바벨이 나아가는 길에서 장애물이 더 이상 장애물로 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 40:3–4에서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할 때 골짜기가 높아지고 산과 언덕이 낮아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본문의 역사적 상황은 다르지만, 인간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신다는 주제는 서로 통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신다는 일반적인 성공 공식으로 이 구절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스룹바벨에게 맡기신 성전 재건이라는 구체적인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애물이 평지가 되는 이유는 스룹바벨이 어떤 목표든 반드시 이룰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완성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돌 앞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
7절 후반부에서 산의 모습이 갑자기 건축 현장으로 바뀝니다.
스룹바벨이 「꼭대기에 놓을 돌」을 내옵니다. 이것은 성전 건축이 완성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건축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그 완성을 기념하는 말은 하나님의 은총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헨 헨은 은총 또는 호의를 뜻하는 말이 두 번 반복된 표현입니다. 이 외침은 건축의 완성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구하거나, 그 완성이 은총의 결과임을 인정하는 환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문에서 이 말은 돌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에 대한 감탄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 전체가 인간의 힘과 하나님의 영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리는 외침으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잘 어울립니다.
「일이 작게 시작되었다고 누가 하찮게 여겼느냐?」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면
시작한 손이 완성하는 손이 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구체적으로 선포됩니다.
「스룹바벨이 자기 손으로 이 집의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이 집을 완성할 것이다. 그때 너는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스가랴 4:9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미 시작된 일이 중간에 무너져 버리거나 영원히 미완성 상태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에스라 3:8–13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공동체가 성전 기초를 놓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 속에는 큰 울음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전 성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성전의 기초가 놓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울었습니다(에스라 3:12). 본문은 그 눈물이 정확히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는지 전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개 2:3에서는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성전이 보잘것없게 보이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성전이 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잃어버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회복되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의 영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시작은 너무 작아 보였을 수 있습니다.
성전의 현재 모습이 초라하다는 사실은 그 일이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실제로 에스라 6:15는 성전이 다리오 왕 제6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스가랴에게 주어진 약속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의 완성 기록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역대상 3:17–19; 학개 2:23 참조). 그러나 그의 시대에 다윗 왕조의 왕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개 2:23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자신의 인장 반지처럼 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다윗 왕조와 관련된 희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스룹바벨이 실제로 독립된 왕국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스가랴 4장의 약속도 그를 곧바로 이상적인 최종 왕으로 만들어 버리기보다, 당시 성전 재건을 맡은 지도자로서의 역할에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업신여겼는가
10절의 질문은 바로 이 현실을 향합니다.
「일이 작게 시작되었다고 누가 하찮게 여겼느냐? 이 일곱은 스룹바벨의 손에 있는 주석 추를 보고 기뻐할 것이다. 이들은 온 땅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야훼의 눈이다.」스가랴 4:10 · 두루새김
문제는 크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크기를 기준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지금의 성전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조의 독립 국가에 비하면 페르시아 지배 아래 있는 유다 공동체는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규모만으로 그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일도 잘못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머무시겠다는 약속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눈이 기뻐하다
여기서 「이 일곱」은 뒤에 나오는 설명에 따라 하나님의 일곱 눈을 가리킵니다. 3:9에서는 하나의 돌 위에 일곱 눈이 있었고, 4장의 환상에서는 일곱 등잔이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일곱 눈과 일곱 등잔의 모습이 서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에는 온 땅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작은 성전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스룹바벨의 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그 작은 현장에서 시선을 멈추시고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시작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성공과 중요성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에 질문을 던집니다.
조금 더 깊이
「주석 추」는 건축에서 건물이 똑바로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문의 표현은 문자적으로 금속을 가리키는 말과 돌을 가리키는 말이 결합되어 있어 정확한 물체의 형태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건축 작업과 관련된 물체라는 점은 문맥에서 분명합니다.
두 올리브나무와 새 기름의 두 아들 — 누가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가
설명되지 않은 나무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스가랴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 환상에서 본 올리브나무 두 그루입니다. 천사는 앞서 등잔대의 환상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영과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브나무 두 그루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금으로 된 두 관 곁에 있는 올리브나무 가지 둘은 무엇입니까? 그 관들은 금빛 기름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스가랴 4:12 · 두루새김
처음에는 나무 전체를 가리켰습니다. 이제는 나무의 가지 둘과 금으로 된 두 관에 주목합니다. 나무는 기름을 공급하는 근원과 연결되어 있고, 등잔대는 그 공급을 받아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등잔에 공급되는 올리브기름의 모습으로 이해됩니다. 원문이 그 물질을 직접 기름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올리브나무와 등잔대가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풀어 「금빛 기름」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설명이 주어집니다.
「새 기름의 두 아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들은 온 땅의 주님 곁에 서 있는, 새 기름의 두 아들이다.」스가랴 4:14 · 두루새김
이 환상의 역사적 문맥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입니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며, 스룹바벨은 유다의 총독입니다. 앞 장에서는 여호수아가, 이번 장에서는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따라서 두 올리브나무가 이 두 지도자를 가리키며, 제사장이 하는 일과 공동체를 다스리는 역할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함께 사용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마지막 절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이름을 다시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두 인물이라는 해석은 문맥상 설득력이 있지만, 본문이 누구인지 직접 확인해 준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들을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로 이해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그들이 「온 땅의 주님 곁에 서 있는」 존재들이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온 땅의 주님 곁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 곁에 서 있는 지도자들
구약에서 어떤 권위 있는 인물 앞에 선다는 말은 그를 섬기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관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1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분 앞에 서 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전 재건은 스룹바벨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제사장이 맡은 일을 하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섬길 수 있도록 정결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두 사람은 공동체의 회복에 필요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회복의 근원은 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 두 올리브나무를 가리킨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회복을 위해 쓰임받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등불의 근원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맡은 일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 11:4가 두 올리브나무와 등잔대의 모습을 직접 다시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곳의 두 증인을 스가랴 시대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과 그대로 같은 인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스가랴의 상징을 새로운 묵시적 문맥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새 기름의 두 아들」이라는 표현은 독특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새 기름의 아들들」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기름은 올리브에서 얻는 기름을 가리킵니다. 많은 번역은 이를 「기름부음 받은 두 사람」으로 풉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흔히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를 기름부음이라는 의식 하나로 제한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마지막 장면 —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추
금 등잔대의 기름이 끊이지 않는 모습과 스룹바벨의 손에서 진행되는 성전 건축이 서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는 약속이 하늘의 신비에 머물지 않고, 땅 위의 구체적인 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 작은 예루살렘의 건축 현장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전이 있고, 여전히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아직 꼭대기에 돌을 놓는 날이 오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건축 현장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과거의 영광에 미치지 못한다고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가 본 환상에서는 다른 시선이 그 현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온 땅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추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람들이 작은 시작을 하찮게 여기는 동안, 하나님은 그 작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