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8–23장 · 홀로 남은 유다
예루살렘에 드리운 심판의 측량줄
므낫세는 쉰다섯 해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열왕기에 기록된 유다 왕들 가운데 가장 긴 통치 기간입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이 긴 통치를 놀라울 정도로 짧게 기록합니다. 므낫세가 어떤 전쟁에서 승리했는지, 어떤 건물을 세웠는지, 어떻게 나라의 살림을 꾸렸는지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다시 세운 산당과 바알의 제단, 성전 안에 들여놓은 아세라 조각상, 그리고 예루살렘을 가득 채운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기록합니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를 신뢰하고 산당을 없앴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청동 뱀조차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자 부수었던 왕입니다(18:4–6). 그런데 므낫세는 아버지가 없앤 산당을 다시 세우고, 아버지가 깨끗하게 했던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 다른 신들의 제단을 들여놓습니다.
그렇게 쉰다섯 해가 흐릅니다.
이 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므낫세가 악한 일을 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한 왕이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그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백성이어야 하는지가 뒤집혀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읍에 하나님이 직접 측량줄을 대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여호와야훼가 예루살렘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어떻게 그 성읍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쉰다섯 해를 다스리다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행동을 본받아, 여호와야훼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1:2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독자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자리 잡기 이전으로 데려갑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에게 그 땅에 살던 민족들의 역겨운 종교적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위기 18:24–30; 신명기 12:29–31).
이스라엘이 쫓아낸 민족들의 길을 이스라엘의 왕이 선택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앤 것을 아들이 다시 세우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없앤 산당들을 다시 세웠습니다. 바알을 위한 제단들을 세우고, 이스라엘 왕 아합이 했던 것처럼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또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에 절하고 그것들을 섬겼습니다.열왕기하 21:3 · 두루새김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 개혁의 성과가 다음 세대에 저절로 보존되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므낫세가 아버지의 개혁을 이어받지 않고 뒤집었다는 사실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바알 숭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6:31–33은 그가 바알을 위해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상을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북이스라엘의 그 왕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열왕기가 이미 심판받은 북이스라엘 왕조의 모습을 남유다 왕에게서 다시 발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합의 집안은 예후의 반란으로 무너졌고, 북이스라엘 왕국 자체도 결국 아시리아에 멸망했습니다. 이 연결은 뒤에서 여호와야훼가 아합 집안에 댔던 다림추를 예루살렘에도 대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의 배경이 됩니다.
성전 안으로 들어온 다른 신들의 제단
므낫세의 행동은 여기서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도 제단들을 세웠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성전에 관해 「내가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두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열왕기하 21:4 · 두루새김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므낫세가 성전에 제단들을 세웠다고 말한 뒤, 그 성전이 어떤 장소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장소에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한 제단을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산당에서 성전 뜰로, 성전 뜰에서 성전 안으로
처음에는 여러 지역의 산당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그 뜰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에 놓인 아세라 조각상입니다.
이것은 장소를 나열하는 우연한 순서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공간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장소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성전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다른 신들을 들여놓았습니다.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
그는 자기가 만든 아세라 조각상을 성전에 두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 성전에 관해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선택한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열왕기하 21:7 · 두루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의 약속과 므낫세의 행동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약속에 붙어 있던 조건
「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명령한 모든 것과 내 종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할 때에만, 나는 그들을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다시 떠돌게 하지 않겠다.」열왕기하 21:8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시겠다는 약속과, 이스라엘이 계속 그 땅에 안정적으로 살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문장은 아닙니다. 특히 8절에서는 땅에서 떠나 다시 떠돌게 하지 않겠다는 말씀에 분명한 조건이 붙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조와 성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므로 유다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생각을 경계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더 엄중하게 만듭니다.
열왕기상 9:6–9에서 여호와야훼는 솔로몬에게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 그 땅에서 끊어 버리겠고,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조차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따라서 열왕기하 21장의 심판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칠 때 알려 주지 않았던 새로운 조건을 뒤늦게 추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하신 언약의 경고가 역사 속에서 다시 선포되는 것입니다.
「백성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므낫세는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게 했습니다.열왕기하 21:9 · 두루새김
앞에서는 므낫세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백성」이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므낫세가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열왕기하 17장에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설명할 때 사용되었던 표현과 연결됩니다(17:14, 40). 여호와야훼가 말씀하셨으나 백성이 듣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유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느 민족이 본래부터 더 악하다는 민족적 평가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에게 금지하셨던 행동을, 그 말씀을 받은 유다 사람들이 오히려 더 심각하게 행했다는 언약에 따른 평가입니다.
왜 한 왕의 죄가 나라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는가?
므낫세가 죄를 지었는데, 왜 유다 전체가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그가 통치자로서 저지른 잘못은 단순히 개인적인 종교적 취향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이 예배하는 장소와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나라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9절은 백성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백성이 므낫세와 똑같은 행동을 했거나, 모든 개인이 같은 책임을 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는 공동체 전체의 역사적 방향을 평가하고 있지만, 각 개인의 행동을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습니다.
한 왕의 선택이 공동체 전체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므낫세의 죄가 나라 전체의 운명과 연결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벌을 주신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닙니다. 왕과 백성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적 현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성읍에 심판을 선언하시다
10절은 단순하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종들인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하 21:10 · 두루새김
이 예언자들의 이름은 열왕기하 21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어느 한 예언자의 개인적 활동보다, 여호와야훼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전하신 말씀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런 역겨운 일들을 저질렀다. 그는 자기보다 앞서 살던 아모리 사람들이 한 모든 일보다 더 악한 짓을 했고, 자기 우상들로 유다 백성까지 죄짓게 했다.」열왕기하 21:11 · 두루새김
「아모리 사람들」은 여기서 가나안에 살던 옛 민족들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지위는 다른 민족들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공의에서 유다가 예외가 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받은 백성이 그 말씀을 거부했을 때 그 책임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두 귀가 울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 그 소식을 듣는 사람마다 두 귀가 울릴 것이다.』」열왕기하 21:12 · 두루새김
두 귀가 울린다는 표현은 단순히 소리가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에게 충격과 공포를 일으킬 만큼 놀라운 재앙을 가리킵니다.
사마리아의 측량줄, 아합 집안의 다림추
「『나는 사마리아에 댔던 측량줄과 아합 집안에 댔던 다림추를 예루살렘에도 대겠다. 접시를 깨끗이 닦아 뒤집어 놓듯이, 예루살렘을 닦아 내겠다.』」열왕기하 21:13 · 두루새김
측량줄과 다림추는 건축에서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측량줄은 건물이나 공간의 치수와 위치를 확인하는 데 쓰이고, 다림추는 수직이 바르게 잡혔는지 살피는 데 사용됩니다.
사마리아와 아합 집안에 적용되었던 심판의 기준을 이제 예루살렘에도 적용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셨다는 사실이 그 기준을 바꾸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름을 두신 곳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접시를 닦아 뒤집어 놓듯
13절 후반부에서 비유는 더욱 일상적인 물건으로 바뀝니다. 접시를 닦아 내용물을 없애고 엎어 놓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이것을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깨끗하게 하거나 긍정적으로 개혁하는 일만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맥은 재앙과 멸망의 선언입니다. 성읍이 비워지고, 그 안의 질서가 뒤집히는 심판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다른 신들의 형상과 제단들로 채웠습니다. 이제 여호와야훼는 예루살렘 전체를 닦아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두 귀가 울린다는 표현은 사무엘상 3:11에서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실 것을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면서, 그 일을 듣는 사람마다 두 귀가 울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엘리 집안은 실로의 성소와 연결된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성소가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서로를 비추어 줍니다.
「내 소유인 백성 가운데 남은 사람들」 — 남아 있다는 것의 의미
14절은 심판의 대상을 특별한 말로 부릅니다.
「『나는 내 소유인 백성 가운데 남은 사람들을 버리고 원수들의 손에 넘기겠다. 그들은 모든 원수에게 짓밟히고 가진 것을 빼앗길 것이다.』」열왕기하 21:14 · 두루새김
앞에서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이제 다윗 왕조가 남아 있는 유다가 하나님의 남은 소유처럼 묘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남은 사람들을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는 선언으로 넓혀 이해하기보다, 그들이 원수들의 손에 넘겨지고 땅에서 보호받던 지위를 잃는 심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특별히 소유로 삼으셨다는 사실과, 그들이 그 관계에 맞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의 긴장이 있습니다.
왜 므낫세의 죄를 말하면서 출애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가?
「『그들이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했고,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줄곧 나를 분노하게 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21:15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므낫세 한 사람의 죄를 넘어섭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뒤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고(출애굽기 32장),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에도 여러 차례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돌렸습니다(사사기 2:11–19). 북이스라엘은 결국 그 길에서 돌아서지 않아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역시 같은 문제를 반복했습니다.
따라서 15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개인이 역사 내내 언제나 같은 정도로 악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공동체 역사에 반복해서 나타난 불순종의 흐름을 요약하는 말입니다.
므낫세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순종을 멈추게 한 왕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더 깊은 잘못으로 이끈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하루의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된 죄, 거부된 말씀, 그리고 왕이 백성에게 끼친 해악을 함께 다룹니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죄를 지었지만 즉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다 역시 여러 왕을 거치며 잘못을 반복했지만 나라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그 모든 행동을 승인하셨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므낫세의 쉰다섯 해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을 가득 채운 무죄한 피
16절은 앞선 모든 종교적 잘못과 함께 또 하나의 중대한 죄를 기록합니다.
므낫세는 유다 백성을 죄짓게 하여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도 매우 많이 죽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들의 피로 가득 채웠습니다.열왕기하 21:16 · 두루새김
앞에서 므낫세의 우상 숭배와 성전을 더럽힌 일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악을 모두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구의 피였는가?
본문은 구체적인 희생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여기서 피가 성읍을 채웠다는 표현은 피가 실제로 도시 전체를 덮었다는 뜻이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죽임당했다는 것을 강하게 묘사하는 말입니다.
앞에서는 성전에 우상의 제단들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성읍에 죄 없는 사람들의 피가 가득합니다.
한쪽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문제이고, 다른 한쪽은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문제입니다. 성전 안에 무엇을 세웠는가와 예루살렘 거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둘 다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왜 무죄한 피가 특별히 중요한가?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은 매우 심각한 죄였습니다. 신명기 19:10, 13은 죄 없는 사람의 피가 땅에 흘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민수기 35:33–34에서는 살인으로 흘린 피가 땅을 더럽힌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신 성읍이 다른 신들의 형상으로 더럽혀졌을 뿐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으로도 더럽혀진 것입니다.
열왕기하 23:26–27에서는 요시야의 개혁이 이루어진 뒤에도 여호와야훼께서 므낫세로 인해 유다를 향해 품으신 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24:3–4에서는 유다에 닥친 재앙을 설명하면서 므낫세의 죄와 그가 흘린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다시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16절은 단순히 므낫세의 성격이 잔혹했다고 알려 주는 덧붙인 기록이 아닙니다. 뒤에 일어날 유다의 멸망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므낫세 이후에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선택의 가능성도 없었다는 의미로 넓혀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왕기는 뒤이어 요시야의 행동을 중요하게 기록합니다. 다만 21장은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린 죄와 죄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얼마나 무거운 결과를 남기는지 보여 줍니다.
므낫세는 회개했는가? — 열왕기와 역대기가 남긴 서로 다른 이야기
므낫세의 기록은 갑자기 끝납니다.
역대하 33:10–17은 열왕기하 21장에 없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에 따르면 여호와야훼는 므낫세와 백성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후 므낫세는 아시리아 군대에 붙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고난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어 여호와야훼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 뒤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다른 신들의 형상과 제단들을 없애고,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회복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열왕기는 이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까?
두 기록을 한쪽으로 없애서는 안 된다
역대기는 죄인이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그분이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열왕기는 므낫세의 오랜 통치가 유다 전체에 남긴 결과와, 그로 인해 선언된 심판을 강조합니다.
열왕기가 그 회개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므낫세가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역대기가 그의 회개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열왕기에 나온 나라 전체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없었던 일처럼 읽어서도 안 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일과, 그가 이미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에 끼친 모든 결과가 사라지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회개는 실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도 실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에 저지른 폭력과 그 행동이 공동체에 남긴 상처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기는 특히 그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역대하 33:17도 므낫세가 돌아온 뒤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다만 그때는 여호와야훼께 바쳤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개인에게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그가 오랫동안 만들어 놓은 종교적 관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왕의 무덤이 있는 곳
므낫세는 죽어 자기 왕궁의 정원인 웃사의 정원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열왕기하 21:18 · 두루새김
왜 그곳에 묻혔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소는 다음 왕의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도 웃사의 정원에 묻힙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삶도 서로 닮아 있습니다.
아몬 —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걸은 아들
아몬은 스물두 살에 왕이 되어 두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는 아버지 므낫세처럼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21:20 · 두루새김
그는 아버지가 걸었던 모든 길을 따랐습니다. 아버지가 섬긴 우상들을 섬기고 그것들에 절했습니다.열왕기하 21:21 · 두루새김
여기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열왕기는 아몬을 새로운 종교 체계를 만든 왕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간 왕입니다.
왕이 죽어도 그가 세운 관습과 그가 걸어온 길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몬은 므낫세의 회개를 이어받았는가?
역대하 33:23은 아몬이 자기 아버지 므낫세가 자신을 낮춘 것과 달리 자신을 낮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죄를 더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21장은 그런 대조를 직접 제시하지 않습니다. 열왕기의 강조점은 아몬이 아버지의 잘못된 길을 그대로 걸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그 변화를 자동으로 이어받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부모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자녀가 반드시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세대의 신앙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다음 세대의 선택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아몬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는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왕궁에서 일어난 반역
23절에서 아몬의 통치는 갑자기 끝납니다.
아몬의 신하들이 반란을 꾸며 왕궁에서 왕을 죽였습니다.열왕기하 21:23 · 두루새김
왜 신하들이 반란을 꾸몄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몬이 악한 왕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반란을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동기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새로운 세력이 등장합니다.
그러자 그 땅의 백성이 아몬 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그를 이어 다스릴 왕으로 세웠습니다.열왕기하 21:24 · 두루새김
그 결과 다윗 왕조의 계승은 계속됩니다.
두 왕의 무덤, 그리고 새로운 왕
아몬은 웃사의 정원에 있는 자기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요시야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열왕기하 21:26 · 두루새김
아버지는 쉰다섯 해를 다스렸고, 아들은 두 해를 다스렸습니다. 통치 기간은 크게 달랐지만, 두 왕은 모두 여호와야훼의 길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제 두 왕의 이야기가 끝나고 요시야가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 땅의 백성」이라는 표현은 열왕기에서 왕위 계승이나 정치적 위기가 일어나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11:17–20에서는 아달랴가 제거되고 요아스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그 땅의 백성이 등장합니다. 다만 이 집단이 정확히 어떤 사회적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지, 당시의 모든 일반 주민을 의미하는지, 영향력 있는 지역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신앙적 동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왕의 무덤과 예루살렘의 측량줄
왕좌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만으로 그 왕좌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올바르다고 판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죽었고, 아들도 죽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정원에 묻혔습니다.
이제 새로운 왕이 왕좌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이 장은 새로운 왕의 이름을 알려 주는 데서 멈춥니다. 그가 무엇을 할지는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독자의 기억 속에는 두 가지가 함께 남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계속 앉아 있는 왕좌.
그리고 하나님이 예루살렘에도 대겠다고 말씀하신 측량줄.
므낫세와 아몬은 웃사의 정원에 묻혔습니다. 요시야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향해 선포된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