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7–9장 · 짐승과 나라들의 환상
짐승들의 세상에서 사람 같은 이가 나라를 받다
다니엘 7장은 앞선 이야기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다니엘은 제국의 왕들이 꾸는 꿈을 해석하고, 왕의 명령 때문에 위협받으면서도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꿈을 꾸는 사람은 다니엘 자신입니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이 사자 굴과 불가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환상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이 짐승 같은 권력에 패배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패배하는 동안, 다니엘은 또 다른 광경을 봅니다.
하늘에 왕좌들이 놓이고, 「오래전부터 계신 분」이 앉으십니다. 재판이 열리고 책들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과 함께 「사람 같은 이」가 등장합니다.
땅에서는 짐승들이 서로를 짓밟으며 권력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그 권력을 심판하는 재판이 열리고, 마침내 짐승이 아니라 사람 같은 이가 나라를 받습니다.
다니엘 7장은 누가 가장 강한 짐승인가를 묻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짐승들이 지배하는 역사가 과연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벨사살 첫해의 꿈 — 왕들의 이야기가 다니엘의 환상으로 바뀌다
왜 이야기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가
7장 1절은 환상의 시점을 「벨사살이 바벨론 왕으로 다스린 첫해」라고 밝힙니다.
5장에서 벨사살은 죽었고, 6장에서는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왕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7장은 벨사살이 다스리던 첫해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다니엘서가 반드시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배열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6장에서는 주로 왕들과 다니엘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이야기 형태로 제시되었습니다. 반면 7장부터는 다니엘 자신이 본 환상과 그 해석이 중심이 됩니다. 앞에서는 독자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도록 초대받습니다.
2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이 금과 은과 청동과 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형상을 보았습니다. 여러 나라가 일어나고 사라진 뒤 하나님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이 그 꿈의 의미였습니다. 7장에서도 네 나라가 등장하고, 마침내 하나님이 영원한 나라를 주십니다.
그러나 두 환상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제국의 왕이 본 세계는 눈부신 형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본 세계는 서로를 먹어 치우는 짐승들의 모습입니다. 두 환상 모두 인간의 왕국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역사를 다룹니다. 그러나 7장은 그 왕국들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을 훨씬 더 폭력적이고 두려운 모습으로 드러냅니다.
왕국의 위엄을 보여주는 형상이, 그 왕국의 지배를 겪는 사람들의 눈에는 짐승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아직 아람어로 말하고 있는 다니엘서
이 장은 2장 4절에서 시작된 아람어 본문의 마지막 장입니다. 8장부터는 다시 히브리어 본문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2–7장은 언어로 보아도 하나의 큰 묶음을 이룹니다. 그 안에서 처음과 마지막에 놓인 두 환상, 곧 2장의 거대한 형상과 7장의 네 짐승은 서로 짝을 이룹니다.
그런데 7장은 한 가지 새로운 문제를 더합니다.
제국들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일뿐 아니라, 그 제국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권력의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고통과 떼어 놓을 수 없게 됩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짐승
평온한 바다가 아니라 뒤흔들리는 바다
다니엘이 처음 본 것은 짐승이 아닙니다.
바다입니다.
다니엘이 말했습니다. 「나는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를 거세게 뒤흔들고 있었습니다.」다니엘 7:2 · 두루새김
그 바다에서 네 짐승이 올라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시와 예언 문헌에서 바다는 때때로 혼란과 위협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시편 74:13–14은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괴물들의 머리를 부수시는 일을 노래합니다. 이사야 27:1에서도 하나님이 바다의 괴물을 벌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런 본문들을 떠올리면, 다니엘의 환상에 등장하는 바다는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 이상의 뜻으로 읽힙니다. 질서가 흔들리고 두려운 존재들이 올라오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제국들이 일어나는 역사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폭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네 짐승을 「땅에서 일어날 네 왕」이라고 설명합니다(7:17). 바다에서 올라왔다는 환상의 모습과 땅에서 일어난다는 해석은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바다는 짐승들의 등장 모습을 그려 주고, 땅은 그들이 다스릴 인간 세계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짐승 — 사자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지다
첫째 짐승은 사자처럼 생겼고 독수리의 날개가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처럼 생겼고 독수리의 날개가 있었습니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그 날개들이 뽑혔습니다. 그 짐승은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되었고, 사람의 마음을 받았습니다.」다니엘 7:4 · 두루새김
짐승의 날개가 뽑히는 일은 힘을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한 파괴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짐승의 모습이 인간에 가까워지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 4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교만 때문에 사람의 분별력을 잃고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본 뒤 분별력이 돌아왔습니다(4:31).
이런 닮은 점과 바벨론이 네 나라의 첫 번째로 이해되는 흐름을 고려하면, 첫째 짐승을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의 경험에 연결하는 읽기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7장은 첫째 짐승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넷째 짐승에서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짐승의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과 입이 있지만, 그 눈과 입은 거만한 권력을 행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대조는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둘째 짐승 — 먹어 치우라는 명령을 받다
둘째 짐승은 곰을 닮았습니다.
「둘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고, 몸 한쪽이 들린 채 서 있었습니다. 입 안의 이빨 사이에는 갈비뼈 세 개가 있었습니다. 그 짐승에게 이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다니엘 7:5 · 두루새김
갈비뼈 세 개는 이미 먹잇감을 공격했거나 먹어 치운 짐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모습은 정복하며 세력을 넓히는 일을 거듭하는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비뼈 세 개가 반드시 특정한 세 나라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곰의 몸 한쪽이 들려 있는 모습 역시 역사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힘이 기운 상태를 상징할 수 있지만, 본문은 그 의미를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 짐승의 세계에서 다른 존재는 함께 살아갈 이웃이라기보다 먹잇감처럼 나타납니다.
셋째 짐승 — 빠른 움직임과 나뉜 머리
셋째 짐승은 표범처럼 생겼습니다.
「그 뒤에 보니 표범처럼 생긴 다른 짐승이 있었습니다. 등에는 새의 날개 네 개가 달려 있었고 머리도 네 개였습니다. 그 짐승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습니다.」다니엘 7:6 · 두루새김
표범 자체도 빠르게 먹잇감을 사냥하는 짐승입니다. 거기에 날개 네 개가 더해지면 움직임의 속도와 범위가 강조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머리 네 개는 하나의 권력이 여러 부분으로 나뉘거나 여러 방향에서 행사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머리 네 개가 구체적으로 어떤 왕들을 나타내는지는 이 장의 해석에서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환상이 끝날 무렵, 사람 같은 이에게도 통치권이 주어집니다(7:14). 짐승들도 한동안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람 같은 이에게 주어진 통치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통치권을 가졌는가뿐 아니라, 그 통치권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고 어떤 성격을 갖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넷째 짐승 — 이름 붙일 수 없는 두려움
넷째 짐승이 등장하면 환상의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앞선 세 짐승은 사자, 곰, 표범이라는 동물에 비유되었습니다. 그러나 넷째 짐승은 특정한 동물에 비유되지 않습니다.
「그 뒤에도 나는 밤의 환상을 계속 보았습니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끔찍하며 대단히 강했습니다. 커다란 쇠 이빨로 먹어 치우고 부수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습니다. 앞서 나온 모든 짐승과 달랐고, 뿔이 열 개 있었습니다.」다니엘 7:7 · 두루새김
다른 존재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먹는 행동을 넘어, 완전히 억누르고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특히 쇠 이빨은 다니엘 2장의 철로 된 넷째 나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2:40에서도 철은 다른 것을 부수고 깨뜨리는 힘의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뿔은 구약의 다른 본문들에서도 힘과 권세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됩니다(시편 75:10; 스가랴 1:18–21). 7장에서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이 뿔들을 열 왕으로 설명합니다(7:24).
그러나 환상의 긴장은 열 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작은 뿔 하나가 새로 솟아오릅니다.
사람의 눈과 입을 가진 작은 뿔
가장 두려운 것은 이빨이 아니라 입이다
작은 뿔은 처음부터 가장 크거나 가장 강한 것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뿔들 사이에서 솟아납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먼저 있던 뿔 세 개가 뿌리째 뽑힙니다. 작은 뿔이 기존 권력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입니다.
그 뿔에는 눈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 같은 눈입니다. 그리고 입이 있습니다. 거만한 말을 하는 입입니다.
뿔은 본래 힘을 상징하는 신체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힘의 상징에 인간의 눈과 입이 붙어 있습니다. 본문은 그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입이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거만한 말을 합니다.
25절에서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그가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말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을 괴롭혀 지치게 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의 거만함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과 연결됩니다. 폭력적인 권력은 몸의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내세우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말도 그 권력의 일부가 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눈과 입은 보고 이해하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뿔의 입은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데 사용됩니다. 인간의 능력을 가진 권력이 오히려 짐승의 폭력성을 더 강하게 만들어 내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작은 뿔이 단순히 힘센 짐승보다 더욱 두려운 이유입니다.
다니엘은 이 뿔의 말을 계속 듣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상의 장면이 바뀝니다. 땅의 짐승들이 아니라 하늘의 왕좌들이 등장합니다.
짐승들의 소란이 멈추고 하늘의 재판이 열리다
왕좌에 앉으신 「오래전부터 계신 분」
「내가 계속 보고 있는데 왕좌들이 놓이고, 오래전부터 계신 분이 앉으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털 같았습니다. 그분의 왕좌는 불꽃이었고, 왕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이었습니다.」다니엘 7:9 · 두루새김
인간 왕들과 제국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짧은 시간과 대조되는, 오래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에스겔 1:15–28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바퀴와 불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환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은 재판을 위해 앉으십니다.
하늘에는 왕의 군대보다 큰 법정이 있다
「그분 앞에서 불의 강이 흘러나왔습니다. 백만이나 되는 이들이 그분을 섬기고, 일억이나 되는 이들이 그분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재판이 열리고 책들이 펼쳐졌습니다.」다니엘 7:10 · 두루새김
짐승들은 힘으로 다른 존재들을 정복했습니다. 작은 뿔은 거만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행동이 이제 재판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권력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땅에서는 누가 더 강한가가 중요했습니다.
하늘에서는 누가 옳은가가 문제가 됩니다.
책들이 펼쳐지는 장면도 이 법정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그 책들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열리는 장면에서 책들이 펼쳐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단순한 변덕이나 순간적인 분노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땅에서 아무도 막지 못했던 권력도 하늘의 재판에서는 심판받는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땅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잡을 힘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짓밟는 권력이 최종적인 판단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을 심판한 것은 더 강한 짐승이 아니었다
11절에서 다니엘은 작은 뿔이 거만하게 떠드는 소리 때문에 계속 지켜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은 짐승들 사이의 전쟁이 아닙니다.
넷째 짐승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 몸이 파괴되어 불에 태워지도록 넘겨집니다.
하늘의 재판이 지상의 권력을 끝낸 것입니다.
2장에서 거대한 형상은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은 돌에 맞아 무너졌습니다. 7장에서는 넷째 짐승이 하늘의 재판을 통해 심판받습니다. 두 환상 모두 인간의 제국을 끝내는 최종적인 힘을 다른 인간 제국의 군사력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이 마지막을 결정합니다.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지만, 정해진 때까지 더 살도록 허락받았습니다.」다니엘 7:12 · 두루새김
이것은 네 짐승의 운명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차이가 정확히 어떤 역사적 과정을 나타내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존재가 계속된다고 해서 다스릴 권리도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 같은 이가 나라를 받다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오는 사람 같은 이
다니엘은 다시 봅니다.
「나는 밤의 환상을 계속 보았습니다. 사람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계신 분께 이르러 그분 앞으로 이끌려 갔습니다.」다니엘 7:13 · 두루새김
다른 나라들의 모습이 짐승 같았다면, 이제 통치권을 받을 존재는 사람 같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나라를 주시는 대상은 또 다른 무서운 짐승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로 오는가
본문은 그가 땅으로 내려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향하는 곳은 하늘의 왕좌에 앉으신 분 앞입니다. 이것은 그의 등장이 곧바로 땅을 향한 이동으로 설명되는 장면이 아니라, 하늘의 법정에서 권위를 받는 장면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구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일이나 하나님의 권위와 연결되는 이미지입니다. 시편 104:3은 하나님이 구름을 자신의 수레로 삼으신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다니엘 7장에서는 사람 같은 이가 그 구름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는 그 존재에게 특별한 하늘의 권위와 위엄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구름과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오래전부터 계신 분과 구별되는 존재로 나타나, 그 앞으로 이끌려 가 통치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왕권을 정복하지 않습니다. 왕권을 받습니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받는가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왕권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그를 섬길 것입니다. 그의 통치권은 영원하여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다니엘 7:14 · 두루새김
그 나라의 결정적인 특징은 다른 모든 나라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재판에서 그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으며, 그 통치권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같은 이는 누구인가
본문은 사람 같은 이의 정체를 직접 이름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한 가지는 사람 같은 이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사람 같은 이를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특정한 하늘의 존재나 왕의 권위를 가진 인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12:1에 등장하는 미가엘과 같은 하늘의 보호자를 떠올리는 해석도 있고, 하나님이 세우실 메시아 통치자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 인물이 한 백성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같은 이가 한 인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과, 해석에서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받는다는 사실은 반드시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그 관계를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구약 안에서의 더 넓은 의미
창세기 1:26–28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돌보는 책임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7장에서는 인간의 나라들이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두 본문을 연결하여 읽을 때 나타나는 중요한 신학적 대조입니다. 다니엘 7장이 창세기 1장을 직접 인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 본문은 인간의 통치가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또 시편 8편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시편 8:5–8). 그러나 다니엘 7장은 인간이 그 다스림을 얼마나 뒤틀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이 다른 존재를 짓밟는 권리가 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잃어버립니다.
신약에서 이어지는 사람 같은 이의 이미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과 권위를 말씀하실 때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특히 마가복음 14:62에서 예수님께서는 권능자의 오른편에 앉는 모습과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오는 인자의 모습을 함께 말씀하십니다. 이는 시편 110:1과 다니엘 7:13을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본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연결을 통해 다니엘 7장의 사람 같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관련하여 읽어 왔습니다.
다만 다니엘 7장의 첫 독자가 보았던 환상의 의미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그 이미지를 자신의 사명에 적용하시는 방식은 구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결은 다니엘서의 본래 환상을 대체하기보다, 그 환상이 지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신약에서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이
아람어 표현 케바르 에나시는 원문을 낱말대로 옮기면 「사람의 아들과 같은」이라는 구조이며, 자연스럽게는 사람 같은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특정한 인물의 고유한 이름이나 칭호로 제시된 표현이 아닙니다. 환상에서 다니엘이 본 존재의 모습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이해하는 해석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14절과 18절의 연결입니다. 14절에서는 사람 같은 이가 영원한 왕권을 받습니다. 18절에서는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받아 영원히 차지합니다. 특정한 하늘의 존재나 왕의 권위를 가진 인물로 이해하는 읽기에서는, 그는 하늘의 구름과 함께 등장하며 오래전부터 계신 분 앞으로 이끌려 갑니다. 따라서 단순히 평범한 인간 왕을 그린 것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또 14절에서 모든 백성과 민족,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그를 「섬길」 것이라고 할 때 사용되는 아람어 펠라흐(פְּלַח)는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이나 신들을 섬기는 행위에도 사용됩니다(3:12, 18; 6:17). 그러므로 여기의 섬김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복종하는 것 이상의 종교적 울림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사람 같은 이가 정확히 어떤 신적인 존재인지 완전히 밝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받아」
다니엘 자신도 환상을 두려워했다
「나 다니엘은 마음속으로 괴로웠고, 내가 본 환상들 때문에 두려웠습니다.」다니엘 7:15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이 영원한 나라를 주시는 장면을 보았지만, 그 전에 짐승들이 세상을 짓밟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곁에 서 있는 존재에게 해석을 요청합니다.
다니엘처럼 꿈을 이해하는 지혜를 받은 사람에게조차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독자도 이 환상에 등장하는 모든 짐승과 뿔과 숫자를 성급하게 확정하려 하기보다, 본문이 직접 해석해 주는 내용부터 따라가야 합니다.
네 짐승보다 중요한 한 문장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네 짐승이 땅에서 일어날 네 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다니엘 7:18 · 두루새김
네 짐승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나라가 사자인지, 어느 나라가 곰인지, 표범의 네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마지막 결과부터 말합니다.
여기서 「그러나」라는 대조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의 나라들은 짐승의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왕권을 받는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이들입니다.
이 환상에서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제국의 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반복 자체가 끝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갑니다.
거룩한 이들은 누구인가
한 가지 읽기는 이들이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 곧 짐승 같은 권력 아래에서 고난받는 공동체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7장에서는 거룩한 이들이 땅의 권력에게 전쟁을 당하고 고통받는 존재들로 나타납니다(7:21, 25). 또 27절은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해하는 근거도 강합니다.
다른 읽기는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과 그들이 대표하거나 보호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다니엘 4장에서 거룩한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를 가리켰습니다(4:10). 이 장만으로 모든 부분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짐승 같은 권력 아래에서 고통받는 하나님께 속한 이들이 마지막에 나라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금 나라를 차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환상은 그들의 미래를 정반대로 선언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다니엘의 영이 마치 칼집 안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독특한 표현을 씁니다. 영이 몸 안에서 괴로워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한 비유의 범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마음속으로 괴로웠고」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거룩한 이들을 이기는 작은 뿔
다니엘은 왜 넷째 짐승을 다시 묻는가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이미 네 짐승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는 넷째 짐승에 관해 더 정확히 알고 싶어 합니다. 넷째 짐승이 다른 모든 짐승과 달랐고, 몹시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 짐승을 다시 설명하면서 앞서 없었던 자세한 모습도 덧붙입니다. 쇠 이빨뿐 아니라 청동 발톱이 있었다고 말합니다(7:19).
그런데 다니엘이 더욱 집중하는 것은 작은 뿔입니다.
그 뿔은 다른 뿔들보다 커 보였으며, 거만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 가장 두려운 사실이 새롭게 나타납니다.
「내가 보니 그 뿔이 거룩한 이들과 전쟁을 벌이며 그들을 이기고 있었습니다.」다니엘 7:2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에서 구하셨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충실한 사람이 어떤 폭력 앞에서도 즉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여기에서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때로는 즉각적인 구원으로 드러나고, 때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고난 가운데 미래의 판결을 기다리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넷째 나라와 작은 뿔의 역사적 의미
뜻을 풀이해 주는 이는 넷째 짐승이 넷째 나라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뿔 열 개는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라고 밝힙니다. 그들 뒤에 또 다른 왕이 등장해 세 왕을 굴복시킬 것입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작은 뿔이 어떤 이름을 가진 왕인가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거룩한 이들을 괴롭히며,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합니다.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말하고,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을 괴롭혀 지치게 할 것이다. 정해진 때와 법을 바꾸려고 할 것이다. 거룩한 이들은 한 때와 여러 때와 반 때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다니엘 7:25 · 두루새김
「정해진 때와 법」은 단순히 행정적인 일정과 법률만을 뜻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을 괴롭히는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과 공동체가 지켜 온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과 절기, 성전 제사를 금지하려 했던 역사적 사건들은 이런 해석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정확히 어떤 절기나 어떤 법 조항을 바꾸려 하는지 하나씩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더 넓게는 작은 뿔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아가는 질서 자체를 바꾸려 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뿔은 자신에게 때와 법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다니엘 2:21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이 때와 시기를 바꾸시고, 왕들을 물러나게 하시며 왕들을 세우신다고 찬양했습니다. 작은 뿔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짐승 같은 권력의 본질이 여기에 드러납니다.
그것은 단순히 강력한 정부나 큰 나라가 아닙니다. 자신의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까지 자기 지배 아래 두려는 권력입니다.
「한 때와 여러 때와 반 때」
그런데 작은 뿔이 거룩한 이들을 괴롭히는 기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한 때와 여러 때와 반 때」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이들이 그의 손에 넘겨지지만, 그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를 거룩한 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뿔은 거룩한 이들을 이길 수 있지만, 그들을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읽기는 네 나라를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로 이해합니다. 이 해석에서는 넷째 짐승을 그리스 제국 및 그 뒤를 이은 왕국들의 통치와 연결하고, 작은 뿔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와 연결합니다. 이 해석의 근거는 그가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을 억압하고 성전 제사를 금지한 사건입니다. 다른 읽기는 네 나라를 바벨론, 메디아-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로 이해합니다. 이 해석에서는 넷째 짐승을 로마와 연결하고, 작은 뿔은 로마의 특정한 통치자나 후대에 등장할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력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는 다니엘 2장의 쇠로 된 넷째 나라와 7장의 쇠 이빨을 가진 넷째 짐승 사이의 닮은 점이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7장 자체는 네 나라의 이름이나 작은 뿔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만으로 하나의 역사적 목록을 확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한 때와 여러 때와 반 때」에서 「여러 때」에 해당하는 아람어(עִדָּן)는 복수 형태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합하여 세 때 반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각 때를 한 해로 보면 삼 년 반이라는 계산이 됩니다. 그러나 원문은 복수형 자체만으로 정확히 몇 번인지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반드시 특정한 연수나 일수로 바꾸어 계산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재판은 거룩한 이들을 위해 열린다
승리와 최종 판결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오래전부터 계신 분께서 오셔서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을 위해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때가 이르러 거룩한 이들이 나라를 차지했습니다.」다니엘 7:22 · 두루새김
작은 뿔은 거룩한 이들을 이깁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재판의 판결을 바꾸지 못합니다. 땅에서 전쟁의 결과가 이미 나왔더라도, 하늘에서 그 권력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승리했다고 해서 정당한 것도 아닙니다.
강력한 권력이 다른 사람을 압도했다는 사실이 그 권력의 행동을 의롭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권력을 심판하십니다.
고통받던 이들이 나라를 받다
「『왕권과 통치권과 온 하늘 아래 모든 나라의 위엄이 가장 높으신 분께 속한 거룩한 이들의 백성에게 주어질 것이다. 가장 높으신 분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고, 모든 통치자가 그분을 섬기며 순종할 것이다.』」다니엘 7:27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억압받던 사람들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이전의 지배자들에게 똑같이 복수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짐승 같은 권력의 세계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어 치우는 방식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는 하늘의 재판을 통해 주어집니다. 그 왕권이 어디에서 오는지, 왜 정당한지가 다릅니다.
짐승 같은 권력을 비판하면서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을 짓밟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다니엘 7장이 드러내는 통치의 문제를 반복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의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짐승들의 나라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나라는 영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22절의 판결을 내리는 표현은 문법적으로 거룩한 이들에게 재판의 권한을 주었다고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맥에서는 그들이 그들을 대적하는 권력에게 패배하다가 마침내 나라를 차지하는 상황으로 바뀌므로, 그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27절 후반의 원문에서는 그의 나라와 그를 섬긴다는 표현을 쓰지만, 여기서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된 가장 높으신 분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영원한 나라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모든 통치자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거룩한 이들의 백성 또는 그들을 대표하는 왕과 같은 존재와 연결하여 읽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특히 14절에서 사람 같은 이에게 모든 백성의 섬김이 주어졌다는 사실과 연결하면, 27절의 표현이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원문에 남아 있는 이 모호함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맺음 — 다니엘은 기뻐하지 않고 얼굴빛이 변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은 악한 권력이 지금 당장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권력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마지막 판결을 내릴 권한까지 차지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희망은 인간이 스스로 더 나은 제국을 만들 수 있다는 낙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재판하시고 나라를 주신다는 약속에 있습니다.
다니엘 7장의 마지막은 뜻밖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나 다니엘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몹시 두려웠고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나는 이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다니엘 7:28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이들이 겪을 고통도 보았습니다. 그는 짐승들의 권력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끝이 현실이 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환상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짐승들은 아직 땅을 짓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들의 권력이 끝나는 장면도 이미 보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