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34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밤의 찬양과 창조주의 복

시편 134편에는 짧지만 흥미로운 방향의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 두 절에서는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비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는 것도, 여호와야훼가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도 히브리어에서는 바라크(⁨בָּרַךְ⁩)라는 같은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하나님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와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같은 동사를 사용하지만, 그 행동의 의미는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생명이나 능력을 더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정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에게 복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시간은 밤입니다.

성전의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을 법한 시간에도, 여호와야훼의 집에는 여전히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들을 향해 찬양하라고 부릅니다.

시편 120편부터 이어진 열다섯 편의 오름의 노래가 여기서 끝납니다. 이 노래들을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의 흐름으로 읽는다면, 마지막에 남는 모습은 순례객의 도착이나 성대한 축제가 아닙니다. 밤에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과 시온에서 오는 복의 선언입니다.

시편 134편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가에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시는가로 끝납니다.

읽는 시간 14분소단락 4134편 본문 읽기 →

밤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사람들

시편 134:1 본문 →

오름의 노래. 보라,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 여호와야훼의 모든 종들아, 밤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이들아.시편 134:1 · 두루새김

시편은 「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독자의 관심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시킵니다. 시인은 그들을 「여호와야훼의 모든 종들이여」라고 부르고, 이어지는 표현이 그들의 정체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밤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이 사람들은 밤에도 성전에 서 있을까요?

밤에도 계속되는 성전의 섬김

이스라엘의 성전에서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여러 일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드리고, 성소의 물건과 공간을 관리하고, 문을 지키며, 찬양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같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시편의 「밤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사람들은 밤에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맡았는지는 시편이 밝히지 않습니다. 밤에 노래하는 사람들만을 뜻할 수도 있고, 성전에서 밤에 맡은 일을 하는 종들을 더 넓게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본문은 밤에 섬기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지만, 노래 자체가 연주된 시간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왜 하필 밤에 서 있는 사람들인가요?

밤은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쉬는 시간입니다.

낮에는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제사와 예배를 위해 모이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낮의 분주함은 줄어듭니다. 이때 시인은 여전히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이들은 성전의 화려한 행사에 참여하는 군중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제사장이나 지도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종들이며, 밤에 그분의 집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그분을 섬기며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34편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성전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들에게 시인은 무엇을 명령할까요?

밤을 새워 열심히 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성전에 머무는 이유는 결국 여호와야훼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밤의 수고도 그분을 향한 예배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성전에서 섬기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누구의 집에 서 있으며 누구를 섬기는지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적고 밤이 깊었다는 이유로 그 섬김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시인은 오히려 그런 시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불러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도록 합니다.

누가 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여호와야훼의 종들을 향해 찬양하라고 권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본문은 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아온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성전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성전 봉사자들에게 찬양을 권하는 말일 수도 있으며, 공동체가 여호와야훼의 종들을 향해 함께 외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찬양하도록 부름받는 대상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는 종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밤의 성전에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한번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기상 9:26-27에는 성전의 문과 방을 지키는 사람들이 밤을 보내고 아침마다 문을 여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장 33절에서는 레위 사람 가운데 노래하는 이들이 다른 일을 맡지 않고 밤낮으로 자신의 일을 맡았다고 말하고, 역대기상 23:30은 레위 사람들이 아침과 저녁마다 여호와야훼 앞에 서서 감사하고 찬양하도록 했다고 기록합니다. 「서 있는」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신명기 10:8에서 레위 지파가 여호와야훼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이름으로 축복하도록 따로 세워졌다고 말하고, 신명기 18:5에서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사장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섬기기 위해 서 있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말하는 사람을 순례자로 읽으면,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밤에 성전의 종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권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한 예배 상황을 재구성한 해석입니다. 시편에는 순례자들이 성전을 떠난다는 말도, 제사장들이 그들을 배웅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손을 들고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십시오

시편 134:2 본문 →

성소를 향해 손을 들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시편 134:2 · 두루새김

손을 들어야 합니다.

시인은 단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손을 드는 행동과 함께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권합니다.

손을 드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손을 드는 것은 기도와 예배에 사용되는 몸짓이었습니다. 시편 28:2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든다고 말하고, 시편 63:4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손을 들겠다고 고백합니다. 애가 3:41에서는 손과 마음을 함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고 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고, 간절히 구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행동입니다. 시편 134편에서는 특별히 찬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소를 향해」라는 번역의 의미

성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거룩함이나 거룩한 장소를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문제는 원문이 손을 드는 방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어 문장을 낱말 그대로 옮기면 「너희 손을 들어라, 거룩함」에 가까운 간결한 표현이 됩니다.

하나는 두루새김처럼 성소를 향해 손을 들라는 뜻입니다. 앞 절에서 여호와야훼의 집을 말하고 있고, 시편 28:2에서도 성소를 향해 손을 드는 기도가 등장한다는 점이 이 읽기를 뒷받침합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함 가운데 손을 들라는 뜻입니다. 이 경우 강조점은 손을 드는 방향보다 예배하는 사람의 거룩한 태도에 놓입니다.

원문이 어느 한 해석만을 확실하게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손을 드는 행위가 여호와야훼를 향한 예배와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여호와야훼의 집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찬양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시 손을 들고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섬기는 분을 향한 경외와 감사를 잊을 수 있습니다.

성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실제로 예배하는 일은 구별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전 봉사자들의 태도를 비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인은 그들이 불성실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그분을 향한 찬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한다는 것

1절과 2절에서 반복되는 「찬양하십시오」는 원문에서 모두 바라크라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일반적으로 복을 주거나 축복하는 것을 뜻하지만,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을 높이거나 찬양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하나님께 부족한 것을 채워 드리는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이 행하신 일을 높이며, 그분이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시편 103:1-2에서도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향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부르며, 그분의 모든 은혜를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분에게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드리는 행위라기보다, 그분이 이미 베푸신 은혜와 그분의 성품을 인정하고 높이는 일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셔야 비로소 온전해지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원문의 같은 동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편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찬양하던 사람에게 돌아오는 복

시편 134:3 본문 →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가 시온에서 그대에게 복을 주시기를.시편 134:3 · 두루새김

먼저 명령이 복을 비는 말로 바뀝니다. 1~2절에서는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해야 합니다. 3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말의 상대도 달라집니다. 처음 두 절의 명령은 여러 사람을 향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의 「너에게」는 히브리어 문법상 남성 단수 2인칭입니다.

마지막 축원은 누가 하는 말일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1~2절에서 성전의 종들에게 찬양하라고 권했던 사람들이, 3절에서 그 종들 가운데 한 사람 또는 대표자를 향해 축복을 비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읽기는 1~2절은 순례자들이 성전 봉사자들에게 건네는 권면이고, 3절은 성전의 제사장이나 봉사자가 순례자들에게 돌려주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시편 전체가 짧은 예배의 대화처럼 들립니다. 민수기 6:24-26에서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야훼의 복을 빌 때도 한 사람을 향하는 단수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이 이 읽기와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시편은 3절에서 말하는 사람이 바뀌었다고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이 실제로 어떤 예배 순서에 따라 두 집단이 주고받던 노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단수 「너에게」는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축복을 받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향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시편은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와 개인을 향한 축원을 함께 놓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멀리 떨어진 집단의 이름 위에 막연하게 놓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찬양과 축복은 교환이 아닙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해석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3절은 「여러분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한다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여호와야훼가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이것은 축원이자 기도이지, 찬양의 대가를 요구하는 계약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에는 아름다운 비대칭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이미 누구신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찬양은 하나님의 풍성함에 무엇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함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은 사람이 그 풍성함을 자신의 삶에서 누리게 되는 은혜입니다.

시온에서 복을 주시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

시인은 축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늘어놓지 않습니다. 대신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말합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입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두 공간이 함께 등장합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특정한 장소이지만,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시온에서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앞의 시편 132편에서 여호와야훼는 시온을 자신이 머무실 곳으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132:13-14). 그러나 여호와야훼가 시온에 머무신다는 말은 그분의 능력과 활동이 시온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제한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솔로몬도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조차 하나님을 담을 수 없는데 자신이 지은 성전이 어떻게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겠느냐고 고백합니다(열왕기상 8:27).

성전에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이 섬기는 장소의 신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을 찬양합니다.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는 말은 오히려 모든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구체적인 장소를 정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시온이 특별한 이유는 여호와야훼가 그곳을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야훼는 한 지역에 속한 제한된 신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십니다.

조금 더 깊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라는 표현은 오름의 노래 안에서도 되풀이됩니다. 시편 121:2에서 기도자는 자신의 도움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에게서 온다고 고백하고, 시편 124:8에서도 이스라엘의 도움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의 이름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시편 128:5는 여호와야훼가 시온에서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시편 134:3은 그 축원을 반복하면서, 복을 주시는 분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라는 사실을 덧붙입니다. 바로 앞 시편 133:3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시온에서 생명의 복을 명령하셨다고 말합니다. 앞 시편에서 선언된 복이 마지막 시편에서는 실제로 누군가를 향해 선포되는 축원이 됩니다. 시편 133편에는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름과 산에 내리는 이슬이 있었고, 시편 134편에는 밤의 성전과 손을 든 하나님의 종들이 있습니다.

밤의 성전에 남은 마지막 노래

시편 134:1–3 본문 →

시편 134편은 오름의 노래를 세 절로 마무리합니다.

이 모든 노래를 하나의 연속적인 순례 이야기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120~134편이 하나의 묶음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그 흐름을 함께 읽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 올라온 사람들의 여정이 마침내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찬양과 축복의 말로 마무리됩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동사지만 주어와 대상이 바뀌면서 의미도 바뀝니다. 사람은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고, 여호와야훼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과 그분의 백성을 향한 가까움이 함께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사람들의 찬양을 받으시고, 그들의 삶에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는 아직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부릅니다. 「여호와야훼의 모든 종들이여,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십시오.」 그들은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하도록 권면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복의 말이 울려 퍼집니다.

사람들은 성전에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손을 들고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분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입니다.

이제 오름의 노래는 더 이어지지 않습니다.

시인은 순례자들이 어디로 떠나는지, 밤의 성전에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지막 축원을 남깁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께서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노래는 멈춥니다.

밤의 성전에는 여전히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사람들이 서 있고, 그들이 들어 올린 손은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