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0 베타

호세아 1장

이 장 풀어 읽기

호세아에게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말씀

유다에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왕으로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으로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이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호세아의 결혼과 세 자녀

여호와야훼께서 처음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실 때,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음행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음행의 자녀들을 두어라. 이 땅의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따르던 길에서 떠나 심하게 음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고멜은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머지않아 내가 이스르엘에서 피를 흘리게 한 책임을 예후 집안에 묻고, 이스라엘 왕국을 끝내겠다.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부러뜨리겠다.」

고멜은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더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엾이 여기지 않고,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가엾이 여기겠다. 그들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구해 주겠다. 활이나 칼이나 전쟁으로, 말이나 말을 탄 군사들로 구해 주지는 않겠다.」

고멜은 로루하마의 젖을 뗀 뒤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고,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

1장 해설 모두 보기 9
1:1 여호와야훼께서는 누구신가요?

이 책에서 여호와야훼와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1:1 유다와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인가요?

그래서 두 나라의 왕들을 따로 소개해요. 6–7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에게 서로 다른 앞날을 말해요.

1:2 음행이란 무엇이며, 왜 이 땅의 백성이 음행한다고 하나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약속을 저버리는 모습에 빗대어,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렸다고 말해요. ‘음행의 자녀들’은 이 결혼 이야기의 자녀들을 가리켜요. 자녀들 자신이 음행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어요.

1:4 아이 이름과 골짜기 이름이 왜 같나요?

열왕기하 9–10장에는 예후가 이스르엘을 중심으로 아합 집안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죽인 이야기가 나와요. 호세아의 ‘이스르엘에서 흘린 피’는 그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어요. ‘예후 집안’은 예후와 그 뒤를 이은 왕들의 집안이에요. 이 절은 그 집안에 피 흘린 책임을 묻지만, 예후의 어떤 행위까지 포함해 평가하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요.

1:5 이스라엘의 활을 부러뜨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앞 절의 왕국을 끝내겠다는 말과 이어져요. 뒤의 7절에서는 유다를 구할 때에도 활이나 군대의 힘을 쓰지 않겠다고 말해요.

1:6 로루하마는 무슨 뜻인가요?

여호와야훼께서는 딸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더는 가엾이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전하셨어요. 딸 개인의 잘못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이셨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어요.

1:9 로암미는 무슨 뜻인가요?

아이에게 붙인 이름이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말이 돼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와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가 짝을 이루며,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끊어지는 선언을 전해요.

1:6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떻게 옮긴 건가요?

원문의 마지막 구절에는 부정하는 말이 따로 없어요. 본문은 앞의 부정을 이어 받아 옮겼어요. 여기 쓰인 동사는 ‘용서하다’ 외에 ‘들어 올리다’나 ‘옮기다’라는 뜻도 있어서, 백성을 데려가 버리겠다는 말로 읽는 해석도 있어요.

1:9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는 말씀은 어떻게 옮긴 건가요?

이 말씀은 앞의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와 짝을 이뤄요. ‘너희를 위해 있지 않겠다’는 표현에는 그들을 위해 함께하거나 돕지 않으시겠다는 더 넓은 뜻도 담길 수 있어요. 여기의 ‘있겠다’는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밝히실 때 쓰는 동사형과 같아서, 그 말씀을 떠올리며 읽을 수도 있어요.